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고데모의 안경 나눔, 하나님 나라가 임함: 창조의 회복
"짐승은 모를는지 고향인지라 사람은 못잊는 것 고향입니다"(김소월/고향)
순례자요 나그네로서 본향인 천국을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것이, 세상의 사람들과 다른 성도의 본성이다.
시인은 고향을 잊는 것이 사람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너무 오래 떠나있은 탓에 본향 천국의 모습은 머리 속에서 희미해졌다. 천당과 혼동하고 각자 마음 속에 그려낸 이상향과 혼동하고, 자신의 욕구가 최대한도로 만족되는 그런 곳과 쉽게 혼동되는 곳이 천국이다.
천국은 어떤 곳일까? 천국의 동의어인 ‘하나님 나라’를 이야기할 때, ‘나라’로 번역되는 히브리어 '말쿠트'는 성경에서 주로 지역이나 장소적 개념보다는 통치와 권위를 지칭한다고 한다. 천국 혹은 하나님 나라는 하늘 저편 어딘가에 둥둥 떠있는 그런 장소는 아닐 것이다.
내가 이해하는 천국은 사랑의 질서를 중심으로 한 하나님의 통치를 깨뜨리는 그 어떤 것도 없는 곳이다. 그곳은 영화롭게 된 성도가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 안에서 피조물이 사랑으로 교제하는 중에,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 되는 곳이다.
그곳은 거듭난 성도 안에 성령으로 임재하신 하나님의 통치를 통해 이미 우리 가운데서 시작되었고, 그렇게 거듭난 성도들의 사랑을 통해서, 성도가 서있는 자리마다 하나님의 통치가 선포되어 하나님의 질서가 회복되는 중에 우리 가운데 이미 임하기도 했다. 우리에게 임한 천국은 가정이 될 수도 있고, 일터가 될 수도 있고, 교회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시작된 천국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완성될 것이다. 성도가 기다리는 완성된 천국, 즉, 새 하늘과 새 땅이 이 세상이 소멸되고 새로 생기는 것인지, 아니면 이 세상이 완전히 새롭게 갱신되는 것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는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가 임하는 곳이 천국이란 사실이 훨씬 중요하고, 내가 있는 이곳을 천국으로 만들어나가고 있는가가 훨씬 중요하다.
죽음 저너머의 천국, 그리고 그리스도의 재림 이후의 완성된 천국은 반드시 있다. 우리가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알 수 있듯이, 우리의 믿음이 죽음과 세상의 끝 날 이후 우리가 영화롭게 되어 다시 만날 천국을 증거할 것이다.
올 봄 아버지의 장례 가운데, 슬픔 중에서도 기뻐할 수 있었던 것은, 남은 가족들과 천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우리의 믿음이 함께 자라남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 품 안에서 다시 만나게 될 아버지에 대한 소망이 우리 가운데 심겨졌기 때문이다. 천국을 믿는 믿음만이 죽음의 권세를 이길 수 있고, 그것이 성도의 소망이 된다. 그래서 천국은 성도의 달음질의 푯대가 된다.
우리에게 일어난 구속의 일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는 천국에서 밝히 알게 될 것이다. 죄에 대한 절망과 겸비 가운데서 나를 불러주시고 그의 의로써 나의 치부를 덮어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와 연합된 새 생명과 새 본성 가운데서 주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주와 닮은 형상으로 자라나게 하시며, 거룩 가운데 기쁨의 교제를 나누게 하신 지난 모든 인생들이, 바로 지금 이 천국의 순간을 위한 기가 막힌 드라마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성도들은 기뻐하며 영광스런 찬송을 주께 올려드릴 것이다.
하나님께 예배하며 찬송하는 천국의 이미지는 무료하고 따분할 것 같아서 그리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한시간 남짓한 주일 예배도 툭하면 졸곤 하는데, 하루종일 천국에서 예배드리는 일은 그다지 자신 없기도 하다.
그러나 인간은 교제하도록 지어졌으며 그것이 인간에게 부어진 하나님의 형상의 본질이다. 우리는 교제 가운데서 존재를 느끼고 의미를 느끼고 기쁨을 얻는다. 사랑하는 가족과의 교제가 즐겁고 친구와의 교제가 즐겁고 성도 간의 교제가 즐겁다.
더욱이 내 안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완전히 회복되어 가족이나 친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랑하게 된 그런 하나님과의 교제라면 그 기쁨이 얼마나 충만할까. 그것이 넘치는 사랑 위에서 드려지게 될 천국의 예배이며 교제다.
우리가 살아가며 나누는 많은 교제들이 쉽게 지루해지고 깨어지기 십상이고, 그 만족이 늘 한계를 드러내는 이유는, 우리의 타락한 본성에 의한 자기사랑 때문이기도 하고, 우리의 교제 대상 역시 본연의 아름다움을 잃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의 아버지와 어머니, 배우자와 친구와의 교제도 기쁘고 즐겁겠지만, 아버지가 아버지 다움을 회복하고 어머니가 어머니 다움을 회복하며, 배우자와 친구 역시 그러하다면 우리의 교제가 얼마나 더 기쁘고 아름답겠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바로 알게된다면 그 교제는 얼마나 기쁨으로 충만하겠는가.
천국, 그곳에서 우리는 성도다움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하나님다움과 하나님되심을 우리가 수건을 벗은 눈으로 보는 것과 같이 밝히 알게 될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을 향한 찬송과 예배 가운데서의 교제보다 우리를 더 기쁘게 할 수 있는 것은 우주 어디에도 결코 없을 것이다.
더불어 성도간의 교제 역시 기쁨으로 가득찰 것이다. 모든 것이 풍성하고 충만해서 내가 더 많이 얻기 위해 경쟁할 필요도 없고, 내가 받는 사랑과 호의와 존중 역시 이미 충만해서 스스로 높아지려 애쓸 필요도 없으며, 서로가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과 같고 서로가 한 몸과 같아서 서로 질투할 일도 없으며, 천국에는 그 어느 피조물도 사랑받기에 합당하지 않은 것이 없어서, 하나님 외에 누구를 사랑하든지 전혀 거리낌과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천국은 하나님과 성도 간에, 성도와 성도 간에, 그리고 모든 피조물 간에 사랑과 호의로 가득찬 하나님의 질서로만 가득할 것이다.
우리가 타락했을 때 무질서는 부패와 사망을 야기했지만, 질서는 모든 것을 충만하게 한다. 쉽지 않은 세상살이 가운데서 사단은 우리가 얻지 못한 것들을 상기시키며 낙심시키기 위해 집요하게 애쓰지만, 우리가 이땅에서 잃어버린 것, 이 땅에서는 갖지 못한 모든 기쁨이 천국에 예비되어 있음을 믿기에 우리는 이 약속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렇게 말세를 살아가며 천국을 꿈꾸고 종말을 준비하는 성도들에게 있어 기독교의 본질은, 죄로 인해 파괴된 하나님의 창조 질서가 성자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회복되고, 성령의 은혜에 의하여 하나님의 나라로 재창조되는 실재다.
그래서 성도는 성령께서 주신 사랑과 열심으로 자신의 가정과 일터와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질서를 회복시켜나가며 자신이 서있는 자리를 거룩하게 구별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종말에 대한 이미지는 소멸적이고 파괴적이고 허무하기까지 하다. 아마 많은 미디어와 이단의 영향일 것이다.
그렇다면 곧 사라질 이 세상에 하나님의 질서를 회복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를 잠시 생각해보았을 때, 그것이 구속의 과정이기도 하고,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계시하시는 방법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과 새 하늘과 새 땅 사이의 연속성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보기에 세상은 아침 이슬과도 같다. 이슬은 어둔 밤이 지나고 밝은 아침을 맞기 전에 잠시 잠깐 관찰될 뿐이다. 성도의 구속의 무대가 되며 성도에 의해 개혁되어지는 세상 역시 참 빛이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기 전에 잠시잠깐 존재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이슬은 식물과 곤충과 작은 생물들에게 수분을 공급하고 공기중의 미세먼지를 가라앉혀 대기 질을 개선하거나 생태계의 온도를 조절하며 아침이 맞이할 세상에 강인한 생명력을 더한다. 더욱이 이슬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더하기도 하니 자연을 향한 사람들의 경의와 기쁨을 불러일으킨다.
다시 말해, 이슬은 사라지더라도 그 생명력과 아름다움과 경이로움과 기쁨은 여전히 남아 아침과 한낮에도 이어질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 역할을 다하여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게 되더라도, 세상에는 사라지는 것이 있고 사라지지 않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쌓아올린 재물과 권력과 일시적 쾌락의 도구들은 모두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겠지만, 하나님의 섭리와 성도의 활동에 의해 세상을 지탱해오던 하나님의 질서와, 그리스도의 구속 안에서 새롭게 시작되었던 생명력과, 세상 가운데 계시되던 그의 영광과 기쁨은 여전히 남아서, 이 땅에서의 하나님의 영광스런 기쁨의 터 위에 더욱 영광스런 새 하늘과 새 땅이 세워질 것이다.
종말을 준비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먼저는 우리의 거듭남을 점검하는 것이고, 이미 우리에게 임한 하나님의 나라를 통해 아직 임하지 않은 완성된 천국을 소망하며, 내가 발디딘 세상 위에 하나님의 질서를 세워나가며, 새 하늘과 새 땅의 기초가 될 그의 주권적 통치와 영광을 구하는 것이다.
내가 한국을 잠시 떠나있어도 여전히 한국을 마음에 품고 있다면 한국인인 것과 같이, 내가 잠시 본향을 떠나있어도 천국을 소망 가운데 품고 있다면 나는 이미 천국 백성이다. 그래서 우리는 세계 곳곳에 한인타운을 건설하듯 내가 선 곳을 구별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한다. 내가 있는 이곳이 천국과 같고, 내가 있는 이곳에서 천국을 바라보게 되길 진심으로 소망한다."
(영상 형제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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