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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ept God’s Invitation to Rest

  https://www.thegospelcoalition.org/article/gods-invitation-rest/ Accept God’s Invitation to Rest August 24, 2025   |    Scott W. Kay © iStock.com/nullplus Share Post Email Advertise on TGC “It feels so nice to finally stop and catch my breath.” Can you remember the last time you had a moment like that? For some of us, it’s been a while. In our hard-working, highly productive culture, we can sometimes feel like exhausted swimmers swept downstream in a fast-moving river, fighting to keep our heads above water, gasping for air. We get up early and stay up late. We never waste a minute. Our schedule is full, running here, running there, running late, running to catch up, running on empty, until we collapse in utter exhaustion. Underneath the satisfaction of being hard-working, hard-playing people is a weariness that’s desperate for the pace to relent so we can rest and recharge. Deep down, we’re  dying  to slow down and take a break. We keep telling ours...

죽음과 부활하심을 예언하심 (2) (마태복음 16장 21-23절)

 죽음과 부활하심을 예언하심 (2)

 

 

 

[마태복음 1621-23]

 

 

            성경 마태복음 1621절을 보십시오: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자신이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을 예언하신 첫 번째 말씀으로서 두 번 더 나옵니다(17:22-23; 20:18-19). 마가복음의 첫 번째 말씀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8:31-32). 마가복음에도 두 번 더 나옵니다(9:30-32; 10:32-34). 누가복음에도 첫 번째 말씀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음: “이르시되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9:22). 이 누가복음의 말씀에는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처럼 예수님께서 비로소 제자들에게 나타내시고/드러내 놓고 말씀을 하셨다고 기록한 내용이 없습니다. 오히려 누가복음에 기록된 두 번째 말씀은 우리가 보기에 정반대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말을 너희 귀에 담아 두라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리라 하시되 그들이 이 말씀을 알지 못하니 이는 그들로 깨닫지 못하게 숨긴 바 되었음이라 또 그들은 이 말씀을 묻기도 두려워하더라”(9:44-45).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의 첫 번째 말씀(16:21; 8:31-32)은 예수님께서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3일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제자들에게 나타내시고/드러내 놓고 말씀을 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는 반면에 누가복음의 두 번째 말씀(9:44-45)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하는데 그 이유가 그들로 깨닫지 못하게 숨긴 바 되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 마태/마가복음의 기록과 누가복음의 기록이 상충되는 것 같이 보이지만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요(딤후3:16) 또한 결코 사람의 뜻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에게 받아 말할 것이기 때문에(벧후1:21, 현대인의 성경) 우리가 믿음으로 전제하는 것을 성경의 기록된 말씀은 결코 서로 상충되거나 반대되는 것이 없습니다. 제 생각엔 누가복음의 두 번째 기록인 이 말을 너희 귀에 담아 두라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리라 하시되 그들이 이 말씀을 알지 못하니 이는 그들로 깨닫지 못하게 숨긴 바 되었음이라 또 그들은 이 말씀을 묻기도 두려워하더라”(9:44-45)는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의 첫 번째 기록과 비교하기보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의 두 번째 기록과 비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태복음의 두 번째 기록을 보십시오: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17:22-23). 마가복음의 두 번째 기록을 보십시오: “그 곳을 떠나 갈릴리 가운데로 지날새 예수께서 아무에게도 알리고자 아니하시니 이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또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더라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두려워하더라”(9:30-32). 이 세 말씀들을 비교해보면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은 예수님께서 두 번째로 자신이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할 것을 예언(말씀)하셨을 때 제자들의 공통된 반응은 그들은 이 말씀을 알지 못했다/깨닫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가복음에서 숨긴 바 되었다는 말씀(9:45)은 예수님께서 의도적으로 제자들에게 그 예언의 말씀을 숨기셨다기보다(그 근거는 이미 예수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누가복음 922절에서 첫 번째 말씀을 하셨기에) 예수님의 제자들의 미련함과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였기에(24:25) 누가는 예수님의 그 예언의 말씀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그 당시에는 깨닫지 못하게 숨긴 바 되었다고 기록했다고 생각합니다(그들이 깨닫지 못함은 예수님이 자신의 고난과 죽으실 것과 부활하실 것을 일부러 그들에게 숨기셨다라기보다 그들 스스로가 미련하고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 이였기에 숨긴바 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죽으심에 대해서 이 때로부터밝히 말씀하시면서 자신이 죽을 장소가 예루살렘임을 말씀하셨는데 그 이유는 바로 예루살렘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예수님의 죽으실 장소였기 때문입니다(16:21). 이 예수님의 죽으실 장소였던 예루살렘은 (1)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실 때 이삭을 번제로 받치라고 지시한 장소였던 모리아 산이요(22:2, 3, 9; 대하3:1), (2) 하나님께서 하나님 보시기에 옳지 않은 다윗의 인구조사로 진노하사 전염병을 내리셨을 때 갓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라고 지시한 장소였던 아리우나의 타작마당이요(삼하24:16), 또한 (3) 솔로몬이 여호와의 전을 건축한 장소였던 예루살렘 모리아 산입니다(대하3:1).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죽을 장소가 예루살렘임을 말씀하셨을 뿐만 아니라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도 말씀하셨습니다(16:21). 예수님께서 죽으신 후 3일 만에 부활하실 것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관한 예언의 말씀은 구약에도 많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 성경 호세아 6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여기서 셋째 날에”[“3일째에”(현대인의 성경)]란 말씀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가리킵니다. 성경 요나 117절과 210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밤낮 삼 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으니라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말씀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 여기서 요나 선지자가 큰 물고기 뱃속에 밤낮 3”(현대인의 성경) 있었다는 말씀과 그 후에 하나님께서 물고기에게 명하셔서 요나를 육지에 토했다는 말씀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3일 후에 부활하실 것을 예표한 말씀입니다. 성경 시편 1610절 현대인의 성경을 보십시오: “주께서 나를 무덤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주의 거룩한 자를 썩지 않게 하실 것이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부활을 예언하는 말씀으로서 사도 베드로가 오순절 날 성령 충만하여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말씀하시면 이 시편 1610절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성경 사도행전 227절 현대인의 성경을 보십시오: “주께서 나를 무덤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주의 거룩한 자를 썩지 않게 하실 것이다.” 사도 바울도 이 시편 1610절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또 다른 시편에 '주의 거룩한 자를 썩지 않게 하실 것이다.' 라고 말씀하신 대로 된 것입니다”(13:35, 현대인의 성경). 성경 시편 110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사도 베드로는 이 시편 1101절 말씀을 사도행전 234-35절 설교 때에 인용했습니다: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실 뿐만 아니라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우편에 계심을 증언한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도 이리 증언했습니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8:34). 이렇게 구약 성경은 미리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예언을 했고 이 예언대로 예수님께서는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신 후 3일 만에 부활하실 것을 예언한 말씀은 신약에도 나옵니다. 성경 고린도전서 153-4절을 보십시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사도 바울은 예수님께서 성경대로죽으시고 또한 성경대로” 3일 만에 부활하심을 증거했습니다. 여기서 성경대로란 구약 성경을 말씀합니다. 구약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우리 대신 죽으실 것을 예언했습니다. 사도신경을 보십시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 우리는 예수님께서 성경대로 죽으시고 성경대로 다시 살아나신 것을 믿음으로 신앙 고백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지 않고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성경대로 죽으시고 또한 성경대로 3일 만에 부활하심을 확신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과 같이 부활할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의 재림 때 우리가 이미 죽어 있다면 주님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날 것입니다(살전4:16)[참고: (고전15: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그러나 만일 우리가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살아 있다면 우리는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어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몸처럼 변화 받을 것입니다. 성경 고린도전서 1551절을 보십시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성경 빌립보서 321절 현대인의 성경을 보십시오: “그분이 오시면 모든 것을 자기에게 복종시킬 수 있는 그 능력으로 우리의 천한 몸을 변화시켜 자기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게 하실 것입니다.” 이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그 날까지 또는 예수님의 재림하시는 그 순간까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인 예수 그리스도의 성경대로 죽으심과 성경대로 부활하심을 전하는 복음 전파자가 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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