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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votional Reflection Based on the Incident of Peter Cutting Off Malchus's Ear:

Devotional Reflection Based on the Incident of Peter Cutting Off Malchus's Ear: “Then one of those standing near drew his sword and struck the servant of the high priest, cutting off his ear.” ( Mark 14:47, Today's Korean Version ) 1. Identifying the People Involved: The person who stood beside Jesus and drew the sword was Simon Peter . The servant of the high priest was named Malchus . “Then Simon Peter, who had a sword, drew it and struck the high priest’s servant, cutting off his right ear. The servant’s name was Malchus.” ( John 18:10 ) 2. Jesus' Response to Peter's Action: (a) Jesus said: “Permit even this.” ( Luke 22:51, KJV: “Suffer ye thus far”; RSV: “No more of this” ) The Greek words clarify this: “ἕως τούτου” (“heōs toutou”) = “up to this point” or “even this” “ἐᾶτε” (“eate”) = “allow it,” “let it be,” “leave it alone” Therefore, Jesus is essentially saying: “Let them do what they are doing. Do not resist any further.” “If ...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현대인의 성경)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아라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Do not boast about tomorrow, for you do not know what a day may bring forth)(잠언 27 1).

 

    

고 안희숙 사모님이 작사한 복음 성가 내일 일은 난 몰라요” 1절 가사가 이렇습니다: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 불행이나 요행함도 내 뜻대로 못해요 험한 이길 가고 가도 끝은 없고 곤해요 주님 예수 팔내미사 내 손 잡아 주소서 내일 일은 난 몰라요 장래 일도 몰라요 아버지여 날 붙드사 평탄한 길 주옵소서.”  저는 고 안희숙 사모님이 쓰신 죽으면 죽으리라는 책을 읽었던 기억도 납니다.  이번 설교를 준비하면서 다시금 죽으면 죽으리라는 책에 대해서 인터넷에서 뒤져보면서 고 안사모님의 신앙에 대해서 좀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인터넷).  그녀가 31살 때인 일제 말엽인 1939년 전교생이 합동으로 신사에 가서 행했던 신사참배시 의연히 꼿꼿하게 하나님 이외의 어떤 신에게도 절을 하지 않는 믿음의 절개를 보이며 신사참배를 거부하여고 또한 제74회 일본제국회의 때 의사당에서 ‘일본은 유황불로 망한다는 여호와 하나님의 대사명을 전하고 그 자리에 체포 투옥되 평양 형무소에서 6년 옥고를 치루셨다고 합니다.  그녀는 감옥에서 주님의 참사랑을 몸소 실행하였을 뿐만 아니라 또한 각색 죄수들과 간수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는데 그들에게 하나님과의 사랑을 회복시키셨던 놀라운 사건들이 죽으면 죽으리라에 실려 있습니다.  흥미로왔던 점은 죽으면 죽으리라는 책을 쓰셨을 뿐만 아니라 내일 일은 난 몰라요란 복음성가를 작사한 고 안희숙 사모님은 1945년 사형집회 몇 시간을 앞두고 8.15 광복과 함께 8 17일 출옥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 분이 작사한 내일 일은 난 몰라요 장래 일도 몰라여 하루하루 살아요 …’란 복음성가 가사가 그녀의 삶 속에 체험해서 나온 가사라는 것을 우리도 좀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고 있습니까?  과연 장래 일을 아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성경 전도서 8 7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아무도 모르는데 누가 장래 일을 말해 줄 수 있겠는가?”(현대인의 성경)[(개혁개정) “사람이 장래 일을 알지 못하나니 장래 일을 가르칠 자가 누구이랴”].  성경은 아무도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어느 누구도 장래 일을 알아서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믿지 않고 장래 일을 말해준다고 거짓말을 하는 점쟁이(fortune-teller)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참으로 어리석은 행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는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서 예언의 기도를 받는 것을 그대로 믿는 것도 지혜로운 처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성경 전도서 8 14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현대인의 성경) “일이 잘되어 갈 때는 기뻐하고 어려움을 당할 때는 생각하라하나님은 행복도 주시고 고난도 주시므로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사람은 알 수가 없다”].  분명히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형통(일이 잘되어가는 것)과 곤고(어려움)를 병행하게 하신 것입니다.  저는 그 한 예로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이란 인물이 생각납니다.  성경 창세기 39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요셉은 형통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39:2, 3, 23).  이렇게 형통했던 요셉의 삶 속에 유혹이 있었고(7-12그 유혹을 뿌리쳐 도망갔었던 요셉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에 갇혔습니다(13-20).  요셉에게는 형통한 날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곤고한 날도 있었습니다(8:14).  좀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므로 형통하였던 요셉의 삶에는 곤고한 일이 많았습니다.  그는 17살 때 10명의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죽임을 당할 뻔하다가(37애굽 사람 보디발 집에 팔렸습니다(39:1).  그리고 그는 30살 때 애굽의 총리가 되기까지 13년 동안 곤고한 일을 당합니다.  이렇게 형통함과 곤고함을 당한 요셉왜 하나님께서 그의 주권적인 뜻 안에서 요셉에게 형통함과 곤고함을 허락하신 것일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장래 일을 헤아릴 수 없는 요셉으로 하여금 오직 하나님만 믿게 하기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결국 요셉은 그의 나이 39세 때( 22년 후)에야 하나님께서 왜 자기를 애굽에 보내셨는지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뜻은 바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그의 형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그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였습니다(45:5, 7).  오직 하나님만이 요셉의 장래 뿐만 아니라 우리의 장래를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만 의지하면서 하루 하루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잠언 27장 1절을 보십시오: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현대인의 성경)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아라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성경은 우리에게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우리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람은 참 미련한 것 같습니다.  그 한 예가 누가복음 12장 16-21절에 나오는 한 부자의 비유입니다.  그 비유의 내용은 밭에 소출이 풍성한 한 부자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어서 어떻게 할까 고민할 때에 그는 자기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지어 자기의 모든 곡식과 물건을 쌓아 둬야 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마치 이 세상의 부패한 부자들이 합법적인 은행 구좌들 외에 조세피나처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어 나라에 세금을 내지 않고 자신들의 욕심을 만족하고자 돈을 더욱더 많이 모으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게 한 후 그 부자는 편안히 쉬면서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려고 했습니다(16-19).  그 때 하나님께서는 그 부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아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아가면 네가 지금까지 쌓아 둔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20현대인의 성경).  하나님께서는 이 미련한 부자를 가리켜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는 자요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21).  또 다른 예는 야고보서 4 13-16절 말씀입니다: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현대인의 성경) “'오늘이나 내일 어떤 도시에 가서 한 해 동안 장사하여 돈을 벌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여내 말을 들어 보십시오.  여러분은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여러분은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안개에 지나지 않습니다.  '주님의 뜻이라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하겠다.'고 말해야 할 여러분이 도리어 허영에 들떠 자랑만 하고 있으니 그런 것은 다 악한 일입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은 우리는 허탄한 자랑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16).  특히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 사업가들에게 적용이 많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이 그들에게 가르쳐 주는 교훈은 자신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고( 49:6, 9:23) 또한 자신의 재물을 의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49:6).  오히려 성경은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자랑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고후10:17),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고후11:30).  우리는 우리의 강한 것들을 자랑하는게 아니라 우리의 약한 것을 자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랑하되 주님 안에서 자랑해야 합니다.  성경 예레미야 9 23-24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우리는 자랑하되 하나님을 아는 것을 자랑해야 합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그리스도인 사업가는 사업을 하여 이익을 남기고자 이런 저런 계획을 세워야겠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항상 자신의 생명은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라는 사실입니다(4:14).  그래서 사도 야고보는 주님의 뜻이라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고 말하는 마음 자세와 습관을 가져야 한다고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15).  이러한 마음 자세로 우리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오늘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우리는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27:1).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 하루 살아요 …”,

 

 

제임스 김 목사 나눔

 

(2016 4 13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께 나의 미래를 다 맡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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