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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votional Reflection Based on the Incident of Peter Cutting Off Malchus's Ear:

Devotional Reflection Based on the Incident of Peter Cutting Off Malchus's Ear: “Then one of those standing near drew his sword and struck the servant of the high priest, cutting off his ear.” ( Mark 14:47, Today's Korean Version ) 1. Identifying the People Involved: The person who stood beside Jesus and drew the sword was Simon Peter . The servant of the high priest was named Malchus . “Then Simon Peter, who had a sword, drew it and struck the high priest’s servant, cutting off his right ear. The servant’s name was Malchus.” ( John 18:10 ) 2. Jesus' Response to Peter's Action: (a) Jesus said: “Permit even this.” ( Luke 22:51, KJV: “Suffer ye thus far”; RSV: “No more of this” ) The Greek words clarify this: “ἕως τούτου” (“heōs toutou”) = “up to this point” or “even this” “ἐᾶτε” (“eate”) = “allow it,” “let it be,” “leave it alone” Therefore, Jesus is essentially saying: “Let them do what they are doing. Do not resist any further.” “If ...

담대하라! (사도행전 23장 6-35절)

담대하라!

 

[사도행전  23 6-35절 말씀 묵상]

 

지난 주일 우리는  이 어그러진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묵상하였습니다.  한 마디로 우리는 “바른 신앙생활”을 해야 할 것을 사도행전2230절에서235절 말씀에서 배웠습니다.  한 세 가지로 하나님께서 교훈을 주셨는데 첫째로우리는 범사에 선한 양심대로 하나님을 섬겨야 할 것을 배웠고둘째로바른 신앙생활하기 위해선 우리는 위선을 경멸해야 하며셋째로바른 신앙생활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이끌림을 받는다는 교훈을 배웠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바른 신앙생활을 하므로 말미암아 우리는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야 할 것입니다(2:15).

 

과연 우리가 어둡고 어그러진 이 세상에 살면서 빛들고 나타나는 바른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한 일곱 가지 필요한 요소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 첫째는Calling(부르심):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부르셨다는 sense of calling이 있어야 합니다.  (2) 둘째는Conviction(확신): 구원의 확신인 기본이요 또한 근본적으로 우리에게 필요하며 또한 부르심에 확신도 분명해야 함.  또한 주님의 뜻을 알고 그 뜻에 대한 확신도 필요합니다.  (3) 셋째로Commitment(헌신):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한 자는 주님께 모든 것을 받쳐 헌신해야 합니다.  (4) 넷째로Confidence(자신감): 내 안에 뭔가 자신감을 가질 만한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에 근거한 자신감을 가져야 합니다.  (5) 다섯째로Courage(용기):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주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선 용기가 필요합니다.  담대해야 합니다.  특히 위기 가운데 우리는 담대해야 합니다.  (6) 여섯째로Consistency(일관성): 주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자는 주님께서 신실하신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신실함.  일관성 있게 주님의 일을 감당합니다.  (7) 마지막 일곱째로Completion(완성): 주님의 부르심을 받는 주님이 종은 주님의 일을 완성해야 합니다.  이 일곱까지 필요한 요소 중 오늘 본문 말씀 사도행전236-35절 말씀 중심으로 다섯 번째 요소인 Courage(용기)”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특히 오늘 본문 11절에서 주님께서 사도 바울에 곁에 서서 주신 말씀 담대하라!(Take courage!)란 말씀 중심으로 한 두 가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로바울이 접한 담대할 수 없었던 상황과 둘째로바울이 담대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지 묵상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바울이 담대 할 수 없었던 상황은 무엇이었습니까?

   

그 상황을 한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바울이 접했던 첫 번째 상황은 오늘 본문 6절에서10절에 나와있는 공회 안에 있었던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 사이의 “큰 분쟁”이였습니다.  이 두 그룹 사이에 큰 분쟁이 일어 났던 원인은 ‘죽은 자의 부활’이라는 바울이 전파하였던 복음의 핵심 교리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6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공회에서 자기는 바리새인으로서 죽은 자의 부활을 인하여 심문을 받는다고 외쳤을 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이에 다툼이 생겨 무리가 나뉘었습니다(7).  나뉜 이유는 공회에 있었던 바리새인들은 바울의 믿었던 죽은 자의 부활(사후 세계)이나 또한 영적인 존재(천사나 영)을 핵심적인 교리로 인정하였지만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고 믿었습니다 (8).  그러므로 바리새인들은 오늘 본문 9절을 보면 바울이 무죄하다는 식으로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악한 것이 없도다 혹 영이나 혹 천사가 저더러 말하였으면 어찌하겠느뇨”라고 말하였습니다.  교리 차이로 바리새인 그룹과 사두개인 그룹 사이에 다툼(dissension이 일어났고 다툼이 번져 “크게 훤화”(great uproar)가 일어났고(9또한 “큰 분쟁”(great dissension)가 생겼습니다(10).  결국 교리 차이로 이렇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그룹 사이에 큰 분쟁이 일어났을 때 천부장은 “바울이 저희에게 찢겨질까 하여 군사를 명하여 내려가 무리 가운데 (바울을빼앗아 가지고 영문으로 들어가라”고 명하였습니다(10).  참 흥미롭지 않습니까?  사도 바울을 박해함에 있어서 교리가 다른 이 두 그룹이 단합하여 바울과 그가 전하는 복음을 대적하였었는데 이렇게 오늘 본문에서 죽은 자의 부활이라는 교리로 논쟁을 벌이더니 결국 큰 분쟁으로 번져 바울까지 위태로 워진 사실   이러한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 있었던 사도 바울인간적으로 생각할 때 결코 담대하기가 쉽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바울이 접했던 두 번째 상황은 오늘 본문 12절에서24절에 나와있는 바울을 죽이려고 먹지도마시지도 않고 동맹한 사십 여명으로 인하여 죽음의 위협을 느끼는 상황이었습니다.  어느 정도로 바울을 미워하였으면 이 40명도 더 되는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고 금식 결사대까지 조직하였을까 생각해 볼 때 바울에게는 왠지 점진적으로 더 큰 환난과 위험이 닥쳤던 것을 느낍니다.  어떻게 “담대하라”(11)는 하나님의 위로와 권면의 말씀을 받은 후 더 큰 위험즉 생명의 위협까지 받는 환난을 겪는 것인지 참으로 상식적 으로는 좀 이해가 안될 수 있습니다.  유상섭 교수님에 의하면 이 40명이 넘는 금식 결사대원들은 “단순한 감정에서” 바울을 죽이려고 결심한 것이 아니라 “신앙적인 신념에서 우러나오는 극단적인 경건의 표현이기 때문에 심각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이락을 보십시오.  여자들까지 폭탄을 몸에 지니고 자살하면서까지 미국 군인들을 죽이려는 모습을   그저 미국 군인(사람)들이 싫어서 그러는 감정 차원에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그녀들의 신앙적인 신념에서 나오는 극단적인 경견의 표현인 것입니다.  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들입니까?  살인 병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바울 죽이기 금식 결사대원들은 오늘 본문 14-15절을 보면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찾아가 협조를 청하였음.  자기들이 바울을 죽이기로 동맹하고 맹세했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알리면서 “공회가 바울에 대해 조사할 일이 있으니 보내 달라고 부탁하면 그들은 매복하고 있다가 단숨에 그(바울)를 제거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통지”했습니다(유상섭).  이들은 유대 종교 지도자들인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도움까지도 받아 바울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상황과연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 바울은 담대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과연 저와 여러분들에게 있어서 담대할 수 없는 상황은 어떠한 상황입니까?  어떠한 상황들이 여러분들의 마음을 두렵게 합니까?  여러 가지 상황이 있겠지만 그 중에 하나 병원에 검사하러 갈 때 마음에 두려움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특히 MRI같은 것 찍는다고 하면 혹시 내가 암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과 두려움   사람은 누구나 죽음에 대하여 한번쯤은 두려움을 느낀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부활의 신앙이 있다고 하지만 순간적으로라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적어도 한번쯤을 들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과연 이러한 두려운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담대할 수 있습니까?

  

둘째로바울이 담대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그 이유는 한 마디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의 약속이란 오늘 본문 11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  주님께서는 환난 중에 있는 사도 바울에게 임하셔서 담대하라고 권면하시면서 예루살렘에서뿐만 아니라 로마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게 될 것을 약속해 주셨던 것입니다.  결국 이 약속이 바울로 하여금 더 큰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두 번째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담대하게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사도 바울이 접했던 생명을 위협을 느끼는 두 상황 속에서 주님께서 그 약속의 말씀을 어떻게 신실하게 지켜 나아가고 계셨는가 입니다.  다시 말하면주님께서는 사도 바울에게 예루살렘에서뿐만 아니라 로마에서도 복음을 증거할 것이라고 약속의 말씀을 주셨는데 주님께서는 그 약속의 말씀을 어떻게 성취해 나아가고 계셨는 가라는 질문입니다.  그 질문의 대답은 바로 주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보호해 주셨으며 또한 위험해서 건져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이미 묵상한 첫 번째 상황을 보면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교리의 다른 점으로 인하여 큰 분쟁이 일어났을 때 하나님께서는 로마 군대 천부장을 사용하셔서 위태해진 바울을 빼앗아 군영으로 바울을 옮겨주시므로 말미암아 그를 보호해 주셨고 또한 건져주셨습니다(박윤선).  두 번째 상황인 40명이 넘는 바울 죽이기 금식 결사대원들의 위협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어린 조카를 통하여(16-17그들의 음모를 들어나게 하셨고 결국 그 음모를 들은 천부장은 바울을 가이사랴에 있는 총독 벨릭스에게로 무사히 호송하고자 결심하고 큰 규모의 군대를 긴급 준비시켰고(보명200마병70창군200) (23그리고 바울이 친히 타고 갈 말까지 준비하도록 명하였습니다(24).  그리고 그는 유대 총독 벨릭스 각하에게 보낼 공문을 작성하도록 하여(26-30두 백부장의 지휘하에 로마 군인 470명과 함께 바울을 가이사랴까지 무사히 바울을 호성하였습니다(유상섭).  박윤선 박사님의 말씀입니다: “이 때에 백부장이나 천부장이 바울을 보호하기에 전력하였는데(17-19, 22), 일이 이렇게 된 것은 하나님의 특별 간섭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보시다시피 주님께서는 바울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신실하게 지켜 나아가고 계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담대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떠한 어려운 상황에 우리가 처하게 될지라도 우리는 담대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는 주님의 약속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신실하신 주님이십니다.  그가 우리에게 하신 약속을 꼭 성취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주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그 때 그 때 마다 역경에서 나를 건져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비록 너무나 많은 때에 주님께서 담대하라 말씀해 주시고 약속의 말씀을 주신 후 왜 더 전보다 큰 어려움과 고통스러운 일들을 접하게 되는지 그 주님의 뜻을 우리 가 이해하지 못할찌라도 우리가 항상 주님의 뜻 안에 있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담대하게 이겨 나아가십시다.  “…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16:33).

 

 

    다윗과 요나단의 “담대 하라”라는 복음성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영원토록 누리게 하려 함이라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안에서 사랑을 영원토록 누리게 하려 함이라세상에서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축복을 영원토록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축복을 영원토록 누리게 하려 함이라 누리게 하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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