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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votional Reflection Based on the Incident of Peter Cutting Off Malchus's Ear:

Devotional Reflection Based on the Incident of Peter Cutting Off Malchus's Ear: “Then one of those standing near drew his sword and struck the servant of the high priest, cutting off his ear.” ( Mark 14:47, Today's Korean Version ) 1. Identifying the People Involved: The person who stood beside Jesus and drew the sword was Simon Peter . The servant of the high priest was named Malchus . “Then Simon Peter, who had a sword, drew it and struck the high priest’s servant, cutting off his right ear. The servant’s name was Malchus.” ( John 18:10 ) 2. Jesus' Response to Peter's Action: (a) Jesus said: “Permit even this.” ( Luke 22:51, KJV: “Suffer ye thus far”; RSV: “No more of this” ) The Greek words clarify this: “ἕως τούτου” (“heōs toutou”) = “up to this point” or “even this” “ἐᾶτε” (“eate”) = “allow it,” “let it be,” “leave it alone” Therefore, Jesus is essentially saying: “Let them do what they are doing. Do not resist any further.” “If ...

"아내의 자격"이란 드라마




요즘 제가 보고 있는 드라마입니다.  제목이 "아내의 자격"인데 저는 자꾸만 이 제목을 "아내의 저격"으로 읽혀지네요 ㅎㅎ  이 드라마에 대해서 생각을 나누기 보다 제 개인적으로 왜 남편인 저는 아내의 사랑의 '저격"(?)이 필요한가에 대해서 좀 생각을 나누려고 합니다.  

제가 제 신학교 동문 목사님들 카톡 방(18명)에 제 아내를 가리켜 "저격수"라고 말하곤 했는데 그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이유는, 제 아내의 "저격"은 정확도가 제가 보기엔 매우 높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몇년 전엔가 아내에게 제 설교에 대해서 평가(?)을 물어보았는데 아직도 기억나는 아내의 답변은 제 주일 설교를 수요기도회 때 설교하고, 수요기도회 설교를 주일에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하.  저는 그 말에 좀 많이 놀랬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보기엔 아내가 정확하게 진단을 내렸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리 생각하는 이유는 그 당시 제가 수요기도회 때마다 잠언 책을 설교하고 있었는데 아내가 보기엔 그 설교를 주일 예배 때 하는데 더 좋겠다는 말에 동의를 하지 않을 수 없었고, 주일 설교를 수요기도회 때하면 좋겠다는 아내의 말도 동의를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는 아내의 말대로 수요기도회까지 나오시는 분들은 어느 정도 헌신된 분들이기에 그 분들에게 주일 설교가 그분들이 소화하기가 좋다고 저 또한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것을 반대로 하고 있었던 거지요.  주일 설교를 좀 대중적으로 쉽게(?) 설교를 할 필요가 있고, 수요기도회 때는 헌신된 분들의 수준에 맞게 설교해야 한다는 식의 아내의 말에 동의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그 때 아내의 답변을 듣고 동의를 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 정도로 제가 보기엔 아내의 "저격" 정확도가 남편인 제가 생각해도 좀 놀랄 때가 한 두번이 아니랍니다 ㅎㅎ (그 후로는 제 아내에게 내 설교 오늘 어떠했는지 물어보지 않은 것으로 기억함 ㅎㅎ  아마 그 이유는 또 아내의 정확한 진단이 두렵기 보다(?) 제가 알면서 못고쳐지는 제 자신의 모습을 직신하기보다 피하고 싶어서였던 것 같음.)

둘째 이유는, 정확도가 높은 아내의 "저격"은 제 양심을 찌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양심이 찔림은 그 당시는 쉽지 않지만 저에게 유익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결혼 초였던 것으로 기억을 하는데 그 당시 아내가 저를 알아가면서 제 신앙생활의 바리새인과 같은 면을 "저격"한 적들이 있었습니다.  물론 "저격"을 받는 그 순간은 인정하고 싶지 않고 부인하고 싶고 받아들면서 나 자신을 자아성찰하면서 내 안에 바리새인과 같은 외식하는 면을 직시하고 회개하고 돌이켜 진정으로 예수님을 닮아가는 진실된 신앙인과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데 지금 뒤돌아 보면 그 당시 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저 아내의 "저격"을 통해 들춰진 제 외식을 생각하는 계기는 되었지만 심각하게 회개하지 못했습니다.

셋째 이유는, 주님께서는 사랑하는 아내의 정확도가 높은 사랑의 "저격"을 통해 저를 빚으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마치 토기장이가 되시는 주님께서 너무나 흠이 많고 부족하고 깍여야 할 모소리가 많은 저에게 사랑하는 아내를 짝지어 주신 목적 중에 하나는 아내의 "저격"을 통해 저를 깍으시고 빚으시사 예수님을 닮아가게 하시는 큰 은혜와 역사와 사랑을 베풀어주시고 계시다고 믿습니다.  
그러기에 저는 이 "아내의 자격"이란 드라마를 보면서 자꾸만 드라마 제목이 "아내의 저격"으로 읽혀지는가 봅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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