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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 fundamento de la sabiduría [Eclesiastés 7:15–18]

  El fundamento de la sabiduría         [Eclesiastés 7:15–18]       Durante la reunión de oración de esta mañana, medité sobre los temas de una familia bendecida, una iglesia bendecida y una nación bendecida, centrándome en 2 Crónicas 9:7: «¡Bienaventurados tus hombres! ¡Bienaventurados estos siervos tuyos, que están continuamente delante de ti y oyen tu sabiduría!». Al reflexionar sobre este versículo, contemplé la tremenda bendición que supone encontrar a un líder sabio. Esto se debe a que la nación de Israel fue bendecida precisamente porque su rey, Salomón, era sabio. Al defender la justicia y la rectitud, el sabio rey Salomón fortaleció a la nación (versículo 8); así, tal como observó la reina de Sabá, el pueblo de Israel era, en efecto, un pueblo bendecido. Para que nuestras familias sean bendecidas, el cabeza de familia —el esposo o el padre— debe ser sabio. Para que nuestras empresas sean bendecidas, el presidente debe se...

니고데모의 안경 토론 질문 Q3. 지진은 누구의 책임일까?

"니고데모의 안경 토론 질문 Q3. 지진은 누구의 책임일까?


 - 땅이 혼돈하고 공허할 때 땅의 기초를 세우시고 만물의 기초를 세우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의 통치와 질서는 우리 존재의 기초이시고 기쁨과 평안의 기초 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스스로 떠나려 하였을 때, 다시 말해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우리의 두 발을 지지하고 있던 땅의 기초가 무너졌고 이 땅은 열매가 아닌 가시와 엉겅퀴를 내게 되었습니다. 지진과 재난이 우리를 집어삼키더라도 우리는 스스로를 변호할 수 없는 죄인이며, 씨를 뿌리고 땅을 기경해도 가시와 엉겅퀴를 내고 마는 이 세상이 나의 피땀어린 수고를 배신한다 하여도, 우리는 나의 권리를 조금도 주장할 수 없는 죄인입니다.


우리는 지진과 재해를 통해 이곳이 낙원이 아님을 알 수 있으며 이 땅에 소망을 두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 낙원에 거할만한 자격있는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지진과 광풍과 같은 우리의 고난이 어찌 하나님이 악하시거나 그 능력이 유한하다는 것을 증거하겠습니까. 그 모든 것이 원죄의 결과이며 우리의 뿌리깊은 죄성의 결과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 땅이 여전히 나를 집어삼키지 않고 우리의 먹을 곡식과 물을 내고 있는 것이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은혜의 결과임을 우리는 왜 알지 못합니까.


땅이 우리를 지탱하고 우리를 위해 존재해야 할 이유도 없고 우리에게 자격도 없었습니다. 지진과 질병과 같은 문제가 각 개인이나 특정 민족의 자범죄로 인한 것이라 할 수는 없더라도 우리의 원죄로 인한 것임을 부인할 수 없을텐데 우리는 그 책임을 하나님께로 돌리곤 합니다.


지진과 같은 피할 수 없는 고난 앞에서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과 뿌리깊은 죄성과 소망 없음을 깨달아 겸비케 되고 자복하는 가운데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역사를 운행하시는 중에 그의 계획과 섭리로써 그의 택하신 백성들의 마음을 돌이키실 것입니다.


지난 주, 구원을 위해 오래 기도해오던 한 아버님께서 시한부 판정을 받고 호스피스 입원을 앞두고서야 74년만에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분은 육신의 병을 얻었지만 사망을 이기고 구원을 얻었습니다. 몇 달전 돌아가신 저의 아버지도 병상에서야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셨습니다.


반면 지난주 노방 전도 중에 만난 한 아버님은 젊은 시절 열심히 교회 활동을 하시다가 갑작스럽게 얻은 병으로 다리가 온전치 못하게 되어 마음에 상처를 입고 수십년간 교회를 떠나셨다고 합니다. 이 병은 무엇을 위한 것인지 그 아버님은 하나님께 따져묻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를 열심히 다닌다고 해서 성도인 것이 아니라 니고데모의 교훈과 같이 거듭나야 성도입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고난과 죽음을 통해서라도 우리를 낙원에 거할만한 자격 있는 성도로 만들어주시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분을 돌이키시기 위하여 걸을 수 있는 은혜를 잠시 거두어가기도 하셨지만, 그분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선물로 주시기 위하여 이번주에도 여전히 전도자를 보내어주시고 구원의 말씀을 전하게 하신 것입니다.


‘모압은 예로부터 평안하고 포로도 되지 아니하였으므로, 마치 술의 그 찌기 위에 있고 이 그릇에서 저 그릇으로 옮기지 않음 같아서 그 맛이 남아 있고 냄새가 변치 아니하였도다’(렘 48:11)


우리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야 괜찮은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때로 그의 얼굴을 드러내심으로, 때로는 그의 얼굴을 감추심으로 그의 주권과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우리는 기쁠 때나 아플 때나 삼위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지진은 때때로 어린아이부터 노인들까지 많은 목숨을 앗아가는 비극적인 사건이며 그 앞에서 우리는 무력하지만, 지진이나 자연재해가 하나님께서 그 땅에서 택하신 그의 백성들을 향한 구원 계획을 철회하였다거나 그 계획이 실패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다시 생각하건대 우리는 지금 당장이라도 하늘이 무너져 우리를 덮치고 당장 땅이 갈라져 우리를 집어삼키더라도 변명조차 할 수 없을 죄인입니다. 다만 하나님의 은혜에 붙들려 그 손에 의지하여 짧은 목숨이나마 잠시 보존하며 구원의 기회를 얻고 있을 뿐입니다.


이 땅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우리의 영혼과 우리의 삶의 기초 되십니다. 땅과 같이 우리가 의지하던 것들은 언제든지 지진과 고난으로 우리를 배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통렬한 외면을 통해 우리의 영혼 속 깊이 진리의 기초를 놓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나 부재가 느껴지는 어떤 상황에서도 오히려 하나님을 더욱 알게 되어서, 하나님께 모든 영광과 찬송을 돌릴 수 있는 것이 저희 성도들입니다.


소망없는 죄인들에게 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하여 우리 영혼과 삶의 기초를 다시 쌓기를 소망합니다."


(영상 형제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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