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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은혜스러운 말씀은 지혜의 말씀이요 능력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은혜스러운 말씀은 지혜의 말씀이요 능력의 말씀 입니 다 .   지혜의 하나님이시요 능력의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은혜스러운 말씀 자체가 지혜요 능력 입 니다 .   그 말씀 , 그분의 가르치심을 듣고 감탄한 회당 안에 모였던 사람들처럼 지금도 교회당에 모여 하나님의 종을 통하여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이요 능력의 말씀인 하나님의 은혜스러운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아 새찬송가 200 장 “ 달고 오묘한 그 말씀 ” 을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찬양드릴 수 있길 기원합니다 : (1 절 )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생명의 말씀은 귀한 그 말씀 진실로 생명의 말씀이 나의 길과 믿음 밝히 보여주니 , ( 후렴 ) 아름답고 귀한 말씀 생명 샘이로다 아름답고 귀한 말씀 생명 샘이로다 .    

짧은 말씀 묵상 (2023년 2월 3일)

짧은 말씀 묵상

 

 

 

요나단은 자기 아버지인 사울에게 자기가 자기 생명처럼 사랑하는 다윗에 대해 칭찬하면서 다윗은 "죄 없는 사람"이며 "그가 아버지를 해칠 만한 일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사무엘상 19:4-5, 현대인의 성경).  다윗은 요나단에게 "내가 무엇을 했느냐?  내 죄가 무엇인데 너의 아버지(사울)는 그처럼 나를 죽이려고 하느냐?"라고 말했습니다(20:1, 현대인의 성경).  다윗은 사울 왕에게 죽임을 당할 만한 죄를 범한 것이 없었습니다.  요나단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울 왕은 다윗을 죽이고 싶어했습니다.  그 이유는 사울은 다윗을 질투했고(18:9, 현대인의 성경) 또한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15).  이유 없이 우리를 미워하고 괴롭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 사람에게 잘못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도 말입니다.  우리는 충분히 억울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2 19-20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억울하게 고난을 받더라도 하나님을 생각하고 슬픔을 참으면 이것은 칭찬할 만한 일이지만 죄가 있어서 벌을 받고 참으면 무슨 자랑거리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선한 일을 하다가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칭찬을 받을 만한 일입니다."

 

요나단은 죽음 일보 직전에 있었던 다윗에게 "네가 원하는 것은 내가 무엇이든지 하겠다"고 말했습니다(사무엘상 20:3-4, 현대인의 성경).  그 이유는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처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18:1,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죽음 일보 직전에 있는 사람을 알게 하실 때에 우리는 그 사람에게 요나단과 같은 친구가 될 수만 있다면 좋겠습니다.

 

요나단은 자기 아버지인 사울이 언제나 그가 하는 일을 사소한 것까지 모두 자기에게 말해준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요나단은 사울이 자기가 사랑하는 다윗을 죽이려고 하는 음모를 결코 꾸미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나단은 다윗에게 "이런 일(다윗을 죽이려고 하는 음모)이라고 해서 나에게 숨길 리가 없어.  결코 그렇지 않을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이 자기와 요나단과의 우정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사울이 아들 요나단의 마음을 상하게 할까 봐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음모를 요나단에게 알리지 않은 것뿐임을 알고 있었습니다(사무엘상 20:1-3, 현대인의 성경).  아무리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좋아서 사소한 것까지 모두 다 대화를 한다 할지라도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자기 생명처럼 사랑하는 친구를 죽이려고 하는 음모를 대놓고 아들에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아버지는 아들의 마음을 상하게 할까 봐 말 못하는 것이 분명히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는 하나 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이사야 53:10).  그 이유는 우리의 죄악 때문입니다(5).  ,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에게 담당시키시사(6) 십자가에서 죄를 속하는 희생제물이 되게 하셨습니다(10, 현대인의 성경).  그러므로 우리가 속량 곧 죄사함을 받았고(에베소서 1:7; 골로새서 1:14) 의롭게 되었습니다(이사야 53:11).  

 

요나단은 언약으로 맺는 자신의 형제인 다윗의 부탁을 들어주었습니다.  물론 그 이유는 그는 다윗을 자기 생명처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요다난은 다윗이 말한대로 만일 자기 아버지 사울이 다윗을 죽일 계획(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즉시" 다윗에게 알려줘서 다윗으로 하여금 도망가게 하려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요나단은 자기가 사랑하는 다윗을 자기 아버지인 사울의 손에서 건져내고 싶었습니다(사무엘상 20:8-12, 현대인의 성경).  사랑하는 친구의 부탁을 들어주는 요나단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친구를 자기 생명처럼 사랑하는 요나단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친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기를 기원합니다.  디모데전서 2 4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고 진리를 알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요나단과 다윗의 우정(friendship)에서 배우는 것은 주님 안에서 우정이란 서로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베푸는 것뿐만 아니라 가족에게도 사랑과 친절을 베푸는 것입니다(참고: 사무엘상 20:14, 현대인의 성경).

 

아버지 사울은 아들 요나단에게 노발대발하면서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이 미친 놈아! 네가 네 자신의 수치와 네 어미의 수치도 모르고 천한 이새의 아들 쪽을 택한 것을 내가 모를 줄 아느냐?  그 녀석이 살아 있는 한 너는 절대로 왕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당장 가서 그를 끌어오너라.  그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사무엘상 20:30-31, 현대인의 성경).  이 말씀을 묵상할 때 (1) 사울의 분노는 하나님의 의로운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야고보서 1:20, 현대인의 성경).  오히려 사울의 분노는 잔인하고 파괴적이었습니다(잠언 27:4, 현대인의 성경).  그러나 요나단을 향한 사울의 분노는 다윗을 향한 질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4, 현대인의 성경; 참고: 사무엘상 18:9, 현대인의 성경), (2) 미친 사람은 아들 요나단이 아니라 아버지 사울이었습니다, (3) 수치를 알아야 할 사람은 아들 요나단이 아니라 아버지 사울이었습니다, (4) 요나단이 아버지 사울보다 친구 다윗을 선택한 것은 올바른 선택이었습니다, (5) 이미 하나님은 사울을 버리고(사무엘상15:23) 다윗을 왕으로 선택하셨는데(16:12) 사울은 자기 아들 요나단이 왕이 되길 원했습니다, (6) 다윗이 죽은 것은 하나님의 의로운 뜻이 아니라 사울의 뜻이었습니다, (7) 결국 다윗이 아니라 사울이 죽습니다(31:5).

 

다윗을 죽이고자 하는 사울에게 요나단은 자기가 생명처럼 사랑하는 친구 다윗을 칭찬하면서 "아버지, 신하 다윗을 해하지 마십시오. 그가 아버지를 해칠 만한 일은 조금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최선을 다해서 모든 일에 아버지를 도와주지 않았습니까?  그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않고 나가서 골리앗을 죽인 것과 그리고 그 결과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 큰 승리를 주셨던 일을 잊으셨습니까?  아버지는 그때 무척 기뻐하셨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아버지는 이제 와서 그처럼 죄 없는 사람을 죽여 범죄하려고 하십니까?  그럴 만한 이유가 전혀 없지 않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사무엘상 19:4-5, 현대인의 성경).  그런데 요나단은 자기 아버지 사울이 자기에게 노발대발하면서 "이 미친 놈아! 네가 네 자신의 수치와 네 어미의 수치도 모르고 천한 이새의 아들 쪽을 택한 것을 내가 모를 줄 아느냐?  그 녀석이 살아 있는 한 너는 절대로 왕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당장 가서 그를 끌어오너라. 그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라고 말했을 때에도 또 다시 사울에게 "어째서 그가 죽어야 합니까?  그가 잘못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고 따졌습니다(20:30-32, 현대인의 성경).  사랑하는 친구 다윗을 응호(defend)하는 요나단을 생각할 때 가난한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주시며 궁핍한 자의 자손을 구원하며 압박하는 자를 꺾으시는 하나님을 생각하게 됩니다(시편 72:4).

 

다윗을 죽이려고 단창을 그에게 던졌던 사울은(사무엘상 18:11, 19:10) 자기 아들인 요나단까지 죽이려고 그에게 단창을 던졌습니다(20:33).  그러나 다윗뿐만 아니라 요나단도 죽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치시사 죽이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에게 구원(영생)을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자기 아버지 사울이 자기가 생명처럼 사랑하는 친구 다윗을 정말 죽이기로 결심한 것을 알게 된 요나단은 대단히 화가 나서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그처럼 다윗을 모욕하는 자기 아버지의 태도를 보고 무척 마음이 상했기 때문이었"습니다(사무엘상 20:33-34, 현대인의 성경).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어머니를 모욕하는 우리 아버지의 태도를 보고 무척 마음이 상할 수 있습니다.

 

요나단은 자기 아버지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결심한 것을 알고 나서는 자기 생명처럼 사랑하는 다윗을 떠나보냈어야 했습니다.  다윗은 요나단 앞에 무릎을 끊고 땅에 엎드려 세 번이나 절한 후 다윗과 요나단은 서로 붙들고 입을 맞추며 흐느껴 울기 시작했는데 다윗이 더욱 심하게 울었습니다.  이 때 요나단은 다윗에게 "'잘 가거라.  우리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서로의 우정을 약속하고 너와 나 사이에, 그리고 네 자손과 내 자손 사이에 여호와께서 영원한 증인이 되실 것이라고 말하였다"라고 말한 후 그들은 서로 헤어졌습니다(사무엘상 20:41-43, 현대인의 성경).  이렇게 헤어진 후 요나단은 자기 아버지 사울과 함께 블레셋 사람들과의 전쟁에서 죽었습니다(사무엘하1:4).  그 사실을 알게 된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을 애도하는 노래를 지었는데 그 노래에 죽은 사랑하는 요나단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더하였도다"[(현대인의 성경) "내 형제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위해 슬퍼하노라. 그대는 나에게 얼마나 사랑스러웠던고! 나에 대한 그대의 사랑이 여인의 사랑보다 깊지 않았던가!](26).  오늘의 우리의 만남과 헤어짐이 이 땅에서는 마지막이 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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