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짧은 말씀 묵상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서기관들)과 장로들이 예수님에게 “당신이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고 있소? 누가 당신에게 이런 권한을 주었소?”하고 따져 물었을 때(마가복음11:28,
현대인의 성경)
예수님께서는 대답 대신 ‘포도원 농부의 비유’(12:1-12)로 말씀하셨습니다. 그 비유의 말씀 내용은 한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들에게 세를 주고 멀리 여행을 떠난 후 소출 때가 되자 소출에서 얼마를 받으러 종을 보냈는데 그 농부들은 주인이 보낸 종을 잡아 심해 때리고 그냥 빈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그 다음에는 주님이 보낸 종의 머리를 때려 상처를 입히고 갖은 모욕을 하였습니다. 주인이 또 다른 종을 보냈으나 그들은 그 종을 죽여 버렸습니다. 주인이 더 많은 종들을 보냈지만 그 악한 농부들은 그들을 때리고 더러는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 이제 한 사람이 남았는데 그 사람은 바로 주인이 사랑하는 아들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주인은 자기 아들을 보내며 “그들이 내 아들은 존경하겠지”하였으나 그들은 “이 사람은 상속자이다. 자,
죽여 버리자.
그러면 그의 유산이 우리 것이 될 것이다.”하고 서로 말하며 그를 잡아죽인 다음 포도원 밖에 내어버렸습니다. 그러자 주인이 와서 그 악한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제때 열매를 주인에게 바칠 다른 농부들에게 맡깁니다(마가복음12:1-9;
마태복음21:33-41;
누가복음20:9-16,
현대인의 성경).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몇 가지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1)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서기관들)과 장로들이 예수님에게 “당신이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고 있소? 누가 당신에게 이런 권한을 주었소?”하고 따져 물었을 때(마가복음11:28,
현대인의 성경)
예수님께서는 왜 ‘포도원 농부의 비유’(12:1-12)로 말씀하신 것일까요? 그 이유를 우리는 마가복음
12장 12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이 좀 알려주고 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과 장로들은 이 비유가 자기들을 가리켜 한 말인 줄 알고 예수님을 잡으려고 했으나 군중들이 두려워 예수님을 잡지 못하고 그냥 가 버렸다.” 다시 말하면,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과 장로들은 예수님께서 포도원 농부의 비유를 말씀하신 주인이 보낸 종들을 때리고,
상처를 입히고 갖은 모욕을 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한 악한 농부들이 자기들을 가리켜 한 말씀인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악한 포도원 농부의 비유를 그들에게 말씀하신 이유(또는 목적)는 어쩌면 적의에 가득 찬 그들의 의도를 폭로하므로 그들에게 경고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호크마).
(a)
어쩌면 주님께서는 이 악한 포도원 농부의 비유의 말씀을 통해 우리 각자의 의도를 들춰내시고 계실 수도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주님의 교회를 섬기고 있는 의도가 주님과 교회를 향하여 순수하지 못하고 불순하다면
(딴 속셈이 있어 참되지 못하다면)
성령 하나님께서는 이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으로 우리의 불순한 의도를 들춰내시고 계실 수도 있습니다.
(b)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쓴 편지 내용 중 빌립보서
1장 17절을 보면 새 번역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기하고 다투면서 하는 사람들은 경쟁심으로 곧 불순한 동기에서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그들은 나의 감옥 생활에 괴로움을 더하게 하려는 생각을 품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우리 교회에 반영해 볼 때 충분히 우리는 “불순한 동기”로 그리스도(의 복음)를 전할 뿐만 주님의 교회를 섬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동기의 불순함은 우리 마음에 욕심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유혹을 받기 때문입니다”(야고보서1:14, 현대인의 성경). 그래서 욕심이 많은 사람은 교회 안에서도 다툼을 일으킵니다(잠언 28:25, 현대인의 성경). 그 이유는 욕심꾸러기 교인들은 만족할 줄 모르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 이익만 추구하기 때문입니다(참고: 이사야56:11, 현대인의 성경). 그들은 욕심을 채우려고 거짓말로 다른 교인들을 착취하기까지 합니다(참고: 베드로후서2:3, 현대인의 성경). 그러므로 우리는 온갖 욕심을 조심해야 합니다(누가복음12:15,
현대인의 성경).
(c)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살피시고,
모든 생각과 의도를 헤아리십니다(역대상28:9, 새 번역). 히브리서
4장 12절 새 번역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어서,
어떤 양날 칼보다도 더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뚫어 혼과 영을 갈라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놓기까지 하며,
마음에 품은 생각과 의도를 밝혀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에 품은 생각과 의도를 밝혀낼 때에 만일 우리의 생각과 의도가 하나님 보시기에 불순하다면 우리는 요한일서
1장 9절 말씀을 믿음으로 붙잡고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현대인의 성경)
“우리가 우리 죄를 고백하면 신실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은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모든 죄악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입니다”].
(2)
예수님의 악한 포도원 농부의 비유의 말씀 내용 중 한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들에게 세를 주고 오랫동안 먼 나라에 여행으로 가 있다가 소출 때가 되자 소출에서 얼마를 받으러 종을 보냈다(마가복음12:1-2;
마태복음21:33-34;
누가복음20:9-10,
현대인의 성경)는 말씀을 묵상할 때 당시에는 팔레스틴 본토에 토지를 소유하고서 외지에 거주하는 유대인들,
혹은 로마인으로서 팔레스틴에 땅을 사둔 자들도 있었고 따라서 이러한 부재 지주로 인한 갖가지 문제들이 발생하곤 하였다고 합니다(호크마).
(a)
우리 마음에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지 않으면 우리 삶 속에 갖가지 문제들이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정에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지 않으면 그 가정에는 별의별 문제들이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정에 가장인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갖가지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주님을 마음에 모시고 닮아가지 않고 있다면 그 교회 안에는 여러가지 문제들로 인하여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i)
건강한 교회는 주님 중심된 교회이지 담임 목사 중심된 교회가 아닙니다. 주님을 모시고 닮아가고 있는 건강한 교회는 담임 목사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주님께서 세우시는 교회입니다(참고: 마태복음16:18).
(b)
그 집주인이 모든 설비를 구비해 놓고 가꾸던 포도원을 그 농부들에게 맡기고 먼 나라로 오랫동안 떠난 것으로 보아 그 집주인은 그 농부들을 얼마나 신뢰하고 있었는가하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습니다(호크마).
(i)
교회의 주인이 되시는 주님께서 예수님의 제자들인 우리에게 주님의 교회를 맡기시고 하늘나라로 승천하셨다는 것은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신뢰를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ii)
그런데 우리는 주님의 신뢰를 저버리고 맡겨진 일에 충성되지 못할 때가 참 많은 것 같습니다. 분명히 성경은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린도전서4:2)하고 말씀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주님은 지금 우리에게 “충성스럽고 지혜로운 종이 되어 주인이 맡긴 집안 사람들에게 제때에 양식을 나눠 줄 사람이 누구냐?”(마태복음24:45,
현대인의 성경),
“많은 사람이 서로 충성을 다하고 있다고 주장하니 누가 충성된 자를 만날 수 있겠는가?”(잠언20:6, 현대인의 성경)하고 묻고 계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iii)
사도 바울의 이 고백이 생각납니다:
“나에게 힘을 주신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께 내가 감사하는 것은 나를 충성스러운 사람으로 여겨 나에게 직분을 맡겨 주셨기 때문입니다”(디모데전서1:12,
현대인의 성경).
(iv)
잠언
3장 5절 말씀대로 우리는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신뢰하고 우리 명철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영원한 반석이신 주님을 영원히 신뢰해야 합니다(이사야26:4). 우리가 잠잠하고 주님을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입니다(30:15,
새 번역).
(c)
그 집주인이 세를 주었다는 말은 이 세상의 소유권은 오직 하나님께 있고 다만 성도는 이를 관리하는 청지기 내지는 종의 위치에 있음을 뜻합니다(호크마).
(i)
우리는 모든 소유권은 오직 주님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ii)
복음성가 “나의 모습 나의 소유”가 생각납니다:
(1절) 나의 모습 나의 소유 주님 앞에 모두 드립니다 모든 아픔 모든 기쁨 내 모든 눈물 받아 주소서,
(2절) 어제일과 내일일도 꿈과 희망 모두 드립니다 모든 소망 모든 계획 내 손과 마음 받아 주소서,
(3절) 우리 가진 이 모든 것들을 다 주께서 우리에게 주시었네 몸 밖에 드릴 것이 없으니 내 삶을 받아 주소서,
(후렴) 나의 생명을 드리니 주 영광 위하여 사용하옵소서 내가 사는 날 동안에 주를 찬양하며 기쁨의 제물 되리 나를 받아 주소서.”
(iii)
우리는 주님의 종이요 청지기란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
시편
116편 15절 새 번역 말씀입니다:
“주님, 진실로, 나는 주님의 종입니다.
….”
·
주님의 종은 주님께서 시켜서 말씀하신 대로(참고: 열왕기상8:53; 열왕기하9:36, 새 번역)
순종하여 주님의 말씀대로 살다가 죽으면 됩니다(참고: 신명기34:5; 여호수아1:1, 새 번역).
·
우리는 주님의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돼야 합니다(참고: 누가복음12:42).
·
우리는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해야 합니다(베드로전서4:10).
·
주님의 청지기인 우리는 주님의 소유를 낭비하면 안 됩니다. 만일 주님께서 우리가 보던 일을 셈하셔서 우리가 주님의 소유를 낭비하고 있으면 우리는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할 것입니다(참고: 누가복음16:1-2).
(d)
그 집주인이 먼 나라에 갔다는 말은 그 집주인이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고 자율적으로 포도원을 경작하라고 그 농부들에게 맡겼다는 뜻인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능동적이고 자발적으로 맡은 바 사명을 추구해 나가야 함을 시사하는 말입니다(호크마).
(i)
우리는 사명 따라 살고 사명 따라 주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ii)
사명에 이끌림을 받아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는 자들은 능동적으로 봉사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억지로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봉사합니다.
(iii)
사도행전
20장 24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그러나 내가 달려갈 길을 다 가고 주 예수님에게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에 관한 기쁜 소식을 증거하는 일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3)
한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들에게 세를 주고 오랫동안 먼 나라에 여행으로 가 있다가 소출 때가 되자 소출에서 얼마를 받으러 종을 보냈는데 그 농부들은 주인이 보낸 종을 잡아 심해 때리고 그냥 빈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그 다음에는 주님이 보낸 종의 머리를 때려 상처를 입히고 갖은 모욕을 하였습니다. 주인이 또 다른 종을 보냈으나 그들은 그 종을 죽여 버렸습니다. 주인이 더 많은 종들을 보냈지만 그 악한 농부들은 그들을 때리고 더러는 죽이기까지 하였다(마가복음12:1-5;
마태복음21:33-36;
누가복음20:9-12,
현대인의 성경)는 말씀을 묵상할 때 하나님께서 그의 종 모든 선지자들을 끊임없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내어 그들의 죄악을 회개시킴으로서 그들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셨을 때 오히려 그들은 그 선지자들을 모욕하고(호크마) 심지어 죽이려고까지 한 것과 연관해서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a)
먼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의 종 선지자들을 끊임없이 또는 꾸준히 보내셨다는 말씀입니다:
(i)
예레미야
7장 25-26절: “너희 조상들이 애굽 땅에서 나온 날부터 오늘까지 내가 내 종 선지자들을 너희에게 보내되 끊임없이 보내었으나 너희가 나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목을 굳게 하여 너희 조상들보다 악을 더 행하였느니라.”
(ii)
예레미야
25장 4-5절: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종 선지자를 너희에게 끊임없이 보내셨으나 너희가 순종하지 아니하였으며 귀를 기울여 듣지도 아니하였도다 그가 이르시기를 너희는 각자의 악한 길과 악행을 버리고 돌아오라 ….”
(iii)
예레미야26장 5절: “내가 너희에게 나의 종 선지자들을 꾸준히 보내 그들의 말을 순종하라고 하였으나 너희는 순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iv)
예레미야29장 19절: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들이 내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니라 내가 내 종 선지자들을 너희들에게 꾸준히 보냈으나 너희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v)
예레미야35장 15절: “내가 내 종 모든 선지자를 너희에게 보내고 끊임없이 보내며 이르기를 너희는 이제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켜 행위를 고치고 다른 신을 따라 그를 섬기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는 내가 너희와 너희 선조에게 준 이 땅에 살리라 하여도 너희가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며 내게 순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vi)
예레미야
44장 4-5절: “내가 나의 모든 종 선지자들을 너희에게 보내되 끊임없이 보내어 이르기를 너희는 내가 미워하는 이 가증한 일을 행하지 말라 하였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다른 신들에게 여전히 분향하여 그들의 악에서 돌이키지 아니하였으므로.”
(b)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또는 꾸준히 그의 종 선지자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내신 목적은 그들로하여금 악(한 길)에서 돌이켜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케 하기위해서였습니다.
(i)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불순종하여 계속해서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가증한 우상 숭배의 죄를 끊임없이 범했습니다.
(c)
심지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주님을 거역하며 주님의 율법을 등지고 주님께 돌아오기를 권면하는 선지자들을 죽여 주님을 심히 모독하였고(느헤미야9:26) 박해하였습니다(마태복음5:12).
(i)
예레미야 선지자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말로써 그를 대적했습니다:
“그들이 말하기를 오라 우리가 꾀를 내어 예레미야를 치자 제사장에게서 율법이,
지혜로운 자에게서 책략이,
선지자에게서 말씀이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니 오라 우리가 혀로 그를 치고 그의 어떤 말에도 주의하지 말자 하나이다”(예레미야18:18).
·
뿐만 아니라 고관들(대신들)은 노여워하여 예레미야를 때려서 감옥인 서기관 요나단의 집에 가두기까지 했습니다(37:15).
·
시드기야 왕의 고관들(대신들)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이스라엘 백성의 평안을 구하지 아니하고 재난을 구한다고 예레미야 선지자를 끌어다가 감옥 뜰에 있는 왕의 아들 말기야의 구덩이에 던져 넣어 굶어 죽게까지 하려 했습니다(예레미야 38:4,
6, 9).
·
고관들(대신들)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죽이려고까지 했습니다:
“유다의 고관들이 이 말을 듣고 왕궁에서 여호와의 성전으로 올라가 여호와의 성전 새 대문의 입구에 앉으매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고관들과 모든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 사람은 죽는 것이 합당하니 너희 귀로 들음 같이 이 성에 관하여 예언하였음이라”(26:11).
(ii)
사도행전7장51-52절 말씀입니다: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
은혜와 권능이 충만한 스데반(사도행전6:8)이 지혜와 성령으로(10절) 이 말씀을 하였을 때 의회에 앉아 있던 모든 사람들은(15절, 현대인의 성경)
마음에 찔려 스데반을 향하여 이를 갈았고(7:54)
결국에 가서는 스데반을 성 밖으로 끌어낸 후 돌로 쳐서 그를 죽였습니다(58-60절, 현대인의 성경).
(d)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꾸준히 그리고 끊임없이 주님의 종들인 목사님들을 보내사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시고 계십니다. 그 목적은 우리로하여금 악(한 길)에서 돌이켜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케 하기위해서입니다.
(i)
그런데 지금 우리는 그 주님의 종들을 통해 바른 교훈을 듣지 않고 오히려 우리 욕심을 따라 우리들의 귀를 즐겁게하는 목사님들의 말을 들으려고 그들에게 모여들고 있습니다(참고: 디모데후서4:3, 현대인의 성경).
(ii)
그리고 우리는 우리에게 바른 교훈과 바른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는 참 목사님들을 마음 속으로라도 싫어하고 거부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우리는 그 목사님들을 미워하여 비판하고 비난하며 그들을 능욕하며 또한 그들에게 모욕감을 주기까지 하고 있습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참된 종들을 하나님의 말씀을 성실히 전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명령한 모든 말씀을 한 마디로 빼 놓지 않고 그래도 선포합니다(참고: 예레미야26:2, 현대인의 성경). 그들은 성도님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 말씀을 그대로 전합니다(참고: 에스겔2:5, 7;
3:11).
(4)
이제 한 사람이 남았는데 그 사람은 바로 주인이 사랑하는 아들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주인은 “어떻게 할까? 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야지.
아마 그들이 내 아들은 존경하겠지”하였으나 그들은 “이 사람은 상속자이다. 자,
죽여 버리자.
그러면 그의 유산이 우리 것이 될 것이다.”하고 서로 말하며 그를 잡아죽인 다음 포도원 밖에 내어버렸다(마가복음12:6-8;
마태복음21:37-39;
누가복음20:13-15,
현대인의 성경)하는 말씀을 묵상할 때 …
(a)
먼저 저는 그 주인이 “어떻게 할까?”(누가복음20:13,
현대인의 성경)[“어찌할까”(개역개정)]하고 말한 것을 묵상하게 됩니다. 호크마에 의하면 이 주인의 말은 그가 탄식하는 것이었고 그 탄식은 소작세를 받지 못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안타까움도 아니고,
주인이 보낸 종들의 수난 때문만도 아니라 오히려 어떻게 해야 강퍅해진 농부들의 마음이 변하여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게 될 수 있을까 하는 탄식입니다(호크마). 저는 이 주인의 탄식을 생각할 때 지금 주님께서 “어떻게 할까?”하시고 주님의 종인 저 같은 목사의 강퍅해진 마음이 변하여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게 될 수 있을까 탄식하시고 계시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제 마음이 강퍅해진 원인이 헤아릴 수 없는 주님의 사랑의 폭과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깨달아 알아가지 못하는 것이기에(에베소서3:18, 현대인의 성경)
저 또한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그 사랑은 아침 안개와 같고 일찍 사라지는 이슬과 같기에 주님께서는 ‘제임스야,
내가 너를 어떻게 할까?’하고 탄식하신다고 생각됩니다[참고: (호세아6:4, 현대인의 성경)
“그러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아, 내가 너를 어떻게 할까?
유다야,
내가 너를 어떻게 할까?
너희 사랑이 아침 안개와 같고 일찍 사라지는 이슬과 같구나”]. 비록 주님을 향한 저의 사랑이 아침 안개와 같고 일찍 사라지는 이슬과 같지만 저를 향하신 주님의 사랑은 한결 같은 사랑이요[(시편143:12, 현대인의 성경)
“주는 나를 한결같이 사랑하십니다. … 나는 주의 종입니다”],
진실한 사랑이요[(시편25:10, 새 번역)
“주님의 언약과 계명을 지키는 진실한 사랑으로 인도하신다”],
풍성한 사랑임[(시편5:7, 개역개정)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리이다”]을 믿습니다.
(b)
저는 그 주인이 “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야지.
아마 그들이 내 아들은 존경하겠지”하였다(누가복음20:13,
현대인의 성경)는 말씀을 묵상할 때 하늘에 계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하나님과 원수된(로마서5:10) 우리 죄인들(3:23;
5:12)의 “속량,
곧 죄 사함”(골로새서1:14)과 구원을 위하여 “내가 사랑하고 기뻐하는 내 아들”(마태복음3:17, 현대인의 성경)이신 독생성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을 때(요한복음3:17,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을 존경하기는커녕 저주의 나무(신명기21:23; 갈라디아서3:13)인 십자가에 못박아 죽일 줄 알고 계셨습니다[(사도행전2:23, 현대인의 성경)
“이 예수님은 하나님이 미리 아시고 정하신 계획에 따라 여러분에게 넘겨졌는데 여러분이 악한 사람들의 손을 빌어 그분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c)
그 악한 농부들은 그 주인의 아들을 보자 “’이 사람은 상속자이다. 자,
죽여 버리자.
그러면 그의 유산이 우리 것이 될 것이다.’하고 서로 말하며 그를 잡아죽인 다음 포도원 밖에 내어버렸다”(마가복음12:7-8;
마태복음21:38-39;
누가복음20:14-15,
현대인의 성경)는 말씀을 묵상할 때 그 농부들은 서로 모여 자신들의 이익을 어떻게하든 수호하기 위해 골똘히 대책을 숙의한 결과 아예 상속자인 그들의 주인의 아들을 죽여버림으로써 포도원의 소유권을 영구히 차지하려고그 아들을 잡아 죽였습니다(호크마). 이것은 그 농부들이 주인과의 맺은 계약 조건으로 그 농부들이 일정한 세액을 그들의 주인에게 남부하기를 약속한 것을 일방적으로 어기고(그 계약을 파기하고)
그들의 주인의 소유권을 부당하게 자신들의 소유로 만들려는 욕심을 낸 것입니다(호크마). 계약을 인간이 먼저 파기했으며,
청지기적 신분을 망각한 인간의 탐욕이 온갖 범죄의 원인임을 말해줍니다(호크마). 이사야56장 11절 말씀입니다: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요 그들은 몰지각한 목자들이라 다 제 길로 돌아가며 사람마다 자기 이익만 추구하며”[(현대인의 성경)
“그들은 욕심꾸러기 개처럼 만족할 줄 모르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몰지각한 목자들이다”]. “욕심이 생기면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죽음을 낳습니다”(야고보서 1:15,
현대인의 성경).
(5)
예수님께서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서기관들)과 장로들에게 “너희는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으니 이것은 주께서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신기한 일이다.'
라고 한 성경 말씀을 읽지 못하였느냐?”(마가복음12:10-11,
현대인의 성경;
참고: 마태복음21:42,
현대인의 성경)[…
“라고 기록된 성경 말씀이 무슨 뜻이냐?”(누가복음20:17,
현대인의 성경)]하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너희는 … 라고 한 성경 말씀을 읽지 못하였느냐?”라는 표현은 신약성경 중에서는 예수님의 입을 통해서만 나오는 표현입니다(마가복음12:10;
마태복음12:3,
19:4, 21:16). 예수님께서 이러한 말씀을 하시는 경우는 모두 성경이 자신을 증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는 경우입니다(호크마).
(a)
예수님의 입을 통해서만 나오는 “너희는 … 라고 한 성경 말씀을 읽지 못하였느냐?”라는 표현의 말씀을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서기관들)과 장로들은 들었을 때 그들은 어떠한 생각을 하였을까요? 물론 그들은 예수님이 “이 비유를 자기들을 가리켜 한 말인 줄 알”았습니다(마가복음12:12,
현대인의 성경). 그렇다면 그들은 예수님께서 “너희는 … 라고 한 성경 말씀을 읽지 못하였느냐?”하고 말씀하셨을 때 진정 그들은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구약 성경 시편
118편 22절을 읽지 못하였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엔 그들은 시편
118편 22절인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란 말씀을 분명히 읽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그리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어쩌면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는 그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버릴 것(“버린 돌”)을 알고 계셨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i)
그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는데 그 머릿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에베소서2:20, 현대인의 성경)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이 놓은 기초 위에 세워진 집이며 그리스도 예수님은 친히 그 머릿돌이 되셨습니다”]. 이 머릿돌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건축자들”인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과 장로들이 버리되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사도행전4:10-11). 그 때 예수님께서는 성부 하나님에게도 버림을 받으셨기에 십자가상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하고 크게 소리 지르셨습니다(마가복음15:34).
·
예수님의 포도원 농부 비유에서 악한 농부들이 주인이 사랑하는 아들을 잡아 죽인 것처럼(마가복음12:6-8)
산헤드린 공의회 사람들인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과 장로들은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는 독생성자(1:11)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것입니다.
·
이 머릿돌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는 예수님이 가장 귀중하지만 불신자들에게는 “쓸모없는 돌에 불과”하며 “걸려 넘어지게 하는 돌과 바위”일 뿐입니다. 불신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기 때문에 걸려 넘어지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2:6-8,
현대인의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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