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 (11)
[사도행전 1장 1–11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다섯 가지 큰 사역 가운데 두 번째인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계속 묵상하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
(10)」이라는 제목으로 십자가상의 일곱 말씀,
곧 가상칠언 가운데 첫 번째부터 세 번째 말씀까지 살펴보았습니다. 첫 번째 말씀은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였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들까지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긍휼을 보았습니다. 두 번째 말씀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였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구원이 인간의 공로나 선행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받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묵상했습니다. 세 번째 말씀은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와 “보라 네 어머니라”(요
19:26–27)였습니다.
이 말씀에서는 십자가의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도 어머니를 돌보시고,
제자에게 그 책임을 맡기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십자가상의 네 번째 말씀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이 말씀은 가상칠언 가운데서도 특별히 깊고 엄숙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마태복음 27장 46절은 이 말씀을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마가복음
15장 34절에도 같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로이 엘로이 라마 사박다니 하시며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담당하신 대속의 고난이 얼마나 깊고 엄중했는지를 보여 줍니다.
이제 이 말씀을 몇 가지 관점에서 자세히 묵상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시간과 어둠의 의미
(1) 유대 시간으로 기록된 십자가 사건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시간과 온 땅에 어둠이 임한 시간을 유대인들의 시간 계산법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대체로 해가 뜨는 오전
6시경을 제1시로 계산했습니다.
따라서 복음서에 기록된 시간을 오늘날의 시간으로 환산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마가복음
15장 25절은 예수님께서 제삼시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고 기록합니다:
“때가 제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 유대 시간으로 제삼시는 오늘날의 오전
9시경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오전
9시경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마가복음 15장 33절과 마태복음
27장 45절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계실 때 온 땅에 어둠이 임했다고 기록합니다:
“제육시가 되매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더니.” 유대 시간으로 제육시는 오늘날의 정오,
곧 낮
12시경이며, 제구시는 오후
3시경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계시는 동안 낮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 약 세 시간 동안 온 땅에 어둠이 임했습니다. 그리고 그 어둠이 계속되던 제구시,
곧 오후
3시경에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외치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서 이 세 시간의 어둠은 매우 중요한 장면입니다.
한낮에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이 어두워졌다는 것은 단순히 시간의 흐름을 알려 주는 기록이 아닙니다.
복음서는 이 어둠을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함께 기록함으로써 그 사건의 엄중함을 드러냅니다.
(2) 세 시간 동안 임한 어둠의 영적 의미
성경에서 어둠은 여러 의미로 사용됩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
죄의 결과와 두려움을 나타냅니다.
출애굽 당시 애굽에 임했던 흑암의 재앙도 하나님의 심판을 보여 주는 사건이었습니다(출
10:21–23).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정오부터 오후
3시까지 온 땅에 임한 어둠도 단순한 자연 현상으로만 바라볼 수 없습니다.
복음서는 이 어둠을 예수님의 대속적 죽음과 연결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어둠은 무엇을 보여 줍니까?
첫째,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엄중한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으신 분이셨지만,
죄인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이사야 53장 6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우리 모두의 죄악이 예수님께 담당되었습니다.
십자가는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공의를 보여 줍니다.
정오부터 오후
3시까지 임한 어둠은 바로 그 십자가 사건의 엄중함을 묵상하게 합니다.
둘째,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담당하셨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죄 때문에 고난을 당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죄를 짊어지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21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께서는 죄를 알지도 못하신 분이셨지만,
우리를 대신하여 죄의 형벌을 담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서 임한 어둠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그 심판을 대신 담당하신 예수님의 대속을 함께 묵상하게 합니다. 다만 이 어둠을 설명하면서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님을 존재론적으로 외면하시거나 삼위일체 하나님의 본질적 연합이 끊어졌다고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영원히 한 하나님이십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 경험하신 버림받음은 우리 죄를 대신 담당하시는 대속의 고난과 심판의 현실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본질적 연합이 해체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의 의미
(1)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외치신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는 아람어로 된 말씀입니다.
그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마태복음은
“엘리 엘리”라고 기록하고,
마가복음은 “엘로이 엘로이”라고 기록합니다.
두 표현 모두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부르시며 하신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시편
22편 1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시편의 이 말씀을 외치셨습니다.
시편
22편은 고난 가운데 있는 의인의 탄식으로 시작하지만,
뒤로 갈수록 하나님의 구원과 승리를 바라보는 내용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외침은 단순한 절망의 표현만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고난의 말씀을 성취하시는 사건과도 연결됩니다.
(2) 대속의 고난 가운데 경험하신 버림받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육체적으로 극심한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채찍에 맞으셨고,
손과 발에 못 박히셨으며,
조롱과 수치를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네 번째 말씀은 단순히 육체적인 고통을 호소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담당하시며 겪으신 대속의 고난이 얼마나 깊고 엄중한지를 드러내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으신 분이셨지만,
죄인들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담당하셨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인간이 받아야 할 심판을 주님께서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그러므로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외침은 대속의 고난 가운데서 경험하신 버림받음의 절규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죄의 무게와 하나님의 공의가 얼마나 엄중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기억해야 할 것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의 본질적 연합이 십자가에서 끊어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참 하나님이시며,
성부와 영원히 하나이십니다.
그러나 성자께서는 참 인간으로 오셔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죄인이 받아야 할 심판을 대속적으로 감당하셨습니다.
그 고난의 깊이를 우리는 인간의 언어와 지성으로 온전히 헤아릴 수 없습니다.
(3)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버림받음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 담당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본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죄의 결과는 심판과 죽음이며,
하나님과 분리된 상태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5장 8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은 단순히 사랑의 모범을 보여 주셨다는 뜻만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실제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죄의 정죄 아래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정죄함이 없습니다(롬 8:1).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대속의 죽음을 감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담당하신 버림받음의 고난을 묵상할수록,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지 깨닫게 됩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는 네 가지 관점
아더 핑크의 『가상칠언 강해』를 비롯한 십자가 묵상에 관한 해설을 참고하여,
우리는 예수님의 네 번째 말씀을 인간과 사탄과 예수님과 하나님의 네 가지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 네 가지 관점은 십자가 사건에 담긴 여러 측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1) 인간의 관점: 타락한 인간의 죄악이 드러난 십자가
십자가는 인간이 얼마나 죄악에 빠져 있는지를 보여 주는 현장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으신 분이셨습니다.
병든 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사람들에게 생명과 구원의 길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자신들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분을 거부하고 정죄했으며,
채찍질하고 조롱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요한복음
1장 11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지만 사람들이 그분을 영접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십자가는 인간의 죄가 얼마나 깊은지를 드러냅니다. 인간은 단순히 실수하거나 부족한 존재에 그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자기 뜻을 앞세우며,
심지어 자신을 구원하러 오신 하나님의 아들까지 거부하는 죄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앞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죄만 바라보아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인간의 죄악을 바라보면서 우리 자신의 죄도 함께 돌아보아야 합니다.
십자가는 인간의 교만과 불순종과 자기중심적인 삶을 고발합니다.
(2) 사탄의 관점: 하나님을 대적하는 적대감
십자가는 또한 영적 전쟁의 현장이었습니다.
사탄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고 인간을 죄에 빠뜨리려 했습니다.
창세기
3장 15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뱀에게 심판을 선언하시며 여자와 뱀 사이에 적대감을 두시고,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 사이에 있을 싸움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께서 사탄의 권세를 깨뜨리실 구원 계획을 바라보게 합니다. 사탄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도록 이어진 사건들 가운데 악한 세력으로 활동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의 시기와 적대감,
가룟 유다의 배반,
로마 권력의 불의한 판결과 군인들의 잔인한 행동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이르게 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사탄의 승리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사탄의 권세를 무너뜨리셨습니다. 히브리서
2장 14절은 예수님께서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고자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골로새서
2장 15절도 십자가를 통해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시고 그들을 드러내어 이기셨다고 증언합니다. 사탄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써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좌절시키려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십자가를 통해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사탄이 승리라고 생각했을지 모르는 그 사건이 오히려 사탄의 패배를 확정하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역설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패배가 아니라 승리의 길이었습니다.
(3) 예수님의 관점: 자발적으로 담당하신 대속의 죽음
십자가를 예수님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우리는 주님께서 자발적으로 자신을 대속물로 내어 주셨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억지로 십자가에 끌려가신 분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알고 계셨으며,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20장 28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주님께서는 섬김을 받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섬김의 절정은 자신의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내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18절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예수님께서는 의로우신 분으로서 불의한 우리를 대신하셨습니다.
죄가 없으신 분께서 죄인을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그 목적은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는 외침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담당하신 대속의 고난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보여 줍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셨고,
우리가 받아야 할 심판을 대신 담당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랑 앞에서 자신의 공로를 자랑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4) 하나님의 관점: 죄를 향한 진노와 공의의 현시
마지막으로 십자가를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이 드러난 현장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사랑만으로 설명해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십자가는 동시에 죄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와 공의가 드러난 현장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죄를 죄가 아닌 것처럼 여기실 수 없으며,
죄에 대한 심판을 무시하실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사랑하시지만,
그 사랑 때문에 자신의 거룩하심과 공의를 포기하시는 분은 아닙니다. 이 사실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 주는 말씀이 로마서
3장 25–26절입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은 십자가의 구원에 담긴 놀라운 신비를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제물로 세우셨습니다.
그 목적은 하나님께서 의로우신 분임을 나타내시면서 동시에 예수님을 믿는 죄인들을 의롭다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1)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신 이유
로마서
3장 25절은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신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셨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죄를 지었음에도 하나님께서 즉시 최종 심판을 내리지 않으시고 오래 참으셨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합니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후 인류는 끊임없이 하나님께 범죄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면서 거듭 불순종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따라 자기 백성을 오래 참으시며 구원의 역사를 이어 가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죄를 그냥 지나치신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간과하셨다는 것은 죄를 가볍게 여기셨거나 죄에 대한 책임을 없애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시며 정하신 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제물로 세우셨습니다. 로마서
3장 26절은 그때를 가리켜
“이 때에”라고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시는 구속사의 결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2) 십자가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공의
하나님께서는 죄를 그냥 없었던 일로 처리하지 않으셨습니다.
죄에 대한 심판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담당하시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으셨지만,
우리 죄를 대신 담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피를 믿는 자들을 의롭다고 선언하십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공의를 포기하지 않으시면서도 죄인을 의롭다 하실 수 있게 되셨습니다. 이것이 로마서
3장 25–26절이 선포하는 복음의 놀라운 진리입니다: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는 의로우신 분이시며,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죄인을 의롭다 하시는 분이십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함께 드러난 구원의 현장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네 번째 말씀을 들을 때 죄의 무게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죄가 얼마나 심각했기에 하나님의 아들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그토록 깊은 고난을 담당하셔야 했는지 깨달아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를 보내셨고,
성자 예수님께서는 기꺼이 자신을 대속물로 내어 주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에 담긴 네 가지 영적 성격
이제 예수님의 네 번째 말씀에 담긴 영적 의미를 네 가지로 정리하여 묵상하고자 합니다.
(1) 말할 수 없는 고뇌에서 비롯된 처절한 절규
첫째,
이 말씀은 말할 수 없는 고뇌에서 비롯된 처절한 절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채찍질과 조롱과 수치와 육체적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네 번째 말씀에서 우리는 그 모든 고통을 넘어서는 대속의 고난을 마주하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죄를 담당하시고 하나님의 심판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죄가 없으신 분께서 죄인의 자리에 서셨으며,
의로우신 분께서 불의한 자들을 대신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가볍게 생각할 수 없는 신비입니다.
예수님께서 외치신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말씀은 대속의 고난 가운데 경험하신 깊은 고통을 드러냅니다. 이 고통은 성부와 성자 사이의 영원한 신적 사랑이나 삼위일체의 본질적 연합이 사라졌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성자께서 참 인간으로서 우리 죄를 담당하시고 심판을 감당하신 사건의 깊이를 보여 줍니다. 우리는 이 절규를 통해 죄의 무게가 얼마나 엄중한지,
그리고 우리를 대신하여 고난을 받으신 예수님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를 깨닫게 됩니다.
(2) 예수님의 모든 고난이 절정에 이르렀음을 보여 주는 말씀
둘째,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난이 절정에 이르렀음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많은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고향 사람들에게 배척을 받으셨고,
종교 지도자들에게 비난을 받으셨으며,
제자에게 배반당하셨습니다.
또한 체포되시고 불의한 재판을 받으셨으며,
군인들에게 조롱과 채찍질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가장 깊은 의미는 단지 이러한 인간적인 고통에만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하나님의 심판을 감당하셨습니다. 인간이 경험하는 질병과 배신과 슬픔과 죽음은 모두 죄로 말미암아 깨어진 세상에서 겪는 고통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은 그 모든 고통을 넘어 죄의 형벌을 대신 담당하신 대속의 고난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깊이를 인간의 경험과 비교하여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습니다.
다만 성경이 증언하는 대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죄의 심판을 담당하셨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네 번째 말씀은 십자가 고난의 절정에서 울려 퍼진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담당하신 대속의 고난이 얼마나 엄중했는지를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3) 인간의 지성으로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구원의 신비
셋째,
이 말씀은 인간의 지성으로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깊은 신비를 담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당시 로마 제국에서 중대한 범죄자와 반역자들에게 가해지던 잔혹한 사형 방식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두 강도 사이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으신 분이셨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한 후에도 그분에게서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찾지 못했습니다.
누가복음
23장 4절은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무리에게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라고 말한 사실을 기록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죄가 없으신 분이 죄인들이 받아야 할 십자가형을 받으실 수 있었을까요? 바로 여기에 구원의 신비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죄 때문에 죽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기 위해 죽으셨습니다.
의로우신 분께서 불의한 자들을 대신하셨고,
죄가 없으신 분께서 죄인들의 자리에 서셨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18절은 이 사실을 분명하게 선포합니다: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십자가의 역설을 깨닫게 됩니다.
죄가 없으신 분이 죄인의 자리에 서셨고,
죽음을 이기실 생명의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 결과 죄와 죽음의 권세 아래 있던 우리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지혜로 만들어 낼 수 없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며,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복음의 신비입니다.
(4) 하나님의 엄중하고 변함없는 공의를 나타내는 말씀
넷째,
이 말씀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공의가 얼마나 엄중한지를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치신 말씀을 통해 우리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지극히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무시하거나 불의와 타협하지 않으십니다.
죄에 대한 심판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심판으로만 대하지 않으시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제물로 세우셔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3장 25–26절의 말씀을 다시 묵상해 봅시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의롭다 하십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공의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자신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그냥 넘어가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 담당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의롭다는 선언을 내려 주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바라볼 때 우리는 단순히 슬픈 죽음의 장면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십자가는 죄를 조금도 가볍게 여기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공의가 드러난 자리입니다.
동시에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를 내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난 자리입니다. 우리는 이 네 번째 말씀을 통해 죄의 무게를 깊이 깨닫고,
우리를 위해 대속의 죽음을 담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더욱 감사해야 합니다.
말씀 묵상을 맺으며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신 네 번째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 담당하시며 겪으신 대속의 고난이 얼마나 깊고 엄중했는지를 보여 줍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네 가지 관점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첫째,
인간의 관점에서 십자가는 타락한 인간의 죄악이 드러난 자리입니다.
인간은 자신들을 구원하러 오신 하나님의 아들을 거부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둘째,
사탄의 관점에서 십자가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세력이 활동한 영적 전쟁의 현장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십자가를 통해 사탄의 권세를 무너뜨리셨습니다. 셋째,
예수님의 관점에서 십자가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발적으로 자신을 대속물로 내어 주신 사랑의 현장이었습니다. 넷째,
하나님의 관점에서 십자가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공의가 드러나는 동시에,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난 자리였습니다. 또한 우리는 예수님의 네 번째 말씀에 담긴 네 가지 영적 성격을 살펴보았습니다.
그것은 말할 수 없는 고뇌의 절규이며,
예수님의 대속적 고난이 절정에 이르렀음을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또한 인간의 지성으로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구원의 신비이며,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공의를 나타내는 엄숙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보며 두 가지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첫째,
우리의 죄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가볍게 여기거나 죄와 타협해서는 안 됩니다.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며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둘째,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를 보내셨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담당하셨습니다.
그 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공로를 의지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깊이 묵상할수록 죄를 미워하고 하나님의 공의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겨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감사하며,
그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 처절한 외침을 통해 우리를 대신하여 고난을 담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더욱 깊이 깨닫고,
십자가의 은혜 안에서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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