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유익은 그 고난을 통하여 내가 하나님 보시기에 그릇행하였다는 것을 깨닫는 것과 하나님의 법을 배우게 된 것과 이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게 된 것입니다(시 119:67, 71). 이러한 깨달음(나의 죄)과 배움(하나님의 말씀)과 지킴( 말씀 순종)이 없는 고난은 무익합니다." 1. 깨달음: 교만함(시119:69), 그릇 행함(67절), 마음의 살찜과 기름덩이(70절) [마음에 지방을 제거하라!: https://blog.naver.com/kdicaprio74/150112959844] 2. 배움: 자녀들의 위기를 통해 저는 선하신 주님께서(68절) 저를 선대하사(65절) 가르쳐주신(68절) 시편 63편 3절 말씀과 베드로전서 5장 10절 말씀을 배우게 되었습니다(71절). [20년 전 이 아빠의 품에 잠든 사랑하는 첫째 아기 주영이를 추모하면서 ... : https://blog.naver.com/kdicaprio74/221262767368] [금년 2019년 한 해를 영원히 과거로 보내기에 앞서 ...: https://blog.naver.com/kdicaprio74/221756284213] 3. 지킴: https://youtu.be/i6TfokavYN4?si=P1E4vvk_bnPOvabx
“선생님, 저입니까?”
열 두 제자와 함께 식탁에 앉아 음식을 잡수시면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내가 분명히 말하지만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아 넘길 것이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매우 슬퍼하며 저마다 “주님, 저는 아니지요?”하고 물었는데 가룟 유다만 “선생님, 저입니까?”하고 물었습니다(마태복음 26:20-25, 현대인의 성경).
왜 가룟 유다는 예수님에게 그리 물었을까요?
양심에 찔림이 있어서 그랬을까요?
만일 그랬다면 “선생님, 저입니까?”하고 묻기보다 “선생님, 저 입니다”하고 고백 했어야 하지 않았나요?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어 “감사 기도”를 드리실 수 있으셨을까요? (26절, 현대인의 성경)
자기 제자인 가룟 유다에게 배반을 당하셔서 (이미 당하신 듯)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것을 알고 계셨으면서도 어떻게 예수님께서는 “감사 기도”를 드리실 수 있으셨을까요?
새 찬송가 338장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4절 가사 하반부를 이렇게 수정하여 믿음으로 찬양 고백하고 싶습니다: ‘… 숨질 때 되도록 늘 감사 기도하면서 주님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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