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죽으심 (7)
[사도행전 1장 1-11절]
우리가 예수님의
5대 사역중 두 번째인
“예수님의 죽으심”[(행1:3) “고난을 받으신 후에”(여기서 “고난”이란 죽음을 말씀함)에 대해서 묵상해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에 대해서 이미 8가지로 나눠서 묵상했습니다:
(1) 기도의 시간,
(2) 기도의 장소,
(3) 기도의 자세,
(4) 기도의 내용,
(5) 기도의 열심,
(6) 기도의 인내,
(7) 기도의 응답,
(8) 기도의 결과. 오늘은 일곱 번째로
“예수님의 죽으심
(7)”이란 제목아래 예수님께서 심문/재판을 받으신 말씀에 대해서 묵상하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받으신 심문과 재판은 십자가 죽음(고난)이라는 구속 사역의 정점을 향해 가는 가장 고통스럽고도 치열한 과정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총
6차례(유대 종교 재판
3회, 로마 정치 재판
3회)에 걸쳐 불법적이고 모욕적인 재판을 받으셨습니다.
첫째로, 유대인들의 종교 재판입니다(3회).
종교적 시기와 증오":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이미 결정해 두고,
밤중에 불법적으로 재판을 소집하여
'신성모독죄'를 덮어씌웠습니다.
(1)
1차: 전 대제사장 안나스의 심문
(요
18:12-23)
결박되신 예수님이 가장 먼저 끌려간 곳입니다.
안나스는 불법적인 신문을 하며 사적인 권력을 휘둘렀고,
곁에 있던 아랫사람은 예수님을 손으로 치는 모욕을 가했습니다. 요한복음
18장 13절 말씀입니다:
“먼저 안나스에게로 끌고 가니 안나스는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장인이라.” 안나스는 주후
6-15년(9년간) 대제사장이었습니다.
그의 아들이 다섯이나 되는데 다 대제사장이었습니다.
그의 사위 가야바도 대제사장이었습니다.
당시 유대 사회의 종교적·정치적 실권을 쥐고 있던 가문의 수장이자,
성전 매매를 통해 막대한 부를 챙기던 탐욕의 배후 인물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8장 19절 말씀입니다:
“대제사장이 예수에게 그의 제자들과 그의 교훈에 대하여 물으니.” 예수님의 제자들에 대해서 심문한 후 예수님의 교훈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 대해서는 답변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교훈에 대해서는 이렇게 답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드러놓고 세상에 말하였노라 모든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항상 가르쳤고 은밀하게는 아무것도 말하지 아니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자들에게 물어 보라 그들이 내가 하던 말을 아느니라”(20-21절). 그랬더니 곁에 있던 아랫사람이 손으로 예수를 쳐 이르되
"네가 대제사장에게 이같이 대답하느냐"
하니, 예수께서
"내가 말을 잘못하였으면 그 잘못한 것을 증언하라 바른 말을 하였으면 네가 어찌하여 나를 치느냐"
하셨습니다(22-23절). 요한복음
18장 24절 말씀입니다:
“안나스가 예수를 결박한 그대로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보내니라.” 예수님을 가야바로 보냈습니다(공식적인 사형 판결을 내리기 위해 사네드린 공회가 소집되어 있는 사위 가야바의 집으로 이송함).
(2)
2차: 대제사장 가야바와 사네드린 공회의 야간 심문(마
26:57-68)
밤중에 소집된 불법 재판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거짓 증거를 찾았으나 서로 맞지 않았습니다.
결국 가야바가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냐"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
"내가 그니라"고 당당히 선포하시자
'신성모독'이라며 사형 판결을 내리고 얼굴에 침을 뱉으며 모욕했습니다. 마태복음
26장 57절 말씀입니다:
“예수를 잡은 자들이 그를 끌고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가니 거기 서기관과 장로들이 모여 있더라.” 공회원들이 모여있었는데 그 모임은 불법이었습니다.
밤에는 공회를 모일 수가 없었습니다(원래 사네드린 공회는 해가 뜬 이후에만 소집할 수 있고 성전 안의
'석조 방'에서만 재판해야 했으나,
이들은 야간에 대제사장의 사저에서 비밀리에 모임).
그럼에도 그들은 죄 없는 예수님을 불법으로 심문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 없는 죄를 만들어서라도 죄를 뒤집어씌우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거짓 증인들을 많이 세웠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두 거짓 증인이 와서
“이 사람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 동안에 지을 수 있다 하더라”
고 말했습니다(마
26:59-61)(예수님께서 요한복음
2장 19절에서 말씀하신
'자기 육체 성전'에 대한 영적 교훈을 악의적으로 왜곡하여 성전 모독죄를 씌우려 한 것임). 그러나 거짓 증인들의 말이 서로 일치하지 않았고(막 14:59), 대제사장이 일어서서
"아무 대답도 없느냐 이 사람들이 너를 치는 증거가 어떠하냐"라고 다그쳤음에도 예수님은 대답하지 않으시고 침묵하셨습니다(마
26:62-63). 이는 이사야
53장 7절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묵묵히 십자가의 길을 가시는 주님의 철저한 순종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 신성모독죄를 뒤집어 쒸어서 정죄했습니다. 침묵하시는 예수님을 향해 대제사장 가야바가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고 엄히 명합니다(마 26:63). 이에 예수님은 침묵을 깨고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고 당당히 본인의 메시아 신성을 선포하셨습니다(64절). 이 대답을 듣자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그가 신성모독 하는 말을 하였으니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보라 너희가 지금 이 신성모독 하는 말을 들었도다 너희 생각은 어떠하냐"라고 선동했고,
공회원들은 “그는 사형에 해당하니라” 고 정죄합니다(65-66절). 판결 직후 그들은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어떤 사람은 손바닥으로 때리며
"그리스도야 우리에게 선지자 노릇을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며 감당할 수 없는 모욕과 조롱을 퍼부었습니다(67-68절).
(3)
3차: 새벽 사네드린 공회의 공식 선포(눅 22:66-71;
마 27:1-2; 막15:1)
밤중에 내린 사형 판결을 형식적으로 합법화하기 위해 날이 밝자마자 다시 모여 사형을 확정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사형 집행권이 없었기에,
이들은 예수님을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넘기기로 결의합니다. 마가복음
15장 1절 말씀입니다:
“새벽에 대제사장들이 즉시 장로들과 서기관들 곧 온 공회와 더불어 의논하고 예수를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주니.” 공회가 정식으로 새벽에 모여서(한 6시쯤)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기기로 결의했습니다.
야간 재판의 불법성을 세탁하고
'낮에 열린 정식 재판'이라는 법적 모양새를 갖추기 위한 형식적인 절차였습니다. 마가복음
15장 10절 말씀입니다:
“이는 그가 대제사장들이 시기로 예수를 넘겨준 줄 앎이러라.” 빌라도는 대제사장들이 죄없으신 예수님을 시기해서 자기에게 넘긴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시기”란 어떤 다른 사람이 내가 그에게 없기를 바라는 무엇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볼 때에 생기는 불쾌감이다.
예를 들어서,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명성,
수많은 추종자들,
또 기적을 행하는 능력 때문에 예수님을 시기했습니다(헨드릭슨). 그들은 자신들의 종교적 기득권과 영적 권위가 무너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불쾌감으로 가득 차 죄 없는 분을 사형으로 몰고 갔습니다.
마지막 둘째로, 로마인들의 정치 재판입니다(3회).
정치적 야합과 무죄한 자의 정죄:
유대 지도자들은
'신성모독죄'로는 로마 법으로 처형할 수 없음을 알고,
예수님을 '정치적 반역자(민란을 선동하고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지 못하게 하며 스스로 왕이라 칭한 자)'로 거짓 고발했습니다.
(4)
4차: 총독 빌라도의
1차 심문(요
18:28-38)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한 후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라"며 무죄를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거센 압박에 부담을 느끼게 됩니다. 누가복음
23장 1-2절 말씀입니다:
“무리가 다 일어나 예수를 빌라도에게 끌고 가서 고발하여 이르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더이다 하니.” 여기 보면 3가지 죄명을 가지고 예수님을 고발했습니다:
(1) 백성을 미혹(선동)함, (2)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함,
(3) 자칭 왕(그리스도)이라 함. 백성을 미혹한다는 말에 대해서 빌라도는 심문해 보니까 죄를 찾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눅 23:4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무리에게 이르되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 하니”). 또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을 금했다는 죄명도 거짓 고발이었습니다.
마태복음
22장 21절 등에서 주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분명히 말씀하셨기 때문에,
오히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자칭 왕이라는 죄명에 대해서는 빌라도가
"네가 왕이냐"고 물었을 때,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라고 하셨습니다.
빌라도의 말대로 예수님은 자신이 왕이라고 말씀하셨으나,
이는 세상의 정치적 왕이 아니라 영적인
'진리의 왕'이자 '하나님 나라의 왕'임을 밝히신 것입니다(요18:37)[(36절)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그러던 중에 무슨 일이 있었냐면,
유대인들이
"그가 갈릴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이 땅까지 와서 백성을 소란하게 한다"고 더욱 격렬하게 고발했습니다(눅 23:5). 이 말을 들은 빌라도는 예수님이 갈릴리 관할임을 알고,
마침 명절(유월절)을 맞아 예루살렘에 와 있던 갈릴리의 분봉왕 헤롯 안디바에게 예수님을 보냈습니다(6-7절). 빌라도는 유대인들과의 정치적 갈등과 재판의 책임에서 교묘히 회피하고자 예수님을 헤롯에게 이송한 것입니다.
(5)
5차: 분봉왕 헤롯 안디바의 심문(눅 23:6-12)
빌라도는 예수님이 갈릴리 관할임을 알고,
마침 예루살렘에 와 있던 헤롯에게 책임을 떠넘겼습니다.
헤롯은 이적을 보고 싶어 했으나 예수님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시자,
군인들과 함께 예수님을 업신여기며 빛난 옷을 입혀 다시 빌라도에게 돌려보냈습니다. 요한복음
23장 6-7절 말씀입니다:
“빌라도가 듣고 그가 갈릴리 사람이냐 물어 헤롯의 관할에 속한 줄을 알고 헤롯에게 보내니 그 때에 헤롯이 예루살렘에 있더라.”
헤롯이 예수님을 보고 매우 기뻐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의 소문을 듣고 오래전부터 보고자 하였고,
무엇이든 이적 행하심을 볼까 바랐기 때문입니다(눅 23:8). 누가복음
23장 9-11절 말씀입니다:
“여러 말로 물으나 아무 말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서서 격렬하게 고발하더라 헤롯이 그 군인들과 함께 예수를 업신여기며 희롱하고 빛난 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도로 보내니.” 헤롯은 단순한 호기심과 구경거리(이적)를 기대하며 여러 말로 물었으나,
예수님은 그 악하고 위선적인 자 앞에서 철저히 침묵하셨습니다.
이에 왕의 권위가 깎인 헤롯은 군인들과 함께 예수님을 업신여기고,
왕권을 조롱하는 의미로
'빛난 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도로 보냈습니다. 이 재판의 결과는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였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니라”(12절)였습니다. 전에는 정치적 관할권 문제 등으로 대립하던 두 권력자가 죄 없으신 예수님을 정죄하고 책임을 떠넘기는 악한 일 속에서 기묘하게 타협하고 야합하여 친구가 되었습니다.
(6)
6차: 총독 빌라도의 최종 사형 선고(마 27:15-26;
눅
23:13-25; 요
19:1-16)
빌라도는 예수님이 죄가 없음을 알고 놓아주려 여러 번 시도했습니다(바라바와의 대조,
채찍질 등).
그러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라는 유대인들의 정치적 협박과 민란이 일어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결국 군중의 요구에 굴복하여 십자가 처형을 선고하고 자신은 손을 씻으며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누가복음
23장 22절 말씀입니다:
“빌라도가 세 번째 말하되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에게서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 하니.” 세번째 심문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죄가 없으심을 세 번이나 선포했습니다:
(a) (요18:38) “빌라도가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첫 번째 무죄 선언),
(b) (요19:4) “빌라도가 다시 밖에 나가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하더라”
(두 번째 선언
- 채찍질을 한 후 군중의 동정심을 유발하려 기획함),
(c) (요19:6) “대제사장들과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노라”
(세 번째 선언). 그러나 빌라도는 손을 씻고 예수님을 무리들에게 내 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잡혀주신 것처럼 여기서도 인간의 폭력과 불법에 억지로 끌려가신 것이 아니라,
인류 구원의 아버지 뜻을 이루시기 위해 스스로 자기 자신을 내어주신(내어놓으신) 것입니다. 빌라도는 민란이 날까 두려워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 의인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다"고 변명했지만(마 27:24), 정작 사형 판결을 내린 권력자로서 그 책임을 면할 수 없었습니다. 반면 예수님은 빌라도가
"내게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고 위협할 때,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라"(요 19:11)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주님은 무기력하게 당하신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의 진정한 재판장이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우리의 죄를 지고 가시기 위해 묵묵히 십자가의 자리로 걸어가 주신 것입니다.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최후의 심판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재판장이 되셔서 온 인류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2-15절 말씀입니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최후의 심판 날에 죄인인 우리가 이 무서운 심판을 받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시고자,
예수님께서 빌라도의 법정에서 우리 대신 정죄를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대신 심판(진노)을 받으신 것입니다. 빌라도와 유대 지도자들의 법정은 불법과 시기로 가득 찬 인간의 법정이었으나,
하나님은 그 불법적인 자리를 통해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는 공의로운 구원의 역사를 완성하셨습니다.
죄 없으신 주님이 죄인 취급을 당하셨기에,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 보좌 앞에서
'의롭다' 칭함을 받고 생명책에 기록되는 은혜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