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말씀 묵상
아하수에로 왕이 하만의 말을 조소를 내려 12월 13일 하루 동안 페르시아 제국 안에 있는 남자 여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유다 사람들을
모조리 죽이고 그들의 재산을 약탈하도록 했다(에스더 3:13, 현대인의
성경)은 것을 알고 모르드개는 자기 옷을 찢고 삼베 옷을 입은 다음 티끌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대성 통곡하였습니다(4:1,
현대인의 성경). 유다 사람들은 크게 통곡하고 금식하며 울부짖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삼베 옷을 입은 채 재에 뒹굴었습니다(3절, 현대인의 성경).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어쩌면 모르드개의 입장에서 자기가
아하수에로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하만에게 꿇어 절하지 않으므로 하만으로 하여금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올라 결국 모든 유다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게
되었다(3:2-6, 현대인의 성경)고 생각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중요한 것은 모르드개나 유다
사람들은 (대성) 통곡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그들이 상심하고 슬펐으면(애도했으면) 그리 통곡하고 울부짖었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 기억으로는 제가 평생에 딱 한 번 통곡 기도를 드린 것
같습니다. 그 때는 바로 첫째 아기
주영이가 제 품에서 죽었을 때였습니다.
모르드개의 관한 일을 전해 들은 에스더는 크게 근심하며 모르드개에게
갈아 입을 옷을 보냈으나 그는 그것을 거절했습니다(에스더4:4, 현대인의
성경).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으로 인해 크게 근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그 큰 근심이 우리 마음을 너무나 괴롭게 하면 우리의 영혼은 어느 누구의 위로도 거절할 수밖에 없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저의
생각의 근거는 시편 77편 2절 말씀입니다: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를 찾았으며 밤에는 내 손을 들고 거두지 아니하였나니 내 영혼이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In
the day of my trouble I sought the Lord; In the night my hand was stretched out
without weariness; My soul refused to be comforted”(NASB)]. 우리는 우리의 영혼이 위로 받기를 거절할 정도로 괴로울 때가
있습니다. 그 때 오직 주님만이 우리의
영혼을 위로하실 수 있습니다.
에스더는 자기를 보살피는 왕의 내시 하닥을 통해 모르드개가 무슨 일로
그처럼 슬퍼하는지 가서 알아오라고 지시했습니다. 모드드개는 하닥에게 자기에게 일어난 일과 하만이 유다 사람들을 몰살시키기 위해 국고에 들여놓겠다고 약속한 돈의 정확한 액수까지 말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유다 사람들을
몰살하라고 수산성에 내린 조소 사본을 하닥에게 주며 “이 모든 상황을 에스더에게 설명하고 에스더가 황제(아하수에로 왕)에게 가서 자기 민족을 구해 달라는 간청을 하게 해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에스더 4:5-8, 현대인의 성경).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왜 슬퍼하는지를 알아봐야 한다는 교훈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하는 사람은 우리에게 왜 슬퍼하는지를 마음 문을 열고 진솔하게 나눌 필요가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에게 간청할 때 우리는 그의
부탁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르드개가 하닥을 통해 에스더에게 아하수에로 왕에게 가서 자기 민족을
구해 달라는 간청을 하게 해달라고 부탁했을 때 에스더는 왕이 부르지도 않았는데 자기가 왕에게 나아가면 죽임을 당하도록 되어있고 왕이 자기를 부르지
않은 지가 30일이나 되었다고 말을 전했습니다. 이 말을 전해 들은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회답하기를 “네가 황궁에 있다고 해서 모든 유다 사람들
가운데 너 혼자만 살아남을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이런 때에 네가 말없이 가만히 있으면 우리 유다 사람들은 다른 방법으로 구원을 받을 것이지만 너와 네 집안은 패망하게 될 것이다.
황후가 된 것이 이런 때를 위한 것인지 누가 아느냐?”(에스더 4:8-14, 현대인의 성경)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에스더의 입장에서는 아하수에로
왕에게 나아가는 것은 죽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는 것과 그녀는 모든 유다 사람들 가운데 자기 혼자만 왕궁에서 살아남을 줄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와
왕후가 된 것은 전멸당할 뻔한 유다 백성들을 건지는데(구원하는데)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기 위해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께서 요셉을 이집트에 앞서 보내셔서 이집트의 총리가 되게 하시므로 그의 아버지 야곱(이스라엘)과 그의 형제들과 자녀들 등을 건지신(구원하신)
것을 생각나게 만들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위기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건지심(구원하심)에 있어서 우리를 사용하신다고 믿습니다.
에스더는 모르드개에게 회답하여 모든 유다 사람들을 모아 자기를 위해
밤낮 3일 동안 금식 기도해 주길 부탁했습니다. 자기도 자기 시녀들과 함께 금식한 후 자기가 법을 어기는 한이 있더라도 아하수에로 왕에게 나아가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죽으면 죽으리이다”라는 결심을 했습니다(에스더 4:15-16, 현대인의
성경).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비록 국무총리 하만은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올라 모르드개만 아니라 페르시아 제국 안에 있는 모든 유다 사람들을 전멸시키기로 결심했지만(3:5-6,
현대인의 성경)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이다”라고 결심하고 모든 유다 사람들을 살리려고 아하수에로 왕이 자기를 부르지도 않았는데 법을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기로 결심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 나를 위해 자기 생명을 버리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마태복음 16:25,
현대인의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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