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나무에 잎사귀와 열매가 없을지라도 ...
장인 어르신이 걸을 좀 걸을실 수 있으셨을 때 집 뒷 뜰에 있는 한 나무에다가 물을 주신 적이 있으십니다. 그 때 저는 장인 어르신의 뒤에서 물호수를 들고 장인 어르신을 따라 그 한 나무에 물을 주시는데 보조했습니다. 근데 그 한 나무는 열매도 없을 뿐만 아니라 가지에 잎사귀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장인 어르신을 그 나무에 물을 주셨습니다.
주님의 사랑이라 생각합니다. 주님이 나같은 죄인을 사랑하시되 열매없고 잎사귀 없는 그 나무와 같은데도 불구하고 주님은 지금도 저에게 사랑의 물을 계속해서 부어주시고 계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오늘 새벽에 묵상한 히브리서 12장 2-3절 말씀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신 성자 예수님(빌2:8)은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히12:2). 자기 백성에게 오셨지만 영접을 받지 못하시고 (요1:11) 오히려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크게 소리 질렀던 불순종하고 거역하는 자들을(19:6) 십자가게 못박히셔서도 하나님 아버지께 그들의 죄를 사하여 주시길 기도하셨습니다(눅23:24). 어떻게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용서하실 수 있으셨을까요? 어떻게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우리들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실 수있으셨을까요?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히12:2)["그분은 장차 누릴 기쁨을 위하여 ..."(현대인의 성경)].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참으실 수 있으셨던 것은 그분이 장차 누릴 기쁨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기쁨이 무엇이었을까요? 하나님 아버지께서 사랑하사 창세 전에 선택한 우리를 구원하시는 기쁨이 아니었을까요? (엡 1:4)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함 받는 기쁨이 아니었을까요? (엡 1:7) 우리를 용서하시고 용납하시는 기쁨이 아니었을까요? (골 3:13) 하나님과 원수였던 죄인들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기쁨이 아니었을까요? (롬5:10; 8:21) 장차 우리가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사는 기쁨이 아니었을까요? 하박국 3장 17-18절 말씀이 생각납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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