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말씀 묵상
블레셋 장군 골리앗을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 승리하여 골리앗을
죽이고 돌아온 다윗을 이스라엘 왕 사울이 대화한 후 사울 왕의 아들인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에게 깊이 끌려 다윗을 자기 생명처럼 사랑하게 되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사무엘상 17:45-51, 57-58; 18:1, 현대인의
성경). 성경은 왜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에게 깊이 끌려 그를 자기 생명처럼 사랑했는지 설명이 없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께서 성령의 열매인 사랑을 맺으시면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다윗과 같은 사람(사도행전 13:22)에게 우리 마음이 깊이 끌리게
하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께서 그 사람을 우리 생명처럼 사랑케 하신다고 생각합니다. 즉,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에게 깊이 끌려 다윗을 자기 생명처럼 사랑하게 된 것은 성령님께서 그리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성령님의 일하심을 더욱더 깊이 경험하고 싶습니다.
요나단은 자기의 마음이 다윗에게 깊이 끌려 그를 자기 생명처럼 사랑하게
되었기에 그와 영원한 우정을 약속하고 자기가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었으며 또 자기 갑옷과 칼과 활과 띠도 주었습니다(사무엘상 18:1, 3-4, 현대인의 성경). 이렇게 요나단처럼 우리를 사랑해 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큰 축복이라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가 요나단과 같은 사람이 되길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께 범죄하고 나서도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들과 모든 군중 앞에서
높임을 받기를 원했던 사울 왕은(사무엘상 15:30, 현대인의 성경)
블레셋 장군 골리앗을 죽인 다음 승리한 이스라엘 군이 돌아올 때 이스라엘의 모든 성에서 여자들이 승전을 축하하면서
"사울이 죽인 자는 수천 명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수만 명이라네"라고 노래했을 때 얼마나 불쾌하였길래 그는 그 때부터 다윗을 계속해서 살인적인 질투의 눈으로 바라보았겠습니까? (18:6-9,
현대인의 성경) 이렇게 사람들 앞에서 높임 받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나보다 다른 사람이 더 높임을 받으면 충분히 질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높임 받기를 좋아하기 보다 하나님에게 높임
받기를 좋아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예수님처럼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우리 자신을 낮춰서 다른 사람을 우리보다 낫게 여기고 우리의 모든 특권을 버리며 종의 모습으로 이웃을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마태복음 20:28; 빌립보서
2:3-8, 현대인의 성경).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우리를 높이실 것입니다(참고:
빌립보서 2:9-11).
이스라엘 여자들에게 자기보다 더 높임을 받은 다윗으로 인해 그 날부터
사울 왕은 다윗을 질투의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다가 바로 그 다음날 하나님이 보낸 악령이 강하게 사울을 사로잡자 그는 마치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지르고 떠들어대다가 자기 곁에 세워 둔
창을 갑자기 다윗에게 던져 다윗을 벽에 박아 버리려고 했습니다. 다윗이 사울이 던진 창을 두 번이나 피해
도망한 것을 보면 사울은 다윗을 두 번이나 죽이려고 창을 던진 것 같습니다(사무엘상 18:6-11,
현대인의 성경). 이렇게 질투라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다윗은 적군인 블레셋 장군 골리앗을 피해 도망가지 않고 오히려 그를 향해 달려갔었는데(17:48,
현대인의 성경) 오히려 아군이 사울 왕으로부터는 피해 도망갔다는 사실입니다(18:11,
현대인의 성경). 이 사실을 생각할 때 어쩔 때는 적군보다 우리를 질투하고 미워하는 아군이 더 위험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사람은 권력을 가진 사울 왕과 같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다윗과 같은 사람입니다(참고: 사무엘상 18:12,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께서 가정의 가장인 우리 남편들/아버지들과 함께하시므로 우리가 식구를 잘 인도하면 우리의 아내와 자녀들도 우리를 사랑할 것입니다(참고: 사무엘상 18:14, 16, 현대인의 성경).
사울 왕은 자기가 직접 창을 던져 다윗을 두 번이나 죽이려 다가 실패하자
블레셋 사람의 손에 죽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한 과정에 사울 왕은 자기의 딸까지 다윗에게 아내로 주겠다고 말했습니다(사무엘상
18:17, 현대인의 성경). 이렇게 사울은 자기가 질투하고 두려워하는 다윗을 죽이고자 자기 딸뿐만 아니라 적군인 블레셋 사람들까지 이용했습니다. 그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다윗을 죽이려고 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우리를 두려워하고 질투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 우리를 해치려고 수단방법을 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울이 왕이 되기 전에는 “나는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도 가장 작은 베냐민 지파 출신이며 게다가 우리 가족은 우리 지파의 모든 집안 중에서도 가장 보잘것 없는
집안인데 어째서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까?”라고 사무엘 선지자에게 말했는데(사무엘상 9:21, 현대인의 성경) 흥미로운 점은 다윗도
사울 왕에게 “내 아버지(이새)의 집안은 보잘것 없습니다”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18:18,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께서는
세상 사람들 보기에나 자기 스스로 보기에 보잘것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택하여 주님의 도구로 사용하신다는 말씀이 생각납니다(고린도전서 1:28, 현대인의 성경). 그러나 만일 우리가 스스로 보잘것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가
교만해져서 보잘것 있는 사람이라고 내세우게 되면 우리는 더 이상 주님의 도구로 쓰임 받지 못하고 사람들의 도구로 쓰임 받을 것입니다.
사울 왕은 자기가 질투해서 죽이려고 한 다윗을 자기 딸 미갈이 사랑하는
것을 듣고 기뻐하여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또 한 번의 기회가 왔구나! 내가 미갈을 다윗에게 주고 딸을 이용해서 그를 함정에 빠뜨려
블레셋 사람의 손에 죽게 해야지”(사무엘상18:20-21, 현대인의
성경). 우리를 질투하고 두려워하는
사람은 틈만 보이면 우리를 함정에 빠뜨려서 우리를 해하려고 기회만 엿보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정말 우리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우리를 질투해서
우리는 해하려고 하는 속셈일 수도 있습니다(참고: 사무엘상 18:22,
25, 현대인의 성경).
사울 왕은 꾀를 부려 다윗을 죽이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윗과 함께하셔서 그로 하여금 사울의 모든 신하보다 더 지혜롭게 행하게 하시므로 다윗의 이름이 심히 귀하게 되게 하셨습니다(사무엘상 18:17-25, 28, 30). 사람의 꾀는 하나님의 지혜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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