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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Christian Who Lives Remembering That the Day Will Surely Come When My Body, Too, Will Not Remain in the Tomb but Will Disappear

A Christian Who Lives Remembering That the Day Will Surely Come When My Body, Too, Will Not Remain in the Tomb but Will Disappear       “Now on the first day of the week, very early in the morning, these women came to the tomb, bringing the spices which they had prepared.   And they found the stone rolled away from the tomb.   Then they went in and did not find the body of the Lord Jesus.   And it happened, as they were greatly perplexed about this, that behold, two men stood by them in shining garments.   Then, as they were afraid and bowed their faces to the earth, the men said to them, ‘Why do you seek the living among the dead?   He is not here, but is risen!   Remember how He spoke to you when He was still in Galilee, saying, “The Son of Man must be delivered into the hands of sinful men, and be crucified, and rise again the third day.”’   And they remembered the words of Jesus.   Then they returned from the tomb and to...

짧은 말씀 묵상 (2022년 2월 3일)

짧은 말씀 묵상

 

 

과연 나는 내 친구들의 영혼 구원을 어느 정도로 간절히 원하고 있는 것일까?  사도 바울처럼 만일 그들이 구원만 얻는다면 내가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가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그렇게 되기를 원하고 있는가?  지금 나에게는 큰 슬픔과 그치지 않는 마음의 고통이 있는가?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진실을 말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성령님 안에서 내 양심이 증거하고 있는가? (참고: 로마서 9:1-3,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의 선택의 표준은 사람의 행위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있습니다(로마서 9:11,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은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축복은 사람이 원하거나 노력한다고 해서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푸셔야 받습니다(로마서 9:15-16,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께서 악하고 마음이 완고한 이집트 왕 바로도 세우시사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셨다면 우리를 세우시사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참고: 로마서 9:17, 18, 현대인의 성경).

 

우리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며 하나님께 반문할 수 있겠습니까?  지음을 받은 피조물이 어떻게 감히 조물주이신 하나님에게 "왜 나를 이렇게 만들었습니까?"하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하게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습니까? (로마서 9:19-21, 현대인의 성경)

 

진흙 한 덩이는 토기장이에게 '왜 나를 귀히 쓸 그릇으로 만들지 않고 천히 쓸 그릇으로 만들었습니까?'라고 반문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그것은 토기장이의 권한이기 때문입니다.  토기장이가 원하는 대로 쓸 그릇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조물인 우리는 조물주의 권한을 도전하여 "왜 나를 이렇게 만들었습니까?"라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토기장이가 되시는 하나님의 권한을 겸손히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우리 사람들의 완고함이 아닐 수 없습니다(로마서 9:20-21, 현대인의 성경).

 

과연 진노의 그릇이 토기장이에게 "왜 나를 이렇게 만들었습니까?"하고 항의할 수 있겠습니까?  과연 긍휼의 그릇이 토기장이에게 '왜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십니까?'라고 반문할 수 있겠습니까?  도리어 긍휼의 그릇은 '왜 멸망받아야 할 진노의 그릇인 저를 불쌍히 여기셔서 영광을 받도록 긍휼의 그릇으로 삼아주셨습니까?'라고 토기장이의 풍성한 은혜와 긍휼에 감사해야 하지 않나요? (참고: 로마서 9:20-23, 현대인의 성경)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 사람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지만 인간의 노력과 행위로 의롭다 하심을 얻으려고 추구하는 사람은 장애물에 걸려 넘어질 것입니다(로마서 9:32-33, 현대인의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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