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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에 대한 나의 고민

  https://youtu.be/7gw7qr-zJsA?si=UYNXPlNlgtI1j3Cg

“어쩌면 하나님께서 내가 당하는 어려움을 보시고 …” (사무엘하 16장 12절)

“ 어쩌면 하나님께서 내가 당하는 어려움을 보시고 … ”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하고” [( 현대인의 성경 ) “어쩌면 여호와께서 내가 당하는 어려움을 보시고 오늘의 이 저주로 인해서 나를 축복해 주실지도 모른다” ]( 사무엘하 16 장 12 절 ).       오늘 이 시간 우리 모두 저주의 나무 ( 신 21:23) 인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예수님을 생각하십시다 .   당시 유대인들의 관점에서는 나사렛 예수가 자칭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여 신성모독 죄 ( 마 26:65)) 로 하나님께 저주를 받아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   그러나 참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저주의 나무인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이유는 영원히 저주받아 영원히 멸망 받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   우리는 충분히 저주를 받아 마땅한 이유가 있지만 예수님께서는 저주의 나무에 죽으실 아무 이유도 없으심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걸머지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   그 이유는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임한 저주를 돌이켜 우리에게 영생의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 신 23;5, 느 13:2, 엡 1:3ff).   이 영생의 축복과 모든 영적인 축복을 받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로서 까닭 없는 비난을 받고 욕을 먹으며 심지어 저주를 받을지라도 묵묵히 주님의 말씀에 복종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   우리가 그렇게 하기 위해선 우리는 신뢰하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또한 신뢰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   오늘 본문 사무엘하 16 장 12 절을 보면 다윗은 아비새와 그의 모든 신하들에게 (1...

“어쩌면 하나님께서 내가 당하는 어려움을 보시고 …” (2) (사무엘하 16장 12절)

“ 어쩌면 하나님께서 내가 당하는 어려움을 보시고 … ” (2)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하고” [( 현대인의 성경 ) “어쩌면 여호와께서 내가 당하는 어려움을 보시고 오늘의 이 저주로 인해서 나를 축복해 주실지도 모른다” ]( 사무엘하 16 장 12 절 ).       둘째로 , 우리 하나님은 그 저주 때문에 선으로 우리에게 갚아 주십니다 .   달리 말한다면 , 우리 하나님은 저주를 돌이켜 우리를 축복해 주십니다 .   잠언 26 장 2 절을 보면 성경은 “까닭 없는 저주는 참새가 떠도는 것과 제비가 날아가는 것 같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   여기서 “까닭 없이 저주”하는 사람은 미련한 사람이요 그 저주는 공의롭지 않은 저주 (an unjust curse ) 일 수밖에 없습니다 .   성경은 이 미련한 사람의 공의롭지 않는 저주는 마치 “참새가 떠도는 것과 제비가 날아가는 것 같”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 잠 26:2).   무슨 뜻입니까 ?   여기서 참새가 “떠도는 것”은 ‘목적이 없기’ (aimless) 때문입니다 .   그러기 때문에 목적 없이 하늘에서 떠도는 참새는 어디에 착륙 (landing) 해야 할지 몰라 그냥 허공에서 맴돕니다 .   바로 까닭 없는 저주가 그렇다는 말입니다 .   즉 , 목적이 없다는 것은 저주의 실패를 상징합니다 .   그래서 성경은 “까닭 없는 저주는 …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   다시 말하면 , 공의롭지 않은 저주는 그대로 성취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   예를 들어 , 골리앗이 블레셋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했지만 ( 삼상 17:43-44), 다윗은 도리어 승리...

좋은(선한) 영향을 끼치면서 살다가 주님 앞에서 설 때에 ...

좋은(선한) 영향을 끼치면서 살다가 주님 앞에서 설 때에 ...  아버지 다윗이 아들 솔로몬에게 한 유언 내용 중에는 세 사람의 이름을 언급했습니다 : (1) 요압 , (2) 바실래 , (3) 시므이 .   다윗은 솔로몬에게 그 세 사람들 중에 요압과 시므이는 지혜로운 아들 솔로몬이 지혜롭게 다루어 그들의 죄에 대한 벌 (punishment) 을 내릴 것을 유언했습니다 .   그리고 나머지 한 사람인 바실래는 그의 아들들에게 상급 (reward) 을 내리되 그들에게 친절을 베풀어 그들로 하여금 솔로몬의 식탁에 앉아 먹게 하라고 유언했습니다 ( 열왕기상 2:5-9, 현대인의 성경 ).   저는 이 다윗의 유언의 말씀을 묵상할 때 다윗은 죽기 전까지 이 세 사람을 잊지 못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   그 정도로 이 세 사람들은 다윗의 삶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합니다 .   물론 그 큰 영향도 두 명은 나쁜 영향을 끼쳤고 나머지 한 명은 좋은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합니다 .   그리고 다윗은 지혜로운 아들 솔로몬 왕이 그 세 사람들에게 공의를 행하길 원했던 것 같습니다 : 다윗은 자신에게 나쁜 영향을 끼친 요압과 시므이에게는 형벌을 내리고 , 자신에게 좋은 영향을 끼친 ( 호의를 베푼 ) 바실래에게는 그의 아들들에게 상급을 내려라 .   우리는 바실래처럼 사람들에게 좋은 ( 선한 ) 영향을 끼치면서 살다가 주님께서 천국으로 오라고 하셔서 주님 앞에 설 때에 주님께 칭찬과 상급을 받을 수 있길 기원합니다 .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다 보시고 “오늘의 이 저주로 인해서” 우리를 “축복”해 주신 하나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다 보시고 “오늘의 이 저주로 인해서” 우리를 “축복”해 주신 하나님 아버지  아비새가 가서 당장 다윗왕을 저주한 죽은 개 같은 시므이의 목을 베고 싶어했을 때 다윗왕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 “ 이건 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다 .   여호와께서 나를 저주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가 나를 저주하고 있다면 누가 그에게 네가 어째서 이렇게 하느냐 ? 고 말할 수 있겠느냐 ?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나를 죽이려고 하는데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야 말할 게 있겠느냐 ?   여호와께서 저에게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니 내버려 두어라 .   어쩌면 여호와께서 내가 당하는 어려움을 보시고 오늘의 이 저주로 인해서 나를 축복해 주실지도 모른다 .”   그래서 다윗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아무 말없이 길을 갔으나 시므이는 비탈길로 계속 따라오면서 여전히 저주하고 돌을 던지며 티끌을 날렸 ” 습니다 ”( 사무엘하 16:10-13, 현대인의 성경 ).   저는 시므이가 비탈길로 계속 다윗왕을 따라오면서 여전히 그를 저주하고 돌을 던지켜 티끌을 날렸음에도 불구하고 다윗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 아무 말없이 ” 길을 갔다는 말씀을 묵상할 때 이사야 53 장 7 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 “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   그리고 저는 “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나를 죽이려고 하는데 …” 라는 말씀을 묵상할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 “ 사랑하고 기뻐하는 내 아들 ”( 마태복음 3:17, 현대인의 성경 ) 이라고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 ” 다 ( 이사야 53:10) 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   그리고 저는 “ 어쩌면 여호와께서 내가 당하는 어려움을 보시고 오늘의 이 저주로 인해서 나...

죽은 개 같은 자를 위해 자신의 몸을 단번에 저주의 나무인 십자가에 드리신 예수 그리스도

죽은 개 같은 자를 위해  자신의 몸을 단번에 저주의 나무인 십자가에 드리신 예수 그리스도 시므이가 다윗왕을 저주했을 때 아비새는 다윗 왕에게 “ 어째서 왕은 이 죽은 개 같은 녀석이 왕을 저주하도록 내버려 두십니까 ?   제가 가서 당장 저놈의 목을 베겠습니다 ” 라고 말했습니다 ( 사무엘하 16:9, 현대인의 성경 ).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1) 아비새는 다윗왕을 저주하는 시므이를 가리켜 “ 이 죽은 개 같은 녀석 ” 이라고 말했는데 다윗이 사울 왕에게 “ 어째서 왕은 죽은 개나 벼룩 같은 자를 쫓고 있습니까 ?”( 사무엘상 24:14, 현대인의 성경 ) 라고 말한 것이 생각납니다 .   사울 왕은 " 죽은 개나 벼룩 " 같은 다윗을 쫓아 죽이려고 했지만 만 왕의 왕이신 예수님은 " 죽은 개나 벼룩 " 같은 나를 살리시려고 이 낮고 낮은 천한 세상까지 오셔서 저주의 나무인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   (2) 다윗이 아비새와 함께 사울왕의 진지까지 갔었을 때 아비새가 다윗에게 “ 하나님이 오늘 당신의 원수를 당신에게 넘겨주셨습니다 .   그러므로 내가 가서 저 창으로 그를 찔러 땅에 꽂겠습니다 .   두 번 찌를 것도 없이 단번에 해치우겠습니다 ” 라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 사무엘상 26:8, 현대인의 성경 ).   이 아비새란 인물은 다윗에게 충성심이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   그래서 그는 다윗의 원수를 “ 단번 ” 에 해치우길 원했고 또한 다윗을 저주한 자도 “ 당장 ” 가서 목을 베고 싶어했던 것 같습니다 .   (3) 그러나 아비새는 자기가 보기에 “ 다윗의 원수 ” 였던 사울 왕을 “ 단번 ” 에 해치우지 못했습니다 .   그 이유는 다윗이 “ 그건 안 된다 .   그를 죽이지 말아라 .   여호와께서 택하신 왕을 해하는 자가 어찌 죄가 없겠느냐 ?   분명히 말하지만 여호와께서 그를 치실 것이니 그는 죽을 때가 ...

시므이의 다윗 왕 저주와 저주의 나무인 십자가에 죽으신 다윗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

시므이의 다윗 왕 저주와  저주의 나무인 십자가에 죽으신 다윗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 다윗 왕이 압살롬으로부터 도망가고 있었을 때 사울이 집안 사람 중 하나인 시므이라는 자가 다윗과 그의 신하들에게 돌을 던지면서 다윗을 저주했습니다 : “ 살인자여 !   악한이여 !   여기서 사라져라 !   여호와께서 사울과 그 가족을 죽인 죄를 너에게 갚으셨다 .   네가 사울의 왕위를 빼앗았으나 이제 여호와께서 그것을 너의 아들 압살롬에게 주었구나 !   너는 사람을 죽인 죄로 이제 벌을 받아 망하게 되었다 !”( 사무엘하 16:5-7, 현대인의 성경 ).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1) 시므이이가 다윗왕을 저주한대로 다윗은 “ 살인자여 악한 ” 이라고 생각합니다 .   제가 그리 생각하는 이유는 다윗은 충성된 군인 우리아를 죽였기 때문이요 또한 우리아의 장례를 마친 후 사람을 보내 우리아의 아내인 밧세바를 왕궁으로 데려와 자기의 아내로 삼았을 때 성경은 “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 ” 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1:27).   (2) 그러나 시므이가 다윗에게 “ 여호와께서 사울과 그 가족을 죽인 죄를 너에게 갚으셨다 ” 라고 저주한 내용이나 “ 네가 사울의 왕위를 빼앗았으나 이제 여호와께서 그것을 너의 아들 압살롬에게 주었구나 !” 라는 내용은 동의를 할 수가 없는 것은 다윗은 사울과의 그 가족을 죽이지 않았고 또한 사울의 왕위를 빼앗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사울과 그 가족은 블레셋 사람들과의 전쟁에서 죽었고 ( 사무엘상 31:1-6) 또한 사울의 왕위는 사울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하나님께서 그에게서 하나님의 은총을 빼앗았기에 ( 사무엘하 7:15) 그가 왕위를 빼앗긴 것입니다 .   (2) 그리고 시므이는 다윗왕에게 “ 너는 사람을 죽인 죄로 이제 벌을 받아 망하게 되었다 !” 고 저주했는데 실제로 다윗왕은 밧세바를 간음하고 그 간음죄를 덮...

"그 저주 때문에 ..."

"그 저주 때문에 ..."  시므이는 계속해서 도망가는 다윗 왕을 저주했습니다 . 그 저주의 내용 중 이런 말이 있습니다 : " 너는 피를 흘린 자이므로 화를 자초하였느니라 ."   물론 시므이는 사울의 친족 한 사람으로서 다윗이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흘린 것을 말한 것이지만 저는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것을 덮고자 그녀의 남편이요 다윗의 충성된 군인인 우리아의 피를 흘린 것이 생각났습니다 .   그 결과 다윗은 화를 자초하되 자기의 아들 압살롬이 자기의 생명을 해하려고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 참고 : 삼하 12:9-12). 다윗은 ' 하나님께서 시므이에게 자기를 저주하라 명령하신 것이니 .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고 스루야의 아들들에게 말했습니다 .   그는 "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주시리라 " 고 말했습니다 ( 삼하 16:5-12).   하나님께서는 저주의 나무인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 때문에 우리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