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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3가지 마지막 권면 (11)

바울의 3 가지 마지막 권면 (11)       우리는 입술로만 아니라 생활로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   그러기 위해선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해야 합니다 .     여기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한다는 말씀은 3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   (1)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한 마음 , 한 뜻으로 서서 서로 협력하는 것 ( 빌 1:27).   우리는 주님의 겸손한 마음으로 한 마음을 품고 서로 돕고 힘을 합쳐서 주님의 뜻을 이루어 드림에 있어서 같은 의지와 욕망으로 주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     (2)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것 (28 절 ).   예수님과 그분의 복음 때문에 핍박을 받고 고난을 당하는 것은 우리에게는 구원받은 증거입니다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힘과 용기를 주시사 그 핍박과 고난을 견디며 이기게 하실 것입니다 .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 스도와 우리를 대적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     우리는 이러한 두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기 보다 그 두려운 상황에 처하게 될지라도 그 상황을 극복해 나아갈 수 있는 믿음이 우리에게 없음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   (3) 그리스도를 위하여 믿음으로 고난을 받는 것 (29 절 ). 고난은 유익합니다 .     그 이유는 우리가 고난당하기 전에 그 릇행하였다가 고난을 통하여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배우므로 그 말씀을 지키게 되기 때문입니다 ...

“쉬지 않고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1장 9-14절)

“쉬지 않고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1 9-14]

 

 

 

성경 데살로니가전서 5 17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어떻게 우리가 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을까요?  여기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은 반복해서(repetitiously) 기도하라는 말도 아니고 휴식이 없이 계속해서(continuously)라는 말이 아니라 끈기 있게(persistently) 그리고 정기적으로(regularly) 기도하라는 뜻입니다(MacArthur).  우리가 기도 제목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할 때 포기하지 말고 끈기 있게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참 힘든 것이 사탄은 자꾸만 우리에게 다가와 미혹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우리가 생각할 때 우리가 접한 힘든 상황은 지속되고 우리의 기도 응답이 더디다고 생각 될 때 사탄은 지속적으로 우리를 현혹합니다.  어떻게 사탄은 우리를 현혹합니까?  사탄은 우리에게 수시로 다가와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현혹하는 지름길(deceptive shortcut)을 제안합니다.  그 때에 우리는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1) 계속해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으로 믿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기대하며 기다리므로 하나님의 때에 기도 응답을 받든지, 아니면 (2) 우리가 그리도 원하는 것을 더 이상 기도하며 기다리기보다 사탄이 보여주는 지름길을 선택하여 빨리 얻으려고 하든지(그러나 이 선택의 결과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 후손들에게도 고통을 줄 수도 있음).

 

저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살전5:17)을 생각할 때 5개의 다른 성경 구절도 함께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1)  첫 번째 성경구절은 사무엘상 12 23절 말씀입니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

 

이스라엘 자손이 사무엘에게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7:8)라고 부탁했을 때 사무엘은 그들의 부탁대로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하나님 앞에서 결단코 범하지 아니했습니다(12:23).  이 말씀 생각할 때 우리는 사랑하는 전도 대상자들의 영혼 구원을 위해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한다는 교훈을 받습니다.

 

(2)  두 번째 성경구절은 디모데후서 1 3절 말씀입니다: “내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사도 바울은 사랑하는 영적 아들 디모데(2)를 쉬지 않고 생각(기억)하면서 밤낮 간구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하였는데(3) 그 이유는 사도 바울은 디모데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생각할 때 우리는 우리의 영적 자녀들을 위해 쉬지 말고 기도하되 특히 그들의 믿음이 디모데처럼 거짓이 없는 믿음을 위해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한다는 교훈을 받습니다.

 

(3)  세 번째 성경구절은 사도행전 20 31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밀레도에서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한 말씀으로서 사나운 이리때 같은 거짓 선생들이 에베소 교회 가운데 들어와 양떼를 사정없이 해칠 것과 에베소 교회 안에서도 그와 같은 사람들이 일어나 그릇된 것을 가르쳐서 신자들을 꾀어내어 자기들을 따르게 할 것을 경고한 후(29-30, 현대인의 성경) “그러므로” 에베소 교회 장로들은 정신을 바짝차리고 바울이 3년 동안이나 밤낮 “쉬지 않고” 각 사람을 눈물로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고 말했습니다(31, 현대인의 성경).  이 말씀을 생각할 때 우리는 교회 성도들이 사탄의 꾐(유혹/미혹)에 넘어가지 않기 위하여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한다는 교훈을 받습니다.

 

(4)  네 번째 성경구절은 로마서 1 9절 말씀입니다: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현대인의 성경) “내가 그리스도에 대한 기쁜 소식을 전하며 정성껏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또 여러분을 기억하며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도 잘 알고 계십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뿐만 아니라 이렇게 로마 교회를 위해서도 “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는데 현대인의 성경 번역을 보면 “여러분을 기억하며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도 잘 알고 계십니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을 생각할 때 우리는 교회 성도들을 항상 기억하며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시다’라는 마음 자세로 그들을 위하여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5)  다섯 번째 성경구절은 데살로니가전서 2 13절 말씀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continually)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로 인하여 하나님께 “항상”(always) 감사했습니다(1:2).  다시 말하면,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continually) 기억하며 기도하였을 때(3) 항상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2).  그런 그가 데살로니가전서 2 13절에 와서도 하나님께 “쉬지 않고”(continually) 감사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을 통하여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as it actually is) 받았기 때문이요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믿는 그들 속에서 역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13).  이 말씀을 생각할 때 우리는 사랑하는 성도님들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위하여 쉬지 않고 기억하며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그들이 주님의 종을 통해 듣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받고 믿는 그들 속의 그 말씀이 역사하길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골로새서 1 9절 상반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그 소식을 들은 후부터 우리는 쉬지 않고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  저는 이 말씀에 근거에서 “쉬지 않고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라는 제목 아래 사도 바울이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을 위하여 무슨 기도를 하나님께 쉬지 않고 드렸는지 그 기도 내용을 The Outline Bible 주석에 근거하여 5가지로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으로 채워 주시길 하나님께 쉬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오늘 본문 골로새서 1 9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그 소식을 들은 후부터 우리는 쉬지 않고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모든 영적인 지혜와 총명으로 여러분에게 그의 뜻을 아는 지식으로 채워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여러분 생각에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의 선하신 뜻은(12:2) 사랑하사 창세 전에 택한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입니다(1:4).  그 구원의 뜻을 이루심에 있어서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구원의 뜻을 이루십니다(8:28).  그 원대한 구원의 뜻을 이루심에 있어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를 사용하시길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나 죽으나(14:8) 하나님의 구원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일에 겸손히 순종해야 합니다(2:8).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합당한 삶을 살아가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삶으로 증거하는 증인의 삶을 살아야 할 뿐만 아니라(1:27) 우리의 입을 열어 그 복음을 증거해야 합니다(8:35).  오직 하나님의 구원의 뜻이 이미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길 기원합니다(6:10).  하나님의 뜻은 이미 하늘에 이루어진 것과 같이 땅에도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의 책임은 하나님의 뜻대로만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6:10; 요일3:17; 5:14, 현대인의 성경).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오신 것은 "내 뜻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에게 주신 모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모두 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원한 생명을 얻어 예수님께서 우리를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그것입니다(6:38-40).  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 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신다면 이 고난의 잔을 내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라고 간구하셨습니다(22:42, 현대인의 성경).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자는 하나님의 뜻(성경말씀)대로 살다가 하나님의 뜻(성경말씀)대로 죽습니다.

 

오늘 본문 골로새서 1 9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에게 이렇게 편지로 말하였습니다: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현대인의 성경) “그 소식을 들은 후부터 우리는 쉬지 않고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모든 영적인 지혜와 총명으로 여러분에게 그의 뜻을 아는 지식으로 채워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은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현대인의 성경은 “그 소식을 들은 후부터”라고 번역]라고 말씀을 했는데 여기서 우리는 왜 사도 바울이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않고(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했는지 그 이유를 좀 생각해 봐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에 대하여 무슨 소식을 들은 후부터 그들을 위하여 쉬지 않고 하나님께 (중보) 기도를 했는데 그가 들은 소식을 우리는 골로새서 1 4-5절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현대인의 성경) “그것은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잘 믿고 모든 성도를 사랑한다는 말을 우리가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과 사랑은 여러분이 전에 진리의 말씀인 기쁜 소식을 들어서 확신하고 있는 하늘 나라의 소망에 근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들은 소식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 번역으로 말한다면, 바울이 들은 소식은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잘 믿고 모든 성도를 사랑한다는 말이었습니다.  이 소식을 사도 바울은 “에바브라”(7)를 통해 전해 들었습니다.  8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성령님 안에서 여러분이 사랑으로 생활한다는 소식을 우리에게 전해준 사람입니다.  바울은 그리스의 신실한 일꾼인 에바브라(7)를 통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의 믿음과 사랑의 소식을 전해 듣고 이것이 그들이 전에 진리의 말씀인 복음을 들어서 확신하고 있는 하늘 나라의 소망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5).  이 소식을 들은 후부터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않고 (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했던 것입니다(9).  그 기도 내용은 9절 하반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현대인의 성경) “우리는 하나님이 모든 영적인 지혜와 총명으로 여러분에게 그의 뜻을 아는 지식으로 채워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 기도 내용의 핵심은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으로 채워 주시길 기도한 것입니다(9).  10절 하반절에서도 바울은 그들에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점점 자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여기서 흥미로운 점 2가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1)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1 1절에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이라고 골로새 편지를 시작했는데 여기 골로새서 뿐만 아니라 한 4편지를 보면 그는 “하나님의 뜻”이란 말씀으로 시작을 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 1(“하나님의 뜻을 따라”), 고린도후서 1 1(“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에베소서 1 1(“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디모데후서 1 1(“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 사도 바울은 그의 5개 편지의 시작에서 자기가 “사도”가 된 것인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았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 사실을 처음에 사도 바울에게 알려준 사람은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사 하나님 우편에 계신 주 예수님을 만난 후 주님의 말씀대로 다메섹으로 들어갔을 때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아나니아”였습니다(22:1-12).  아나니아가 바울에게 한 말입니다: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그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네가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현대인의 성경)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당신을 택하여 그분의 뜻을 알게 하시고 의로우신 그리스도를 보게 하셨으며 그 의로우신 분이 하신 말씀을 듣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당신이 그분의 증인이 되어서 보고 들은 일을 모든 사람에게 말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14-15).

 

(2)  사도 바울만 이 기도를 하나님께 쉬지 않고 드린 것이 아니라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위해 일했던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 바울과 함께 하나님의 종이 된 바울이 사랑하는 에바브라(1:7)도 이러한 기도를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4 12절 말씀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너희에게서 온 에바브라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 너희로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구하나니” [(현대인의 성경) "또 여러분에게서 온 그리스도 예수님의 종, 에바브라가 문안합니다. 그는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을 확신하고 굳게 서서 성숙한 신앙 생활을 하게 해 달라고 언제나 열심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으로 채워 주시길 쉬지 않고 기도했을 때(9) 그저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으로만 채워지길 원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기를 쉬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면 바로 9절에서 바울은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현대인의 성경) “모든 영적인 지혜와 총명으로”]라고 말씀을 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모든 신령한(영적인) 지혜와 총명”이란 말씀에서 “지혜”란 ‘성경의 원리를 축적하고 조직하는 능력’(the ability to accumulate and organize principles from Scripture)이고 “총명”이란 ‘그 원리를 일상생활에 적용’(the application of those principles to daily living)하는 것을 말합니다(맥아더).  ,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모든 영적인 지혜와 총명으로”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아는 자식으로 채워 주시기를 기도한 것입니다(9). 

 

신앙 생활을 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고민 안 해 본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만큼 신앙 생활을 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뜻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알아 그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하고 있지만 연약한 우리의 육신은 자꾸만 “내 뜻”을 추구하며 “내 뜻’대로 살아가길 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내 뜻’과 ‘하나님의 뜻’이 충돌될 때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를 들어, 하나님의 뜻은 우리 이웃을 우리 자신같이 사랑하는 것인데 내 뜻은 우리 이웃을 사랑하기보다 미워하는 것이라면 우리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기 전날 밤에 감란산에서 드리셨던 기도를 우리 또한 하나님께 기도 드려야 합니다: “…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26:39, 현대인의 성경).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님(2:8)처럼 우리도 주님의 뜻에 죽기까지 복종하길 기원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도 모든 영적인 지혜와 총명으로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으로 채워주시길 그치지 않고(쉬지 않고) 기도하십시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지혜”를 더욱더 주셔서 성경책을 펴서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할 때 성경적인 원리들을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을 주시길 기원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총명”을 주셔서 성경 말씀을 통하여 깨달은 성경적인 원리들을 일상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길 기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으로 채워지는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드리는 자들이 되길 기원합니다.

 

둘째로,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들이 되길 하나님께 쉬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오늘 본문 골로새서 1 10절 상반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주님을 믿는 성도다운 생활을 하여 모든 일에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  성경 고린도후서 5 9절을 보면 바울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현대인의 성경) “그래서 우리가 이 육체의 집에 머물러 있든지 떠나든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우리의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썼습니다.  다시 말하면, 바울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자신의 목표로 삼았습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우리의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바울처럼 주님을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합니다(5:10).  제가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성경 시편 69편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 우리는 무엇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우리가 하나님을 더욱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해선 우리는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69:13).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반겨주시사 우리에게 가까이 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실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 겸손히 나아가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건져주실 것입니다.

 

(2)  우리가 하나님을 더욱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해선 우리는 우리의 죄를 자복해야 합니다(5).

 

우리는 기도할 때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사람을 의지하였던 것이 “나의 우매함”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우리의 죄가 하나님 앞에서 숨길 수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우리의 어리석음과 죄를 자복해야 합니다.

 

(3)  우리가 하나님을 더욱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해선 우리는 주님의 교회를 위하여 열심을 내야 합니다(9).

 

우리가 하나님께 간구할 때 우리는 우리를 반겨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하여 우리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므로 하나님을 더욱더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열심으로 교회를 위하여 열심을 내야합니다.

 

(4)  우리가 더욱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해선 우리는 감사하므로 하나님께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30).

 

하나님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면 우리는 고난 중에서도 우리 자신을 기쁘게 하기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길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그 고난 중에서도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송케 하십니다.

 

오늘 본문 골로새서 1 10절 상반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형제들(성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현대인의 성경) “그래서 여러분이 주님을 믿는 성도다운 생활을 하여 모든 일에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형제들을 위하여 그치지(쉬지) 않고 기도하면서 그들이 범사(모든 일)에 주님을 기쁘시게 하길 기도했는데 어떻게 하면 그들이나 저와 여러분이 모든 일에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까요?  바로 주님께 합당하게 행하므로(worthy of the Lord) 가능합니다(10).  그러면 주님께 합당하게 행한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2개의 성경구절 중심으로 그 의미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첫 번째 성경구절은 에베소서 4 1절 하반절 말씀입니다: “…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현대인의 성경) ...  여러분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성도답게”].

 

이 현대인의 성경 말씀을 보면 주님께 합당하게 행한다는 말씀의 의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성도답게 행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골로새서 1 10절을 현대인의 성경은 “여러분이 주님을 믿는 성도다운 생활을 하여 모든 일에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 저와 여러분인 주님께 합당하게 행한다는 의미는 주님을 믿는 성도다운 생활을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주님을 믿는 성도다운 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과연 저와 여러분은 성도다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까?  과연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죄와 세상으로부터 분리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까?  과연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요?  우리가 성도다운 생활을 하기 위해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아 그 뜻대로 살 수 있기 때문임(9-10).  우리가 2021년 한 해를 시작하면서 우리 모두가 주님을 믿는 성도다운 생활을 하기 위해서 3가지에 초점을 맞췄었습니다: (a) 우리는 모든 선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10):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것(고전16:15),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13:15), 성도들 중 가난한 형제, 자매를 위하여 (구제) 헌금하는 것(15:26-28), 경건한 삶을 사는 것(12:11), 그리고 성령의 열매를 맺으면서 거룩한 태도를 나타내는 것(5:22-23)(맥아더).  (b) 우리는 모든 일을 기쁨으로 참고 견뎌야 합니다(1:11).  우리는 성령님의 기쁨으로 견딜 수 없는 상황을 견디며 참을 수 없는 사람을 참는 것에 헌신을 했습니다.  (c)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해야 합니다(12).

 

(2)  두 번째 성경구절은 빌립보서 1 27절 상반절 말씀입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현대인의 성경)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믿는 사람답게 생활하십시오”].

 

이 성경 말씀을 보면 주님께 합당하게 행한다는 말씀의 의미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믿는 사람답게) 생활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한다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빌립보서 127-29절에 근거해서 3가지로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a)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한다는 의미는 우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입니다(27).

 

여기서 “한마음”이란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2 2절에서 “마음을 같이하여”와 “한마음을 품어”라고 말씀을 한 후 5절에 와서는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 “한마음”이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한다는 의미는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아 그 마음으로 서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한 뜻”이란 당연히 우리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말합니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2 2절에서 “뜻을 합하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2 8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복종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마음”과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것입니다.

 

(b)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한다는 의미는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1:28).

 

주님의 교회는 주님이 세우십니다(16:18).  주님의 교회 세우시는 역사를 반대하여 교회 지도자와 성도들을 대적하는 사탄과 그의 세력들은 어떻게 해 서든지 우리를 두렵게 하려고 하되 특히 교회 지도자를 두렵게 하여 주님의 교회 세우시는 역사를 방해하고 중단하게 만들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대적자들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그 와중에서도 주님께서는 주님의 교회를 세우시므로 우리의 대적들을 두렵게 하시고 크게 낙담케 하시기 때문입니다.  교회 대적자들이 두려워하고 크게 낙담하는 이유는 주님께서 "이 역사를 이루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6:15-16).  요한복음 16 33절 하반절 말씀입니다: “…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c)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한다는 의미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1:29).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도 은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특권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받는 고난을 기뻐했습니다.  고난은 우리를 연단시킵니다(영적으로 성장 및 성숙시킴) (5:3-4).  고난은 우리 혼자 당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고난을 받으십니다(8:17).  이 진리를 알고 진정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성도는 고난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다는 것은 예를 들어 시편 기자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사(34:18) 그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15, 17) 그를 고난에서 건지시는 (17, 19, 22) 하나님을 경험하였습니다.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인이라는 명백한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한마음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여겨야 합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우리가 그리스도인임을 부정할 수 없고 또한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야 합니다(4:14, 16).

 

결국 오늘 본문 골로새서 1 10절에서 ‘주님께 합당하게 행한다’는 말씀의 의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성도답게 생활한다는 의미요 또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사람 답게 생활한다는 의미입니다.  죤 맥아더 목사님은 ‘주님께 합당하게 행한다’는 오늘 본문 골로새서 1 10절 말씀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신자가 자신을 구원하신 주님과 함께 존재하는 자로서의 일치하는 방식으로 살도록 부르는 핵심 신약 개념입니다’(This is a key NT concept which calls the believer to live in a way that is consistent with his identification with the Lord who saved Him(맥아더).  우리가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할 기도 제목은 우리 모두가 주님께 합당하게 행하여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 기도를 그치지 않고 하나님께 드리면서 우리는 주님을 믿는 성도다운 생활하므로 주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사람 답게 생활하므로 우리 주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한 마디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은 오늘 본문 골로새서 1 9절 하반절 말씀으로 말한다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은 오늘 본문 10절 상반절 말씀으로 말한다면 주님께 합당하게 행하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가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를 본받아 ‘주님, 내 뜻대로 되게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게 하여 주십시오’(22:42, 새 번역)라고 간구할 수 있길 기원합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새 찬송가 549장 “내 주여 뜻대로”를 하나님께 기원하는 마음과 헌신하는 마음으로 찬양을 올려드릴 수 있길 기원합니다:

 

(1절)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온몸과 영혼을 다 주께 드리니 이 세상 고락 간 주 인도하시고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2절)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큰 근심 중에도 낙심케 마소서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네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3절)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내 모든 일들을 다 주께 맡기고 저 천성 향하여 고요히 가리니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아멘.

 

우리는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에게 붙어 있는 가지입니다(15:1, 5).  가지인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고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면 우리는 열매를 맺습니다(5).  만일 우리가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에게 붙어 있지 아니하면 우리는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4). , 우리는 예수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5).  그러므로 가지인 우리는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붙어 있어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이렇게 열매를 맺는 가지인 우리는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려고 농부이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깨끗하게 하십니다(1, 2). 우리의 책임은 진리를 순종함으로 우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마음으로 뜨겁게 사랑하는 것입니다(벧전1:22).  이렇게 우리가 깨끗해져서 말로만 서로 사랑하지 않고 행동과 진실하게 사랑하여(요일3:18, 현대인의 성경) 사랑의 열매를 많이 맺을 때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15:8)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너희는 바로 내 친구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14, 현대인의 성경).  그리고 우리 안에 주님의 기쁨이 충만할 것입니다(11).  예수님을 믿어 이미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이중적인 계명대로 우리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우리의 하나님을 사랑하며 또한 우리의 이웃을 우리 자신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22:37, 39).  그리할 때 맺는 이중적인 열매(twofold fruit)가 있습니다.  그 이중적인 열매란 첫째로, 성품의 열매인 우리가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벧후1:4)으로서 그 의미는 성령님의 성화로 인해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요, 둘째로, 성령님의 열매(fruit)인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5:22-23)를 맺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골로새서 1 9절 상반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그 소식을 들은 후부터 우리는 쉬지 않고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  우리는 이 말씀에 근거에서 쉬지 않고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라는 제목 아래 사도 바울이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을 위하여 무슨 기도를 하나님께 쉬지 않고 드렸는지 그 기도 내용 5가지 중에 이미 2가지를 묵상했습니다: 첫째로,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으로 채워 주시길 하나님께 쉬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오늘 본문 골로새서 19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그 소식을 들은 후부터 우리는 쉬지 않고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모든 영적인 지혜와 총명으로 여러분에게 그의 뜻을 아는 지식으로 채워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둘째로,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들이 되길 하나님께 쉬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골로새서 110절 상반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주님을 믿는 성도다운 생활을 하여 모든 일에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 오늘은 본문 골로새서 1 10절 말씀 중심으로 세 번째 기도 내용에 대해서 묵상하고자 합니다.

 

셋째로,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이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여 주시길 하나님께 쉬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오늘 본문 골로새서 110절을 보십시오: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현대인의 성경) “그래서 여러분이 주님을 믿는 성도다운 생활을 하여 모든 일에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으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점점 자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이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을 위하여 그치지(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한 세 번째 기도 내용은 그들이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해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먼저 생각해야할 점은 이 세 번째 기도 내용은 두 번째 기도 내용과 연관돼 있다는 것입니다.  그 두 번째 기도 내용은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10, 현대인의 성경).  ,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신실한 성도들은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두 번째 기도 내용인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10)은 첫 번째 기도 내용인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으로 채워 주시는 것’(9, 현대인의 성경)과 연관돼 있다는 것을 전제할 때 세 번째 기도 내용인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는다는 것과도 연관돼 있습니다.  ,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이 사도 바울의 첫 번째 기도 내용대로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으로 채워지면 그들을 주님께 합당하게 행하여[주님을 믿는 성도다운 생활을 하여(10, 현대인의 성경)] 모든 일에 주님을 기쁘시게 할 것이요(두 번째 기도 내용), 이렇게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신실한 성도들은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습니다(세 번째 기도 내용).  이 말씀을 우리에게 적용한다면,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으로 채워주셔서, 우리가 주님을 믿는 성도다운 생활을 하여 모든 일에 주님을 기쁘시게 하므로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또 한가지 우리가 생각해야할 점은, 사도 바울이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을 위하여 쉬지 않고 기도할 때 그들이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해주시길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열매란 무엇인가입니다.  우리가 이미 골로새서 1 6절에서 사도 바울이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형제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한 4번째 이유가 그들은 복음을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열매를 맺어 자라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말씀 가운데 그 열매말씀의 열매를 내포하고 있다고 배웠습니다.  , 그들은 내적으로 말씀의 열매가운데 예수님을 잘 믿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4, 현대인의 성경) 외적으로는 그 말씀이 온 세계에서도 그렇게 열매를 맺으며 전파되고 있었습니다(6, 현대인의 성경).

 

존 맥아더 목사님은 영적인 열매는 의로운 삶의 부산물입니다라고 말하면서 그 영적 열매를 5가지로 말했습니다(맥아더):

 

(1)  성경은 영적 열매를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615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현대인의 성경) “형제 여러분, 여러분도 알고 있겠지만 스데바나의 가정은 아가야 지방에서 제일 먼저 믿었으며 또 성도들을 섬기는 일에 몸 바쳐 일해 왔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쓴 이 편지 내용 부분을 보면 스데바나의 가정은 아가야 지방에서 제일 먼저 믿었다고 현대인의 성경은 번역을 하고 있고 개역개정은 그 집이 첫 열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혼 구원인 전도의 열매를 말씀하는 것으로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우리가 맺어야 할 영적 열매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형제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오늘 본문 골로새서 19-10절에서 그들을 위하겨 그치지(쉬지) 않고 기도한 3번째 내용은 주님께서 그들로 하여금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길 기도했는데 여기서 그 모든 선한 일에 열매중 하나가 바로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것이란 말입니다.

 

(2)  성경은 영적 열매를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315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현대인의 성경) “그러므로 예수님을 통해서 언제나 하나님께 찬양의 제사를 드립시다. 이것은 그분의 이름에 감사하는 우리 입술의 열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항상) 하나님께 찬양의 제사를 드릴 수밖에 없는 자들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우리 입술의 열매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입술의 열매는 무엇입니까?  야고보서 1 9-10절 말씀이 생각납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만일 우리가 한 입으로 하나님을 찬송도 하고 사람을 저주한다면 우리의 입술은 무슨 열매를 맺고 있는 것입니까?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찬송을 드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영적 열매를 맺다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한 사람을 저주하는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지 않는 육적인 열매를 맺고 있는 것입니까?  어떻게 우리는 한 입으로 이렇게 2가지 정반대되는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우리 입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맺어야 할 합당한 영적 열매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시편 1004절을 보십시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현대인의 성경) “감사하며 성전에 들어가고 찬송하며 그 뜰에 들어가라.  그에게 감사하고 그의 이름을 찬양하라”].

 

(3)  성경은 영적 열매를 돈을 주는 것, 즉 구제 헌금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526-28절을 보십시오: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연보하였음이라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영적인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적인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이 열매를 그들에게 확증한 후에 너희에게 들렀다가 서바나로 가리라”[(현대인의 성경) “그들은 기쁜 마음으로 헌금을 했습니다만 사실은 예루살렘 성도들에게 빚진 사람들입니다. 이방인들이 유대인들의 영적인 축복을 나눠 가졌다면 마땅히 물질로 그들을 도와야 합니다.  나는 예루살렘 성도들에게 이 헌금을 안전하게 전한 후에 여러분에게 들렀다가 스페인으로 가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 교회의 성도들에게 쓴 이 로마서 15 26-28절 말씀을 보면 바울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사는 성도들이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해 정성껏 헌금한 돈을 전하려고 그가 예루살렘으로 가는 중 그들이 기쁜 마음으로 헌금을 했다고 로마 교회의 성도들에게 말했습니다.  ,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사는 성도들이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물질로 도와줬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구제 헌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영적 열매를 가난한 성도들을 물질로 도와주는 것입니다.  도와주되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사는 성도들이 함께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물질로 도와준 것처럼 우리도 교회적으로 성도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합심해서 구제 헌금을 해서 힘든 다른 교회를 물질로 도와주는 것이 영적 열매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4)  성경은 영적 열매를 경건한 삶을 사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211절을 보십시오: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현대인의 성경) “징계를 받을 당시에는 그 징계가 달갑지 않고 괴로운 것 같지만 후에 그것으로 단련을 받은 사람들은 의와 평안의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가 잘못했을 때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는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더 이상 잘못된 길을 가지 말고 올바른 길을 가게 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그 아버지의 마음을 나는 철든 자녀는 아버지의 징계를 받으면서도 아버지를 공경할 것임(12:9, 현대인이 성경).  하물며 우리가 피를 흘리면서까지 죄를 대항하여 싸우지 않으므로 거듭 죄를 범할 때 하늘에 계신 우리 영의 아버지께서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징계하실 때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 복종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9-10, 현대인의 성경)  성경은 우리 영의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징계하시는 목적은 우리가 그 징계도 단련을 받아 의와 평안의 열매를 맺게 하시기 위해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11, 현대인의 성경).  이 영적 열매를 맥아더 목사님은 경건한 삶을 사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맥아더).

 

(5)  성경은 영적 열매를 거룩한 태도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22-23절을 보십시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의 성도들에게 이 편지 내용을 쓰면서 그 이전에 육체의 열매에 대해서 먼저 말씀했습니다: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현대인의 성경) “육체의 행위는 명백하게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이것은 음행과 더러움과 방탕과 우상 숭배와 마술과 원수 맺는 것과 다툼과 시기와 화내는 것과 당파심과 분열과 이단과 질투와 술주정과 흥청대며 먹고 마시는 것과 그리고 이와 같은 것들입니다. 내가 전에도 여러분에게 경고했지만 다시 경고합니다. 이런 생활을 일삼는 사람들은 결코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것입니다”](5:19-21).  사도 바울은 이 육체의 열매에 대해서 말씀한 다음에 성령의 열매 22-23절에서 말씀한 것입니다.  존 맥아더 목사님은 이 성령의 열매를 거룩한 태도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죤 맥아더 목사님이 말한 이 5가지 영적 열매와 골로새서 1 6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열매인 말씀의 열매를 함께 생각할 때 사도 바울이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형제들을 위하여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여 주시길 하나님께 쉬지 않고 기도를 드린 그 열매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므로 경건한 삶과 거룩한 태도를 나타내면서(성령님의 열매를 맺으며) 서로를 경제적으로도 도우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므로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할 기도 제목은 주님께서 우리 모두로 하여금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여 주시길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의 열매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열매를 맺게 하여 주시길 기원합니다.  또한 주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경건하고 거룩하고 사랑의 삶을 살게 하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합당한 삶을 살게 해주시길 기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입술로만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할 뿐만 아니라 우리 삶으로도 복음을 전하므로 말미암아 한 영혼, 한 영혼을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하는데 주님의 도구로 사용해 주시길 기원합니다.  구원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복음의 도구로 사용해 주셔서 영혼 구원의 열매를 맺게 하시사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와 영광을 돌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게 해주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꺼져가는 불꽃 하나 주님 앞에 섭니다 바람 불지 않토록 주여 도와 주옵소서

예기하지 못한 내일 기름 없는 등불이라 헛된 세월 보낸 이 몸 없드리어 우옵니다

세상부귀 날 버리고 세상권세 날 버려도 아버지에 사랑만은 영원토록 함께 하소서

온 세상 불 밝히는 작은 불꽃 하나로 남아 태우고 또 태워서 청지기가 되게 하소서

 

이름없는 들풀 하나 주님 앞에 섭니다 찬바람에 견디도록 주여 도와 주옵소서

꽃피우지 못한 내일 열매 없는 무화가라 허송세월 보낸 이 몸 엎드리어 우옵니다

슬픔 근심 가득 찰 때 하늘나라 소망하며 아버지의 품안에서 영원토록 살게 하소서

온 세상 향내 내는 작은 들풀 하나로 남아 피우고 또 피워서 청지기가 되게 하소서

 

                             (복음성가 작은 불꽃 하나로 남아”)

 

우리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소유하고 있는 하나님의 능력은 무엇일까요? 저는 이 질문을 던졌을 때 로마서 5 5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현대인의 성경) “이 희망은 우리에게 실망을 주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우리 마음에 그분의 사랑을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 우리가 이미 소유하고 있는 하나님의 능력은 바로 성령님의 능력이요 또한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입니다.  ,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께서 성령님의 열매인 사랑을 맺으시사(5:22)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의 이중 계명대로 우리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우의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시며 또한 우리 이웃을 우리 자신 같이 사랑하게 하시고 계신다는 것입니다(22:37, 39).  또 생각나는 말씀은 사도행전 1 8절 말씀임: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보면 우리가 이미 소유하고 있는 하나님의 능력은 바로 성령님이 우리에게 임하시므로 우리가 받은 “권능”입니다.  여기서 “권능”이란 말은 ‘주님의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으로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었을 때 성령님이 우리에게 주시사 성부 하나님의 능력과 성자 하나님의 능력이 성령 하나님을 통해 우리에게 임한 것입니다.  이 능력은 영적 능력으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교회를 세워갑니다.  또한 이 능력은 도덕적 능력으로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거룩하신 형상으로 성화되어갑니다(인터넷, 토저).  또 생각나는 말씀은 원로 목사님께서 수요 예배 때 “하나님의 복음 (3)”이란 제목 아래 로마서 16 25-17절 말씀 중심으로 ‘지혜로우신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을 선포하셨을 때 로마서 16 26절에서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이란 말씀입니다.  , 지혜로우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복음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우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듣기를 속히 하고 부지런히 하여 이 복음의 능력으로 믿음에 견고히 서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의 능력은 바로 복음의 능력입니다.  또 생각나는 말씀은 데살로니가전서 2 13절 말씀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이 말씀을 보면 우리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이미 소유하고 있는 하나님의 능력은 바로 말씀의 능력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사도 바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그 말씀을 사람의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말씀이 믿는 그들 속에서 역사하고 있었습니다.  만일 우리가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과 결부시키지 않으면[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현대인의 성경)](4:2) 우리 가운데에서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그 말씀은 믿는 우리 가운데서 역사할 것임.  우리는 이 말씀을 능력을 사모해야 합니다.  한 가지만 더 생각나는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그 말씀은 바로 고린도전서 1 24절 말씀임: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이 말씀을 보면 성경은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 우리가 이미 소유하고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오늘 본문 골로새서 1 11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에게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현대인의 성경)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힘을 통해 오는 모든 능력으로 여러분이 강해져서 모든 일을 기쁨으로 참고 견디며”]라고 편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이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을 위하여 그치지(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한 네 번째 기도 내용은 주님께서 그들을 하나님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강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강해지길 하나님께 쉬지 않고 기도한 것입니다.  현대인의 성경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힘을 통해 오는 모든 능력”이라고 번역을 했는데 여기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힘”이란 무엇일까요?  에베소서 119-20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또 믿는 우리 속에서 강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이 얼마나 큰가를 알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크신 능력으로 그리스도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 나라에서 자기 오른편에 앉게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오늘 본문 골로새서 1 11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힘”(하나님의 영광의 힘)이 좀 무엇인지 알 수가 있습니다.  그 힘이란 바로 하나님의 크신 능력으로서 그 크신 하나님의 능력은 그리스도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능력이요 또한 예수님을 하늘 나라에서 하나님 우편에 앉게 하시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게 된 우리는 이미 이 능력을 경험했습니다.  ,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했다는 말입니다.  허물과 죄로 (영적으로) 죽었던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크는 권능/능력으로 다시 살리셨습니다(2:5).  이것을 우리는 첫 번째 부활이라고 말함(20:5-6).  두 번째 부활은 우리가 죽은 후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실 때(예수님의 재림) 이미 죽은 우리들은 하나님의 크신 권능/능력으로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우리는 두 번째 부활이라고 말합니다(고전15:51-53).  또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힘”이란 마치 하나님께서 크신 능력으로 그리스도를 하늘 나라에서 자기 오른편에 앉게 하신 것처럼 우리도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하늘 나라에서 그분과 함께 앉게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2:6, 현대인의 성경).  그러면 오늘 본문 골로새서 1 11절 현대인의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힘을 통해 오는 모든 능력”에서 “모든 능력”은 무엇일까요?  개역개정은 사도 바울이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형제들을 위하여 쉬지 않고 기도한 네 번째 기도 내용은 “그(하나님)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길 기도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대답을 에베소서 3 16절에서 찾아보았습니다: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현대인의 성경) “은혜가 풍성하신 영광의 아버지께서 성령님을 통해 여러분의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하게 하시고”].  말씀은 사도 바울은 무릎을 꿇고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드린 내용인데 바울은 ‘성령님을 통해 에베소 교회 성도들의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하게 하여주시길 기도했습니다.  이 말씀을 오늘 본문 골로새서 1 11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과 연관해서 묵상하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힘을 통해 오는 모든 능력”이란 성령님의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바울은 그 성령님의 능력으로 하나님께서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형제들이 강해지길 기도한 것입니다.  또한 에베소서 6 10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현대인의 성경) “끝으로 여러분은 주님 안에서, 그리고 주님의 능력으로 강해지십시오”]라고 편지를 썼는데 이 말씀을 골로새서 1 11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과 연관해서 묵상하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힘을 통해 오는 모든 능력”이란 “주님의 능력”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주님의 능력으로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형제들이 강해지길 하나님께 쉬지 않고 기도한 것입니다.  결국 골로새서 1 11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과 에베소서 3 16절과 6 10절 말씀과 연관해서 생각할 때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힘을 통해 오는 모든 능력”이란 ‘성령님의 능력’이요 또한 ‘주님의 능력’입니다. 


          사도 바울이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형제들을 위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그치지(쉬지) 않고 기도한 네 번째 기도 내용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힘을 통해 오는 주님의 능력과 성령님의 능력으로 그들이 강해지길 간구한 것입니다.  그 목적은 무엇입니까?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1:11).  여기서 “모든 견딤”(all patience)이란 힘든 상황들(difficult circumstances) 가운데서 견디는 것으로서(맥아더) ‘핍박하는 자들의 시련과 거짓 교사들의 미혹에도 불구하고 인내하며 믿음으로 참는 것(견디는 것)을 말합니다(A Commentary Critical and Explanatory on the Old and New Testaments) 그리고 “오래 참음”(long-suffering)이란 어려운 또는 까다로운 사람들(difficult people)을 향하여 보복하지 않고 오래 참는 것을 말합니다(맥아더, Trench).  이러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힘을 통해 오는 주님의 능력과 성령님의 능력으로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형제들이 강해질 때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들을 위하여 그치지(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11). 

 

우리도 이 기도를 하나님께 그치지(쉬지) 않고 드려야 합니다.  제가 여러분을 위해서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힘을 통해 오는 주님의 능력과 성령님의 능력으로 여러분을 강하게 하시사 어떠한 힘든 상황이나 사람들을 만나도 믿음으로 오래 참고 견딜 수있게 하여 주시길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사랑하는 교회 식구들뿐만 아니라 가족 식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이러한 기도를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므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힘을 통해 오는 주님의 능력과 성령님의 능력으로 우리를 강하게 해주시므로 어떠한 힘든 사람들이나 힘든 환경에 우리가 처해있다 할지라도 믿음으로 오래 참고 견뎌내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께 감사하십니까?  비록 우리가 인간의 눈으로 처한 힘든 상황을 바라볼 때에는 하나님께 감사할 수 없겠지만, 주님을 믿는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때에는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우리는 감사의 조건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다할지라도 우리에게는 평생에 감사하며 범사에 감사하며 영원히 감사할 조건이 있습니다.  그 조건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조건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감사하기로 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감사하며 살기로 다시금 헌신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 13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을 통하여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as it actually is) 받았기 때문입니다(13).  그리고 그 하나님의 말씀이 믿는 그들 속에서 역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13).  과연 하나님의 말씀이 예수님을 믿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 속에서 어떻게 역사하고 있었기에 바울은 쉬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했을까요?  2가지였습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로 하여금 믿음에 견고히 서서 환난 중에도 요동치 않게 했습니다(3:2-3).  (2) 하나님의 말씀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게 했습니다(4:1).  , 그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3).

 

오늘 본문 골로새서 1 12절을 보면 사도 바울이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을 위하여 그치지(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한 다섯 번째 기도 내용은 그들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기를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현대인의 성경) “빛의 나라에서 성도들이 얻을 축복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우리에게 주신 아버지께 감사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이미 골로새서 1 1-8절 말씀 중심으로 사도 바울이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한 이유 4가지를 배웠습니다.  그 이유는 4개였습니다: (1) 그들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잘 믿고 있었기 때문이요(4절상, 현대인의 성경), (2) 그들이 모든 성도를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이요(4절하, 현대인의 성경), (3) 그들이 하늘에 쌓아 둔 소망(하늘나라의 소망) 때문이요(5), (4)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그들 중에서와 또한 온 세계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6).  이렇게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을 위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할 때마다 감사했던 바울은 오늘 본문 골로새서 1 12절에 와서는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기를 위하여 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다고 편지를 통해 말한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 교회에 적용한다면 저나 장로님이 우리 교회 성도님들을 기억하며 기도할 때마다 예수님을 잘 믿고, 모든 성도를 사랑하며, 하늘 나라에 소망을 가지고 열매를 맺어 자라나고 있는 성도님으로 인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 기도를 드리는데 또 하나 기도 제목은 여러분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기를 위하여 저와 장로님이 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우리가 승리장로교회 설립 42주년 기념 예배 때 받은 5가지 기도 제목 중에 첫 번째 기도 제목 내용이 아닙니까?  담임 목사와 장로님이 성도님들을 기억하며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 기도를 드릴 뿐만 아니라 온 성도님들도 하나님께 감사한다면 이것이야 말로 감사하는 교회가 아닌가요?  이것이 우리가 42주년 설립 예배 때 받은 교훈입니다.  주님의 교회요 주님이 세우시는 승리장로교회(16:18)는 ‘감사하는 교회’가 되길 우리 모두가 계속해서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여기서 던져야 할 질문은 ‘왜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기를 쉬지 않고 기도했는가?’입니다.  오늘 본문 골로새서 1 12절 말씀을 다시 봅니다: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현대인의 성경) “빛의 나라에서 성도들이 얻을 축복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우리에게 주신 아버지께 감사하기를 바랍니다”].  그 이유는 적어도 3개가 있습니다:

 

첫째 이유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어두움의 권세에서 구출하여 자기가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옮겨 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골로새서 1 13절 말씀입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현대인의 성경) “하나님은 우리를 어두움의 권세에서 구출하여 자기가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옮겨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성도들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기를 쉬지 않고 기도하면서 그 이유를 무엇이라고 말했냐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어두움의 권세에서 구출하여 자기가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옮겨 주셨”기 때문입니다(13, 현대인의 성경).  여기서 “자기가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란 하나님 아버지께서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를 말씀합니다.  이 나라를 12절 현대인의 성경은 “빛의 나라”라고 이미 말씀했습니다.  ,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가 빛의 나라인 이유는 요한복음 8 12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사람은 어두움에 다니지 않고 생명의 빛을 받을 것이다”(현대인의 성경)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5 8절에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여러분이 전에는 어두움 속에 살았으나 이제는 주님을 믿고 빛 가운데 살고 있으니 빛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현대인의 성경).  그리고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1 7절에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빛 가운데 계시는 것과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서 살면 우리는 서로 교제하게 되며 그분의 아들인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합니다”(현대인의 성경).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어두움의 권세에서 구출하여 자기가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옮겨 주셨기 때문입니다(1:13, ).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어두움의 권세”, 즉 사탄의 나라에 속해 있는 사탄의 자식도 아니요 사탄의 노예도 아닙니다.  그 사탄의 나라에는 오직 속임수(deception)와 사악함(wickedness)만 있습니다(맥아더).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우리는 그 사탄이 나라에서 건지시사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님의 나라로 옮겨 주셨습니다.  이 주님의 나라에는 오직 진리(truth)와 순결(purity)이 있습니다(맥아더).  이 주님의 나라를 사도 베드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라고 말씀했습니다(벧후1:11, ).  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로 하나님 아버지께로 우리를 옮기셨으므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 그치지(쉬지) 않고 감사해야 합니다.

 

둘째 이유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린 대가로 우리가 자유를 얻고 죄를 용서받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골로새서 1 14절 말씀입니다: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현대인의 성경) “우리는 이 아들이 피 흘린 댓가로 자유를 얻고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성도들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기를 쉬지 않고 기도하면서 그 이유를 무엇이라고 말했냐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기 때문입니다(14).  여기서 “속량”이란 단어의 원어 헬라어 의미는 ‘대속물을 지불하여 구출하다’(to deliver by payment of a ransom)로서 노예를 속박에서 해방시키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그것은 믿는 죄인을 죄의 노예에서 해방시키시는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맥아더).  에베소서 1 7절 말씀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 그치지(쉬지) 않고 감사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흘리신 피의 대가로 우리가 죄 용서함을 받고 죄의 종에서 자유를 누리게 되었기에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 쉬지 그치지(쉬지) 않고 감사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마지막 셋째 이유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골로새서 1 12절 말씀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현대인의 성경) “빛의 나라에서 성도들이 얻을 축복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우리에게 주신 아버지께 감사하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성도들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기를 쉬지 않고 기도하면서 그 이유를 무엇이라고 말했냐면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12).  여기서 ‘합당하게’라는 단어를 현대인이 성경은 ‘자격’이라고 번역을 했는데 영어로도 “qualified” 곧 ‘자격’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단어의 원어인 헬라어 의미는 “to make sufficient(충분하게 하다), to empower(권능을 부여하다), 혹은 “to authorize(권한을 부여하다)라는 의미입니다(맥아더).  ,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에게 충분하게 권한을 부여했다는 말입니다.  무슨 권한을 충분하게 부여하신 것입니까?  골로새서 1 12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충분한 권한을 부여하신 것입니다.  현대인의 성경으로 말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에게 “빛의 나라에서 성도들이 얻을 축복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을 충분하게 부여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성도의 기업” 또는 “성도들이 얻을 축복”이란 우리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자녀요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한 하나님의 상속자로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 받을 기업이요 얻을 축복입니다(8:17). 

 

예수님을 믿는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자녀요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한 하나님의 상속자입니다(17).  에베소서 1 18절 말씀입니다: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현대인의 성경) “여러분의 마음의 눈을 밝히셔서 부르심을 받은 여러분의 희망이 무엇이며 성도들이 하늘 나라에서 받게 될 영광스러운 축복이 얼마나 풍성한가를 알게 해 주시고”].  우리가 영원한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요 하나님의 나라인 하늘 나라에 들어가면 우리가 받게 될 성도의 기업은 영광스럽고 풍성한 축복입니다.  이 확실하고 분명한 소망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 가지게 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 그치지(쉬지) 않고 감사해야 합니다.

 

 

 

 

 

쉬지 않으시고 나를 위하여 친히 기도하고 계시는 예수님과 성령님의 의지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는( 8:26-27, 34),

 

 

 

 

제임스 김 나눔

(2022 12 12,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지혜와 충명으로 하나님을 뜻을 아는 지식으로 채워져서 주님을 믿는 성도다운 생활을 하여 모든 일에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열매를 맺길 기원하며 또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힘을 통해 오는 모든 능력으로 우리 모두가 강해져서 모든 일을 기쁨으로 참고 견디며 빛의 나라에서 우리가 얻을 축복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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