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짧은 말씀 묵상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이는 자기 및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으로 말미암아 놀라고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누가복음 5:4-11)하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1)
예수님께서는 게네사렛 호숫가[“디베랴 바다”(요21:1)]에서 시몬(베드로)의 배에 오르셔서(눅5:3, 현대인의 성경)
몰려온 무리[“많은 사람들”(현대인의 성경)]에게 “하나님의 말씀”(1절)을 가르치신 후(3절)[“말씀을 마치신 후”(4절, 현대인의 성경)]
시몬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4절). 그러자 시몬은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5절).
(a)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먼저 “게네사렛 호숫가”(1절)의 또 다른 이름인 “디베랴 바다”(요21:1)가 생각났고 요한복음
21장 1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그 디베랴 바다를 묵상할 때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로 가노라”(3절)고 말했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요한복음
21장의 배경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인터넷에 찾아보았습니다. 요한복음
21장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두 번이나 나타나신 뒤의 시점이고,
이 때 제자들의 상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혼란스러워하며 각자의 원래 삶인 고기 잡는 일로 돌아간 상태입니다. 특히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것에 대한 깊은 좌절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인터넷).
(i)
흥미로운 유사점은,
오늘 본문 누가복음
5장 5절 상반절에서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에게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물고기를) 잡은 것이 없지마는 …”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요한복음 21장 3절에서도 시몬 베드로는 물고기를 잡으러 갔지만 “그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다고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
이 유사한 말씀들이 저에게 주는 교훈은 제가 제 힘(능력)으로 아무리 수고하여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 알아 주님 앞에 겸손히 고백하고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안그래도 요즘 “갇힘은 기회입니다”라는 설교 제목 아래 출애굽기
14장 3-4절 말씀 중심으로 갇힘이 무슨 기회인가 할 때 첫 번째 교훈이 갇힘은 나의 무능력함과 무기력함을 깨닫는 좋은 기회라고 설교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오늘 이 아침에도 누가복음
5장 5절과 요한복음
21장 3절 말씀을 통해 동일한 교훈 메시지를 주시고 계시네요. 감사 감사,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n
특히 저는 한 이틀 동안 일시적으로 또 다가온 공황 장애 증상으로 인해 힘들어하면서도 주님께서 그것까지도 감사하라는 설교한 메시지를 다시금 생각나게 하셔서 주시는 은혜와 믿음으로 감사히 받아들이게 하시면서 “약할 때 강함 되시네”라는 복음성가 제목을 생각나게 하셨거든요. 다시금 고린도후서
12장 9-10절 말씀을 묵상하게 됩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
그래서 주님께서 저로하여금 지난 주 금요일부터 시작한 일시적인 공항 장애 증상으로 힘들어할 때 금년 신년 예배 때 설교한 사도행전
1장 8절 말씀 중심으로 사모하자고 권면한 “성령의 권능” 중 특히 “말씀의 능력”(나머지 두 가지 능력은 “기도의 능력”과 “사랑의 능력”)을 사모케 하고 계십니다.
n 그래서 저는 오늘 새벽에도 로마서 8장 26-27절과 34절인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하는 말씀을 이렇게 제 자신에게도 적용하면 기도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제임스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제임스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제임스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제임스를 위하여 간구하십니다 …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제임스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분이십니다.’
(b)
저는 이 누가복음
5장 4-6절 말씀을 계속해서 묵상할 때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5절)인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4절)에 “의지하여”(5절) 그가 그물을 내리겠다고 말한 내용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i)
만일 시몬 베드로가 자신의 능력이나 어부로서의 실력이나 경험 등을 의지했다면 그는 분명히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즉,
만일 시몬 베드로가 자신의 명철(지식)을 의지하였다면 예수님을 신뢰하지 못했기에 예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을 것입니다.
·
제가 그리 생각하는 이유는 잠언
3장 5-6절 말씀 때문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지식을 의지하지 말아라. 너는 모든 일에 여호와를 인정하라. 그러면 그가 너에게 바른 길을 보이실 것이다”(현대인의 성경)].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제일 큰 장애물이되는 것이 바로 내 명철을 의지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일 제가 내 명철을 의지하여 선택한 길이 제가 보기엔 좋은 것 같고 잘한 것 같을지라도 결국에 가서 저는 제 불신의 선택의 결과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깨닫게 될 때가 올 것임을 배우고 있습니다.
-
우리가 우리의 명철을 의지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명철로는하나님의 명령이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n
아니,
어떻게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한데(왕상 17:1)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그릿 시냇가에 숨고 그 시냇물을 마시라”고 명하십니까?
(3-4절) 비가 수년 동안 내리지 않으면 당연히 시냇가는 마를 것이고(7절) 시냇가의 물이 마르면 엘리야는 물을 마시지 못하는 것 아닙니까?
n 아니, 어떻게 하나님께서는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유하라”고 명하시면서(9절) 거기에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 가지고 자기 아들과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 죽으리라”(12절)하는 한 과부를 준비해 놓으셨습니까? 좀 돈 많은 크리스천 과부를 준비해 놓으시면 풍족히 먹고 사역도 좀 넉넉히 후원받고 좋을텐데 말입니다.
n 아니, 어떻게 엘리야 목사님은 나와 내 아들이 먹을 한끼 음식을 먼저 자기에게로 가져오라고 명합니까?(11, 13절) 그 후에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으라니 아니 이게 말이 됩니까? (13절) 아무리 목사님이라 할찌라도 내 아들 만큼 사랑하겠습니까? 한끼 음식, 엄마인 내가 못먹어도 내 아들은 먹이고 싶은게 인간의 본능인데 어떻게 그 음식을 목사님에게 먼저 갔다 바칠 수 있습니까?
n
우리의 명철로는 이해가 안되는 하나님의 사람의 명령이요 또한 하나님의 명령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사르밧 과부는 하나님의 사람(18,
24절)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15절).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5,
10절). 어떻게 그들은 순종할 수 있었을까요? 그들은 자기들의 명철을 의지하기보다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의뢰하였기 때문입니다(잠3:5).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입니다(왕상 17:4,
9, 14). 심지어 엘리야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그릿 시냇가의 물이 마르지 아니할 것이다 라는 약속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의 약속인 “내가 까마귀들을 명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4절)는 말씀만 붙잡고 믿음으로 순종했습니다(5절). 놀랍지 않습니까? 과연 엘리야와 사릇밧 과부의 순종의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성취되는 이적들을 경험하였습니다(6,
16절).
(ii)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눅5:5) 예수님께 하신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4절)하는 말씀에 순종하였을 때[“그렇게 하니”(6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그물을 쳤더니 고기가 너무 많이 잡혀 그물이 찢어지게 되었다”(현대인의 성경)](6절)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
요한복음
21장도 보면 “그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던(3절) 시몬 베드로와 도마와 나다니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다 둘(2절)에게 예수님께서는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들이 순종하여 “말씀대로 했더니 고기가 너무 많이 잡혀 그물을 끓어올릴 수가 없었다”(6절, 현대인의 성경)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
흥미롭지 않습니까,
누가복음 5장 5-6절과 요한복음
21장 3, 6절 말씀이 이렇게 유사한 것이요? 이 유사한 말씀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n
저에게 주는 교훈은 비록 제가 주님이 주신 사명의 말씀인 요한복음
6장 1-15절 말씀을 의지하여 생명의 떡이 되시는 예수님(48절)의 말씀을 이렇게 지금처럼 아침마다 묵상한 후 “나의 입술의 모든 말과 나의 마음이 묵상이 주께 열납되기를 원하네”(복음성가 “나의 입술의 모든 말과”
1절)하고 묵상한 그 말씀 묵상의 글을 하나님께 기원하면서 받친 후 그 말씀의 예수님의 이름으로 여러 카카오톡 단체 방이나,
승리장로교회 웹싸이트(https://vpcla.org/index.php/bbs/qt)나 네이버 블로그(https://blog.naver.com/kdicaprio74)나 제 페이스북 “말씀 묵상 나눔의 공간”(https://www.facebook.com/groups/891275965453230)과 승리장로교회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profile.php?id=61563301492767)이나 카카오톡 스토리
(https://story.kakao.com/_JLQIi5) 및 구글 블로그(https://draft.blogger.com/blog/posts/4251538604497548178?hl=en&tab=jj)나 또는 이 메일로 많은 지체들에게 믿음으로 나누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주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덩어리로 남자만
5,000명을 배부르게 먹이시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은 기적)을 이루실 줄 믿습니다.
(2)
밤새도록 물고기를 잡으려고 애써 봤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던 시몬 베드로는(눅5:5, 현대인의 성경)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4절)는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5절) 그렇게 하였을 때(순종하였을 때)
고기가 너무 많이 잡혀 그물을 찢어지게 되었습니다(6절, 현대인의 성경). 그래서 시몬 베드로는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에게 도와 달라고 손짓하여 그들이 와서 두 배에 고기를 가득 채우자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었습니다(7절, 현대인의 성경). 분명히 그 배 두 척에는 물고기가 한 마리도 없었는데 이제는 그 두 배에 물고기를 가득 채워 배가 가라앉을 지경까지 된 것입니다.
(a)
어부가 전문 직업이었던 시몬 베드로는 게네사렛 호숫가(1절)에서 물고기를 잡으려고 밤새도록 애써 봤지만 그 결과는 한 마리도 잡지 못했었는데 고기잡이에 관한 지식이나 경험이 거의 없는 목수이신 예수님께서 고기잡는데 최적의 시간은 밤인에 지금은 태양이 바다에 눈부시게 비추는 아참에 그물을 내리는데는 적당한 깊이가 좋은데도 불구하고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명하시니까 예수님의 가당찮고 불합리적인 명령을 조목 조목 지적하든지 따지든지 반박하든지 하지 않고 그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그 명령에 순종한 결과 상상을 초월할 만큼 엄청나게 많은 양의 고기를 잡게 되어 두 배에 물고리를 가득 채워 배가 가라앉을 지경까지 된 것입니다(참고: 호크마).
(i)
호크마 주석의 글입니다:
“사실 복잡한 삶의 정황들을 몸으로 부딪쳐가며 체득한 경험들이 현실을 살아가는데있어 중요한 노 하우(know-how)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때로는 이러한 경험들과 스스로 설정한 원리나 기준으로 인해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케 되는 경우가 있다. 성도들의 삶이란 단순한 자연 법칙이나 합리적 상식의 선에서만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포기함으로써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하는 역설적이고 이적적인 차원 또한 강력히 요청된다. 특히 베드로와같이 하나님의 일꾼으로 부름받은 자는 끝없이 자기를 비우고 오직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전적으로 의탁하고 순종하는 신앙 훈련을 반드시 겪어야만 하는 것이다. 인간의 실패,
그것은 곧 하나님의 기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호크마).
·
저는 이 호크마의 글을 읽고 묵상할 때에 주님께 부름받은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자신과의 싸움과 죄와 세상과 사탄과의 싸움에서 실패를 수 없이 거듭 경험하고 있지만 그것이 저에게 하나님의 기회인 것은 자신의 무능력함과 무기력함을 깨닫는 가운데 제 자신을 비우는 훈련과 단련을 받는 것입니다.
-
그 비우는 훈련과 단련이란 성령님께서 제가 중요시 여기고 있는 “노 하우(know-how)”같은 경험들이나 제 자신이 스스로 설정한 제 나름대로의 원리나 기준이 저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기에 그 경험들이나 원리나 기준조차도 비우게 하시는 것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n
그 경험 중에 하나만 나눕니다. 저는 오늘 교회 본당에서 “똥 냄새 가운데 풍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란 제목 아래 빌립보서
3장 8절인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라는 말씀 중심으로 제 자신이 “배설물” 즉 “똥”(또는 음식 찌꺼기,
쓰레기)으로 여겨서 버려야 할 것을 버리므로 제 자신을 비우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아느 지식으)로 가득 채워지길 기원하였습니다(참고: https://youtu.be/yq3szVM6uJY?si=rMoumM5Po0auAdYn).
-
주님께서는 저로 하여금 제 안에 있는 똥(“배설물”)과 같은 것들을 비우게 하시는 가운데 저로하여금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요 저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성령 하나님(롬8:26)을 전적으로 의지하여 성령님의 인도하심 따라 믿음으로 순종하는 신앙 훈련을 시키고 계십니다.
n
그 훈련 과정에 주님께서는 저로하여금 단순한 자연 법칙이나 합리적 상식의 선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기적적인 능령이 충분히 나타날 수 있다는 믿음을 더욱더 주시고 계십니다.
(b)
시몬 베드로는 두 배에 물고기를 가득 채워 배가 가라앉을 지경까지 된 것을 보고 예수님 앞에 꿇어 엎드려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제발 저를 떠나 주십시오”하였는데(눅5:8, 현대인의 성경)
그 이유는 자기뿐만 아니라 자기와 함께 있던 모든 사람들[그의 동업자들인 세베대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도(10절, 현대인의 성경)]이 고기잡힌 것을 보고 놀랐기 때문이었습니다(9-10절, 현대인의 성경). 다시 말하면,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의 신적 권능을 목격하였기에(호크마) 놀라서 예수님 앞에 꿇어 엎드려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제발 저를 떠나 주십시오”하고 말하였는데(8절, 현대인의 성경)
여기서 날로운 예수님의 신적 권능은 시몬 베드로로 하여금 자신은 “주님” 앞에서 “죄인”인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물고기가 심히 많이 잡힌 것(6절)보다 더 놀랍고 놀라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i)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이사야
6장 5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
이사야 선지자야 이렇게 말한 이유는 그가 보좌에 앉으신 주님과 그분의 주위에 둘러서 있는 각각 여섯 개의 날개를 가진 스랍 천사들이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전능하신 여호와께서 거룩하시니 온 땅에 그 영광이 충만하구나”하고 노래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1-3절, 현대인의 성경).
(ii)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의 신적 권능으로 두 배에 물고기를 가득 채우므로 그 두 배가 가라앉을 지경까지 된 것을 보았을 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였으므로 “주님,
저는 죄입니다. 제발 저를 떠나 주십시오”(8절, 현대인의 성경)하고 예수님께 말한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기적(물고기 떼)을 통해 자신의 죄인됨과 나약함을 절감했던 것입니다. 이는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빛과 거룩함 앞에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은 후,
그 엄청난 능력과 임재 앞에서 압도당하여 나온 고백입니다(인터넷).
·
여기서 우리는
(1) 하나님의 크신 권능과 이적 앞에서 인간은 자신의 본연의 정체를 깨달아야 마땅하며(사 6:5),
(2) 그 같은 상황에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길은 오직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수 밖에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호크마).
-
새 찬송가
190장 “성령이여 강림하사”
1절과 후렴 가사입니다:
(1절) 성령이여 강림하사 나를 감화 하시고 애통하며 회개한 맘 충만하게 하소서,
(후렴) 예수여 비오니 나의 기도 들으사 애통하여 회개한 맘 충만하게 하소서 아멘.
n
복음성가 “비전(우리 보좌 앞에 모였네)” 가사입니다:
“우리 보좌 앞에 모였네 함께 주를 찬양하며 하나님의 사랑 그 아들 주셨네 그의 피로 우린 구원 받았네 십자가에서 쏟으신 그 사랑 강 같이 온 땅에 흘러 각 나라와 족속 백성 방언에서 구원 받고 주 경배드리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께 있도다’(3x).”
(c)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하고 말하였을 때 예수님은 그에게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두려워하지 말아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현대인의 성경)](10절)하고 말씀하셨고 “그들은 배를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둔 채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11절, 현대인의 성경).
(i)
여기서 예수님의 말씀인
“무서워하지 말라”에서
‘무서워하다’라는 헬라어
“φοβοῦ”(포부)는 누가복음
8장 25절과 35절에도 나옵니다: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시니 그들이 두려워하고(φοβηθέντες)
놀랍게 여겨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가 하더라”(25절), “사람들이 그 이루어진 일을 보러 나와서 예수께 이르러 귀신 나간 사람이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예수의 발치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거늘(ἐφοβήθησαν)”(35절).
·
이 두 말씀들을 보면 놀라움에 휩싸인 사람들(those
struck with amazement)(인터넷)이 나오는데 이 사람들은 다 예수님의 신적 권능을 목격하였기 때문입니다. 25절의 경우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목격한 예수님의 신적 권능은 예수님께서 바람과 성난 파도를 꾸짖자 폭풍이 그치고 물결이 잔잔해졌고(25절, 현대인의 성경),
35절의 경우는 사람들이 목격한 예수님의 신적 권능은 예수님께서 거라사 지방에 사는 귀신 들린 어떤 사람(26-27절, 현대인의 성경)에게서 귀신을 나가게 하시사 그 사람들이 귀신 나간 사람이 옷을 입고 맑은 정신으로 예수님 앞에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35절, 현대인의 성경).
(d)
여기 누가복음
5장 10절에서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현대인의 성경)하고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를 부르시는 말씀으로서 물고기를 잡는 물리적인 어업에서 벗어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제자가 되어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거듭나도록 인도하는,
즉 ‘사람을 낚는’ 영적인 사역을 하게 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참고: 인터넷).
(i)
여기서
“낚을 것이다”라는 헬라어
“ζωγρῶν”(조그론)은 죽임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상태로 끌려가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에서 이 용어는 전쟁터와 어선에서 영혼의 영역으로 옮겨가며,
두 가지 극명하게 대조되는 포로,
하나는 구원(saving)이고 다른 하나는 노예로 만드는 것(enslaving)을 강조합니다(인터넷).
·
누가복음
5장 10절의 경우는 “구원”(saving)으로서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를 사용하시사 죽기 위해 끌어 올려지는 물고기와 달리,
사람들을 생명으로 이끌려 올려지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디모데후서
2장 26절[“그리고 마귀에게 사로잡혀 죄에 종노릇 하던 그들이 제정신으로 돌아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게 될 것입니다”(현대인의 성경)]의 경우는 마귀가 사람의 마음과 뜻을 사로잡아(enslaving)
‘살아 있는 포로’로 삼는 전략을 묘사합니다(인터넷).
-
여기서 마귀의 사로잡는(enslaving)
역사(일)를 생각할 때 요한복음
13장 2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
비록 마귀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이집트)에서 노예로 만들었지만(enslaving)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애굽(이집트)에서 구원(saving)하셨습니다(유1:5).
-
마귀는 우리를 죄의 종으로 만들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죄로부터 해방시켜주시사(구원하여주시사) 의의 종이 되게하셨습니다(롬6:17-18절).
n “여러분이 죄의 종이었을 때에는 의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 결과 얻은 유익이 무엇입니까? 지금 여러분이 부끄러워하는 것밖에 더 있습니까? 그런 생활의 결과는 영원한 죽음입니다. 그러나 이제 여러분은 죄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종이 되었고 거룩한 생활을 하게 되었으니 그 결과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죄의 댓가는 죽음이지만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선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입니다”(20-23절, 현대인의 성경).
(e)
예수님은 시몬에게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두려워하지 말아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현대인의 성경)](눅5:10)하고 말씀하시자 “그들은 배를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둔 채 예수님을 따라갔다”(11절, 현대인의 성경)는 말씀을 묵상할 때 “시몬 베드로”(8절)뿐만 아니라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10절)도 “모든 것을 버려 두고”(11절) “예수님을 따라갔다”(11절, 현대인의 성경)는 것은 어부들로서 그들의 “배”(boats)(2절, 마4:22)와 “그물”(눅5:2; 마4:20; 막1:18)과 심히 많이 잡은 “고기”(fish)(눅5:6) 등[“아버지”(마4:22)]을 다 버려 둔 채 예수님을 따라간 것입니다(눅5:11).
(i)
마가복음
10장 28-30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그때 베드로가 예수님께
'우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하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분명히 말한다. 나와 복음을 위해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녀나 논밭을 버린 사람은 이 세상에서 그 모든 것을 백 배나 받고 아울러 핍박도 받을 것이며 오는 세상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예수님의 제자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