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비딤”의 역사 (2)
[출애굽기 17장 1-7절]
어려운 일이 참 많은 세상입니다. 그 어려운 일을 당하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의 나눔 소리를
들으면 들을 수록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실히 필요하기에 그들의 기도 부탁대로 주님 안에서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에 저는 개인적으로 새 찬송가 384장 2절 가사 내용을 믿음으로 붙잡고 기도하고 싶습니다: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어려운 일 당한 때도 족한 은혜 주시네 나는 심히 고난하고 영혼 매우 갈하나 나의 앞에 반석에서
샘물 나게 하시네(2x).” 제가 이
찬송가 가사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저희 교회 고 안덕일 전도사님께서 질병으로 인해 병원에 입원해 계셨을 때 둘이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 이
찬송을 하나님께 찬양 드렸을 때 비록 안 전도사님께서 어려운 일을 당하고 계시지만 하나님께서 전도사님에게 “족한 은혜”를 주시길 기원케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안 전도사님을 호스피스에서 불러
가시기 전에 그 호스피스를 하나님의 성소로 삼게하시사(참고: 시63:2)
안 전도사님의 식구와 함께 약 2시간 동안 하나님을 찬양케 하시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저는 지금도
사랑하는 지체들이 어려운 일을 당하는 가운데 저에게 기도를 부탁할 때 이 찬송가 가사대로 그들 각자에게 하나님께서 족한 은혜를 베풀어 주시길 기원하고
있습니다. 특히 사랑하는 식구의 암
투병 등 질병으로 고생하므로 당사자나 간호하는 모든 식구가 심히 고단하여 심신이 지쳐갈 때에 “나는 심히
고난하고 영혼 매우 갈하나 나의 앞에 반석에서 샘물 나게 하시네”란 찬송가 가사처럼 하나님께서 반석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고전10:4)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게 하시사(요7:38) 그들의 모든 영적 갈증을 해갈해 주시길 기원하는 것입니다.
저는 지난 주 토요 새벽기도회 때 오는 본문인
출애굽기 17장 1-7절 말씀 중심으로 “르비딤”의 역사 (1)”라는 제목 아래 3가지 중 한 가지인 “첫째로, 우리는 궁핍함 속에서 충분히 다투고 원망(불평)할 수가
있습니다”라는 것을 생각했었습니다. “르비딤”(뜻: 원기 회복)이란 곳에는 마실 물이 없어서(1절, 현대인의 성경)
목마른 이스라엘 백성들(3절, 현대인의 성경)이 모세와 다투어 하나님을 시험하고(2절) 모세를 원망[“불평”(현대인의 성경)]을 했던 것처럼(3절) 우리도 궁핍함 속에서 충분히 그들처럼 다투고 원망(불평)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 본문 말씀을 묵상하면서 3가지 교훈을 받았었습니다: (1)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와 다툰 것(2절)은 하나님과 다툰 것(7절, 현대인의 성경)이라는 사실을 생각할 때 우리가 주님이 가정에 세우신 가정인 남편/아버지나 교회에 세우신 목사님과 장로님과 다투는 것은 그들을 세우신 주님과 다투는 것입니다. (2) 이스라엘 백성처럼 주님이 세우신 지도자와 다투고(2절) 그 지도자를 불평하기보다(3절, 현대인의 성경)
모세처럼 하나님께 부르짖는 게(4절, 현대인의
성경) 훨씬 낫습니다.
(3) 불평은 하나님을 불신하는 것이지만 감사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나머지 2가지를
생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궁핍함 속에서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출애굽기 17장 7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모세는 그 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고 불렀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와 다투고 시험하여 '여호와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느냐, 계시지 않느냐?' 하고 떠들어댔기 때문이었다.” 르비딤에서 마실 물이 없으므로 모세와 다투었던 이스라엘 백성(1-2절)은 하나님과 다투고 하나님을 시험하였습니다(7절,
현대인의 성경). 그들은 “여호와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느냐, 계시지 않느냐?”하고 떠들어댔습니다(7절, 현대인의 성경).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이 떠들어댄 원인은 그들은 하나님을 불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그들이 불신했는가
하면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계심을 의심하고 불신했습니다.
그랬기에 그들은 하나님과 다투고 하나님을 시험했던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창세기 28장 15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킬 것이며 너를
다시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겠다.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행할 때까지는 너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행하여 가고 있었던 야곱에게 꿈에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으로서
하나님의 약속은 (1) 하나님께서 야곱과 함께 하시겠다는 것과 (2) 하나님께서 야곱이 어디로 가든지 야곱을 지킬 것이다 라는 것과 (3) 하나님께서 야곱을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하시겠다는 것과 (4)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약속하신 것을 다 이행할 때까지는 야곱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얼마나 확고한 하나님의 약속입니까. 민수기 23장 19절 말씀이 생각납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이사야 55장 11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도 생각납니다: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내 뜻을 이루며 내가 의도한 목적을 성취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하신 약속을 반드시 성취하시는 진실하시고
진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야곱의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이 바로 저의 하나님이시기에 저는 주님께서 저에게 1987년 승리장로교회 대학부 수련회
때 저 개인에게 주신 요한복음 6장 1-15절의 약속의 말씀과 2003년 교회 갱신 목회자 협의회 수련회 때 승리장로교회에게 주신 마태복음 16장 18절의 약속의 말씀을 반드시 성취하실 줄 믿습니다.
주님께서는 오병이어의 약속의 말씀(요6:1-15)을 성취하시기 전까지는 저를 천국으로 불러가지 않으실 줄 믿습니다. 그러기에 저는 시편 기자처럼 “주는 나에게 약속하신 모든 것을 이행하실 것입니다”(시138:8상, 현대인의 성경)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저를 향하신 주님의 사랑은 영원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8절, 현대인의 성경).
영원한 사랑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신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부르시고(출3-4장)
그를 이집트로 보내시사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건져내어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인도하심에 있어서 그들을 그냥 광야에서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그들과 항상 함께하셔서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 결코 하나님은 그들을 떠나지 않으시고 그들 가운데 항상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르비딤에서 마실 물이 없어서
하나님을 시험하여 “여호와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느냐, 계시지 않느냐?”하고 떠들어댔습니다(17:7, 현대인의 성경).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에서 물이 나오게 하시사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그 물을 마시게
하시므로(6절) 그들 가운데 계심을 확증하셨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이 맛사 또는 므리바에서
하나님을 시험한 후에 아말렉 사람들이 와서 르비딤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공격하였다는 것입니다(8절,
현대인의 성경). 마실 물이 없어 불평하던 이스라엘 백성의 입장에서는 또 다른 불평의 이유가 생긴 것이겠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계심을 그들에게 더 확실하게 알려주기 위해서였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리 생각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아말렉군을 쳐서 완전히 무찌르게 하셨기 때문입니다(13절, 현대인의 성경). 그래서 모세는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뜻: 여호와는 나의 승리 또는 깃발)라고 불렀습니다(15절).
신명기 6장 16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맛사에서처럼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마십시오.” 여기서 “맛사”라는 원어 히브리어의 뜻은 “시험하다”입니다. 맛사에서 하나님을 시험했던 이스라엘 백성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시험해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는 그들처럼
주님을 시험하지 맙시다”(고전10:9, 현대인의 성경).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마4:7).
마지막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행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출애굽기 17장 6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내가 시내산 바위 위에서 네 앞에 서겠다. 너는 그 지팡이로 바위를 치라. 그러면 바위에서 물이 나와 백성이 마실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모세는 이스라엘 장로들이 보는 앞에서 그대로
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이 마실 물이
없으므로 모세와 다투고 “’어째서 당신이 우리를 이집트에서 끌어내어 우리와 우리 자녀와 가축이 다 목말라
죽게 하십니까?’하고 불평하였”을 때 모세는 하나님께 “’내가 이 백성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얼마 안 가서 그들이 나에게 돌질할 것입니다.’ 하고 부르짖”었습니다(3-4절, 현대인의 성경). 그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너는 백성들 앞으로 가거라. 네가 갈 때는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나일강을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거라. 내가 시내산 바위 위에서 네 앞에 서겠다. 너는 그 지팡이로 바위를 치라. 그러면 바위에서 물이 나와 백성이 마실 수 있을 것이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5-6절, 현대인의 성경).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몇 가지 교훈을 받습니다:
(1) “너는 백성들 앞으로 가거라”(5절 상반절,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로서 그들 앞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얻는 교훈은 가정의 지도자인 남편/아버지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앞장서서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를 이끌어야 한다(lead)는 교훈을 받습니다. 이 교훈을 교회에도 적용한다면 교회의 지도자인 목사님과 장로님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앞장서서 교인들을 이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도자는 지도해야 합니다.
지도자는 따르는 자들 앞으로 가야 합니다. 그는 앞장서서 이끌어야 합니다. 따르는 식구나 교인이 다투고 불평한다 할지라도 지도자는 앞장서서
그들을 이끌어야 합니다.
(2) “네가 갈 때는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나일강을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거라”(5절 하반절,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
앞으로 갈 때에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그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모세의
지팡이를 9절에 가서 보면 “하나님의 지팡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가지고 가라는 “네 지팡이”(5절)은 “하나님의 지팡이”(9절)요 애굽과 바로의 세상 앞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났던 지팡이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생명의 신으로 떠받들던 나일 강을 피로 물들이며
먹지 못할 물로 만들었던 지팡이입니다”(인터넷). 또한 이 하나님의 지팡이는 하나님께서 모세로 하여금 홍해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하라”고 말씀하신 후
“너는 네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물이 갈라지게 하라”고 말씀하시사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마른 땅을 밟고 바다를 지나가게 하셨습니다(14:15-16,
21-22, 현대인의 성경). 이렇게 사람의 눈에는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지팡이라 할지라도 그 지팡이가 하나님의 지팡이요 하나님께서 쓰시겠다고 말씀하신 지팡이라면
전능하신 하나님은 지팡이와 같은 저와 여러분을 충분히 사용하시사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나타내실 수 있으십니다. 그러므로 지도자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앞장서서 따르는
자들을 이끌어야 합니다. 달리 말한다면,
지도자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믿는 임마누엘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앞장서서 따르는 자들을 이끌어야 합니다.
(3) “내가 시내 산 바위 위에서 네 앞에 서겠다. 너는 그 지팡이로 바위를 치라. 그러면 바위에서 물이 나와 백성이 마실 수 있을 것이다”(6절,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너는 그 지팡이로 바위를 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과연
모세는 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게 쉬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마실 물이 없어서 모세와 다투고 모세에게 불평하면서 얼마 안 가서 그들이 모세에게 돌질할 정도의 상황이었는데(2-4절, 현대인의 성경) 어떻게 모세는 그런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 지팡이로 바위를 칠 수 있었겠습니까. 그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따라 시내산까지 왔었을텐데 그들 보는 앞에서 자신의 지팡이로 바위를 친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기에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이었겠습니까. 만일 모세가 그들을 인식하고 그들의 눈치를 보았다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자신의 지팡이로 바위를 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믿음으로 이스라엘 장로들이 보는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행했습니다(6절, 현대인의 성경). 가정과 교회의 지도자들도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행해야 합니다.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원기 회복”이라는
뜻을 가진 “르비딤”에서 마실 물이 없어 모세와 다투고 하나님과 다투면서
불평하고 하나님을 시험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는 이거 없고 저거 없어서 하나님과 다투면서 불평하고 하나님을 시험해서는 아니 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궁핍함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때에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기도 응답을
받았을 때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행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반석에서 물을 내셨던 하나님께서 반석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고전10:4)의 말씀대로 우리 마음 속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올 것입니다(요7:38, 현대인의 성경).
“나의 반석이신 하나님 행하신 모든 것 완전하시니 나의 생명 되신 하나님 내게 행하신 일 찬양합니다. 신실하신 하나님 실수가 없으신 좋으신 나의 주~
(2x)”를 찬양하는 마음으로,
제임스
김 나눔
(2022년 10월 15일, 궁핍함 속에서도 불평하지 않고, 하나님과도 다투지 아니하고 또한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길 기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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