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경외하라”
[시편 34편 8-14절 말씀 묵상]
참으로 행복한 크리스찬은 누구입니까? 신명기 10장12-1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행복을 위하여 우리에게 명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명령 중 하나는 오늘 새벽 기도회 때 묵상한 말씀인 아모서 5장14-15절에 적혀 있습니다. 곧,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악을 악으로 여기지 않을 때가 수 없이 많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악을 미워하기 보다 좋아하는 자신의 죄악된 본능을 만족케하는 삶을 살 때가 많이 않나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 잠언 8장13절을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To fear the Lord is to hate evil;…)라고 지혜자는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란 책을 읽고 쓴 글을 인터넷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그 글을 읽으면서 한 가지 생각케 만드는 글이 있었습니다. 그 글 내용을 요약하자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에는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의 태도를 우리도 동일하게 지니고 있어야 하는데 그 하나님은 우리의 범죄함을 심판하고 징계하는 자로 서시는 것이 아니라 누구 보다도 우리가 죄를 범할 때에 아파하시는 분이심을 알게 되었다는 글이였습니다. 그 글 중에 한 두 문장을 인용하자면 이렇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된후 즉시 내게 든 마음은 정말 죄가 밉고 싫다는 것이다. 범죄함으로 인해 받을 징계가 두려워서이기보다도 그 죄에 대해 미워하는 마음이 내게 생겨나게 되었다”(인터넷) 과연 우리는 이러한 죄에 대해 미워하는 마음이 생겨나고 있습니까? 만일 우리가 “예”라고 대답했다면 과연 그러한 마음이 든 동기가 하나님께 징계를 받아서라기보다 우리가 범한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아버지께서 마음 아파하신다는 것을 깨달으므로 생기는 마음인지 자문해 봐야 함을 도전 받습니다.
오늘 본문 시편 34편8-14절 말씀 중심으로 “여호와를 경외하라”는 제목 아래 과연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어떠한 자인가 한 4가지로 묵상하며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하나님께 피합니다.
오늘 본문 시편34편 8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여기서 ‘하나님께 피한다’는 말씀은 ‘하나님을 신뢰하여 그에게만 소망을 걸고 순종함’을 말씀합니다(박윤선). 즉,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주님에게만 소망을 걸고 그의 계명에 순종하는 자입니다. 이러한 자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 피하는 자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체험합니다. 이미 다윗은 시편 31편19절에서 주님을 두려워하므로 그에게 피하는 자에 대해서 이러한 고백을 하였습니다: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 곧 인생 앞에서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주님께 피하는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는 그의 보호하심 외에도(시 5:11) 그의 구원를 경험하므로 주님의 “기이한 인자”를 경험하게 됩니다(시17:7).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인자하심 외에도 그의 선하심을 경험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경험하신 적이 있습니까? 어떠셨습니까? 저는 제 결혼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선하심을 경험하였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아내를 만나게 되었고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로 결혼 예배를 하나님께 올리면서 오늘 본문 시편 34편 8절 말씀을 하나님께서 주셨던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이시며 우리에게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심을 경험하습니다(롬8:28). 우리 하나님은 참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인자하시며 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에게만 소망을 걸고 우리가 그의 말씀을 순종할 때에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 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함이 어떻게 우리에게 복입니까? 이번주 월요일 성경을 읽다가 요엘 2장11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함이 어떻게 우리에게 복이 되는지에 관한 말씀을 읽고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 그 명령을 행하는 자는 강하니…”(and mighty are those who obey his command).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하나님께 피하는 자요 하나님께 피하는 자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선하심을 경험하기 위하여 하나님을 신뢰하여 그에게만 소망을 두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야 합니다. 바로 이러한 삶이 우리에게 복된 삶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 시편34편 9-10절을 보십시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 구절들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하나님께 피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찾는 자”라는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위험한 상황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하나님께 우선 피한 후 하나님을 찾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자”는 잔인하여 남을 해하고 탈취하므로 궁핍해질 염려가 없습니다. 그러면 “청렴하여 남을 해하지 않는 성도는 쉬이 굶어 죽을 듯이 보입니다(박윤선). 그러나 성경은 사자는 굶어 주릴지라도” 우리 성도들은 주리지 않는다고 시편 37편 25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어려수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젊은 사자는 육체적 필요의 양식(저장품)에 대하여 ‘자기 충족’(self-sufficiency)을 상징합니다. 대조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자기 충족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은 일상의 기본적인 필요를 하나님께 의지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는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어떠한 주님이 함께하십니까? 목자가 되시는 주님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와 함께 하십니다. 그리할 때 다윗처럼 시편 23편1절 말씀의 고백을 하게 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사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The Lord is my shepherd, I shall not be in want).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주님께 피하여 목자되신 주님을 찾으므로 말미암아 그의 풍성하게 채워주심을 경험하기에 그를 경외하는 자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시편31편19절 말씀처럼 하나님께서는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의 풍성한 은혜를 쌓아두셨다가 그를 찾는 자에게 풍성하게 베풀어주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경외하여 그를 찾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셋째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복을 받습니다.
오늘 본문 시편 34편12절을 보십시오: “생명을 사모하고 장수하여 복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구뇨”.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복은 무엇입니까? 그 복은 다름 아닌 생명을 사모하는 것, 곧 장수의 복입니다. J. Ridderbos라는 학자는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생명”이란 말과 “장수”란 말을 신약이 명백히 말씀하고 있는 “영생”과 같은 뜻을 가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박윤선). 시편 기자 다윗은 위험한 상황에서 하나님께 피하여 부족함이 없는 가운데서 오늘 본문 11절에서는 그의 제자들(“소자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함을 가르치고자 하는 모습을 우리는 봅니다. 다윗이 교사로서 그의 제자들에게 가르치고자 했던 교훈은 모든 일에 제일 근본적인 것으로 곧 우리 인생 삶의 의미입니다. 그것은 오늘 본문 12절에서 ‘생명을 사모하는 것’(desires life or “love days”), ‘장수하는 것’ 곧 ‘복 받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만족히 누리고 있었던 다윗은 그의 제자들에도 그러한 우리 인생 삶 존재의 만족함을 누리길 원하여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가르침에 있어서 인생의 삶의 의미인 복 받기를 원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목적을 분별하여 그 목적대로 적당하게 또한 바르게 사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목적대로 적당하게 또한 바르게 사는 삶이란 오늘 본문 34편 1-7절에서 가르쳐 주듯히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하여 그를 경외하므로 그를 찬양하며 그에게 간구하는 삶입니다. 더 나아가서 오늘 본문 13-14절을 보면 하나님의 목적대로 적당하게 또한 바르게 살기 위해서 두 가지 교훈을 다윗은 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의 혀를 금하며 우리의 입술을 궤사한 말에거 금해야 합니다(13절). 둘째로,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좇아야 합니다(14절).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그를 찬양하며 그에게 간구하는 삶을 살아가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우리의 입술을 제어하며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영생 복락을 누리며 살아가야 합니다.
마지막 넷째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합니다.
오늘 본문 시편34편 14절을 보십시오: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지어다”. 이 말씀은 12절 질문인 ‘복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구뇨”의 대답 중에 하나입니다. 즉, 생명을 사모하고 장수하여 복 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잠언 8장13절을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To fear the Lord is to hate evil;…)라고 지혜자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잠언 14장16절을 보면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악을 떠나는 자는 지혜로운 자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분 시편34편14절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소극적으로는 악을 떠나고 적극적으로는 선을 행한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 본문 문맥에서 ‘선을 행한다’는 말씀은 ‘화평을 찾아 좇는 것’입니다. 그러면 화평을 찾아 좇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그 대답을 오늘 본문 13절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궤사한 말에서 금할지어다”. 이것은 입술로써 남을 해하는 죄, 곧, 악담, 저주, 아첨, 훼방, 누설, 황언등을 멀리 하라는 뜻입니다(박윤선). 교회란 공동체 안에서 화평을 찾아 좇기 위해서는 우리의 입술을 제어해야 합니다. 잘 절제하지 못하면 교회의 화평이 깨집니다. 그 이유는 혀라는 것을 잘못사용하면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약3:8).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행복한 자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피하므로 하나님의 선하심을 경험합니다. 또한 그는 하나님께서 쌓아두신 크신 은혜를 받아 누리는 자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구원하심만 받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기이한 사랑도 경험합니다. 그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소망 가운데서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므로 힘을 얻습니다. 목자 되신 주님이 그와 함께 하시기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는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릅니다. 그러기에 그는 혀를 악에서 금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참으로 행복한 자입니다.
행복한 하나님의 자녀로 세움을 받고 있는,
제임스 목사 나눔
(2006년 9월 6일 수요 기도회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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