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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must always pray and remain watchful so that we may be careful about ourselves and stand before the Lord.

We must always pray and remain watchful so that we may be careful about ourselves and stand before the Lord.       “Be careful yourselves, or your hearts will become weighed down with dissipation, drunkenness, and the worries of life, and that day will come upon you unexpectedly like a trap.   For it will come upon all those who live on the face of the whole earth.   Therefore, keep praying and remain watchful at all times, so that you may have the strength to escape all these things that are about to happen and to stand before the Son of Man.”   Jesus taught in the temple during the day, and at night He went out and rested on the mountain called the Mount of Olives.   And all the people came early in the morning to the temple to listen to Him (Luke 21:34–38).     (1)     When I read and meditate on today’s passage, Luke 21:34–38, in the Korean Bible, I receive the central lesson: “We must always pray and remain w...

우리는 스스로 조심하여 주님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조심하여 주님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어야 합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날은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낮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에는 나가 감람원이라 하는 산에서 쉬시니 모든 백성이 말씀을 들으려고 이른 아침에 성전에 나아가더라”(누가복음 21:34-38).

 

 

(1)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21 34-38 말씀을 한국어 성경으로 읽고 묵상할 우리는 스스로 조심하여 주님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어야 합니다.라는 핵심 교훈을 받습니다.  그런 저는 오늘 본문 말씀을 헬라어 성경으로 읽고 묵상할 좀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은 헬라어 문장이나 단어가 있어 문장이나 단어 중심으로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a)   번째 문장은, “Προσέχετε δ αυτος μήποτε βαρηθσιν μν α καρδίαι”(프로세케테 헤아우토이스 메포테 바레도신 휘몬 하이 카르디아이)(“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마음이 둔하여지고 …”)입니다.

 

(i)                  여기서 저는 먼저 마음이 둔하여지고”[βαρηθσιν ... α καρδίαι (바레도신 ... 하이 카르디아이)]라는 문장을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졌습니다. 

 

단어를 헬라어 원어로 깊이 들여다보면, 주님께서 하필 표현을 쓰셨는지 마음이 입체적으로 다가옵니다.  '바레도신(βαρηθσιν)'(“둔하여지고”) '하이 카르디아이 καρδίαι)(“마음이”)' 결합한 문장을 인공지능이 가지 차원으로 나누어 구체적인 의미와 묵상의 교훈을 전한 것입니다(인터넷):

 

1.      단어의 원어적 의미와 분석

 

① βαρηθσιν (바레도신) : 짓눌려 무거워지다

 

어원: '무게', '' 뜻하는 명사 바로스(βάρος)에서 유래한 동사 바레오(βαρέω) 수동태 형태입니다.

본질적 의미: 단순히 감각이 무뎌지는 것을 넘어, 외부의 무거운 짐이나 압력에 의해 완전히 짓눌려 꼼짝달싹 하게 상태를 뜻합니다.

 

수동태의 의미: 마음이 스스로 원해서 둔해졌다기보다, 무언가(방탕함, 술취함, 세상 염려) 계속 노출되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짓눌려 마비되어 버렸음을 시사합니다.

 

② α καρδίαι (하이 카르디아이) : 중심, 영적 안테나

 

어원: '마음' 뜻하는 카르디아(καρδία) 복수형입니다.

 

본질적 의미: 성경에서 마음은 감정뿐만 아니라 인간의 지성, 의지, 신앙, 그리고 영적 분별력이 집약된 인간의 가장 깊은 중심을 뜻합니다.

 

2.      "마음이 무거워진다(둔하여진다)" 묵상적 의미

 

주님이 말씀하신 "마음이 둔하여지고(무거워지고)" 영적으로 다음과 같은 상태를 경고합니다.

 

영적 감각의 마비 (영적 비만): 세상의 육체적 쾌락(방탕함, 술취함)이나 생존을 위한 과도한 스트레스(생활의 염려) 마음에 무거운 납덩이처럼 쌓이면, 마음이 둔해져 주님의 음성이나 성령의 세미한 인도하심을 전혀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날아오르지 못하는 상태: 주님이 오실 날은 영적으로 깨어 가볍게 깨어있어야 하는 때인데, 마음이 세상의 무게에 짓눌려 있으면 주님을 향해 영적으로 날아오르거나 깨어 반응할 없습니다.

 

3.      문장을 통해 주시는 구체적인 교훈

 

마음의 '무게 체크' 매일 해야 합니다: 오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주범이 무엇인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일시적인 세상의 즐거움이든, 혹은 미래에 대한 과도한 염려이든, 그것들이 영적 안테나(카르디아) 누르고 있다면 과감히 주님 앞에 내려놓는(다이어트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어벽' 세워야 합니다: '바레도신'(“둔하여지고”) 수동태인 것처럼, 세상의 영향력은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자연스럽게 우리 마음을 짓누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는 "만이 세상의 무게가 마음에 내려앉지 못하게 막아내는 유일한 방어벽이 됩니다(인터넷).

 

(ii)                또한 여기서 저는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Προσέχετε δ αυτος (프로세케테 헤아우토이스)] 말씀을 구체적으로 묵상하고 싶습니다.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기" 위해 우리가 가장 먼저 취해야 능동적인 태도가 바로 프로세케테 헤아우토이스(Προσέχετε δ αυτος)”(“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담겨 있습니다.  앞서 살펴본마음이 무거워지는 (바레도신)’ 나도 모르게 당하는 수동적인 결과라면, 말씀은 그것을 막기 위해 우리가 날마다 힘써야 적극적인 방어 명령입니다.  원어의 의미를 가지로 나누어 깊이 묵상해 보겠습니다(인터넷):

 

1.      단어의 원어적 의미와 분석

 

① Προσέχετε (프로세케테) : 시선을 고정하고 지키다

 

어원: ‘~ 향하여라는 뜻의 프로스(πρός)가지다, 붙잡다라는 뜻의 에코(χω) 합쳐진 동사입니다.  원래는배를 정박하기 위해 항구를 향해 키를 고정하다라는 해양 용어에서 유래했습니다.

 

본질적 의미: 단순히 ", 조심해야지" 하고 생각하는 수준이 아닙니다.  "생각과 시선, 마음의 닻을 특정한 곳에 단단히 고정하고 절대 한눈팔지 않도록 감시하다"라는 뜻입니다.

 

시제(현재 명령형): 헬라어에서 현재 명령형은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행동' 요구합니다.  어쩌다 조심하는 것이 아니라, " 쉬듯 순간 끊임없이 자신을 살피고 깨어 있으라" 명령입니다.

 

② δ () : 그러나 (반전의 접속사)

 

성경 번역본에 따라 생략되기도 하지만, 원문에는그러나(But)’ 뜻하는 접속사가 들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염려하며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지만, "그러나 너희는 다르게 살아야 한다"라는 구별됨을 강조하는 단어입니다.

 

αυτος (헤아우토이스) : 너희 자신에게

 

단어는 2인칭 재귀대명사로, 주의와 감시의 대상을 정확히 ' 자신'으로 한정합니다.  다른 사람의 신앙이나 세상의 타락을 비판하기 전에, 가장 먼저 영적 상태를 현미경 보듯 정밀하게 들여다보라는 뜻입니다.

 

2.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깊은 묵상

 

문장을 해양 용어의 유래와 연결하면 아주 생생한 영적 그림이 그려집니다.

 

영적인 (대들보) 잡는 행위: 거센 바람과 파도가 치는 바다에서 사공이 키를 놓치면 배는 순식간에 표류합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의 유혹(방탕함) 걱정(생활의 염려)이라는 파도가 덮쳐올 , 마음의 키를 주님께 고정하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영적으로 떠내려가게 됩니다.

 

영적 레이더를 켜는 행위: ‘조심하라 것은 내면에 죄의 습성이 틈타지 않는지, 마음에 세상의 무거운 납덩이들이 쌓이고 있지는 않은지 매일 스스로를 영적으로 정밀 검사(Self-Audit)하라는 의미입니다.

 

3.      문장을 통해 주시는 구체적인 교훈

 

비판의 눈을 거두고, 성찰의 눈을 떠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세상의 악함이나 타인에 대해 분별하는 많은 에너지를 씁니다.  하지만 주님은 '헤아우토이스(너희 자신)' 조심하라고 하십니다.  오늘 나의 기도가 타인을 향한 평가보다 영혼을 살피는 회개와 성찰에 먼저 머물러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거룩한 습관으로 ' 순간' 채워야 합니다: '프로세케테(현재형)'(“조심하라”) 요구하는 순간의 조심함은 우리의 의지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아침에 눈을 , 순간순간 선택을 내릴 , 밤에 잠자리에 때마다 주님께 시선을 고정하는기도의 루틴 만드는 것이 바로 명령을 삶으로 살아내는 구체적인 방법입니다(인터넷).

 

(b)   번째 문장은, “ν κραιπάλ κα μέθ κα μερίμναις βιωτικας”( 크라이팔레 카이 메데 카이 메림나이스 비오티카이스)(“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입니다.

 

문장은 앞서 묵상한 '마음의 무거워짐(바레도신)' 일으키는 가지 결정적인 주범들을 폭로합니다.  원어의 뜻을 파고들면, 단어가 단순히 도덕적인 타락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영혼을 마비시키는 매우 정교한 단계적 덫임을 보게 됩니다.   가지 원인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묵상을 나누겠습니다(인터넷):

 

1.      번째 원인: κραιπάλ (크라이팔레) — 육체적 방탕함과 영적 숙취

 

원어적 의미: 단어는 술을 과하게 마신 다음 겪는심한 숙취, 두통, 메스꺼움 뜻하는 의학 용어에서 유래했습니다.  성경 전반에서 단어는 감각적 쾌락과 과도한 탐닉으로 인해 영혼이 어지럽고 혼미해진 상태(방탕함) 비유합니다.

 

묵상적 의미: 숙취에 걸린 사람은 머리가 아프고 속이 울렁거려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처럼 세상의 쾌락, 오락, 육체적 만족에 깊이 중독되면 영적으로 심각한 숙취 상태에 빠집니다.  주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고, 영적인 일에 극심한 무기력증을 느끼게 만드는 원인입니다.

 

2.      번째 원인: μέθ (메데) — 이성을 잃은 술취함과 영적 중독

 

원어적 의미: 습관적이고 통제 불능인술취함또는만취 상태 뜻합니다.  자제력을 상실하고 알코올의 지배를 받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묵상적 의미: 술에 취하면 판단력이 흐려져 위험한 길로 가면서도 자신이 안전하다고 착각합니다.  세상 풍조에 취하고 물질주의에 취하면, " 정도는 괜찮겠지"라며 영적인 경계선을 쉽게 허물어뜨립니다.  내가 주님의 성령에 취해 있는지( 5:18), 아니면 세상의 가치관과 성공 신화에 취해 있는지 돌아보게 만듭니다.

 

3.      번째 원인: μερίμναις βιωτικας (메림나이스 비오티카이스) — 갈라지는 마음과 생활의 염려

 

원어적 의미: 표현은 단어의 조합이 주는 영적 울림이 매우 강력합니다.

 

메림나(μέριμνα): '나누다, 찢다'라는 뜻의 동사에서 유래하여 '마음이 수만 갈래로 찢어지고 갈라지는 상태(염려)' 뜻합니다.

 

비오티코스(βιωτικός): 땅에서 먹고, 입고, 생존하는 생물학적 (Bios) 뜻합니다.

 

묵상적 의미: 앞의 가지(방탕, 술취함) 주로 '쾌락을 쫓는 사람들' 문제라면, 번째는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무서운 적입니다.  당장 먹고사는 문제, 자녀 교육, 노후 대책, 직장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마음이 수만 갈래로 찢어지면, 주님을 향해 모아져야 영적 에너지가 바닥나 결국 마음이 무거워지고 맙니다.

 

4.      가지 원인이 주는 통합적 교훈과 연결점

 

주님께서 나열하신 단어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우리의 영혼을 갉아먹습니다.

 

쾌락과 염려는 동전의 양면입니다: 사람들은 생활의 염려(메림나이스 비오티카이스) 마음이 찢어지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것을 도피하거나 잊기 위해 세상의 쾌락과 방탕함(크라이팔레, 메데)으로 숨어버리곤 합니다.

 

'(ν)'이라는 감옥을 주의해야 합니다: 문장 앞에 쓰인 전치사 '(ν)' '~안에 갇혀 있는 상태' 뜻합니다.  우리가 조심하지 않으면(프로세케테), 우리는 방탕과 술취함과 염려라는 거대한 감옥 안에 갇혀 주님이 오시는 날을 보지 못하는 영적 장님이 있습니다(인터넷).

 

(i)                  여기서 저는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무서운 적인 생활의 염려”[μερίμναις βιωτικας (메림나이스 비오티카이스)]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유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당장 먹고사는 문제, 자녀 교육, 노후 대책, 직장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마음이 수만 갈래로 찢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활의 염려 어떻게 우리는 스스로 조심해야 하는 것일까요?

 

우리가 앞서 묵상한스스로 조심하라(프로세케테: 시선의 키를 주님께 고정하라)” 명령을 생활의 염려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성경적이고 실천적인 가지 방법을 인공지능이 제안한 것입니다(인터넷):

 

a.      생존의 주권 이양하는 훈련 (비오스에서 조에로)

 

생활의 염려에서생활(비오티카이스)’ 어원이 되는 비오스(βίος) 단순히 생물학적 생존, 먹고, 입고, 돈을 버는 육체적 삶을 뜻합니다.

 

스스로 조심하는 : 주님은 마태복음 6장에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삶의 주권이 능력이나 통장 잔고가 아닌 하나님께 있음을 매일 아침 고백하는 것입니다.

 

시선의 고정: 우리의 '비오스(생물학적 )'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인조에(ζωή)’ 연결할 , 생존의 공포로부터 오는 염려의 쇠사슬을 끊어낼 있습니다.

 

b.     마음의 파편을 모으는강력한 가지 집중 (메림나의 치유)

 

염려를 뜻하는 메림나(μέριμνα) 마음이 사방으로 찢어지는 것입니다.  , 자녀, 미래, 직장 수많은 생각의 파편들이 머릿속을 지배하게 두는 상태입니다.

 

스스로 조심하는 : 찢어진 마음을 치료하는 유일한 방법은가장 중요한 가지 마음의 초점을 모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많은 일로 염려하며 마음이 분주했던 마르다에게 " 가지만 하든지 혹은 어쩌면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 10:4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시선의 고정: 수만 갈래로 찢어지려는 마음이 때마다, "하나님, 오늘 내가 통제할 없는 미래의 염려를 내려놓고, 지금 순간 주님의 행하기 가지만 선택합니다"라고 기도의 정박을 묵직하게 내리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c.      염려를기도의 원자재 즉시 환전하기

 

사도 바울은 생활의 염려를 '프로세케테(조심)'하는 아주 구체적인 메커니즘을 빌립보서 4 6절에서 제시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메림나)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

 

스스로 조심하는 : 염려가 찾아오는 자체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염려가 마음을 짓누르기(바레도신) 전에기도의 제목으로 즉시 바꾸어 버리는 것이 스스로를 지키는 비결입니다.

 

시선의 고정: "돈이 없으면 어떡하지?"라는 염려가 , 그것을 붙잡고 묵상하지 마십시오.  즉시 방향을 틀어 "하나님, 공급자가 되어 주십시오"라는 기도로 바꾸는 것입니다.  염려를 기도로 바꾸는 순간, 마음을 찢던 에너지는 주님을 향한 영적 동력으로 변화됩니다.

 

묵상 요약:

생활의 염려를 스스로 조심한다는 것은, 염려의 파도가 밀려올 마음의 (프로세케테) 힘껏 쥐고 주님의 신실하심을 향해 방향을 돌리는 영적 전투입니다.   힘으로 자녀를, 노후를, 직장을 완벽하게 책임지려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 비로소 마음은 가벼워지고 주님 앞에 준비를 있습니다(인터넷).

 

(c)   번째로, 저는 뜻밖에φνίδιος (아이프니디오스)] [παγίς (파기스)] 같이 임할 ”[ μέρα ( 헤메라)](21:34)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할 ”(35) 대해서 구체적으로 묵상하고 싶습니다.

 

1.      단어의 원어적 의미와 깊은 묵상

 

① αφνίδιος (아이프니디오스) : 뜻밖에, 예측 불가능하게

 

어원: '보이지 않는 ', '갑작스러운 ' 뜻하는 단어에서 유래했습니다.

 

본질적 의미: 단순히 '시간적으로 빠르다' 뜻이 아니라, "인간의 지성이나 지식으로는 도저히 예측할 없는 방식으로 불시에 들이닥치다"라는 뜻입니다.

 

묵상적 의미: 주님이 오시는 (혹은 개인의 종말) 기상청의 예보처럼 예측할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일상의 평범한 순간, 밥을 먹고, 직장에 가고, 염려에 파묻혀 있는 바로 순간에 예고 없이 임합니다.  그래서 단어는 우리에게오늘이 삶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살아가는 상시(常時) 깨어있음을 요구합니다.

 

② παγίς (파기스) : , 올가미 (35 원문)

 

어원: '단단히 고정하다', '묶다'라는 뜻의 동사에서 유래하여, 동물을 잡기 위해 땅에 단단히 고정해 체인이나 올가미 뜻합니다.

 

본질적 의미: 덫의 특징은 가지입니다.  첫째, 덮치기 전까지는 철저히감추어져있습니다.  둘째, 걸려들면 짐승의 힘으로는절대 빠져나갈 없습니다.’

 

묵상적 의미: 세상 사람들은 땅에 감추어진 덫을 보지 못하고 그저 눈앞의 먹이(방탕함, 생활의 염려) 향해 달려갑니다.  그러다 "그날" 임하면 마치 올가미에 걸린 짐승처럼 비명을 지르며 후회하지만, 그때는 이미 탈출할 기회가 없습니다.  덫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세상 가치관) 보고 걷지 않고, 시선을 높이 들어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μέρα κείνη ( 헤메라 에케이네) : (34) / " " (35)

 

어원: 정관사()’ 날을 뜻하는헤메라(μέρα)’, 그리고 지시대명사에케이네(κείνη, )’ 결합하여 "성경이 끊임없이 예언해 바로 특정한 " 가리킵니다.

 

본질적 의미: 역사 속의 수많은 하나가 아니라, 역사의 커튼이 닫히고 창조주 앞에 모든 인류가 단독자로 서게 되는 최종 심판과 구원의 (The Day)입니다.

 

35 " " 보편성: 주님은 날이 "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한다고 하셨습니다.  지위고하, 빈부귀천, 인종과 종교를 막론하고 누구도 날의 레이더망을 피해 숨을 없습니다.  예외 없는 절대적 보편성을 가집니다.

 

2.      "그날" " " 마주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세

 

단어들을 종합해 보면, 주님은 가지 상반된 삶의 태도를 대조하고 계십니다.

 

세상에 말뚝을 박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입니다: 35절의 '거하는'이라는 표현은 원어로 '카데메누스(καθημένους)'인데, 이는 단순히 살고 있는 아니라 땅에 주저앉아 안주하고 있는 상태를 뜻합니다.   땅이 영원할 것처럼 돈을 쌓고, 자녀 교육에 목을 매고, 노후 대책만 세우며 주저앉아 있는 이들에게 "그날" 모든 것을 빼앗아 가는 공포의 '' 됩니다.

 

나그네로 깨어 있는 사람들에게는 '구원의 '입니다: 그러나 매일 아침 "프로세케테(시선을 주님께 고정)"하며 마음의 납덩이를 덜어내고 가볍게 깨어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날" 덫이 아니라, 눈물 많고 염려 많던 땅의 삶을 끝내고 마침내 사랑하는 주님의 품에 안기는 최고의 축제의 날이 됩니다.

 

묵상 결론:

주님은 우리를 공포에 질리게 하려고 말씀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세상의 썩어질 염려와 쾌락이라는 덫에 걸려 영원한 것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사랑 가득한 경고의 사이렌을 울려주시는 것입니다(인터넷).

 

(i)                  여기서 저는 뜻밖에”[αφνίδιος (아이프니디오스)] 임하는 사랑하는 식구나 친구의 죽음을 생각할 오늘이 삶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살아가는 지혜를 더욱더 사모하게 됩니다.  이유는 우리는 항상 식구나 친구를 사랑할 있는 기회가 있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적랄하게 말한다면, 우리는 죽음의 관점을 가지고 식구나 친구 등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귀는 우리로 하여금 계속해서 ”[παγίς (파기스)] 놓아 우리로하여금 사랑하는 기회를 포착 못하게 하고 자꾸만 사랑하는 기회를 잃어버리게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귀의 구체적인 놓기와 덫을 우리는 어떻게 피하여 주님의 계명대로 이웃을 우리 자신같이 사랑해야 하는 것일까요?

 

a.      마귀가 관계 속에 놓는 구체적인 "(παγίς)" 가지

 

① "다음(Tomorrow)"이라는 영원한 착각의

 

마귀의 전략: 마귀는 우리에게 사랑하지 말라고 하지 않습니다.  다만 "내일 , 다음에 여유 생기면 "라고 속삭입니다.  우리 가족과 친구가 내일도 당연히 자리에 있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안정감을 심어주어 영원히 안주하게 만듭니다.

 

영적 결과: 덫에 걸리면 미안하다는 , 고맙다는 , 사랑한다는 표현을 자꾸 뒤로 미루다가, 결국 "뜻밖에" 이별의 날이 왔을 씻을 없는 후회와 한을 남기게 됩니다.

 

② "당연함(Entitlement)" 익숙함의

 

마귀의 전략: 가장 가까운 식구의 수고와 희생을 '당연한 '으로 여기게 만듭니다.  가까울수록 예의를 갖추기보다 상처 주는 말을 쉽게 뱉게 하고, 타인에게는 관대하면서도 가족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게 만듭니다.

 

영적 결과: 35절의 '땅에 주저앉아 있는 상태(카데메누스)'처럼, 관계의 소중함에 주저앉아 영적 불감증에 빠집니다.   곁의 사람이 하나님이 보내신 가장 귀한 선물임을 망각하게 만듭니다.

 

③ "분주함(Busy) 피로"라는 합법적인

 

마귀의 전략: 앞서 묵상한 '생활의 염려(메림나이스 비오티카이스)'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먹고사는 문제, 직장 스트레스, 피로를 핑계 삼아 " 지금 너무 피곤해, 나중에 얘기해"라며 가족과의 대화와 시선을 차단하게 만듭니다.

 

영적 결과: 몸은 집에 있으나 마음은 철저히 고립됩니다.  성실하게 일한다는 명분 뒤에 숨어, 정작 가장 소중한 사람들의 영혼을 돌보고 사랑할 에너지를 고갈시켜 버립니다.

 

b.     마귀의 덫을 피하고 "오늘" 사랑하기 위한 영적 실천 지침

 

마귀의 덫을 깨부수고 주님의 계명대로 이웃과 가족을 몸과 같이 사랑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시선의 고정(프로세케테)' 필요합니다.

 

지침 ① "마지막 만남" 렌즈 장착하기 (시선 고정)

 

실천: 아침에 집을 나설 가족을 바라보며, 혹은 친구와 전화를 끊을 마음속으로 번만 이렇게 생각하십시오.  '이것이 사람을 보는 마지막 순간일 수도 있다.'

 

효과: 죽음의 관점으로 상대를 바라보면, 방금 전까지 얄밉거나 서운했던 마음이 녹듯 사라집니다.  도저히 용서할 없던 일들이 사소해지고, 지금 순간 내뱉는 한마디를 '가장 따뜻한 사랑의 ' 선택하게 됩니다.

 

지침 ② "사랑의 즉시성" 원칙 세우기 (다음이라는 깨기)

 

실천: 고마운 마음, 미안한 마음, 격려하고 싶은 생각이 스칠 '5 이내' 행동하십시오.

 

"나중에 집에 가서 말해야지" 하지 말고, 지금 곧바로 "고마워", "사랑해"라는 문자 통을 보내십시오.

 

식구의 얼굴을 마주했을 눈을 맞추고 "오늘 하루도 고생 많았어"라고 즉시 표현하십시오.

 

효과: 마귀가 "나중에 "라는 덫을 놓기 전에 사랑의 폭탄을 먼저 투하하는 적극적인 영적 방어입니다.

 

지침관계를 위한 "의도적인 공간과 시간" 구별하기 (분주함의 깨기)

 

실천: 일주일에 1시간이라도 스마트폰을 완전히 끄고, 오직 식구나 친구에게만 온전히 몰입하는 '성역의 시간' 만드십시오.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아픔과 염려가 무엇인지 경청하는 시간입니다.

 

효과: 마음이 수만 갈래로 찢어지는 세상 속에서(메림나), 주님이 나를 용납하신 것처럼 소중한 이들을 온전히 용납하고 품어주는 '거룩한 사랑의 정박' 일어납니다.

 

묵상 결론:

마귀의 (파기스) 날카롭고 은밀하지만, "오늘이 마지막일 있다" 죽음의 지혜와 "지금 사랑하겠다" 결단 앞에서는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고 부서집니다.  주님은 우리가 인자 앞에 "네가 얼마나 대단한 업적을 남겼느냐" 아니라, "내가 네게 맡긴 소중한 사람들을 얼마나 사랑하다 왔느냐" 물으실 것입니다(인터넷).

 

(d)   번째로, 예수님께서 너희는 장차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γρυπνετε δ ν παντ καιρ δεόμενοι να κατισχύσητε κφυγεν τατα πάντα τ μέλλοντα γίνεσθαι, κα σταθναι μπροσθεν το υο το νθρώπου (아그륍네이테 판티 카이로 데오메노이 히나 카티스퀴세테 에크퓌게인 타우타 판타 멜론타 기네스다이, 카이 스타데나이 엠프로스덴 휘우 안드로푸)](21:36) 하신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 싶습니다.

 

1.      단어의 원어적 의미와 깊은 묵상

 

γρυπνετε (아그륍네이테) : 잠을 쫓아내며 파수하다

 

어원: '부정(Not)' 뜻하는 접두어와 '' 뜻하는 휘프노스’(πνος) 합쳐진 단어입니다.  , "쏟아지는 잠을 강제로 쫓아내며 밤을 지새우다"라는 뜻입니다.

 

묵상적 의미: 앞서 묵상한 방탕함과 생활의 염려는 우리 영혼에 '영적 수면제' 투여합니다.  나도 모르게 영적으로 영원한 잠에 빠져들게 만듭니다.  '아그륍네이테' 군대의 보초병이 야간 근무를 서듯, 영혼이 세상 편안함에 취해 잠들지 않도록 눈을 부릅뜨고 영적 긴장감을 유지하라는 강력한 경고입니다.

ν παντ καιρ δεόμενοι ( 판티 카이로 데오메노이) : 모든 기회의 때마다 간구하다

 

어원: 시간을 뜻하는 단어 흘러가는 물리적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시는 '결정적인 기회의 , 영적 타이밍' 뜻하는 카이로스(καιρός) 사용되었습니다.

 

묵상적 의미: 단순히 시계 바늘이 때마다 중언부언 기도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삶에 위기가 찾아올 , 염려가 덮쳐올 , 마귀가 관계 속에 덫을 놓는 바로 ' 순간(카이로스)'마다 가장 먼저 무릎을 꿇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간절한 태도를 뜻합니다.  기도는 마귀의 덫을 무력화하는 유일한 하늘의 통신망입니다.

 

③ κατισχύσητε (카티스퀴세테) : 능히 이길 힘을 얻다

 

어원: '~ 압도하다'라는 뜻의 전치사와 ', 능력' 뜻하는 이스퀴스(σχύς)’ 결합했습니다.  "상대를 압도할 만한 강력한 힘을 공급받아 넉넉히 이기다"라는 뜻입니다.

 

묵상적 의미: 의지나 도덕성으로는 장차 환난과 마귀의 덫을 절대 피할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깨어 기도할 , 위로부터 세상의 중력과 유혹을 가볍게 압도하고도 남는 '하늘의 초자연적인 (카티스퀴세테)' 부어집니다.

 

④ σταθναι μπροσθεν (스타데나이 엠프로스덴) : 인자 앞에 당당히 서다

 

어원: '스타데나이' '똑바로 서다' 뜻하는 동사의 수동태로, "재판장 앞에서 정죄 받지 않고 당당하고 굳건하게 일으켜 세워짐을 당하다"라는 사법적 의미를 가집니다.

 

묵상적 의미: 우리는 심판의 날에 무서워서 땅에 기어 다니거나 숨는 자들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그분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던 믿음 덕분에, 주님 앞에서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칭찬을 받으며 기쁨으로 직립(直立)하여 주님을 대면하게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최종 영광입니다.

 

2.      문장을 통해 주시는 최종적인 교훈

 

기도는 '영적 나침반' 정렬하는 시간입니다: " 판티 카이로(모든 기회의 때에)" 기도한다는 것은 삶의 모든 주권을 주님께 묻는 것입니다.  아침에 눈을 떠서 사람을 만나고, 염려가 몰려올 때마다 기도로 나침반을 예수님께 정렬하면, 마귀가 놓아둔 덫은 레이더에 걸리듯 선명하게 폭로되어 넉넉히 피해 있게 됩니다.

 

'서기 위해' 오늘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땅에서 부자가 되거나 성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의 마지막 , 혹은 개인의 종말의 날에 '인자(예수님) 앞에 똑바로 서는 (스타데나이)' 인생의 유일한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목표가 분명한 사람은 오늘 나에게 주어진 식구와 친구를 '죽음의 관점'에서 아낌없이 사랑할 있는 지혜와 용기를 얻습니다.

 

누가복음 21 34-36 원어 묵상 총결론:

 

1.      [위험] 방탕함과 술취함, 그리고 성실한 자들을 찢어놓는 생활의 염려(메림나이스 비오티카이스)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바레도신) 만듭니다.

 

2.      [마귀의 전략] 마귀는 틈을 뜻밖에(아이프니디오스) 임할 그날을 보지 못하도록 관계와 속에 (파기스) 놓아 사랑의 기회를 박탈합니다.

 

3.      [우리의 방어] 그러므로 우리는 순간 스스로 조심하며(프로세케테) 영혼의 키를 주님께 고정해야 합니다.

 

4.      [최종 승리] 날마다 잠을 쫓아내며 깨어 있고(아그륍네이테) 항상 기도할 , 우리는 위로부터 임하는 압도적인 (카티스퀴세테) 얻어 모든 덫을 피하고 마침내 주님 앞에 영광스럽게 서게(스타데나이) 것입니다(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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