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의 믿음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현대인의 성경) “그의 아내
사라도 너무 늙어 아기를 낳을 수 없었으나 믿음으로 임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약속하신 분이 신실하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리하여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는 늙은 아브라함에게서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와 같은 수많은 후손이 나오게 되었습니다”](히브리서
11장 11-12절).
어제 화요일 아침, 중환자실에 의식없이 누워있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저의 조카 선교사님을 생각할 때 성경 히브리서 11장 11절 “믿음으로 사라 …”가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어제 오후 8시에 매주마다 있는 온라인 가족 기도 모임 때 “사라의 믿음”이란 제목 아래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그런 후 이렇게 새 하루 새 아침을 맞이하여 오늘의 짧은
말씀 묵상 대신 어제 묵상하고 선포한 말씀을 이렇게 다시금 묵상하면서 글로 적어내려 갑니다.
성경 히브리서 11장 11절 상반절을 보면 성경은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으로는 “그의 아내 사라도 너무 늙어 아기를 낳을 수 없었으나 믿음으로 …”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사라의 많은 “나이”는 창세기 17장 17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으나 속으로 웃으며
'100세가 된 사람이 어떻게 자식을 낳을 수 있을까? 사라는 90세나 되었는데
어떻게 자식을 낳을 수 있겠는가?' 하고 중얼거리다가”(현대인의 성경). 한 마디로, 사라는
인간적으로(의학적으로)는 결코 아기를 낳을 수 없는 나이였습니다(90세). 그리고 그녀는
90세가 되도록 한 번도 자식을 잉태한 적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남편인 아브라함은 100세나 된 사람으로서(17절)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는
늙은 아브라함”이었습니다(히11:12, 현대인의 성경).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이 99세가 되었을 때” 그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창17:1, 현대인의
성경). 저는 그 하나님의 말씀을 좀
몇가지로 간략하게 요약해 보았습니다:
(1)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1절).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자신이 누구이신지를
제일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을 묵상할 때 저는 출애굽기
20장 2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그리고 나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 말씀을 주셨습니다(3-17절). 이것은 주로 하나님께서 언약을 맺으실 때 하시는 말씀으로서
하나님께서는 제일 먼저 자신이 누구이신지를 밝히 말씀하셨습니다[이것을 신학적으로는 “Preamble”(전문)이라고 함].
(2) 하나님의 명령: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현대인의 성경) “너는 나에게 순종하며 내 앞에서 흠 없이 살아라”](창17:1).
어쩌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제 첫째 아기
주영(뜻: 주님의 영광)이가 질병을 가지고 태어나 중환자실에서 55일 동안 있게 하신 목적은 제가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 앞에서 흠 없이 살아가게 하시고자 그러신 것이라고도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저를 통하여 제 아내와 주영이 이후로 태어난 세 자녀들,
즉 저희 가정이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 앞에서 흠 없이 사는 가정으로 세우시려고 하시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3) 하나님의 언약: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2절).
하나님께서 언약을 맺으실 때에는 두 가지가
내포돼 있습니다:
(a)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2절)와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4절)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람”(뜻: 높은 아버지 또는 높임 받는 아버지)의 이름을 “아브라함”[(뜻: 큰 무리의 아버지(조상))이라고 변경하셨습니다(5절). 또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은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현대인의 성경)
“네 후손 가운데서 많은 왕들이 나올 것이다”](6절)와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7절)과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8절)였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사래”(뜻:
나의 공주)의 이름을 “사라”(뜻: 열국의 어머니)라고 변경하셨습니다(15절). 그러신 후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그녀를 축복하여 그녀를 통해 너에게 아들을 주겠다. 내가 그녀에게 복을 주어 모든 나라의 어머니가 되게 할 것이니
그녀의 후손 가운데서 많은 왕들이 나올 것이다”(16절, 현대인의 성경).
(b) 아브라함의 책임: 그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9절):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10절).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내가 그녀(사라)를 축복하여 그녀를 통해 너에게 아들을 주겠다 …”(16절, 현대인의 성경)라고 말씀하시니까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으나 속으로 웃으며 “100세가 된 사람이 어떻게 자식을 낳을 수 있을까? 사라는 90세나 되었는데
어떻게 자식을 낳을 수 있겠는가?” 하고 중얼거렸습니다(17절,
현대인의 성경). 왜 그는 웃었을까요? 하나님과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서 웃었을까요? 아니잖습니까.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웃었다고 생각합니다. 현대 말로 한다면, 하도 어이가 없어서 웃은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런데 창세기 18장
12절을 보면 아브라함의 부인인 사라도 속으로 웃습니다. 그 이유는 그녀는 노쇠하였고 자기 남편 아브라함도 나이 많아
늙었고 사라는 갱년기도 지났는데(11-12절,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내년 이맘때에 내가 반드시 너에게 돌아올 것이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10절,
현대인의 성경). 그래서 그녀는 하나님의 약속이 실현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에 웃었던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사라에게도 말씀하셨습니다:
“나 여호와에게 불가능한 일이 있겠느냐?
내년 정한 때에 내가 너에게 돌아올 것이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14절, 현대인의 성경,
참고: 10절). 저는 이것을 ‘사라의
믿음의 시련’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리 생각하는 이유는 분명히 전능하신 하나님(17:1)께서는 자기
남편과 자기에게 ‘내년 정한 때에 내가 너에게 돌아올 것이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18:14,
현대인의 성경; 참고: 10절)라고 말씀하셨는데 사래는 혼자 속으로 웃으면서 ‘내가 노쇠하여 갱년기도 지났고 내 남편도 나이
많아 늙었는데 내가 어떻게 아이를 낳을 수 있겠는가?’라고 중얼거렸기 때문입니다.
지금 중환자실에 의식없이 누워있는 조카 선교사님을 생각할 때 모든 식구들이
하나님 아버지께 그녀를 살려 달라고 간구하고 있을 텐데 어쩌면 동시에 드는 생각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 몰라 고민 속에서 혹여나 하나님의 뜻이
그녀를 불러 가시는 것이면 어떡하나 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것이 우리 믿음의 시련이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 믿음의 시련을 하는 이유는 물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몰라서 그런 것이지만 궁극적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행하심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어떻게 우리가 우리의 제한된 이성으로 무한하신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행하시는 일들을 다 충분히 이해할 수가 있겠습니까? 결코 없습니다! 삶과
죽음인 생사는 우리의 소관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우리가 이러한 위기 가운데 사랑하는 식구를 위하여 기도할 때 하나님의 뜻에 초점을 맞추고 기도하기보다
하나님은 누구이신가에 초점을 맞춰서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1) 성경은 하나님은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창17:1).
저는 이 전능하신 하나님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고 있었던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믿음을 주셔서 그 부부로 하여금 하나님의 약속을 믿게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로마서 4장 18절을 보면
아브라함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도저히 불가능한 것을 바라고 믿었으며 …”(현대인의 성경). 여기서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후손도 저 별들처럼 많을 것이다”(18절, 창15:5
인용)라고 약속하신 것을 말씀합니다. 당연히 아브라함의 입장에서 인간적으로 보면(참고: 고후5:7) 하나님의 약속이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자신은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는 100세의 늙은 사람이었고(히11:12, 현대인의 성경) 자기 부인 사라도 너무
나이가 많아 늙고 갱년기도 지났었기 때문입니다(창18:11절,
현대인의 성경). 이렇게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우리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지식을 의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잠3:5), 현대인의 성경]. 우리는 우리 지식을 의지하지 말고 마음을 다하여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우리는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롬4:17). 우리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고 하늘
나라에서 자기 오른편에 앉게 하신 크신 능력의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강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권능의 하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엡1:19-20, 현대인의 성경). 우리는 허물과 죄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죽었던 우리를 다시
살리시고(첫째 부활)(계20:5-6) 우리를 죽은 후에도 예수님의 재림 때 다시 살리시사(둘째 부활)(고전15:41-56) 우리를 예수님과 함께 하늘 나라에 앉게 해 주실(엡2:6) 큰 권능의 하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 제 사촌 여동생 사모님은 자신의
둘째 딸 선교사님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매달려 간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기적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녀뿐만 아니라 우리 모든 식구가 하나님께서 그 선교사님을 기적적으로 다시 살려주시길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적 중에 기적은 죽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난 것보다(요11장), 허물과 죄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죽었던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과 전적인 은혜로 중생(reborn, regeneration)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첫째 부활). 이것이야
말로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이 기적은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이미(Already)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Not-yet) 경험하지 못한 기적 중의 기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시는 날(재림) 주님
안에서 잠든 자들(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서(둘째 부활)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살 것입니다. 이러한 기적 중의 기적을 우리가 앞으로 경험할 것입니다. 이 기적 중의 기적을 가능케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사라 선교사님을 위하여 함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2) 성경은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창17:2).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2-16절).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2절)와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4절)고 약속하셨고 아브라함의 책임은 하나님의 언약을 지켜 모든 남자는 다 할례를 받는 것이었습니다(9-10절).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책임을 감당하였습니다. 그리했을 때 그는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는 늙은(히11:12, 현대인의 성경) 100세의 나이에(창17:17)
도저히 불가능한 것을 바라고 믿었습니다(롬4:18, 현대인의 성경). 그의
아내 사라도 너무 늙어(90세) 아기를 낳을 수 없었으나 믿음으로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습니다(히11:11). 여기서 ‘잉태하는’이란 헬라어는 남성의 정액을 생산하는 기능을 표현할 때 사용되었다고 합니다(Bruce).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사라 자신과 함께 잉태하는 힘을 얻은 것입니다(주석). 아브라함은 자기 나이가 백 세가 다 되어 몸은 죽은 것과
다름이 없었고 그의 아내 사라도 나이가 많아 도저히 출산할 수 없는 것을 알고도 믿음이 약해지지 않고 또한 그는 불신앙으로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에 더욱 굳게 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이루실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롬4:19-21,
현대인의 성경). 우리도 이러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제 외 증조 할아버지
목사님에게 주신 약속이 궁금합니다. 한번도 뵌 적이 없는 분이시지만 저는 언약의 하나님께서는
제 외 증조 할아버지와 언약을 맺으시사 약속의 말씀을 주셨고 하나님의 은혜로 제 외 증조 할아버님과 할머님께서 믿음으로 순종하셨기에 그 때부터
제 할아버지, 할머님 시대와 제 아버님의 시대와 저의 시대와 제 자녀들, 조카들 시대와 손주 시대까지 지금도 축복을 베풀어 주셨고 지금도 베풀어 주시고 계시다고 믿고 있습니다. 저의 간절한 기도는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할 때에
천 대까지 하나님의 언약을 이행하시며 은혜와 인애를 베풀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께서(출20:6,
34:7; 신5:10, 7:9)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저희 온 가족 식구와
자녀들과 대대 후손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지켜 행하므로 복을 받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또한 궁금한
것은 제 조카 선교사님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선교지에 갔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그 이유는 언약의 하나님께서는 그녀에게 약속하신 바를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언약의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면서 하나님이 사랑하는 딸 선교사님을 기억하면서 하나님께 계속 기도 드리는 것입니다.
(3) 성경은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히11:11).
사라는 너무 늙어 아기를 낳을 수 없었지만
믿음으로 임신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그녀는 약속하신 하나님이 신실하신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히11:11, 현대인의 성경). 우리도
우리 하나님이 신실하신 줄 알고 믿음으로 신실하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 기도하되 저는 저희 온 식구를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제 외 증조 할아버지 목사님에게 주신 약속을 계속해서 예수님 재림 때까지 대대 후손을 통해 이뤄주시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지금 병원 중환자실에 의식없이 누워있는 제 조카 선교사님에게
주신 약속대로 하나님께서 신실하게 그 약속을 계속해서 성취해 주시길 기원합니다. 저는 저의 기도의 대상이신 신실하신 하나님을 묵상할 때 3개의 성경구절이 생각났습니다: (a) (민23:19,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며 인간이 아니시니 후회하지
않으십니다. 어찌 그가 말씀하시고 행하지 않으시며 약속하시고 지키지 않으시겠소?” (b) (사55:11, 현대인의 성경)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내 뜻을 이루며 내가 의도한 목적을 성취할 것이다,” (c) (딤후2:13,
현대인의 성경) “우리는 신실성이 없지만 주님은 언제나 신실하셔서 약속하신 것을
어기실 수 없습니다.”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새 찬송가 357장
“주 믿는 사람 일어나” 가사가 생각났습니다: (1절) 주 믿는 사람 일어나 다 힘을 합하여 이 세상 모든 마귀를 다쳐서 멸하세 저 앞에 오는
적군을 다 싸워 이겨라 주 예수 믿는 힘으로 온 세상 이기네, (2절) 온 인류 마귀 궤휼로 큰 죄에 빠지니 진리로 띠를 띠고서 늘 기도 드리세 참 믿고 의지하면서 겁 없이 나갈 때 주 예수 믿는 힘으로
온 세상 이기네, (3절) 끝까지 이긴 가에게 흰 옷을 입히고 또 영생복을
주시니 참 기쁜 일일세 이 어둔 세상 지나서 저 천성 가도록 주 예수 믿는 힘으로 온 세상 이기네, (후렴)
믿음이 이기네 믿음이 이기네 주 예수를 믿음이 온 세상 이기네. 제 조카 선교사님의 가족과 온 친척 식구들과 지금 예기치 않았던
큰 역경과 위기 가운데 있는 모든 형제, 자매님들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언약의 하나님이요 약속하신 바를 반드시
성취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승리케 하여 주시되 특별히 의식없이 누워있는 조카 선교사님이 비록 의학적으로는 아브라함처럼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다 할지라도 스스로 숨을 쉴 수 있는 힘을 주시고, 다시 일으켜 주시사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할 수 있는
힘을 주시므로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언약의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제임스
김 나눔
(2022년 11월 2일, 믿음의 여인 조카 선교사님과 그녀의 가족을 기억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