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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은혜스러운 말씀은 지혜의 말씀이요 능력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은혜스러운 말씀은 지혜의 말씀이요 능력의 말씀 입니 다 .   지혜의 하나님이시요 능력의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은혜스러운 말씀 자체가 지혜요 능력 입 니다 .   그 말씀 , 그분의 가르치심을 듣고 감탄한 회당 안에 모였던 사람들처럼 지금도 교회당에 모여 하나님의 종을 통하여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이요 능력의 말씀인 하나님의 은혜스러운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아 새찬송가 200 장 “ 달고 오묘한 그 말씀 ” 을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찬양드릴 수 있길 기원합니다 : (1 절 )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생명의 말씀은 귀한 그 말씀 진실로 생명의 말씀이 나의 길과 믿음 밝히 보여주니 , ( 후렴 ) 아름답고 귀한 말씀 생명 샘이로다 아름답고 귀한 말씀 생명 샘이로다 .    

짧은 말씀 묵상 (2023년 2월 8일)

짧은 말씀 묵상

 

 

 

분리의 산”(“셀라하마느곳”)이라고 불린 곳에서 다윗을 잡으려고 포위망을 좁히고 있었던 사울 왕과 그의 군대로 다윗을 건져 내신 하나님께서는(사무엘상 23:26-28, 현대인의 성경) “들 염소 바위가 있는 곳에서 사울 왕을 다윗에게 넘겨주셨지만(24:4, 9, 18) 다윗은 사울의 옷자락만 살며시 잘랐고 그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다윗은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기름부터 세우신 왕을 해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임을 알고 있었고(6, 9, 현대인의 성경) 또한 그를 아꼈기 때문이었습니다(9, 현대인의 성경).  자기를 해치려는 원수조차도 아끼는 다윗을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하나님과 원수 된 우리(로마서 5:10)를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신 것이 생각났습니다(요한복음 3:16).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핍박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마태복음 5:44, 현대인의 성경).

 

다윗은 자기를 죽이려고 찾아 헤매는 사울 왕(사무엘상 24:11, 현대인의 성경)이 용변을 보려고 공교롭게도 자기와 자기의 부하들이 숨어 있는 곳에 들어왔을 때(3, 현대인의 성경) 자기의 부하들은 이제 당신의 때가 왔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원수들을 당신에게 넘겨 줄 테니 좋을 때로 하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하고 속삭이므로 살금살금 사울에게 다가가서 그의 옷자락을 살며시 잘랐습니다(4, 현대인의 성경).  그런데 그 후에 다윗은 양심의 가책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다윗은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왕을 해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6, 현대인의 성경).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다윗의 부하들이 말한 것처럼 과연 지금이 바로 그때요 다윗의 때(“당신의 때”)였는가 라는 의문이 듭니다.  그들이 말한 그때또는 다윗의 때는 다윗이 사울 왕을 죽이는 때요 원수인 사울에게 복수할 수 있는 때였을 것입니다.  한 마디로, 그때라 사울이 죽임을 당하는 때였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엔 그것은 하나님의 때가 아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다윗이 사울 왕을 죽일 수 있었던 때는 하나님의 때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보기에 하나님의 때와 하나님이 보시기에 하나님의 때가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염두 해 둬야 합니다.  또 한가지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저는 요즘에도 다윗처럼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우신 하나님의 종을 해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이라는 것을 알고 혹여나 마음 속으로라도 주님의 종에게 라가”(: 머리가 빈, 헛된, 무가치한)라고 생각하든지 미련한 놈이라고 생각한 것(5:22)을 깨닫고 양심이 가책을 느끼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분명히 다윗의 부하들은 사울 왕이 자기들이 숨어 있는 동굴의 깊숙한 곳까지 용변을 보려고 들어왔을 때 하나님께서 원수인 사울을 다윗의 손에 넘겨주셨다고 생각하고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하고 다윗에게 속삭였습니다(사무엘상 24:3-4, 현대인의 성경).  그런데 다윗은 사울의 옷자락만 살며시 베고 나서 양심의 가책을 받아 그의 부하들에게 사울을 해하지 말라고 설득했습니다(4-7, 현대인의 성경).  저는 다윗의 말에 설득을 당하여 사울을 차마 죽일 수가 없었던 다윗의 부하들(7, 현대인의 성경)을 생각할 때 마치 다윗이 사울 왕에게 충실한 자”(22:14)였던 것처럼 다윗의 부하들도 다윗에게 충실한 자들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또한 다윗이 자기의 부하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설득한 것을 볼 때 잠언 1623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과 욥기 625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이 마음에 다가옵니다: “지혜로운 사람의 말은 언제나 신중성이 있고 설득력이 있다”(잠언16:23), “진실한 말은 설득력이 있는 법이다. …”(욥기6:25).

 

비록 사울 왕은 다윗을 죽이려고 찾아 헤맸지만 다윗은 사울 왕을 해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사울 왕에게 범죄한 일이 없었습니다(사무엘상 24:11, 현대인의 성경).  창세기 5019절 말씀이 생각납니다: “형님들은 나를 해치려고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셔서 오늘날 내가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현대인의 성경).  이 말씀들을 묵상할 때 상대방이 우리를 해치려고 할지라도 우리는 똑같이 상대방을 해치려고 하므로 하나님께 범죄하기보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어떻게 선으로 바꾸셔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로마서 12:2)을 이루실지 기도하며, 기대하며, 기다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윗은 사울 왕에게 범죄한 일이 없었습니다(사무엘상 24:11, 현대인의 성경).  그는 결백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재판장이 되셔서 자기와 사울 왕 사이를 판단(심판)하사 자기의 사정을 살펴 억울함을 풀어주시고 자기를 사울 왕의 손에서 건져 주실 뿐만 아니라 자기를 위하여 사울 왕에게 보복하실 것이기에 자기가 자기 손으로 사울 왕을 해하지 않았습니다(12, 15).  만일 우리가 결백하면 우리는 다윗처럼 재판장이신 하나님께 우리와 우리를 해하려는 사람 사이에 잘못된 자를 가려내시고 우리의 사정을 살펴 억울함을 풀어주시고 우리를 그 해하려는 사람에게서 구해 주시길 기원해야 합니다.

 

다윗은 사울 왕에게 옛날 속담인 악은 악인에게서 나온다라고 말했고, 사울 왕은 다윗에게 네가 악을 선으로 갚는 것을 보니 나보다 낫구나라고 말한 것(사무엘상 24:13, 17, 현대인의 성경)을 보면 사울 왕은 자기가 악인임을 인정한 것 같습니다.  그런 악인을 다윗이 선대한 것을 보면 예수님의 말씀처럼 원수를 사랑하며 우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해야 한다(누가복음 6:27)는 교훈을 받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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