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말씀 묵상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들은 예루살렘에 머물고 백성 가운데 제비를
뽑아 10분의 1은 예루살렘에 와서 살게 하며 그 나머지 백성은 각자 자기 성에 머물러 있게 했습니다. 그런데 백성들 가운데 “자진해서” 예루살렘에 살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을 칭찬했습니다(느헤미야 11:1-2, 현대인의 성경).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자진해서 교회 중심된 신앙생활을
하겠다고 나서는 그리스도인들은 칭찬을 받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회 안에서 남이 시키는 것을 기다리지 아니하고 스스로 나서서
주님과 주님의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겸손히 신실하게 섬기는 자들은 주님께서 칭찬하실 것입니다.
성가대원들은 예스라히야의 지휘 아래 힘차게 찬송하였고 그 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많은 제물로 제사를 드리고 즐거워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큰 기쁨을 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여자들과 아이들까지 다 함께 어울려 즐거워하였으므로 그들이
기뻐서 외치는 소리가 멀리까지 들렸습니다(느헤미야 12:42-43, 현대인의 성경).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우리 승리 성가대원들이 박덕영 전도사님의 지휘 아래 힘차게 찬송하고 우리 온 교인들이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우리 온 교우 식구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큰 기쁨으로 말미암아 다 함께 사랑으로 어울려 즐거워하며 기뻐서 감사의 찬양의 큰 소리가
찬양 동영상을 통해서라도 수많은 이들에게 들려지길 기원합니다.
주님께서 계속해서 우리 교회의 찬양 사역자들을 통해 찬양의 기적을 이루실 뿐만 아니라 우리 모든 찬양 동역자들의
삶과 가정 안에서도 또한 가정을 통해서도 찬양의 기적을 이루시길 기원합니다.
또 그 날에 예물과 첫 열매와 십일조를 보관하는 성전 창고를 맡을
사람들을 뽑아 각 성의 농가로 돌아다니며 율법에서 제사장과 레위 사람의 몫으로 규정한 것을 거두어 창고에 들여놓도록 하였습니다. 모든 유다 사람들이 성전에서 섬기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좋게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느헤미야 12:44, 현대인의 성경).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주님의 교회를 섬기는 주님의 종들은
모든 교회 성도님들이 좋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돼야 한다는 교훈을 받습니다. 달리 말한다면, 온
교회 식구들이 주님의 교회를 섬기는 주님의 종들로 말미암아 즐거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개역개정)
“… 이는 유다 사람이 섬기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기 때문이라”].
성가대원들이 다윗과 솔로몬이 정한 규정에 따라 자기들의 임무를 잘
수행하였습니다. 오래 전 다윗과 아삽 때부터 이 성가대에는 대장이 있어서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와 찬양의 노래를 지도하였습니다(느헤미야 12:45-46, 현대인의 성경).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성가대 지휘자는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와 찬양의 노래를 지도해야 하며 성가대원들은 성가대 지휘자가 정한 규정에 따라 자기들의
임무를 잘 수행해야 한다는 교훈을 받습니다.
출애굽 당시에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게 하였지만 하나님은 그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느헤미야 13:1-2, 현대인의 성경).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비록 세상 사람들이 우리 기독교인들을 저주한다 할지라도 주님께서는 그 저주를 돌이켜 우리에게 복이 되게 하신다는 교훈을 받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율법의 말씀을 듣고 모든 이방 민족들을 자기들과
분리시켰습니다(느헤미야 13:3, 현대인의 성경).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우리 성도들은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받습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없었을 때 이스라엘의 대적(원수)인 도비야는 제물로 바칠 곡식, 향,
성전 기구, 레위 사람과 성가대원과 문지기에게 주는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
그리고 제사장들에게 주는 예물을 보관하도록 되어 있는 큰 방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도비야로 하여금 그 큰 방을 사용하도록 한 사람은 바로 성전
골방을 맡은 제사장 엘리아십이었는데 그는 도비야와 오랫동안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온 사람이었습니다. 느헤미야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때 엘리아십이 하나님의
성전에 있는 방을 도비야에게 제공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분노를 금할 수가 없어서 도비야의 모든 물건을 밖으로 집어 던지고 명령하여 그 방을 정결하게
한 다음 성전 기구와 제물로 바칠 곡식과 향을 다시 들여놓았습니다(느헤미야 13:4-9, 현대인의 성경).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제사장 엘리아십은 이스라엘의 대적(원수)인 도비야와
관계를 끊었어야 했는데(또는 자기 자신을 도비야로부터 분리시켰어야 했는데) 오랫동안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왔다는 그 자체가 문제였다고 생각합니다. 제사장 엘리아십은 그리 못했기에 결국에 가서는 그 “큰 방”을 도비야에게 제공하여 사용하도록 한 것입니다. 어떻게 이스라엘의 대적(원수)으로 하여금 그 큰 방을 사용하도록 할 수 있었을까요? 이것은 마치 주님의 종인 목사님이 우리의 원수인 사탄의 종을
우리 교회 안으로 초청한 것이나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그 결과 그 사탄의 종이 교회 안에서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느헤미야처럼 분노를 금할 수 없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사탄의 종을 교회 밖으로 좇아내고 또한
그의 모든 물건 등을 교회 밖으로 집어 던져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회개하여 우리 마음과 교회를 정결하게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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