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짧은 말씀 묵상
“마귀가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된 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 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또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하였고 또한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시리라 하였느니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누가복음 4:9-12)하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1)
성령 충만하여 요단강에서 돌아오신 예수님은 성령님에게 이끌리셔서 광야로 나가셔서(눅4:1; 참고: 마4:1)[성령님이 예수님을 광야로 몰아내셔서(막1:12)] 광야에서 40일을 계시면서 마귀[“사탄”(13절)]에게 “시험”(눅4:2; 마4:1; 막1:13)을 받으셨는데 여기서 우리는 “시험”이란 단어를 좀 먼저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a)
이
“시험”이란 단어는 원어 헬라어로
“πειραζόμενος”(peirazomenos)으로서
“πειράζω”(peirazō) 단어에서 파생한 것인데 이 단어는 어떤 사람이나 사물을 시험하거나 입증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신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죄로 유혹하려는 적대적인 시도(마4:3)에서부터, 인격을 검증하는 중립적인 시험(고후13:5), 그리고 믿음을 연단하려는 하나님의 섭리적 시험(히11:17)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미로 사용됩니다. 문맥은 항상 이 시험이 파괴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성장을 위한 것인지를 분명히 드러냅니다(인터넷).
(i)
호크마는 이 “시험”이란 단어에 대해서 주석하면서 우리는 여기서 성경에 나타난 세 가지 종류의 시험을 구별해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개역성경은 이 세 가지의 경우를 구분하여 따로 기록하지 않고 모두 “시험”이라는 말로 번역하고 있기 때문입니다(호크마):
·
첫째로,
사탄은 사람들을 “시험”(temptation,
유혹)합니다.
-
다시 말해서,
사탄은 사람들이 악을 행하도록 유혹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와 같은 시험을 하시지도 않으시며 그 자신이 그런 방법에 의해서 시험을 받으시지도 않으십니다[(약 1:13) “사람이 시험(tempted)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tempting)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be
tempted)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tempt)하지 아니하시느니라”]. 게다가 모든 시험(temptation,
유혹)이 직접 사탄으로부터 온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가끔 시험(유혹)은 우리 자신의 그릇된 마음에서 비롯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약1:14, 15)
“오직 각 사람이 시험(tempted)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
둘째로,
사람들은 하나님께 신앙과 어긋나는 그릇된 요구들을 하므로 하나님을 시험(test)할 수도 있습니다.
-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이와 같은 실수를 범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신명기
6장 16절[“너희가 맛사에서 시험(test)한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test)하지 말고”]을 인용한 의도도 아마 그 사실을 암시하고 있을 것입니다[(눅4:1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test)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
셋째로,
하나님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험(trial)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그의 백성들을 시험(trial)하십니다.
-
신명기
8장 2절 말씀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test)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이스라엘 사람들과 예수님이 광야에서 경험한 것 가운데는 위의 세 가지 종류의 시험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생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율법의 준행 여부'를 보시려고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시험하셨습니다[(출 16:4) “그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test)하리라”].
(b)
오늘은 예수님이 광야에서 마귀(사탄)에게 받으신 시험[temptation
(유혹)] 3개중 첫 번째 시험만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i)
마귀의 시험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였습니다(눅4:3).
·
여기서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는 마귀의 첫 번째 시험이 주어진 타이밍과 상황은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일 동안 계시면서 아무것도 잡수시지 않아[40일 동안 금식하셔서(마4:2, 현대인의 성경)]
그 기간이 끝났을 때는 몹시 시장하셨을 때(2절, 현대인의 성경)였습니다.
-
저는 이 사실을 묵상할 때 사탄이 우리를 유혹하는 타이밍과 상황은 예를 들어,
우리가 궁핍할 때 특히 더 유혹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우리가 풍부할 때에도 사탄은 우리를 유혹하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범죄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굴은 두 가지 일을 주님께 구하였습니다:
“내가 속이고 거짓말하지 않도록 나를 도우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부하게도 하지 마시고 다만 나에게 매일 필요한 양식을 주소서. 그렇지 않으면 내가 배불러서 주를 저버리고 여호와가 누구냐고 말하거나,
아니면 내가 가난해서 남의 것을 도둑질하여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렵습니다”(잠 30:8-9, 현대인의 성경).
n
이 아굴의 기도를 묵상할 때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
4장 11-13절에서 한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현대인의 성경)
“내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어떤 형편에서도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나는 가난하게 사는 법도 알고 부유하게 사는 법도 압니다. 배가 부르건 고프건 부유하게 살건 가난하게 살건 그 어떤 경우에도 스스로 만족하게 생각하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나에게 능력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
마귀(사탄)이 예수님에게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고 말한 이유는 마귀는 예수님께서 지금 굶주리고 있으니까 돌로 떡을 만들 수 있는지 능력을 시험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참고: 인터넷) 저는 그보다 사탄의 유혹의 궁극적인 목적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란 말씀에서 알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사탄은 분명히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고 있었을텐데도 불구하고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라고 말한 후 아무것도 잡수시지 않고
40일 동안이나 금식하신 예수님에게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고 말한 목적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기보다 육의 양식으로 살라는 유혹이었다고 생각합니다.
n
저의 이런 생각의 근거는 예수님의 답변 말씀인 “기록된 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눅4:4)입니다.
(ii)
마귀의 첫 번째 시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은 “기록된 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였습니다(눅4:4).
·
여기서 예수님께서 “기록된 바”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구약 성경 신명기
8장 3절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
하나님께서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광야를
40년 동안 유랑하게 하신 것은 그들을 낮추시며 그들을 시험하사 그들의 마음이 어떠 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고 하신 것이었습니다(2절).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만나를 주신 이유는 그들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준수함으로 사는 줄을 알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3절)(호크마).
n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의
40년 고난을 통하여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신
8:3). 이와 같이 우리 또한 이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주님이 걸어가신 좁은 길,
즉 십자가의 길을 걸으면서 많고 다양한 고난들을 접하면서 결국 그 고난 중에 오직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만 살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깨닫게 될 때 우리는 그 말씀의 가치가 우리 생명보다 귀한 것임을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과 우리 인간의 이 땅에서의 생명 연수가 어떻게 비교가 될 수 있겠습니까?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의 재물보다 이러한 말씀의 소중함과 말씀의 최고의 가치를 깨닫게 해줍니다[참고: “광야에서의 시험”
https://blog.naver.com/kdicaprio74/150056422689]
(iii)
우리는 분주하고 복잡하고 시끄러운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좀 가차 없이
'광야'로 내몰릴 필요가 있습니다(막
1:12). 그 이유는 우리는 그
'광야'에서 하나님과 독대하므로 마음이 겸손 해져야 할 뿐 아니라 궁핍함 속에서 사람이 밥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만 살아야 한다는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입니다(신 8:3) (유진 피터슨의
"물총새에 불이 붙듯"을 읽으면서).
·
하나님의 말씀으로 승리하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나의 소망"과 ‘나의 위로’와 “나의 노래” 그리고 ‘나의 소유’로 삼습니다(참고: 시
119:49-56).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적 싸움에 승리하여 승리의 찬가를 하나님께 올려드리면서 저 천성을 향하여 전진해 나아갑니다.
(2)
저는 마귀의 두 번째 시험(유혹)에 관한 누가복음
4장 5-8절 말씀을 마태복음
4장 8-9절 말씀과 연관해서 묵상하면서 마귀의 시험과 예수님의 답변을 이리 정리해 보았습니다:
(a)
마귀의 시험:
마귀가 예수님을 이끌고(데리고) 아주 높은 산으로 올라가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영광을 보여주면서 예수님께 ‘네가 만일 엎드려 나에게 절(경배)하면 내가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너에게 주겠다’ 라고 말했습니다(눅4:5-7; 마4:8-9, 현대인의 성경).
(i)
성령님에게 이끌리셔서 광야로 나가신 예수님(눅4:1)께서는 이젠 마귀가 자신을 이끌고 아주 높은 산으로 올라가도록 허락하셨는데 그 이유는 적어도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첫째 이유는,
비록 이스라엘은 시험(유혹)을 받았을 때 실패하고 말았지만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은 그 시험을 우리를 위하여 승리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참고: 호크마).
· 둘째 이유는,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똑같은 출생, 똑같은 유년기, 똑같은 청년기, 장년기를 거치면서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없으신 분이시라는 사실(히 4:15) 증명하기 위해서였습니다.
-
바로 이런 흠없고 순전한 어린 양 같은 예수께서 온갖 유혹을 이기시면서 우리 인류의 죄 문제를 온전히 해결하신 것입니다(호크마).
(ii)
마귀가 예수님을 이끌고 아주 높은 산으로 올라가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영광을 보여주었다(마4:8, 현대인의 성경;
참고: 눅 4:5)는 말씀을 묵상할 때 저는 창세기
3장 6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 가장 간교한 뱀(1절)기 여자를 유혹했을 때 여자는 선악과를 “본즉” “보암직도 하”였다(6절)는 것은 사탄은 그 여자의 “안목의 정욕”(요일2:16)을 자극하는 유혹을 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탄의 전략입니다.
·
사탄은 우리 눈의 욕심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사탄은 사람의 눈은 만족할 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잠언 27:20, 현대인의 성경). 사람의 눈은 음란으로 가득 차서 끊임없이 죄를 짓습니다(밷후2:14).
-
그러므로 우리는 만족할 줄 모르는 눈의 욕심을 경계해야 합니다(참고: 요한일서 2:16,
현대인의 성경). 그렇지 않으면 사탄이 수시로 우리에게 보악직도 한 선악과 같은 것을 보여주면서 우리의 눈의 욕심을 자극하여 범죄케 만들 것입니다.
n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그의 책
“영적 광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의 눈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것을 보면,
마음도 그것을 따라갑니다.
... 만일 여러분으로 하여금 유혹을 받게 하는 것이 있다면 여러분은 그러한 것을 바라보지 마십시오!
... 여러분의 눈이 어떤 것들을 탐하지 말게 하십시오.
똑바로 앞만 바라보는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십시오.
... 여러분은 눈과 언약을 맺고 앞만 똑바로 바라보도록 하십시오.
하나님이 지시하는 방향,
거룩과 하늘만 주목하고 나가십시오." 욥기
31장 1절 말씀입니다:
“내가 내 눈과 언약을 세웠나니 어찌 처녀에게 주목하랴.”
(iii)
마귀는 예수님에게 ‘네가 만일 엎드려 나에게 절(경배)하면 내가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너에게 주겠다’ 라고 말했는데(마4:8-9, 현대인의 성경;
눅4:7) 이미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에게 만민을 다스리를 모든 권위와 영광을 주셨는데(눅4:6; 요17:2) 무슨 권위와 무슨 영광이 예수님에게 더 필요하겠습니까!
·
복음성가 “모든 능력과 모든 권세” 가사가 좀 생각났습니다:
“모든 능력과 모든 권세 모든 것 위에 뛰어나신 주님 세상이 측량 할수 없는 지혜로 모든 만물 창조하셨네 모든 나라와 모든 보좌 이 세상 모든 경이로움 보다 이 세상 모든 값진 보물 보다 더욱 귀하신 나의 주님 ….”
-
저는 이 마귀의 두 번째 시험(유혹)을 생각할 때 마귀는 분명히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고 있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첫 번째 시험에서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눅4:3)고 유혹한 후에 이렇게 두 번째 시험에서 예수님에게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눅4:7)[“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마4:9)]이라고 말했다는 것은 마귀는 조물주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에게 피조물인 자기에게 절(경배)하라고 유혹한 것입니다.
n
저는 이것은 사탄의 바꾸는 역사(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바꾸는 사탄의 역사(일)가 로마서
1장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롬1:23),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25절). 결국 사탄의 두 번째 시험(유혹)은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게 하는 유혹이었습니다.
(b)
이 마귀의 두 번째 유혹에 예수님의 답변은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된 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였습니다(눅4:8; 마4:10).
(i)
여기서 저는 “사탄아 물러가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할 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마16:23).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했다가
3일만에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밝히기 시작하셨을 때 예수님을 붙들고 “주님,
그럴 수 없습니다. 이런 일이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하고 말렸습니다(21-22절, 현대인의 성경).
·
그는 예수님에게 “내가 주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로 주님을 모른다고 하지는 않겠습니다”하고 큰 소리를 쳤는데 그 큰소리 속에는 예수님이 결코 십자가에 죽지 않으실 것이기에 자기도 함께 죽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있었을 것입니다. 결국 베드로는 말(입술)로는 “주님을 위해서라면 제 목숨도 버리겠습니다”하고 큰 소리 쳤지만(요13:37, 현대인의 성경)
실제로 그의 마음은 예수님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버릴 준비가 돼있지 않았었습니다(참고: 눅22:33, 현대인의 성경).
-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아내와 자녀와 형제 자매,
심지어 자기 생명보다 나를 더 사랑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눅14:26, 현대인의 성경).
(ii)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기록된 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눅4:8; 마4:10)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기록된 바”는 신명기
6장 13절 말씀을 가리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를 섬기며 그의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현대인의 성경)
“여러분은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배하고 그를 섬기십시오. 그리고 맹세할 때는 여호와의 이름으로만 맹세해야 합니다”].
·
저는 이 신명기
6장 13절 말씀 중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란 말씀을 묵상할 때 잠언
8장 13절 상반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 그리고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악중의 악이요 악의 근원인 사탄을 미워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사탄을 미워하는 예수님의 참 제자들은 주님만을 섬기지 결코 사탄을 섬기지 않습니다!
-
복음성가 “주님만을 섬기리” 가사가 생각났습니다:
“두 손 들고 찬양합니다 다시 오실왕 여호와께 오직 주만이 나를 다스리네
(x 2) 나 주님만을 섬기리 헛된 마음 버리고 성령이여 내 영혼 충만하게 하소서 주님앞에 내 생명 드리리라 ….”
(c)
마귀는 우리를 데리고 이 세상에서 아주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 세상의 모든 영광을 보여주면서 자신에게 엎드려 절하면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겠다고 유혹합니다.
(i)
우리가 이 사탄을 물리치기 위해선 성경에 기록된 말씀인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는 말씀에 붙들린바 되어(마4:8-10, 현대인의 성경)
"주님,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우리에게 돌리지 마시고,
오직 주님의 이름에만 영광을 돌리십시오"라고 간구하면서(시115:1, 새번역) 주님과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겨야 합니다.
·
우리는 ‘온전한 마음’으로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대상28:9). 여기서 ‘온전한 마음’이란 ‘단순하고 갈리지 않은 마음’을 가리킵니다(박윤선). 즉,
우리는 주님을 단순하고 갈리지 않는 마음으로 섬겨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기쁜 뜻”으로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9절). 무슨 말씀입니까? 자원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라는 말씀입니다.
- 아버지 다윗이 아들 솔로몬에게 이렇게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는 마음으로(29:3) 정직한 마음과 자원하는 마음으로 성전을 위하여 예비한 모든 것들을 즐겁게 드렸기 때문입니다(17절). 다윗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언약의 하나님으로부터 형통의 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저 주님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님께 드렸던 것입니다(14절). 그러므로 아버지 다윗은 아들 솔로몬에게 자기처럼 주님을 섬기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n
우리도 다윗처럼 주님을 섬기므로 말미암아 우리 자녀들에게 섬김의 본을 보여줘야 합니다. 보여주되 우리는 주님을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기는 본을 보여줘야 합니다. 결코 마음이 없는 표면적으로 섬기는 척하는 모습을 보여줘서는 아니됩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9절).
n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사 우리의 모든 사상을 다 알고 계십니다(9절). 그러므로 우리는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주님을 섬겨야합니다. 섬기되 우리는 주님을 계속 기도로 찾으면서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9절). 그리할 때 주님께서는 우리의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기는 섬김을 온전히 기쁘게 받으실 것입니다.
(3)
저는 이 누가복음
4장 9-12절 말씀을 묵상할 때 마태복음
4장 5-7절 말씀과 연관해서 함께 묵상하였습니다. 그리 했을 때 한
3 가지 좀 흥미로운 점들을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a)
첫째로,
누가복음 4장 9-12절은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유혹)한 마지막 세 번째 시험으로 기록되 있는 반면에,
마태복음 4장 5-7절은 마귀의 두 번째 시험으로 기록되 있습니다.
(i)
이 순서가 다른 이유는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누가복음의 경우에서 한 가지 두드러지게 보이는 것은 마귀의 첫 번째 시험에 마귀는 예수님에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눅4:3)이라고 말했을 뿐만 아니라 마지막 세 번째 마귀의 시험에서도 마귀는 예수님에게 “…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9절)이라고 또 말했다는 사실입니다.
·
이 사실이 저에게 좀 흥미로운 이유는 마귀는 분명히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줄 잘 알고 있었을텐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세 번 시험(유혹)하였을 때 두 번이나 반복해서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고 말했다는 것은 하나님과 본질적으로 하나이신 예수님[“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요10:30)]이시요 하나님 본체와 같은 신성을 가지고 계신 예수님(인터넷)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이루시기보다 자기 자신을 구원하라고 유혹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
예를 들어,
마귀의 첫 번째 유혹을 보면 그는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일 금식하시므로 몹시 시장하셨을 때(눅4:2, 현대인의 성경)
예수님에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3절)고 말함으로써 예수님으로 하여금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다’(대조: 4절), ‘너가 지금
40일 금식하고 몹시 시장할테니까 너 자신의 배고픔에서 너 자신을 스스로 구원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 마귀의 세 번째 유혹인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예루살렘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9-10절)는 말도 결국에 가서는 마귀는 예수님에게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천사들”(10절, 현대인의 성경)을 명령하사 예수님을 구원하실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 그런데 실제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뜻: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27:46)하고 크게 소리를 질르셨지만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는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눅3:22)하고 말씀하신 “너(예수님)를 위하여”(4:10) 예수님의 부르짖으신 소리를 들으시고 내려오셔서[참고: “내가 내려가서”(출3:8)] 예수님을 십자가의 죽음에서 구원하지 않으셨습니다.
(b)
둘째로,
저는 마귀가 예수님을 “거룩한 성”(마4:5) “예루살렘으로”(눅4:9) “데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마4:5, 현대인의 성경)
시험(유혹)하였다는 사실을 묵상할 때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거룩한 성 예루살렘”(계21:10), 즉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2절)도 연관해서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i)
왜 마귀는 예수님을 거룩한 성 예루살렘으로 데려가 유혹한 것일까요? 과연 그가 아무 목적 없이 무작위 장소(random
place)로 데려갔을까요? 저는 결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분명히 마귀는 이유가 있어서 예수님을 거룩한 성 예루살렘으로 데려가서 유혹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
어쩌면 그 이유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죄와 사망의 사슬에 매여 있던 시온의 자녀들이 풀림을 받고 속량된다는 말씀(사52:1-3)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의 역사가 예루살렘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뜻(인터넷)임을 염두해 둘 때 마귀는 예수님을 거룩한 성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눅4:9-10)고 말한 이유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요1:29)으로서 우리의 죄를 속량하시고자(참고: 엡1:7; 골1:14) 십자가에 대속 죽으시기보다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천사들에게 명령하여 너를 살려주실 것이다’(참고: 눅4:10, 현대인의 성경)라고 말함으로서 마귀는 예수님보러 ‘너 자신을 스스로 구원하라’(죽지 말라)고 유혹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
예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사탄(마귀)에게 세번 시험(유혹)을 받으셨는데(마4:1-11; 눅 4:1-13; 참고: 막 1:13) 사역을 끝내시고자(완성하시고자) 십자가에 달려 계실 때에도 세번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1) 첫째 유혹:
"백성은 서서 구경하는데 관리들은 비웃어 이르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이 택하신 자 그리스도이면 자신도 구원할지어다 하고"(눅23:35), (2) 둘째 유혹:
"군인들도 희롱하면서 나아와 신 포도주를 주며 이르되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면 네가 너를 구원하라 하더라”(36-37절), (3) 셋째 유혹: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39절). 이 사탄의 세 유혹의 핵심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스스로 구원해서 죽지 않으시고 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탄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대속 죽는 것을 결코 원치 않았기에
"관리들"(35절), "군인들"(36절), 십자가에
"달린 행악자 중 하나"(39절)를 사용해서 예수님에게
'스스로 구원하라'고 유혹을 세번이나 한 것입니다.
n
이 사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1) 사탄은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시작부터 끝까지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을 한다는 것입니다. (2) 사탄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죽기보다,
사람의 뜻대로 살라고 우리를 비웃고,
희롱하며, 비방하면서 유혹을 한다는 것입니다. (3) 사탄은 단계적 유혹은 먼저 좀 우리에게 멀리 있는
"관리들" 같은 사람들로 우리를 유혹을 한 다음,
좀 더 우리에게 가까이 있는
"군인들" 같은 사람들로 우리를 유혹을 하다가 결국에 가서는 제일 가까운
'십자가에 달린 행악자 중 한 사람'같은 사람으로도 우리를 유혹을 한다는 것입니다. 사탄은 이 세부류의 사람을 통해 우리를 유혹하는데 제가 보기에 제일 치명적인 유혹은 바로 우리에게 제일 가까운 식구를 통해 우리를 유혹하는 것입니다.
(c)
마지막 셋째로,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유혹)하였을 때 그도 예수님처럼 “기록되었으되”(눅4:10; 마4:6)라고 말했다는 사실입니다.
(i)
이 사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마귀(사탄)도 우리를 유혹할 때 성경 말씀을 인용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인지해야 할 것은 마귀는 성경 말씀을 인용하되 그 말씀에서 더하든지 빼든지 한다는 사실입니다.
·
마귀가 예수님을 유혹하였을 때 “기록되었으되”라고 말하면서 시편
91편 11-12절 말씀을 인용한 것 같지만 실제로 마귀는 고의적으로 “네 모든 길에”라는 성경 구절을 빼버렸습니다(호크마). 한 번 시편
91편 11-12절 말씀과 누가복음
4장 10-11절 말씀을 비교해 보십시오:
-
(시91:11-12)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 (눅4:10-11) “기록되었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하였고 또한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시리라 하였느니라.”
n
요한계시록
22장 18-19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
마귀가 예수님을 유혹하면서 이렇게 성경구절을 잘못 인용한 목적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었습니다(호크마).
-
이것이 지금도 사탄이 우리를 유혹하는 목적입니다.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성경 말씀을 온전히 그대로 다 받아들이도록 두지 않고 그 성경 말씀에서 더하든지 뺴든지하여 그 하나님의 말씀을 삐뚤어 받아들이게 합니다. 그래서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온전한 말씀을 순전히 그래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므로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지 못하게 만들려고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게 만들려고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하고 있습니다.
n
제가 대학교 때 제자훈련을 한다고 하면서 배운 인도의 확신 성경구절이 생각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3:5-6).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제일 큰 장애물이되는 것이 바로 내 명철을 의지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일 제가 내 명철을 의지하여 선택한 길이 제가 보기엔 좋은 것 같고 잘한 것 같을지라도 결국에 가서 저는 제 불신의 선택의 결과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깨닫게 될 때가 올 것임을 배우고 있습니다.
·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마귀가 인용한 시편
91편 11-12절 말씀은 택한 백성을 환란과 어려움 속에서 인도해내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한 것이지 하나님을 시험(유혹)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호크마).
-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그분의 섭리를 방해하는 일이나 충동적으로 위험에 뛰어드는 일을 용서하시지 않으시고 엄히 징계하신다고 가르쳤지만(신 6:16;
18:20; 사 45:9) 마귀는 이런 진리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호크마).
n
그러므로 우리는 단지 어떤 성경구절을 인용한다고 해서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전달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호크마).
·
오늘날에도 마귀는 성도를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순수한 신앙을 변색시키기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적용하게 만들고 거짓 종들을 통해 그 말씀을 왜곡시킵니다(마 22:29; 고후 2:17)(호크마).
-
사실 세계 도처에 독버섯처럼 자라나고 있는 허다한 이단들은 성경을 그들의 경전으로 내세우는 일을 서슴지 않습니다. 다만 문제는 이 성경 말씀을 자신의 거짓된 사상을 세우고 은폐시키려는 목적에서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짜맞춘다는데 있는 것입니다[참고 설명:
“아전인수”(我田引水)는 ‘자기 논에 물을 끌어댄다’는 뜻으로(유래: 농업이 중요한 과거,
마을 사람들이 함께 물을 나눠 써야 하는 상황에서 한 사람이 자기 논으로만 물길을 내는 이기적인 행동에서 비롯된 말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입니다. 이는 공동으로 물을 대야 하는 상황에서 자신에게만 이롭게 물을 끌어가는 이기적인 행위를 가리킵니다(인터넷)].
(d)
마귀의 두 번째 시험(유혹)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은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마4:7; 참고: 눅4:12)는 말씀이었습니다.
(i)
이 말씀은 마귀의 사기 행각(마4:6, “기록하였으되”)에 대한 예수님의 정확한 답변으로서 예수님의 구약 성경 말씀 인용은 마귀가 사용한 성경구절을 부인 또는 거부하신 것이 아니라 바르게 해석하는 원리를 보여주셨습니다(호크마).
·
여기서 예수님이 인용하신 구약 성경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맛사에서 물의 부족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시험했을 때(출17:1-7)를 배경으로 하는 신명기
6장 16절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너희가 맛사에서 시험한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고.”
-
출애굽기
17장 1-7절을 보면 “르비딤”(뜻: 원기 회복)이란 곳에는 마실 물이 없어서(1절, 현대인의 성경)
목마른 이스라엘 백성들(3절, 현대인의 성경)이 모세와 다투어 하나님을 시험하고(2절) 모세를 원망[“불평”(현대인의 성경)]을 했습니다(3절). 그들의 원망(불평) 내용은 “어째서 당신이 우리를 이집트에서 끌어내어 우리와 우리 자녀와 가축이 다 목말라 죽게 하십니까?”였습니다(3절, 현대인의 성경).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을 시험한 것은 “여호와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느냐,
계시지 않느냐?”였습니다(7절, 현대인의 성경). 그래서 모세는 그 곳 이름을 “맛사”(뜻: 시험하다) 또는 “므리바”(뜻: 다툼)라고 불렀습니다(7절).
·
저는 이 말씀을 다시금 묵상할 때 한
3가지 교훈을 다시금 받습니다:
(1) 우리는 궁핍함 속에서 충분히 다투고 원망(불평)할 수가 있습니다(2-3절). (2) 우리는 궁핍함 속에서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계심을 의심하고 불신했기에 원망하면서 하나님과 다투고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7절, 현대인의 성경). (3)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행해야 합니다(6절, 현대인의 성경).
-
“원기 회복”이라는 뜻을 가진
“르비딤”에서 마실 물이 없어 모세와 다투고 하나님과 다투면서 불평하고 하나님을 시험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는 이거 없고 저거 없어서 하나님과 다투면서 불평하고 하나님을 시험해서는 아니 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궁핍함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때에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기도 응답을 받았을 때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행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반석에서 물을 내셨던 하나님께서 반석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고전10:4)의 말씀대로 우리 마음 속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올 것입니다(요7:38, 현대인의 성경).
·
신명기
6장 16절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과거에 물이 없어 모세와 다투고 하나님을 의심했던 사건(맛사)을 언급하며,
과거의 불신앙을 되풀이하지 말고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여기서
'시험하다'는 것은 하나님을 의심하고 불신앙으로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를 의미합니다(인터넷).
-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의심했던 행동을 다시 반복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신지를 의심하지 말고,
그 분만을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인터넷).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