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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인터넷 사역 한국으로 다섯째날을 뒤돌아보면서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이유

2025 인터넷 사역 한국으로 다섯째날을 뒤돌아보면서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이유: 1. 하늘에 계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 자녀들을 어느 누구보다 사랑하고 계시기에 2.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어린아이들과 주님의 사랑으로 즐겁게 교제할 수 있었기에 3. 비록 돈은 좀 많이 뜯겼지만 사랑하는 아이들과 장난치고 팔씨름하고 농담하고 웃고 사진도 같이 찍고 포용까지 하였기에 ㅎ 4. 주님께서 사랑의 추억을 또 만들어 주셨기에 5. 사랑하는 멘토 목사님 부부에게 귀하고 크고 찐한 사랑을 받아서 6. 비록 1년에 한번씩 밖에 직접 만나 볼수밖에 없지만 성령님께서 주님 안에서 사랑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서로에게 표현할 수 있게 해주셔서 7. 비록 그 사랑의 표현을 겸손히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지 못할 수도 있다 할지라도 그 사랑의 마음만은 찐하게 감사하기에 8. 평생 처음으로 인터넷 사역 한국으로를 감당하면서 달리기 100미터를 10초에 뛴 것 같은 느낌이 들정도였지만 추격자를 따 돌리는데 성공한 도망자가 된 것 같았기에 ㅎㅎ 9. 우리 각 가정에 고충들이 있다 할지라도 주님께서 도와주셔서 화목케하고 계시기에 10. 보고 또 보고 싶은 사랑의 사랑하는 사람들로 인해 마음이 더욱더 부자가 되었기에. 하하.

죽음은 기회입니다. (3) (전도서 7:2)

  https://youtu.be/QFMeVOYednE?si=HIWqFg6ZW70Zzxre 언젠가 종미 자매에게 저에게 '힘을 빼는 것이 힘듭니다'라는 말을 한적이 있습니다.  저는 어제 토요새벽기도회 설교 하면서 우리가 장레식을 가서라도 우리의 죽음을 생각하면서 힘을 빼야 한다고 도전했습니다.  특히 생각의 힘을 빼야 한다고 권면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이 천지 차이라고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데 우리는 가정에서 부부 관계나 자녀와의 관계 등등에서 선입관이나 우리의 생각이 너무나 굳어져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의 마음과 삶 속에셔 변화의 역사를 이루시는 것을 우리가 제안하고 있는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등등.  저는 작년 말부터 "죽음은 기회입니다"라는 제목 아래 전도서 7장 2절 말씀 중심으로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죽음의 관점을 가지고 살아갈 때(저의 경우 서현교회에서 청년사역하게 하시다가 승리장로교회 돌아오게하셔서 노인 사역케 하시면서 죽음의 관점을 가르쳐 주셨고 주시고 계시기에) 유익 3가지 중 2가지를 설교했습니다: (1) 인간의 무능력함과 무기력함을 깨닫고 인정함으로 더욱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게 되는 것, (2) 순간적인 것을 추구하기보다 영원한 것을 추구하게 되는 것.  

"우리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주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주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사탄과 그의 세력이 우리 가정과 교회를 공격할 때 우리에게는 “ 막아낼 힘 ” 이 없기에 “ 우리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주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 참고 : 역대하 20:12, 현대인의 성경 ).   이렇게 영적 전쟁을 할 때 우리의 무능력함과 무기력함을 깊이 경험으로 깨닫게 될 때에서야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주님만 바라보는 것 같습니다 .   그러므로 엄청난 어려운 일은 두 가지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 같습니다 : (1) 나 자신의 무능력함과 무기력함 , (2) 나의 의지의 대상은 오직 전능하신 구원의 하나님 .

바로 그 때 우리는 하나님을 간절히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그 때 우리는 하나님을 간절히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 우리 스스로 혼자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어려움을 맞이했을 때 우리는 충분히 무기력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   바로 그 때 우리는 하나님을 간절히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   그 이유는 하나님만이  “ 우리를 도울 자 ” 되시기 때문입니다 .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 우리 하나님 , 우리를 도와 주소서 .   우리가 주님을 의지합니다 ’ 라고 간구하면서 그 큰 난관을 당면하는 것입니다 ( 참고 : 역대하 14:11, 현대인의 성경 ).

나의 무능력함과 무기력함

나의 무능력함과 무기력함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좀 뼈져리게 느끼곤 하는  우리 자신의 무능력함이나 무기력함은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라 생각합니다 .   그 이유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우리 같이 무능력함과 무기력함을 좀 뼈져리게 느끼는 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   이러한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의 이성으로는 이해가 잘 안되고 또한 받아들이기가 어려울 수 밖에 없습니다 .   ( 유진 피터슨의 " 물총새에 불이 붙듯 " 을 읽으면서 )

믿음으로 구원의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송하십니다!

믿음으로 구원의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송하십니다 ! 깊은 감옥에 가둔바 되어 내 발이 쇠고랑을 든든하게 채워 놓은바 된 것처럼 만일 지금 우리가 여러 종류의 쇠고랑이들이 우리의 손과 발과 몸 등을 다 든든하게 채워 놓아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깊은 침체 가운데 허덕이고 있다면 우리는 바울과 실라처럼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할 때에 갑자기 큰 지진이 우리의 인생에도 일어나 우리를 묶었던 모든 쇠고랑이 다 풀리고 아무리 깊은 감옥이라 할지라도 그 감옥의 문이 다 열릴 것입니다 .   믿음으로 구원의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송하십니다 ! ( 참고 : 사도행전 16:24-27).

양로원에 갈 때마다 ...

양로원에 갈 때마다 ...   양로원에 갈 때마다 이런 생각이 많이 듭니다 .   이 땅에서의 나의 마지막 인생도 이럴텐데 ...   누구에 도움이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연약하고 무기력한 상태에 놓여져 있을텐데 ...  

뻐저리게 느끼는 나의 무능력함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라!

뻐저리게 느끼는 나의 무능력함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라! 우리가 당면한 큰 위기의 역경 속에서  우리 자신의 무능력함과 무기력함을 뼈쩌리게 느끼는 가운데  오직 주님만 바라보면서  이 큰 위기의 역경은 우리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주님에게 속한 것을 깨닫고  임마누엘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의지할 때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께 이렇게 찬송하게 됩니다 :  "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  ( 역대하 20:12-21)

소망이 없어진 하나님의 때에

소망이 없어진 하나님의 때에 전능하신 주님은  마음이 초조한 우리로 하여금  전적 무능력함과 무기력함을 뼈저리게 깨닫고   인정하게 만드실 정도의 불가능한 상황까지 기다리셨다가 [ 예를 들어 , 아브라함이 더 이상 자녀를 가질 수 없을 정도로 더 이상 바라고 소망할 수 없는 불가능한 상황까지 ( 롬 4:18-19); 마르다가 더 이상 오라버니인 나사로가 살 수 있다는 소망이 끊어질 정도로 나사로가 죽은 상태까지 ( 요 11:11, 27, 40, 44-45)]  우리가 더 이상 바랄 수 없고  소망이 없어진 하나님의 때에  우리에게 약속하신 말씀이나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응답하시사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시므로  우리로 하여금 주님을 더욱더 믿게하시고 계십니다 .

하나님을 멀리한 결과?

하나님을 멀리한 결과?  우리는 하나님께서 부르시사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싫어서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도망가되  될 수 있는데로 멀리 도망가려고 한 결과  우리는 동서남북 갇힌바 된 고통스러운 상황에 놓이게 될 수 있습니다 .   그 때에 그 상황에서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스스로 우리 자신을 그 상황에서 건져낼 수 없다는  인간의 무기력함을 뼈저리게 느끼는 가운데서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멀리 떠나셨다는 느낌을 충분히 가질 수 있습니다 .   하나님의 명령을 멀리한 바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서 멀리계시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습니다 . [ 요나서 묵상집을 영문으로 번역하면서 ]

나 자신의 힘으로 미치지 못합니다.

나 자신의 힘으로 미치지 못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힘으로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좀 뼈저리게 깨달아야 합니다 ( 참고 : 레위기 14:32).   그래야 우리는 철저히 무기력함 속에서  전능하신 하나님만 의지하게 됩니다 .   그 결과 우리는 이러한 고백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  '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 ( 시편 1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