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말씀 묵상
최후의 만찬 때에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가룟 유다가 팔아 넘길 것을 분명히 알고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제자들이 먹을 때 빵을 들어 “감사 기도”를 드리시고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자, 받아먹어라.
이것은 내 몸이다”하셨고 또한 잔을 들어 “감사 기도”를 드리신 후 그들에게 주시면서 “모두 이 잔을 마셔라.
이것은 많은 사람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흘리는 내 계약(언약)의 피이다.
내가 분명히 말해 두지만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너희와 함께 새것으로 마시는 그 날까지 내가 결코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마시지 않을 것이다.”하신 후 “그들은 찬송을 부르고서 감란삼으로 갔”습니다(마태복음 26:20-30, 현대인의 성경).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몇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1) 사랑하는 제자 가룟 유다에게 배반을 당하실 줄을 분명히 알고 계셨으면서도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 기도”를 드리셨다는 것을 묵상할 때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에 순종하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여러분을 위한 하나님의 뜻입니다”(데살로니가전서 5:18, 현대인의 성경).
(2) 예수님께서 “모두 이 잔을 마셔라.
이것은 많은 사람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흘리는 내 계약(언약)의 피이다”하고 말씀하셨을 때 그 “모두”에는 가룟 유다도 포함되었을 텐데 과연 그는 죄를 용서하기 위해 흘리는 예수님의 언약의 피를 마시면서 무슨 생각을 했었을까 하는 질문이 들었습니다.
과연 그는 양심에 찔림 속에서 자신의 죄를 인식하고 있었을까요?
그는 회개의 기회를 놓친 것은 아니었을까요?
(3) 최후의 만찬 후 “그들은 찬송으로 부르고서 감람산으로 갔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데 “그들” 중에 가룟 유다도 포함된 것은 아닌가요?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어떻게 그는 찬송을 부를 수 있었을까요?
마태복음 15장 8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현대인의 성경).
최후의 만찬에서 “내가 분명히 말하지만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아 넘길 것이다.” 하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는 감란산에서는 “오늘 밤 너희는 모두 나를 버릴 것이다.
성경에도 내가 목자를 칠 것이니 양떼가 흩어질 것이다 라고 쓰여 있다.
그러나 내가 다시 살아나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겠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복음 26:21, 31-32, 현대인의 성경).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성만찬 때에는 제자들 중에 가룟 유다가 자신을 팔아 넘길 것임을 아셨고, 기도하시려 감람산에 가셨을 때에는 모든 제자들이 자신을 버릴 것을 알고 계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가룟 유다에게 배반을 당하시고 모든 제자들에게 버림을 받으신 것입니다.
그러신 후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상에서 사랑의 하나님(요한일서4:8, 16) 아버지께 버림을 받으셨습니다(마태복음 27:46). 이렇게 배반과 버림을 받으신 예수님을 생각할 때 이 찬송가 가사가 생각났습니다: “온 세상 만물 가져도 주 은혜 못 다 갚겠네 놀라운 사랑받은 나 몸으로 제물 삼겠네”(새 찬송가 149장 “주 달려 죽은 십자가” 4절).
베드로는 예수님께 “모든 사람이 다 주님을 버린다 해도 저는 절대로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하자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내가 분명히 너에게 말하지만 바로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말할 것이다.” 하셨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내가 주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로 주님을 모른다고 하지는 않겠습니다.” 하고 장담하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제자들도 다 그렇게 말하였습니다(마태복음 26:33-35, 현대인의 성경).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몇 가지 생각이 듭니다: (1) 역시 “절대로”란 말은 절대하면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하하.
(2) 예수님께서 “분명히”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은 그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생각입니다.
(3) 비록 베드로는 자기 입으로는 “내가 주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로 주님을 모른다고 하지는 않겠습니다”하고 말은 했지만 실제로 그는 예수님께서 “분명히” 베드로에게 “바로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말할 것이다”하신 말씀대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70, 72, 74절).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면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참고: 마태복음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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