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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보시기에 지혜로운 사람

하나님의 나라가 멀지 않은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은 한분이신 것과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무수한 제물이나 많은 헌금이나 수 많은 봉사보다 낫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참고:마가복음 12:32-34, 현대인의 성경)(인천공항에서 리무진 타고 합정역으로 가면서).

주간 짧은 말씀 묵상 (2024년 11월 25-29일)

주간 짧은 말씀 묵상

 

 

 

예수님께서는 선지자들의 예언을 이루시려고 칼과 몽둥이를 들고 무리들에게 잡혀 가셨을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구약 성경의 예언의 말씀을 인용하신 대로 예수님을 버리고 모두 도망쳐 버렸습니다(마태복음 26:31, 56, 현대인의 성경; 참고: 스가랴 13:7, 현대인의 성경).  그런데 모든 사람이 주님을 버린다 해도 저는 절대로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하고 말한 사도 베드로(마태복음 26:33, 현대인의 성경) 예수님을 멀찍이 뒤따라 대제사장 가야바의 뜰까지 들어가서 일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 보려고 했습니다(58, 현대인의 성경).  아마도 베드로는 도망갔다가 다시 돌아와 예수님을 멀찍이 뒤따라 같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번이나 부인했습니다(누가복음 22:57, 58, 60).  그가 세번 째로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는 말을 미처 끝나기도 전에 닭이 울었고 주님께서는 몸을 돌이켜 베드로를 보셨습니다.  베드로는 오늘 울기 전에 네가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말할 것이다하고 하신 주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밖으로 나가 한없이 울었습니다(60-62, 현대인의 성경).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것이다”(마태복음 10:33, 현대인의 성경).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의회(공회)에서 예수님을 사형에 처할 만한 증거를 잡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와서 거짓 증언을 하였지만 실질적인 증거를 얻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사람이 와서 “이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3 만에 다시 세울 있다고 말한 사람입니다”하고 증언하였습니다.  그러자 대제사장이 일어나 예수님께 “이들이 네게 불리한 증언을 하는데도 대답이 없는가?”하고 물었습니다.  그래도 예수님은 침묵을 지키시고 대답을 하지 않으셨습니다(마태복음 26:59-63, 현대인의 성경).  저는 말씀을 묵상할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1) 예수님을 사형에 처할 만한 증거를 잡으려고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의회를 생각할 예수님의 마태복음 20 18 말씀의 성취 과정이라 생각됩니다: '지금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거기서 나는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의 손에 넘어갈 것이다.  그들은 나에게 사형 선고를 내린 다음” (현대인의 성경).  그들은 예수님이 사형 선고를 받아 십자가에 못박혀 죽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2)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께 “주님, 나는 주님과 함께 감옥에도, 사형장에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하고 말했지만(누가복음 22:33, 현대인의 성경) 도망쳐 버렸다가 다시 돌아와 예수님을 멀찍이 뒤따라 가서 일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 보려고 했지만(마태복음 26:56, 58, 현대인의 성경) 사도 바울은 그의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같은 느낌만 들은 것이 아니라(고린도후서 1:9, 현대인의 성경) “사형을 당하거나 (감옥에) 갇힐 만한 짓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 데도 불구하고(사도행전 26:31, 현대인의 성경) 실제로 사형장의 죄수처럼 제일 천한 자리까지 내려갔었습니다(고린도전서 4:9, 현대인의 성경).  그리고 그는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에게 여러 가지 죄로 고소를 당했을 “내가 만일 죽을 죄를 지었다면 사형도 달게 받겠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사도행전 25:7, 11, 현대인의 성경).  사도 바울이 그리 말할 있었던 것은 자기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을 의지하였기 때문입니다(고린도후서 1:9,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은 감옥에 갇힌 자들의 탄식을 들으시며 사형 선고를 받은 자들을 해방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참고: 시편 102:20, 현대인의 성경)  (3) “많은 사람들이 와서 거짓 증언을 하였으나 실질적인 증거를 얻지 못하”였다(마태복음 26:60, 현대인의 성경) 말씀을 묵상할 “거짓 증인은 거짓말을 뿐이다”(잠언 12:17, 현대인의 성경)하는 말씀에 동의합니다.  거짓 증인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살인, 간음, 음란, 도둑질, 거짓 증언, 그리고 비방”입니다(마태복음 15:19, 현대인의 성경).  이렇게 거짓 증언하는 사람은 방망이와 칼과 뾰족한 화살로 이웃을 해치는 것과 같습니다(잠언 25:18, 현대인의 성경).  우리를 대적하는 사람들은 우리에 대하여 거짓 증언을 것입니다(참고: 시편 27:12, 현대인의 성경).   그들은 우리가 알지도 못한 일로 우리를 비난할 뿐만 아니라(참고: 시편 35:11, 현대인의 성경) 우리에 대하여 허위 사실을 진술할 것입니다(참고: 잠언 24:28, 현대인의 성경).  성경은 분명히 “너희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언하지 말아라”고 말씀하고 있는데도 말입니다(출애굽기 20:16, 현대인의 성경).  이렇게 없는 사람에게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 씌우는 거짓 증언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벌하실 것입니다(참고: 이사야 29:21, 현대인의 성경).  (4) 많은 사람들은 거짓 증언을 하였지만 마지막 사람은 예수님에 대하여 실질적인 증거를 얻을 만한 증언을 했습니다.  증언이란 “이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3 만에 다시 세울 있다고 말한 사람입니다”입니다(마태복음 26:60-61, 현대인의 성경).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이 성전을 헐어라.  내가 3 안에 다시 세우겠다”하고 말씀하셨었습니다(요한복음 2:19, 현대인의 성경).  그러나 말씀을 들은 유대인들이나(18) 예수님에 대하여 실질적인 증거를 얻을 만한 증언을 사람이나(마태복음 26:60, 현대인의 성경) 모르고 있었던 사실(진리) “예수님이 말씀하신 성전은 자신의 몸을 가리킨 것이었다”(요한복음 2:21, 현대인의 성경)다는 것입니다[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후에야 말씀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믿게 되었습니다(22, 현대인의 성경)].  그랬기에 사람의 증인들뿐만 아니라 대제사장들과 유대인의 의회나 예수님을 고소한 모든 유대인들의 입장에서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성전을 모독하는 죄를 범했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이유는 구약에서 성전은 하나님의 이름이 거처하는 곳인데 예수님께서 성전을 헐라고 말한 것은 성전 모독죄인 동시에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참란죄로 보았기 때문입니다(이정현).  (5) 이렇게 사람이 예수님에 대하여 불리한 증언을 하는데도 예수님을 대답을 하시지 않으시고 침묵을 지키셨습니다(마태복음 26:62-63, 현대인의 성경).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변론하지 않으신 것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헐라고 말씀하신 성전이 실제로 예루살렘 성전 건물을 가리킨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을 가리킨 것이라고 설명하지 않으신 것일까요?  예수님은 침묵을 지키신 것일까요?  이사야 53 7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면서도 침묵을 지켰으니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깎는 사람 앞에서 잠잠한 양처럼 그의 입을 열지 않았다.  침묵은 비록 아무 사람들에게도 말을 하지 않는 것이지만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헨리 나우웬).   그리고 침묵이란 많은 사람들의 거짓 증언과 비난과 수군수군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오해 가운데 하는 말들을 듣는 가운데서도 오직 우리가 의지하는 하나님(참고: 고린도후서 1:9, 현대인의 성경) 음성만 듣고 말씀에 묵묵히 믿음으로 겸손히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형을 받아야 한다고 외쳐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고 주먹으로 치고 뺨을 때리면서 그리스도야, 너를 때리는 사람이 누구냐?  알아맞혀 보아라하고 조롱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인 베드로는 뜰에 앉아 있었을 여종이 와서 당신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한패지요?”하였을 도대체 모든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소하며 모든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하였습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정문으로 나갈 다른 여종이 보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어요하고 말하였을 베드로는 맹세까지 하면서 나는 사람을 알지 못한다니까요하며 잡아 떼었습니다.  잠시 거기 섰던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와서 당신 말씨를 보니 그들과 한패임이 틀림없소하자 베드로는 만일 자기가 그런 사람이라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맹세하면서 '나는 정말 사람을 모릅니다'” 하였습니다.  바로 그때 닭이 울었고 베드로는 예수님이 울기 전에 네가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말할 것이다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밖으로 나가 한없이 울었습니다(마태복음 26:66-75, 현대인의 성경).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마음이 너무나 괴로와 죽을 지경이셨을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에게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어라 말씀하셨지만 그들은 잠들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너희는 시간도 나와 함께 깨어있을 없느냐?”하고 말씀하셨는데(38-40, 현대인의 성경) 이번엔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고 주먹으로 치고 뺨을 때리면서 조롱하고 있었을 베드로는 예수님을 번이나 부인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다시 생각납니다: “시험에 들지 않도록 정신 차려 기도하라.  마음은 간절하지만 몸이 약하구나”(41, 현대인의 성경).

 

모든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예수님을 묶어서 끌고 총독 빌라도에게 넘겼을 예수님을 팔아 넘긴 가룟 유다는 예수님에게 사형 선교가 내린 것을 보고 뉘우쳐 은화 30개를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돌려주며 내가 없는 사람을 죽이려고 팔았으니 정말 죄를 지었소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그것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소?  당신이 알아서 일이오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결국 유다는 돈을 성전에 내던지고 나가서 목매달아 자살하였습니다(마태복음 27:2-5, 현대인의 성경).  신명기 27 25 번역 말씀입니다: “'뇌물을 받고 없는 사람을 죽이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 하면, 모든 백성은 '아멘' 하십시오.”  신명기 16 19 번역 말씀입니다: “…  뇌물은 없는 사람을 죄인으로 만듭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나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죽지만 나를 파는 사람에게는 불행이 닥칠 것이다.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다”(마태복음 26:24, 현대인의 성경).

 

명절이 되면 총독은 백성이 원하는 죄수 하나를 석방하는 전례가 있어서 빌라도 총독은 모인 군중들에게 소문난 죄수인 바라바를 놓아줄까요 아니면 그리스도 예수를 놓아줄까요 하고 물었습니다.  이유는 빌라도 총독은 유대인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시기하여 자기에게 넘겨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과정에 빌라도의 아내는 사람을 보내어 빌라도에게 당신은 없는 사람에게 상관하지 마세요.  지난 꿈에 내가 사람 때문에 많은 고통을 받았어요하고 말을 전했고,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군중들을 설득하여 바라바는 놓아주고 예수님은 죽이라고 요구하라고 하였습니다.  결과 빌라도 총독은 자기 아내의 말을 듣기보다 바라바를 놓아 주시오하는 군중들의 말을 들었습니다.  분명히 빌라도 총독도 예수님이 죄를 지은 것이 없는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군중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시오!”하는 외침에 굴복했습니다.  이유는 그는 아무 효과도 없는 공연한 짓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요 또한 오히려 폭동까지 일어날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빌라도 총독은 물을 다가 그들 앞에서 손을 씻고 나는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 죄가 없소.  이것은 여러분이 책임을 져야 일이오하였고 모든 백성들이 그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우리와 우리 후손에게 돌리시오하고 외쳤으므로 빌라도는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님을 채찍질하여 십자가에 못박게 내어주었습니다(마태복음 27:15-26, 현대인의 성경).  저는 말씀을 묵상할 가지 생각이 듭니다: (1) 소문난 죄수인 바라바는 놓아주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게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동기(motive) 바로 시기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얼마나 시기했었기에 없으신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히게 하고 소문난 죄수 바라바는 감옥에서 석방케 하였는지 시기란 매우 위험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잠언 14 30 하반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  시기하면 뼈마디가 썩는다.”  (2) 빌라도 총독은 유대인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시기해서 자기에게 넘겨준 것을 알고 있었고 또한 자기 아내를 통해 없으신 예수님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말아야 함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문난 죄수인 바라바는 놓아주고 예수님을 채찍질하여 십자가에 못박게 내어준 이유는 아무 효과(성과) 없는 공연한 짓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오히려 폭동까지 일어날 았기 때문이었습니다(24, 현대인의 성경).  과연 유대를 다스리고 있었던 빌라도 총독은 무슨 성과를 바랬던 것일까요?    혹시 야고보를 칼로 죽인 헤롯 왕이 유대인들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하였던 것처럼(사도행전 12:1-3, 현대인의 성경) 빌라도 총독도 유대인들이 기뻐하니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게 내어준 것이 아니었을까요?  공의를 행하기보다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는 지도자는 이미 타락한 지도자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 기쁜 소식(복음) 전하라고 부탁을 받은 교회 지도자들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하지 않고 우리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고 합니다(참고: 데살로니가전서 2:4, 현대인의 성경).  (3) 빌라도 총독은 군중들 앞에서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서 자기는 죄가 없고 그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는데(마태복음 27:24, 현대인의 성경) 어떻게 없으신 예수님을 군중들이 원하는 대로 채찍질하여 십자가에 못박게 내어줬으면서도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서 자기는 죄가 없다고 말할 있었을까요?  어떻게 그는 자신의 책임을 지지 않고 모든 유다 백성들에게 책임을 전가할 있었을까요?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는 무책임한 교회 지도자는 없으신 예수님을 있는 분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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