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제 자신의 생명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들의 생명까지도 주님께 받쳐서 우리 모두가 죽기까지 주님께 순종해야 한다는 교훈을 받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8명의 제자들을 겟세마네라는 곳에 가셔서 어느 장소에 두시고 3명의 제자들만 데리고 어느 장소까지 가셔서 그들을 거기에 두시고 “조금 더 나아가” 홀로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하나님 아버지께 이렇게 간구하셨습니다: “아버지, 할 수만 있으면 이 고난의 잔을 내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마태복음 26:36-39, 현대인의 성경).
만일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를 뺀 나머지 11명의 제자들에게 자신의 마음이 너무나 괴로와 죽을 지경임을 나누시고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하고 기도 부탁을 드리신 후 홀로 하나님 아버지께 간구하셨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요?
저 같으면 제 괴로운 마음을 그 11명의 사랑하는 형제들에게 나눈 후 기도 부탁을 하고 함께 기도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리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와 독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홀로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 간구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 “이 고난의 잔을 내게서 거두어 주십시오”하고 먼저 간구하셨습니다.
저는 이 “고난의 잔”을 묵상할 때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가 예수님에게 와서 “저의 이 두 아들을 주님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님의 오른편에, 하나는 주님의 왼편에 앉게 해 주십시오”하고 부탁했을 때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너희는 구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다. 내가 곧 마시게 될 고난의 쓴 잔을 너희도 마실 수 있겠느냐?”하고 물으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20:20-22, 현대인의 성경).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마셔야 할 “고난의 쓴 잔”을 거두어 주시길 하나님 아버지께 먼저 간구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하고 간구하셨습니다(26:39, 현대인의 성경).
예수님께서는 “몹시 괴로와하시며” “지금 내 마음이 너무나 괴로와 죽을 지경”이셨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뜻을 내려놓으시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죽기까지 순종하시겠다고 간구하신 것입니다.
그러신 후 예수님께서는 간구하신 대로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셨습니다”(빌립보서 2:8, 현대인의 성경).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제 자신의 생명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들의 생명까지도 주님께 받쳐서 우리 모두가 죽기까지 주님께 순종해야 한다는 교훈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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