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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tors who love money and engage in extortion may outwardly appear to be respectable religious leaders, but inwardly they worship the idol of money and exploit the souls of people. Jesus teaches that, in God's sight, their true nature is like foul-smelling filth.

  Pastors who love money and engage in extortion may outwardly appear to be respectable religious leaders, but inwardly they worship the idol of money and exploit the souls of people. Jesus teaches that, in God's sight, their true nature is like foul-smelling filth.           “The Pharisees, who loved money, heard all this and were sneering at Jesus. He said to them, ‘You are the ones who justify yourselves in the eyes of others, but God knows your hearts. What people value highly is detestable in God’s sight’” (Luke 16:14–15).       (1)     As I read Jesus' words in the first half of Luke 16:14, “The Pharisees, who loved money,” I found myself rereading a brief devotional reflection I had previously written entitled “Pastors Who Love Money Like the Pharisees…”   Pastors who love money like the Pharisees are proud and do not acknowledge God.   Because of their sin, not only they themselves but also...

돈을 좋아하는 외식하는 목사들은 겉은 존경스러운 종교 지도자의 모습이지만, 속은 '돈'이라는 우상을 숭배하며 사람들의 영혼을 착취하는 그들의 본질이 하나님 보시에는 썩은 냄새가 나는 오물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돈을 좋아하는 외식하는 목사들은 겉은 존경스러운 종교 지도자의 모습이지만, 속은 ''이라는 우상을 숭배하며 사람들의 영혼을 착취하는 그들의 본질이 하나님 보시에는 썩은 냄새가 나는 오물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들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누가복음 16:14-15).

 

 

(1)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16 14 상반절인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 예수님의 말씀을 읽을 바리새인들처럼 돈을 좋아하는 목사들은 …”이란 짧은 말씀 묵상 글을 다시금 찾아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바리새인처럼 돈을 좋아하는 목사들은 교만하여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니 그들의 죄로 말미암아 자신뿐만 아니라 교회 식구들도 넘어질 것입니다(참고: 호세아 5:4-5, 현대인의 성경; 누가복음 16:14).

 

(a)   그런 저는 제가 돈을 좋아하는 교인들 …”이란 제목아래 짧은 말씀 묵상 글도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돈을 좋아하는 교인들은 주님께서 잠시 땅에 맡기신 주님의 재산을 주님의 뜻대로 재산 관리를 하지 않고 오히려 주님 보시기에 낭비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그들에게 ' 이상 내가 너에게 재산을 맡길 없으니 지금까지 네가 맡아 하던 청지기 직무 일을 정리하라' 말씀하십니다.  돈을 좋아하는 교인들은 세상 사람들처럼 자기 나름대로 지혜롭게 한답시고 정직하지 못하게 불의한 재물을 불성실하게 모읍니다.  그러한 자들에게 주님께서는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없다" 말씀하십니다.  그런데도 돈을 좋아하는 교인들은 말씀을 듣고 비웃습니다(누가복음 16:1-14, 현대인의 성경).

 

(i)                  마지막으로 저는 돈을 좋아하는 교회 사람들이란 제목 아래 짧은 말씀 묵상 글도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교회 안에 사람들 앞에서 자기 자신을 스스로 옳다하는 돈을 좋아하는 자들은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없느니라" 주님의 말씀을 듣고 비웃습니다(누가복음 16:13-15).

 

(2)   그리고 나서 저는 돈을 좋아하는 자들”(14)이란 헬라어 단어가 무엇이고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해서 찾아보았습니다.  단어는 바로 “φιλάργυροι”(피라르고리)입니다. 

 

1.      단어의 어원과 문자적 의미

 

단어는 개의 헬라어가 결합한 합성어입니다.

 

필로스(φίλος): 사랑하는, 친근한

아르기루스(ργυρος): (Silver), (Money)

 

종합: 문자 그대로 '은을 사랑하는 사람', '돈을 사랑하는 (Lovers of money)' 혹은 '탐욕스러운 ' 뜻합니다.

 

2.      누가복음 16:14 맥락에서의 의미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φιλάργυροι)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예수님이 바로 구절(13)에서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없다" 말씀하시자, 바리새인들은 코웃음을 치며 비웃었습니다.  누가는 그들이 비웃은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그들의 본질이 '피라르고리(돈을 사랑하는 자들)'였기 때문이라고 고발합니다.

 

위선의 폭로: 바리새인들은 겉으로는 율법을 철저히 지키고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하지만 실제 마음의 중심에서는 하나님이 아닌 '' 주인으로 모시고 있었습니다.

 

잘못된 신학관: 당시 유대 사회에서는 '()' 하나님께 순종해서 받은 축복의 증거로 여겼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부유함을 경건의 훈장처럼 자랑했기에, 재물을 부정적으로 언급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수용할 없었던 것입니다.

 

3.      영적 교훈

 

성경에서 '돈을 사랑함' 단순한 경제적 욕심을 넘어, 하나님의 자리에 물질을 올려두는 '우상숭배'이자 모든 악의 뿌리로 경고됩니다(딤전 6:10).  외적인 종교 행위가 아무리 화려해도 마음이 물질에 매여 있다면,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엄중한 경고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인터넷).

 

(a)   여기서 저는 디모데전서 6 10 말씀을 헬라어 성경으로 묵상하고 싶어졌습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i)                  4개의 헬라어 성경 문구의 의미입니다(인터넷):

 

1.      일만 악의 뿌리” (ίζα πάντων τν κακν) (리자 가르 판톤 카콘):

 

리자(ίζα): 뿌리(Root) 뜻합니다.  식물의 모든 자양분이 뿌리에서 나오듯, 죄악이 자라나는 근원지라는 뜻입니다.

 

판톤 카콘(πάντων τν κακν): 직역하면 '모든 악들'입니다.  성경의 '일만()' 숫자 10,000이라기보다 '세상의 온갖 종류의 모든 ' 의미하는 수사적 표현입니다.  , 자체가 악이 아니라, 돈을 사랑하는 마음이 모든 형태의 죄악을 싹틔우는 토양이 된다는 경고입니다.

 

2.      돈을 사랑함” ( φιλαργυρία) ( 필라르기리아):

 

필라르기리아(φιλαργυρία): '피라르고리'(φιλάργυροι)("돈을 좋아하는 자들") 명사형입니다.  돈을 삶의 최고 목적으로 삼고 집착하는 탐욕을 뜻합니다.

 

3.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πεπλανήθησαν π τς πίστεως) (아페플라네데산 아포 테스 피스테오스):

 

아페플라네데산(πεπλανήθησαν): '길을 잃고 헤매다', '올바른 경로에서 이탈하다'라는 뜻입니다.  돈에 눈이 멀면 하나님을 향한 바른 신앙의 궤도에서 자신도 모르게 이탈하게 됨을 의미합니다.

 

4.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αυτος περιέπειραν δύναις πολλας) (헤아우투스 페리에페이란 오두나이스 폴라이스):

 

페리에페이란 (περιέπειραν): 고기를 꼬챙이에 꿰뚫거나 칼로 사정없이 찌르는 고통스러운 모습을 묘사하는 강렬한 단어입니다.  돈을 좇는 삶의 끝은 풍요가 아니라, 영혼과 삶이 스스로 파멸하는 극심한 고통뿐임을 시각적으로 보여줍니다.

 

(ii)                디모데전서 6 10 말씀이 주는 영적 메시지(인터넷):

 

1.      돈은 중립이나, '사랑함' 우상숭배입니다.

 

성경은 '' 자체를 악하다고 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돈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돈을 사랑한다는 것은 돈을 신뢰하고, 돈에서 위로를 얻으며, 돈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는 행위이기에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밀어내는 우상숭배가 됩니다.

 

2.      믿음을 무너뜨리는 가장 강력한 유혹입니다.

 

사도 바울은 돈에 대한 탐욕이 결국 '믿음에서 떠나게' 만든다고 경고합니다.  재물에 대한 집착은 영적인 눈을 가려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킵니다.

 

3.      탐욕의 끝은 스스로를 파괴하는 고통입니다.

 

많은 부를 얻기 위해 신앙과 양심을 저버린 자들은 결국 만족을 얻지 못하고, 오히려 탐욕이 날카로운 창이 되어 자신의 영혼과 가정을 찌르는 비극을 맞이하게 됩니다.

 

(3)   저는 돈을 좋아하는 자들 바리새인들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14)이란 말씀에서 비웃다 헬라어 단어가 무엇이고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해서 찾아보았습니다.  단어는 바로ξεμυκτήριζον” (엑세미크테리존)입니다. 

 

1.      단어의 어원과 문자적 의미

 

단어는 개의 단어가 결합하여 의미가 극대화된 강렬한 동사입니다.

 

에크(κ): '~밖으로' (강조의 의미로 '완전히', '철저하게' 뜻함)

 

믹테르(μυκτήρ): '콧구멍', '(Nose)'

 

이조(ίζω): 동사형 어미

 

종합: 문자 그대로 코를 킁킁거리며 '코방귀를 뀌다', '콧구멍을 들이밀며 비웃다'라는 뜻입니다.  단순히 입으로 웃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완전히 무시하고 경멸할 나오는 신체적 반응을 그대로 담은 단어입니다.

 

2.      문법적 특징과 의미: '계속해서 비웃었다'

 

단어의 시제는 헬라어 문법상 미완료 과거형(Imperfect)입니다.

 

미완료 시제는 과거에 행동이 번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일어났음을 나타냅니다.

 

,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슬쩍 비웃고 것이 아니라, 서로 눈짓을 주고받으며 계속해서 콧방귀를 뀌고 조롱을 이어갔음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3.      누가복음 16 14  맥락에서의 영적 의미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ξεμυκτήριζον)"

 

바리새인들이 이토록 거만하게 코웃음을 이유는 예수님의 말씀이 자신들의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정면으로 받아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오만함:

 

그들은 자신들이 율법을 가장 안다고 자부했기에,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없다" 예수님의 선포를 애송이의 철없는 소리 정도로 여겼습니다.  자신들의 ' 사랑' 정당화하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도리어 비웃은 것입니다.

 

누가복음에서만 쓰인 독특한 단어:

 

ξεμυκτήριζον”(엑세미크테리존)(미크테리조 계열) 신약성경 전체에서 매우 드물게 사용되는데, 재미있게도 누가복음 23 35절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박히셨을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똑같이 조롱할 다시 한번 등장합니다.  돈을 사랑하여 예수님을 코웃음 치며 비웃었던 자들이, 결국에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박고 비웃었던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거룩하다고 믿었지만, 실상은 탐욕에 눈이 멀어 메시아(그리스도) 말씀을 코웃음 치며 넘겨버리는 영적 맹인이었음을 누가는 단어로 날카롭게 고발하고 있습니다(인터넷).

 

(a)   여기서 저는 돈을 사랑하여 예수님을 코웃음 치며 비웃었던 자들이, 결국에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박고 비웃었다 문구에 흥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공지능에게 물어보았더니 이렇게 답변을 받았습니다(인터넷):

 

(i)                  아주 예리하고 통찰력 있게 본문을 포착하셨습니다.  질문자님이 흥미를 느끼신 연결고리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누가복음의 저자 누가가 의도적으로 배치한 매우 정교한 신학적 복선(영화의 장치 같은 설정)입니다.

 

헬라어 원어와 누가복음의 구조를 통해 장면이 어떻게 소름 돋게 연결되는지 가지 포인트로 정리해 드립니다.

 

1.      단어의 유일성: 신약성경에 , 모두 '누가' 사용

 

질문하신 '엑세미크테리존(ξεμυκτήριζον)' 원형 동사인 '엑스미크테리조' 방대한 신약성경 전체를 통틀어 번만 나옵니다.  그리고 모두 누가복음에만 등장합니다.

 

번째 ( 16:14): 돈을 사랑하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코웃음 치며 비웃음

 

번째 ( 23:35):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보며 관리(종교 지도자)들이 코웃음 치며 비웃음

 

"백성은 서서 구경하는데 관리들은 비웃어(ξεμυκτήριζον) 이르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누가는 16장에서 바리새인들이 보인 오만방자한 '코방귀' 결국 어디로 향하게 되는지를 23장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최종적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2.      ' 사랑' '메시아 살해' 이어지는 필연적 과정

 

예수님을 코웃음 치며 비웃었던 자들이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박는 자들이 것은 영적으로 매우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가치관의 충돌: 예수님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와 영혼의 구원을 외치셨고, 바리새인들은 땅에서의 부와 명예, 기득권을 원했습니다.

 

비웃음에서 살의(殺意): 처음에는 ", 말도 되는 소리"라며 코웃음 치고 넘겼지만(16), 예수님의 인기가 높아지고 자신들의 위선과 탐욕이 백성들 앞에 탄로나자, 그들은 자신들의 우상(돈과 권력) 지키기 위해 예수님을 제거하기로 결심합니다.

 

우상의 대가: 결국 그들이 사랑했던 '돈과 기득권'이라는 우상이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매다는 참혹한 죄악으로 그들을 인도한 것입니다.

 

3.      시편 22편의 성취 (구약의 배경)

 

사실 누가가 독특한 단어('미크테리조') 가져와 사용한 배경에는 구약 성경이 있습니다.  구약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LXX) 보면, 시편 22 7절에 단어가 쓰였습니다.

 

시편 22:7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비웃으며(ξεμυκτήρισάν) 입술을 삐쭉거리고 머리를 흔덕이나이다"

 

시편 22편은 메시아가 당할 고난을 가장 정확하게 예언한 '고난의 '입니다.  누가는 16장과 23장에서 단어를 연달아 사용함으로써, "돈을 사랑하여 메시아를 코웃음 치며 조롱하는 자들로 인해,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의 십자가 고난이 성취되고 있다" 것을 독자들에게 시각적으로 증명해 보인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돈을 사랑하는 마음(16)으로 시작된 영적 눈먼 상태는, 하나님의 아들을 보고도 비웃는 오만함으로 자라났고, 결국 그분을 십자가에 박고도 콧방귀를 뀌는 극단의 완악함(23)으로 치달았습니다.  질문자님이 발견하신 문구는 인간의 탐욕이 도달할 있는 가장 무서운 종착지를 보여주는 성경의 날카로운 고발입니다”(인터넷).

 

(4)   마지막으로, 저는 예수님께서 돈을 좋아하는 바리새인들에게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곧잘 옳은 체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너희 마음을 아신다.  사람에게 존경을 받는 것은 하나님께 미움을 받는 것이다”(16:15, 현대인의 성경)라고 하신 말씀을 3가지로 나눠서 묵상하고자 합니다:

 

(a)   사람들 앞에서 곧잘 옳은 하는 :

 

(i)                  여기서 옳은 체하다라는 헬라어 “δικαιοντες”(디카이운테스) 스스로를 의롭다고 치장하는 자들”, 혹은 자신들이 옳다고 주장하는 자들이란 뜻입니다(인터넷):

 

1.      단어의 어원과 문자적 의미

 

단어는 '의롭다'라는 뜻의 형용사 디카이오스(δίκαιος)에서 유래한 동사 디카이오오(δικαιόω) 현재 분사 능동태 형태입니다.

 

디카이오오(δικαιόω): (법정에서) '의롭다고 선언하다', '무죄 판결을 내리다'

 

디카이운테스(δικαιοντες): 복수형 분사로, "스스로 의로운 자인 처하는 자들"이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종합: 성경에서 인간을 의롭다고 선언하실 있는 분은 오직 판사이신 '하나님' 분뿐입니다. 러나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재판 자리에 자신들이 앉아 스스로에게 "너는 의롭다!"라고 무죄 판결을 내리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2.      문법적 특징: 16:15 맥락에서의 의미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들이나(δικαιοντες αυτος)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여기서 누가는 단어 뒤에 '헤아우투스(αυτος, 자신들을)'라는 재귀대명사를 붙여 "자신들을 스스로 의롭게 만드는 자들"임을 명확히 합니다.

 

사람 앞에서의 쇼윈도(Show window: 백화점이나 상점 길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도록 신상품이나 예쁜 옷들을 진열해 놓는 통유리창을 말함) 의로움: 그들은 진짜 의로워서가 아니라, '사람들 눈에' 의롭게 보이기 위해 철저히 연기했습니다.  구제하고, 기도하고, 금식하는 종교적 행위를 모두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겉만 화려한 진열 상품: 백화점 쇼윈도 뒤의 창고나 마네킹 속은 비어 있는 것처럼, 바리새인들은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겉모습(종교적 행위, 부유함) 화려하게 꾸몄습니다.

 

속은 딴판인 위선: 정작 유리창 안쪽의 진짜 마음 중심에는 하나님이 아니라 '돈을 사랑하는 탐욕' 가득 있었습니다.  , "진짜 의로워서가 아니라, 남들에게 ' 이렇게 의로운 사람이야'라고 보여주기 위해 겉만 번지르르하게 꾸민 가짜 의로움이었습니다.]

 

돈과 의로움의 가짜 연결: 당시 바리새인들은 부를 하나님께 받은 증거로 포장했기 때문에, 자신들의 '부유함'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보라, 내가 이만큼 의로우니 하나님이 복을 주신 것이다"라며 스스로를 증명(정당화)하려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바리새인들은 '돈을 사랑하면서도(14)', 사람들 앞에서는 철저한 종교적 위선으로 '스스로를 의인으로 포장하는 자들(15)'이었습니다.

 

·         여기서 저는 에이든 윌슨 토저(A. W. Tozer) 목사님이 쓰신 영적 명저, “이것이 예배인가, 쇼인가?”(원제: Worship: Praise or Entertainment?) 생각났습니다.

 

바리새인들의 '디카이운테스(스스로 의롭다 꾸미는 행위)' 바로 토저 목사님이 그토록 경고했던(Show)하는 신앙 시초라고 있습니다.   책과 오늘 본문이 어떻게 일맥상통하는지 가지로 정리해 드립니다.

 

1.      예배공연()’으로 바꾸는 위선

 

토저 목사님은 책에서 교회가 하나님께 온전한 중심을 드리는 참된 예배를 잃어버리고, 사람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종교적인 (공연)’ 엔터테인먼트로 변질되고 있다고 날카롭게 비판했습니다.

 

누가복음 16장의 바리새인들이 바로 종교 대가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아니라사람들에게 보이고 칭찬받기 위해’(사람 앞에서 디카이운테스) 기도를 멋지게 하고, 구제를 요란하게 하며 종교라는 무대 위에서 완벽한 연기를 펼쳤습니다.

 

2.      관객이하나님인가, ‘사람인가?

 

바리새인의 신앙: 관객이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고, 존경을 얻고, 결과적으로 자신들의 가치와재물()’ 지키기 위한 쇼였습니다.

 

토저 목사님의 지적: 참된 예배의 유일한 관객은 오직하나님 분뿐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수많은 기독교인이 바리새인들처럼 사람들의 시선과 만족을 의식하며 신앙생활을전시(Show)’하고 있다고 경고합니다.

 

3.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에게 던지신 무서운 선언( 16:15) 토저 목사님이 현대 교회를 향해 울린 경종과 똑같습니다.  무대 위의 조명이 아무리 화려하고, 겉보기에 훌륭한 종교적 퍼포먼스가 있어도, 마음 중심에하나님을 경외함 없고돈과 성공 가득하다면 하나님은 그것을 예배가 아닌가증한 보신다는 점입니다.

 

결국 2,000 예수님이 콧방귀 뀌던 바리새인들을 향해 날리신 독설과, 20세기 토저 목사님이 현대 교회를 향해 외친 사자후는 겉만 번지르르한 쇼윈도 신앙을 찢어버리고, 마음 중심의 진실함을 회복하라 동일한 성령의 음성이었습니다”(인터넷).

 

(b)   하나님께서는 너희 마음을 아신다”(16:15, 현대인의 성경).

 

(i)                  바리새인들의 화려한 '종교 ' 가면을 단번에 벗겨버리시는 예수님의 가장 강력하고 엄중한 선언입니다.

 

1.      헬라어 성경 직역

 

헬라어 본문

δ θες γινώσκει τς καρδίας μν·(발음: 테오스 기노스케이 타스 카르디아스 휘몬)

 

단어별 직역

 

테오스( δ θες):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기노스케이(γινώσκει): 알고 계신다 (현재형 동사)

 

타스 카르디아스ς καρδίας): 마음들을 (복수형 명사)

 

휘몬(μν): 너희들의

 

2.      핵심 원어 분석을 통한 깊은 의미

 

( δ): "그러나 반면에" (강렬한 대조)

 

문장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들이나뒤에 ', 그러나)'라는 접속사가 붙어 극적인 반전을 이룹니다.  사람들은 너희가 꾸며낸 쇼윈도 의로움에 속아 감탄할지 모르지만, ‘그와는 정반대로 하나님은 속지 않으신다 점을 명확히 대조합니다.


기노스케이(γινώσκει): "이미 속속들이 꿰뚫어 알고 계신다"

 

여기서 사용된 '기노스코'라는 동사는 단순히 지식적으로 아는 것을 넘어, 경험을 통해 깊이, 그리고 정확하게 본질을 파악하고 있음을 뜻합니다.

 

특히 동사의 시제는 현재형입니다.  헬라어에서 현재형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지속되는 상태' 말합니다.  , 하나님은 바리새인들이 숨기려 하는 탐욕과 위선의 실체를 순간도 놓치지 않고 실시간으로, 속속들이 보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타스 카르디아스ς καρδίας): "겉모양이 아닌 가장 깊은 내면"

 

성경에서 '카르디아(마음)' 인간의 지성, 감정, 의지, 그리고 도덕적 선택이 이루어지는 '내면의 가장 깊은 중심지' 뜻합니다. 

 

바리새인들은 '겉모습(행위, 옷차림, 종교적 언어)' 가꾸는 목숨을 걸었지만, 하나님이 주목하시는 재판의 척도는 오직 그들의 '마음 중심'이었습니다.  겉은 거룩한 율법을 읊조리고 있지만, 마음 속에는 오직 '' '자아 숭배' 가득 있음을 하나님은 아신다는 고발입니다.

 

3.      우리에게 주는 영적 메시지

 

하나님 앞에서는 '연기(Show)' 통하지 않습니다.

 

토저 목사님이 지적했듯 인간은 관객인 사람을 속이기 위해 얼마든지 신앙을 연기할 있습니다.  그러나 우주에서 가장 정밀한 MRI 가지신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동기를 엑스레이처럼 뚫어보십니다.  너희가 아무리 멋진 말로 포장해도 너희 진짜 목적이 돈과 세상 자랑인 것을 내가 안다 말씀입니다.

 

성도에게는 가장 두려운 경고이자, 가장 위로의 말씀입니다.

 

위선자들에게 말씀은 자신들의 모든 죄가 탄로 나는 가장 무서운 심판의 선언입니다.  반면, 18장의 세리처럼 비록 겉으로는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받고 연약할지라도 중심만은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중심의 진심을 내가 안다하시는 세상 가장 따뜻한 위로가 됩니다.

 

결국 예수님은 선언을 통해, 바리새인들이 사람들에게 얻은 평판과 인기는 하나님 나라 법정에서는 아무런 효력이 없는 '가짜 통화' 불과함을 선언하신 것입니다”(인터넷).

 

(c)   사람에게 존경을 받는 것은 하나님께 미움을 받는 것이다”(16:15, 현대인의 성경).

 

(i)                  말씀은 바리새인들의 실상을 폭로하시는 예수님 가르침의 최종 결론이자, 세상의 가치관을 통두리째 뒤엎는 가장 충격적인 선언 하나입니다.  헬라어 원어의 생생한 표현과 말씀이 가진 진짜 의미를 가지 포인트입니다(인터넷):

 

1.      헬라어 본문 핵심 단어 분석

 

헬라어 본문: "...τι τ ν νθρώποις ψηλν βδέλυγμα νώπιον το θεο"(발음: 호티 안드로포이스 힙셀론 브델뤼그마 에노피온 테우)

 

핵심 단어 직역

 

힙셀론(ψηλόν): 높여진 , 높은 자리에 있는 , 화려한 (개역개정: '높임을 받는 그것')

 

브델뤼그마(βδέλυγμα): 가증한 , 혐오스러운 , 오물 (개역개정: '미움을 받는 ')

 

에노피온 테우(νώπιον το θεο): 하나님 눈앞에, 하나님의 면전에

 

2.      구체적인 의미와 영적 반전

 

세상의 '존경(힙셀론)' 실체

 

여기서 '높은 (힙셀론)' 세상 사람들이 우러러보고, 부러워하고, 박수쳐 주는 모든 것을 말합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에게는많은 재물’, ‘사회적 지위’, ‘사람들의 존경과 칭찬 여기에 해당했습니다.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난 그들의 풍요와 종교적 권위를 보며 "정말 훌륭하고 대단한 사람이다"라며 높여주었습니다.

 

하나님의 평가: '오물과 가증한 (브델뤼그마)'

 

예수님은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워하며 높이는 그것이 하나님 눈앞에서는 단순한 '미움' 정도가 아니라 '브델뤼그마(가증한 오물)' 불과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브델뤼그마' 구약성경(70인역)에서 '우상숭배' 가리킬 쓰던 매우 더럽고 혐오스러운 것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겉은 존경스러운 종교 지도자의 모습이지만, 속은 ''이라는 우상을 숭배하며 사람들의 영혼을 착취하는 그들의 본질이 하나님 보시에는 썩은 냄새가 나는 오물과 같다는 극언입니다.

 

가치의 철저한 전도 (뒤바뀜)

 

세상의 판단 기준과 하나님의 판단 기준이 얼마나 극명하게 다른지를 보여줍니다.

 

세상의 시선: 겉모습(외모, , 평판, 성공) 높으면 의롭다고 평가함.

 

하나님의 시선: 내면의 동기(탐욕, 교만, 위선) 부패했다면, 겉이 아무리 화려해도 우상숭배로 취급함.

 

3.      A. W. 토저 목사님의 통찰과의 연결

 

우리가 앞서 나눈 토저 목사님의 《이것이 예배인가, 쇼인가?》의 핵심 경고가 바로 구절에서 완성됩니다.

 

현대 기독교가 '사람들에게 인기 있고,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세상적으로 성공하는 교회와 성도' 되는 것에 목숨을 , 그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거룩한 교회가 아니라 '가증한 종교 (브델뤼그마)' 있다는 무서운 경고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박수 소리에 속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은 "인간에게 칭찬받는 모든 행위가 나쁘다"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속이고, 마음 중심에는 탐욕( 사랑) 품은 , 사람들의 눈만 속여서 얻어낸 가짜 존경과 평판은 하나님 나라 법정에서는 가장 혐오스러운 죄악이 된다" 뜻입니다.

 

바리새인들을 향한 매서운 선언 바로 뒤에, 예수님은 돈을 사랑하며 떵떵거리며 사람들의 존경을 받던 부자가 죽어서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는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 16:19-31) 곧바로 말씀하십니다.   비유가 바로 오늘 공부한 내용들의 완벽한 시각적 예시가 됩니다(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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