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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인 바른 생각의 씨앗을 부지런히 부릴 때 ...

이렇게 성경적인 바른 생각의 씨앗을 부지런히 부릴 때 우리는 행동이라는 열매를 맺게 되는데 그 행동이 라는 열매는 말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진실하게 사랑하는 것이요 ( 요일 3:18, 현대인의 성 경 ), 지혜롭게 행동하는 것이요 ( 골 4:5, 현대인의 성경 ), 거룩하게 행동하는 것이요 ( 벧 전 1:15, 현대인의 성경 ),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동하는 것이요 ( 골 3: 17, 현대인의 성경 ), 단정하게 행동하는 것이요 ( 롬 13:13, 현대인의 성경 ), 분수에 맞는 행동이요 ( 민 16:3, 6, 현대인의 성경 ), 진정으로 회개했다는 것을 보여줄 만한 바른 행동입니다 ( 눅 3:8).

주간 짧은 말씀 묵상 (2025년 6월 9-13일)

주간 짧은 말씀 묵상

 

 

 

겟세마네라는 곳에 이르렀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기도하는 동안 너희는 여기 앉아 있거라.” 하시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몹시 괴로와하시며 그들에게 지금 마음이 너무 괴로와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어라.” 하셨습니다.  그리고서 예수님은 조금 나아가 땅에 엎드려서 수만 있으면 고난의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빌며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무슨 일이나 하실 있지 않습니까?   고난의 잔을 내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마가복음14:32-36, 현대인의 성경)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1)   마가는 예수님께서 겟세마네라는 곳에 기도하러 가셨다(마가복음14:32, 현대인의 성경) 말하였는데 누가는 예수님이 습관대로 감람산에 셨다(누가복음22:39, 현대인의 성경) 말하였습니다.  말씀을 종합해서 묵상할 우리가 있는 것은 예수님은 감람산의 작은 동산인 겟세마네에 습관대로 가셔서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조용하고 한적한 곳이었던 겟세마네에 자주 가셔서(요한복음18:1-2)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a)   우리가 생각의 씨앗을 뿌리면 행동이라는 열매를 얻고, 행동이 반복되면 습관이 되고, 습관이 모여 성품이 되고, 결국 성품이 우리의 인생을 만들어낸다”(인터넷). 

(i)                  저는 글을 묵상할 성경적인 바른 생각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성경 말씀으로 말한다면, 히브리서 3 1 하반절 말씀과 빌립보서 4 8 말씀입니다: “…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히브리서3:1), “마지막으로, 형제자매 여러분, 무엇이든지 참된 것과, 무엇이든지 경건한 것과, 무엇이든지 옳은 것과, 무엇이든 순결한 것과, 무엇이든 사랑스러운 것과, 무엇이든지 명예로운 것과, 덕이 되고 칭찬할 만한 것이면, 모든 것을 생각하십시오”(빌립보서4:8, 새번역). 

(ii)                이렇게 성경적인 바른 생각의 씨앗을 부지런히 부릴 우리는 행동이라는 열매를 맺게 되는데 행동이라는 열매는 말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진실하게 사랑하는 것이요(요한일서3:18, 현대인의 성경), 지혜롭게 행동하는 것이요(골로새서4:5, 현대인의 성경), 거룩하게 행동하는 것이요(베드로전서1:15, 현대인의 성경),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동하는 것이요(골로새서3:17, 현대인의 성경), 단정하게 행동하는 것이요(로마서13:13, 현대인의 성경), 분수에 맞는 행동이요(민수기16:3, 6, 현대인의 성경), 진정으로 회개했다는 것을 보여줄 만한 바른 행동입니다(누가복음3:8, 현대인의 성경).

(iii)              이러한 행동이 반복되면 습관이 되는데 습관들이란 행동으로 진실하게 사랑하는 습관과 지혜롭게 행하는 습관과 거룩하게 행하는 습관과 모든 일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하는 습관과 단정하게 행동하는 습관과 분수에 맞게 행동하는 습관과 바르게 행하는 습관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모이기를 중단하지 말고 서로 격려하여 주님이 오실 날이 가까울수록 더욱 모이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히브리서10:25, 현대인의 성경).

(iv)              이러한 습관이 모여 성품이 되야 하는데 성품이란 타락한 성품(로마서8:3, 현대인의 성경)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베드로후서1:4, 새번역).  이러한 성품이 결국 우리의 인생을 만들어냅니다. 

(b)   우리는 예수님을 본받아 조용하고 한적한 곳에 자주 가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제가 제안하고 싶은 것은 3 가지입니다.  3가지는 바로 조용한 시간(Quiet time) 조용한 장소(Quiet place) 가서 조용한 마음(Quiet heart)으로 은밀한 중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는 습관을 가지는 것입니다. 

(i)                  예수님께서 조용한 시간에 조용한 곳에서 조용히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 기도하셨다는 말씀을 묵상할 헨리 나우웬이 외로운 광야를 고독의 동산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여기서 외로움과 고독의 다른 점은 외로움은 홀로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지만 고독은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광야도 아닌 도시 한복판에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외로움을 느낀다는 사실입니다.  광야에서의 외로움보다 무서운 군중 속에서의 외로움을 우리는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서운 사실은 이러한 군중 속에서의 외로움을 우리는 고독의 동산으로 바꾸지 못하는 무능력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 우리는 기도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대화하는 대신 가까운 친구들에게 말하기를 좋아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보다는 사람의 음성을 듣기를 좋아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간보다 사람들과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있는 시간을 선호합니다.  임마누엘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심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 때에 어쩌면 이유는 우리가 고독을 즐기지 못하면서 외로움은 너무나도 싫어하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외로움도 익숙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조용한 시간에 조용한 곳에서 조용한 마음(quiet heart)으로 홀로 있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훈련 가운데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을 경험하므로 외로운 광야를 고독의 동산으로 바꾸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         홀로 조용한 시간에 조용한 곳에서 기도하시면서 하나님 아버지와 친밀한 교제를 나누신 것이 예수님의 모든 사역(공생애) 가장 중요한 중추(backbone)였다고 생각하기에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조용한 시간에 조용한 곳에서 기도하면서 주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습관을 갖도록 힘써야 합니다. 

(2)   예수님은 몹시 괴로와하시며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에게 지금 마음이 너무 괴로와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어라.” 하셨다(마가복음14:34, 현대인의 성경) 말씀을 2가지로 묵상하고 싶습니다:

(a)   첫째로, 예수님의 괴로운 마음에 대해서 묵상하고 싶습니다.  예수님은 몹시 괴로와하시며라고 현대인의 성경은 번역을 했는데 개역개정은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33)하고 번역을 했습니다.  마태는 고민하고 슬퍼하사”(마태복음26:37)하고 말하였는데 여기서 고민하고 극심한 불안과 근심을 뜻하는 말이며(빌립보서 2:26), “슬퍼하사 마음에 갈피를 잡을 없을 만큼의 깊은 슬픔을 의미합니다(호크마).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에게 지금 마음이 너무 괴로와 죽을 지경이다”(마태복음26:38; 마가복음14:34, 현대인의 성경)하고 말씀하셨는데 얼마나 마음이 괴로우셨으면 죽을 지경이다하고 말씀하셨을까요?  이유가 무었이었을까요? 

(i)                  호크마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 앞에 닥친 고난과 죽음의 무게 앞에서 예수는 거의 무너질 지경이었다.”  실로 예수께서 지금과 같이 곤경에 처한 적은 없었다.  바야흐로 예수의 수난의 고통이 실제적으로 시작되고 있는 장면이다.  그런데 이때 예수께 있어서 죽음의 육체적 고통은 물론이지만 그것보다도 한층 심한 고통이 되는 것은 인류의 죄를 지고 스스로 죄인이 되어(고후5:21) 하나님으로부터 저주(詛呪) 받은 되는 것이었다( 3:13).  정녕 고통이야 말로 견딜 없는 고통으로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나를 버리십니까?"(27:46)라는 십자가상의 절규에서 고통의 절정을 이루게 된다”(호크마).

(b)   둘째로,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어라”(마가복음14:34, 현대인의 성경)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싶습니다.  마태는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어라”(마태복음26:38, 현대인의 성경)하고 기록하였습니다.  마태는 마가와 달리 나와 함께라는 말씀을 추가로 기록한 것입니다.  누가는 마태와 마가와 달리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누가복음22:40, 현대인의 성경) 예수님의 말씀을 추가로 기록하였습니다.  호크마의 말입니다: “여기서 시험이란 닥칠 체포와 고난을 뜻한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체포되신 , 이로 인해 제자들이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여 자신을 버리고 도망할 것을 이미 아셨고 따라서 그들이 낙심하고 절망하며 시험에 들지 않기를 주의시키신다.  아울러 예수 자신도 심각한 고난과 시험을 직면하여 함께 기도하신다”(호크마).  말씀들을 종합해서 묵상할 우리가 적용할 있는 교훈은 우리는 시험에 들지 않도록 정신 차리고 깨어 있어서 조용한 장소에서 조용한 시간에 임마누엘 믿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i)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잠자고 있을 것이 아니라 깨어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데살로니가전서5:6, 현대인의 성경), “ 영혼아, 깨어라! 비파야, 수금아, 깨어라! 내가 새벽을 깨우리라!”(시편57:8, 현대인의 성경), “기도에 힘을 쓰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깨어 있으십시오”(골로새서4:2, 새번역), “그러므로 깨어 있어라.  어느 날에 너희 주님이 오실지 너희는 알지 못한다”(마태복음24:42, 현대인의 성경), “그러니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있도록, 기도하면서 깨어 있어라”(누가복음21:36, 새번역).

(3)   예수님께서 기도하셨던 장소: 마가는 예수님이 조금 나아가땅에 엎드려서 수만 있으면 고난의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빌며 기도하셨다(35, 현대인의 성경)하고 말하고 있는데 누가는 예수님이 제자들을 떠나 돌을 던지면 닿을 정도의 떨어진 으로 가셔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다(누가복음22:41, 현대인의 성경)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호크마에 의하면 거리는 30-50m 사이의 짧은 거리였을 것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깊은 밤중에 극한 심적 갈등을 겪으시며 간구하시는(히브리서 5:7) 예수님의 기도 소리는 제자들의 귀에 또렷이 들렸을 것이며 애타는 심정은 그들 제자들의 마음에 넉넉히 전달될 있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호크마).

(4)   예수님의 기도의 자세: 마가는 예수님께서 땅에 엎드려서”(마가복음14:35, 현대인의 성경) 기도하셨다고 말하고 있는데, 마태는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기도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마태복음26:39).  그리고 누가는 무릎을 꿇고기도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누가복음22:41).  호크마에 의하면 유대인의 기도 자세에는 서서 손을 들고 하는 기도(마가복음 11:25), 무릎 끓어서 하는 기도(사도행전 7:60; 에베소서 3:15)등이 있다고 합니다.  실로 주님께서 머리를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였다는 것은 자신을 완전히 비운 절대 겸손의 표시로서 성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이고 적극적인 복종의 표현이라고 합니다(호크마).

(5)   예수님의 기도의 내용: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무슨 일이나 하실 있지 않습니까?   고난의 잔을 내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마가복음14:36, 현대인의 성경)하고 기도하셨는데 기도 내용을 3가지로 나눠서 묵상하고자 합니다:

(a)   첫째로,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무슨 일이나 하실 있지 않습니까?”[(개역개정)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기도 내용입니다.  여기서 아빠 아버지 아랍어적인 표현은 예수님의 호소가 뜨거운 호소의 뜨거운 정을 더욱 강조하고 있습니다.  진정 최후의 순간을 앞에 예수님이 바라볼 있는 최선의 대상은 당신을 땅에 내려보내셨으며 또한 십자가의 잔을 마시게 하실 성부 하나님 밖에는 없었습니다(호크마).  그리고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은 모든 것이 가능하신 전능하신 분이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i)                  저는 모든 것이 가능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묵상할 창세기 18 13-14 현대인의 성경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때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어째서 사라가 웃으며 내가 늙었는데 어떻게 아들을 낳을 있겠는가? 하고 중얼거리는가?  여호와에게 불가능한 일이 있겠느냐?  내년 정한 때에 내가 너에게 돌아올 것이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  여기서 여호와에게 불가능한 일이 있겠느냐?”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누가복음1 37 새번역 말씀도 생각났습니다: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하나님께서 아들의 영을 우리의 마음에 보내 주셔서 자녀로 삼으시는 영을 받아 우리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하고 부를 있게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로마서8:15; 갈라디아서4:6, 새번역).  우리는 불가능한 일이 없으신 하나님이시요 모든 것이 가능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하고 부르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있는 특권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 내가 분명히 너희에게 말하지만 너희가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이제까지는 너희가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않았으나 구하여라.  그러면 받을 것이며 너희 기쁨이 넘칠 것이다”(요한복음16:23-24, 현대인의 성경).

(b)   둘째로, “ 고난의 잔을 내게서 거두어 주십시오”(마가복음14:36, 현대인의 성경) 기도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고난의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35, 현대인의 성경) 아빠 아버지 하나님께 간구하셨는데 여기서 고난의 예수님께서 고난당하고 죽는 하나님의 정하신 시간을 말합니다(호크마).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고난의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간구하셨는데 여기서 '지나가다'라는 동사는 유월절과 관련하여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데, 출애굽기 12 23절에서는 죽음의 사자가 이스라엘의 집에는 재앙을 내리지 않고 '지나가는'라는 장면이 나옵니다.  따라서 '지나가다' 말은 죽음의 재난을 피한다는 의미와 함께 하나님의 안전한 보호를 소망하는 뜻으로 이해할 있습니다(호크마).  그리고 고난의 이란 역시 같은 사건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이란 육신을 입은 자로서 예수님께서 받을 수밖에 없는 고난이나 죽음을 의미할 수도 있고 그보다 더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로 인한 육체적일 아니라 고통과 죽음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호크마). 

(i)                  우리도 예수님처럼 고난의 우리나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지나가기를 간구할 때가 있습니다.  간구의 핵심을 죽지 않고 살려달라는 호소입니다. 

(c)   마지막 셋째로, “그러나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마가복음14:36, 현대인의 성경) 기도 내용입니다.  기도 내용은 예수님의 인성에 의한 불안과 고뇌에 갈등의 시간이 다하고 신성에 의한 전적인 순복이 이뤄낸 궁극적 결론입니다.  ,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의지를 '아버지의 ' 전적으로 굴복시킴으로써 잔을 마시기로 결연히 다짐하신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기도의 주제는 '' 마실터인데 충분히 고난의 잔을 마실 있도록 아버지께서 능력을 더하여 주십사는 것으로 변하게 됩니다(누가복음 22:43) (호크마).

(i)                  우리가 원하는 것은 고난의 잔을 우리에게서 거두어 주시고 고난의 때가 우리에게서 지나가는 것이지만, 만일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고난의 때에 우리가 고난의 잔을 받는 것이라면 우리는 주님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하고 예수님처럼 기도해야 합니다(마가복음 14:36, 현대인의 성경).

·         성찬식 우리가 믿음으로 받는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포도주 잔은 축복의 잔입니다(고린도전서 10:16, 현대인의 성경).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고난의 잔을 십자가에서 받으셨기에 우리가 축복의 잔을 받을 있게 것입니다(누가복음 22:42, 현대인의 성경).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그리스도를 위해 은혜로 주신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빌립보서 1:29, 현대인의 성경).

 

예수님은 제자인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에게 돌아와 그들이 잠든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시몬아, 자고 있느냐?  네가 시간도 나와 함께 깨어 있을 없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정신 차려 기도하여라.  마음은 간절하지만 몸이 약하구나.  예수님이 다시 가서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신 돌아와 보니 제자들이 몹시 피곤하여 자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보고 몸둘 바를 몰랐습니다”(마가복음14:37-40, 현대인의 성경)하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1)   누가는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신다면 고난의 잔을 내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하고 간구하셨을 천사가 하늘에서 나타나 예수님께 힘을 북돋아 주었다”(누가복음22:42-43, 현대인의 성경) 기록하였습니다. 

(a)   여기서 하늘로부터의 사자(천사) 예수님을 도왔다는 것은 깊은 의미를 갖습니다.  천사가 예수님을 도왔다는 기사는 이곳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마귀로부터 시험을 받으셨을 때도 언급되었습니다(마태복음4:11; 마가복음 1:13).  광야에서 예수님께서 시험을 받으신 기진하셨을 천사가 그를 도와, 기력을 회복하시고 성령충만한 사역을 하셨으며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아울러 이곳에서도 예수께서 고뇌와 두려움으로 가득차 기도하시며 기진하시자, 하나님의 천사가 그를 도와 끝까지 고난의 길을 있도록 하였습니다(호크마).

(2)   마가와 마태는 예수님이 제자인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에게 돌아와 그들이 잠든 것을 보셨다(마가복음14:37; 마태복음26:40, 현대인의 성경)하고 기록하였는데, 누가는 예수님은 기도하던 자리에서 일어나 제자들에게 돌아가 그들이 슬픔에 지쳐 잠든 것을 보시고”(누가복음22:45, 현대인의 성경)하고 기록하였습니다.  누가는 제자들이 슬픔에 지쳐잠들었다고 기록하였습니다. 

(a)   제자들은 슬픔에 지쳐 있었던 것일까요?  요한복음16:5-6,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이제 내가 나를 보내신 분에게로 가는데도 너희는 내게 어디로 가느냐고 묻지도 않고 오히려 내가 이런 말을 한다고 슬픔에 잠겨 있다”[참고: (20 상반절, 현대인의 성경) “내가 분명히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울고 슬퍼할 것이나 …”; (22 상반절, 현대인의 성경) “이와 같이 너희도 지금 슬퍼하지만 …”].  그들이 슬픔에 지쳐있었던 이유는 예수님께서 자기를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실 것임으로(5, 현대인의 성경) 조금 있으면 예수님을 보지 못할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19, 현대인의성경).

(b)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가 슬픔에 지쳐 잠든 것을 보시고(누가복음22:45, 현대인의 성경)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시몬아, 자고 있느냐?  네가 시간도 나와 함께 깨어 있을 없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정신 차려 기도하여라.  마음은 간절하지만 몸이 약하구나”(마가복음14:37-38, 현대인의 성경)하고 말씀하셨는데 베드로는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하고 힘있게 말했던(31) 제자인데 이렇게 주님과 함께 시간도 깨어 기도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정녕 그들은 육체와 감정이 모두 인내의 도를 넘어서고 있는 터에 영적긴장마저 헤이해져 있었기 때문에 잠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호크마).

(a)   분명히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정신 차려 기도하여라”(38, 현대인의 성경) 말씀하셨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정신 차려 기도하기는커녕 슬픔에 지쳐 잠들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직 기도만이 다가오는 시험에서 그들을 구해줄 있다고 말씀하셨는데(호크마) 그들은 기도하지 못하고 잠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3)   우리도 예수님의 제자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우리도 시험에 들지 않게 예수님과 함께 깨어 기도하지 않으므로 하나님께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예수님과 함께 깨어 기도하므로 죄를 범하지 않길 원하지만 우리의 육신이 약하여 예수님과 함께 깨어 기도하지 않으므로 원치 않은 죄를 하나님께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김창세)

(a)   첫째로, 우리는 로마서 8 26-27절과 34 말씀을 믿음으로 붙잡아야 합니다: “성령님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될지 모를 성령님이 말할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십니다.  사람의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은 성령님의 생각을 아십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셔서 하나님의 오른편에서 항상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십니다”(현대인의 성경).

(b)   둘째로, 우리는 시험에 들지 않게(마태복음26:41)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며(로마서 8:26, 현대인의 성경) “힘을 북돋아” 주시는(누가복음 22:43, 현대인의 성경) 성령님의 인도하심 따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과 “함께”(마태복음26:38; 로마서 8:34)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마태복음26:41).

(c)   셋째로, 우리는 우리 속에 거하는 “하나님의 씨”(요한일서 3:9), “썩지 않을 씨”요 “영원히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인 하나님의 “복음”(베드로전서1:23-25),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로마서 1:16) 계속해서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겨야 합니다(요한일서 5:4-5).

(4)   누가는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번째 가셔서 '아버지, 내가 마시지 않고는 잔이 내게서 떠날 없다면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하고 기도하신 다시 돌아와 보니 그들은 몹시 피곤하여 자고 있었다”(누가복음22:42-43, 현대인의 성경).

(a)   마가에 의하면 예수님의 번째 기도는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셨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마태에 의하면 예수님의 번째 기도는 번째 기도와 다릅니다.  예수님의 번째 기도는 아버지, 수만 있으면 고난을 잔을 내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마태복음26:39, 현대인의 성경)하고 간구하신 반면에, 예수님의 번째 기도는 아버지, 내가 마시지 않고는 잔을 내게서 떠날 없다면 …”(42, 현대인의 성경)하고 간구하셨습니다.  , 예수님의 번째 기도와 번째 기도를 비교하면 고난의 잔을 마시는 것에 관하여 예수님의 마음 자세가 변하였습니다. 

(i)                  번째 간구때에는 인성으로서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뜻이 자신의 죽음 이외에 다른 무엇이 있다면 차라리 그것을 이뤄 달라는 애타는 호소를 하셨다면, 번째 간구때에는 이상의 인성의 갈등은 없는 상태에 이르러서 자신이 고난의 잔을 필연적으로 감내해야만 하는 것임을 확실히 인식하고 계셨습니다(호크마).  , 번째 간구때에는 예수님에게는 철저한 자기 부정과 완전한 순종만이 있었을 뿐입니다(호크마).

·            그래서 번째 간구때에는 예수님께서 “…. 그러나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39 하반절, 현대인의 성경)하고 간구하셨지만, 번째 간구때에는 “…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42 하반절, 현대인의 성경)하고만 간구하셨습니다.

-          여기서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주기도문(6:10) 표현이 일치합니다.  헬라어 원문에는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되어 있습니다.  어쨌든 기도는 성부 하나님에 대한 성자의 절대적인 복종을 나타낸 것이며(빌립보서2:8), 예수 공동체의 모든 기도의 모범과 근거가 됩니다.  실로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도 자신이 가르친 순종의 교훈을 가장 실천한 모범을 보이셨습니다(호크마).

n  찬송가 549 “내 주여 뜻대로”를 작사한 베냐민 슈몰크(Benjamin Schmolck, 1672-1737) 독일의 루터교 목사님은 죽음보다도 참기 힘든 고난의 때에 찬송가 가사를 작사했습니다.  1704, 그의 나이 32살이던 어느 , 부부가 심방을 나갔다 돌아와 보니, 집이 홀랑 불타버리고, 아들 둘은 새까맣게 죽어 있었습니다.  그는 처절하게 울부짖다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주님의 환상을 보고'Mein Jesu, wie du willst' (나의 예수여, 주님 뜻대로 하소서) 라는 찬송을 작사한 것입니다.  3 마지막,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그의 신앙고백입니다(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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