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고데모의 안경’ 책나눔을 마치며,
어느덧 2024년도가 한 달 남짓 남았다. 곧 우리가 한 살 씩 나이를 더 먹게 되고, 나 자신은 물론 부모님과 가족들도 조금은 더 늙어갈 것이며, 내가 사는 집과 가구와 물건들도 조금은 더 낡아질 것이다.
특히 나의 올 한 해는 연로해가시던 아버지께서 암으로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그 충격으로 치매 판정을 받으신 힘겨운 한해였다. 쉬운 인생은 없을 것이다. 시간은 야속할 정도로 빠르게 흘러가면서 우리를 늙고 낡아지게 하니, 마치 사망을 향해 달음질 하는 인생과 같았다. 그래서 난 원래 연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시간'은 하나님께서 내리신 저주인가를 잠시 생각해본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시간'은 에덴동산의 질서 안에서 창조된 하나님의 선물이었다. 지금은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그 창조 질서가 깨어졌지만, 원래의 창조 질서 안에서는, 지금은 야속하게 흘러가는 듯이 보이는 시간마저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었다. 우리는 야속히 흘러가는 시간을 탓할 수 없다. 우리가 아담 안에서 타락했을 때, 시간의 화살은 우리의 비뚤어진 활시위를 벗어나 내가 손쓸 수 없게 되었지만, 우리의 시간이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정에 놓이기 전에 내가 하나님의 은혜 안으로 속히 숨는다면, 우리의 시간은 다시 영광과 마주하며 영원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시편 말씀에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한다."(시 19:1-2) 하였다.
나는 이 말씀이 참 좋다. 성도에게 흐르는 시간은 결코 저주일 수 없으며,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아름다운 캔버스가 되고, 영원을 맛보며 준비하는 연습장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성경의 눈으로 바라보았을 때, 에덴동산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활기찬 무대였던 것과 같이, ‘시간’ 역시 하나님의 영원한 영광이 점진적으로 펼쳐지는 신성한 드라마의 무대가 된다. 완벽하게 짜여진 각본의 '시간'이라는 무대 위에서, 우리의 매 순간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지혜를 매일 새롭게 선사하는 은혜의 순간이 된다.
2024년의 우리 교회의 주제 말씀은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나를 영광으로 영접하리니"(시73:24)였다.
이 말씀을 잠시 묵상해본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건져내신 성도들을 올 한 해에도 주의 교훈을 통해 세상과 구별된 의의 길로 인도하셨으며, 그 길 위에서 말씀에 순종하는 순간순간마다 기쁨과 생명을 맛보이셨다. 하나님을 향해 돌처럼 굳어져 있던 아버지의 마음이 죽음을 앞둔 병상 위에서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와 말씀에 의해 잘게 부서지고 부드러워졌을 때 우리 가정은 영생의 기쁨을 맛보았고, 또한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모으신 교회를 통해서는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성도됨의 기쁨과, 천국에서의 교제를 미리 맛볼 수 있었다.
때로는 주님의 인도하심이 나를 거친 바다와 폭풍 속으로 내모는 것 같아서 원망과 탄식을 쏟아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내 배의 돛을 단단히 붙드시고 영원의 바다를 향한 힘찬 항해를 계속하셨으니, 지나고 돌이켜보면 어느 하루도 은혜가 아닌 날이 없었고, 하나님께서는 어느 단 한 순간도 자기자신을 내게 계시하지 않으신 적이 없으셨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시간’이라는 은총 속에 자신의 광활한 지혜를 숨겨두셨다. 그래서 여전히 이해하기 힘든 채로 남아있는 고초와 고난의 순간들도 있지만, '후에는' '나를 영광으로 영접하리니' 하신 것처럼, 시간의 덮개가 한 꺼풀 한 꺼풀씩 벗겨진 '후에는', 지나간 것들이 모두 하나님의 완전하신 계획 안에 감추어진 은혜였음이 점차 선명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며, 또한 종말에 이르러서는 우리가 비로소 완전히 깨달아 영광 중에서 주를 찬송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여름의 장마와 겨울의 거센 눈보라가 당장에 우리를 멸하여도 하등 변명할 것이 없는 인생들에게 계절이 변하여 겨울이 가고 또다시 봄이 옴은 죄인을 멸하지 않고 사랑과 긍휼로서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신실한 은혜였으며,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뀔 때마다 우리가 늙어가는 가운데서도 우리의 겉사람이 낡아지는 동안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질 수 있었던 것은, 공허하고 혼돈한 우리 영혼 중에 세상의 질서를 능히 거스를 새 창조의 질서를 불어넣어주신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였음을 믿음으로 고백할 수 있다.
더욱이 우리가 한 해동안 성도의 교제 중에 서로에게서 발견해낼 수 있었던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의 아름다움을 상기시키며 우리의 본향 천국에 대한 그리움을 더욱 짙어지게 했고,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은 성도의 '거듭남'과 '성화'가, 후에는 '영화'로서 완전해질 것과,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날에, 부활된 몸으로서 하나님과의 화평과 영광 가운데 있게 될 것을 식지 않을 소망 가운데서 꿈꾸게 했다.
이 모든 진리와 소망들이 우리가 지나온 시간 위에 볼펜으로 꾹꾹 눌러쓴 듯 깊이 새겨졌고, 그 모든 시간들이 지혜와 교훈으로써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 중에 붙들려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험할 수 밖에 없었던 이별과 낙심의 순간들도 있었다. 지난 아픔과 좌절의 시간들을 무엇으로 위로할 수 있을까. ‘내년에는 다 잘될거야’라는 섣부른 위로가 내게 다시 한 번 살아갈 힘을 줄 수 있을까. 아니, 그렇지 않다. 시간이 그저 흘러갈 뿐이라면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시고 패배한 듯 보이는 전쟁을 능히 역전하시며, 과거와 현재의 모든 시간을 영원으로 바꾸실 하나님의 신실하심만이 우리의 생명과 위로가 될 수 있다.
다가올 2025년 새해에도 우리에게 질병이 없고 이별이 없으리라는 보장이 없고 고난이 없으리라는 보장이 없으며, 가시와 엉겅퀴 가득한 세상에서 우리가 씨를 뿌려도 거두지 못하고 수고가 배신당하는 일들이 허다하게 일어날 수도 있다. 배신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심 뿐이다.
성도의 시간은 하나님의 신실하신 통치 아래에 있어서, 세상이 죄의 권세 아래에서 죽음을 향한 허망한 달음질을 지속할 때에도, 성도의 달음질의 목적지가 이미 약속된 '영광'을 향해 있었다는 사실만이 나의 연약함 중에도 견고한 소망이 되어준다.
우리는 시간의 끝자락에서 영광 중에 주님을 영접할 것이며, 우리의 모든 걸음은 그분의 영광스런 품에 안기는 것으로 완성될 것이다. 흐르는 시간은 동산에 흐르는 생명수의 강과 같이 저주가 아닌 은혜가 되고, 우리의 일상의 순간들은 하나님의 일반 은총 가운데서 그의 영광을 만나는 정거장이 된다.
시간이 주님께 순종하고 창조 세계가 주님께 순종하듯 나의 일상의 작은 순종들이 영광의 면류관이 되고, 한숨은 찬송이 될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이 예비하신 더 나은 본향, 천국을 사모하나,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새 하늘과 새 땅의 문을 열어주지 아니하셨다. 나그네로 살아가는 이 땅 중에서 올 한해에 이어 또 한 해를 살게 하신 것이다.
일주일이 아닌 단 한 번의 의지와 말씀 만으로도 세상을 창조하실 수 있는 하나님께서 '시간' 가운데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의 뜻을 날들(days)과 연한(years) 가운데 두시며 아담에게 동산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영광스런 일에 참여할 기회를 주셨던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는 '시간'이라는 무대 위에서 성도들이 해야할 일들을 남겨두신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당신의 뜻의 성취자 삼으신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선물로 받은 올 한해의 의미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시간과 인생의 의미이지 않을까 싶다. 바뀔 것 같으면서도 바뀌지 않는 사람들, 여전히 믿지 않는 부모님과 배우자와 자녀들, 그리고 지독히도 바뀌지 않는 것 같은 세상까지, 모두 하나님의 신실하신 은혜 가운데서 우리의 몫으로 남겨두셨다.
24년 한 해에도 나를 사망을 향해 달음질 하는 세상의 사람들과 같지 않게 하시고, 언약의 푯대를 향해 달음질하게 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세상으로부터 구별하시고 세상에 대해 승리하게 하신 것처럼, 25년 한 해에도 가정이나 직장이나 사회에서나, 혹은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문화 가운데서나, 내가 믿음으로 서게 될 모든 자리에서 성령님께 의지해 승리할 담력과 성도의 능력을 주시고, 하나님의 통치와 영광을 드러내주실 것을 굳게 믿는다.
시간은 흘러간다. 그러나 성도는 시계의 미세한 초침 소리에서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발견하고, 순간의 초침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영원 중의 나라를 발견해낼 것이다. 선물로 주어진 이 시간들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며, 가정과 일터와 학교와 교회에서의 모든 시간들을 주께 돌려드리고, 매 순간의 순종 가운데서 그의 영광을 드러낼 것이다.
그리하여 다가올 2025년도에도 우리의 모든 시간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게 될 것이며, 교회에 머무르는 시간 뿐만 아니라, 일터에서의 시간과 가정에서의 시간과 문화 활동의 시간과 심지어 휴식의 시간까지도 모두 주께 속해 있을 것이다.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나를 영광으로 영접하리니"(시73:24) 내가 주의 말씀을 좇아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가운데서, 나의 일상이 구속의 은혜를 경험하는 무대가 되고 나의 삶 전체가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하는 중에, 세상 어느 곳이든지 하나님의 왕되심과 그의 영광을 찬송하는 자리로 변모하지 못할 곳은 없을 것이다.
2025년이라는 시간의 두루마리가 우리 앞에 새롭게 펼쳐진다. 성도가 시간 위에 남기는 족적들은 구원의 족적이 되고 그리스도의 족적이 될 것이며, 그러한 족적들이 모여 2025년도 한 해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이다.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다 기록할 수 없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과 영광 그 위대하심이 한 성도의 구원 안에 모두 담겨 있고 한 성도의 시간 안에 모두 담겨있다. 그렇다면 거듭나 성화 가운데 있는 많은 성도들이 세상 가운데 남기게 될 족적이 모여서는 타락한 세상 가운데서도 영광 중의 하나님의 나라를 능히 계시하게 될 것을 믿는다.
우리는 타락한 창조 세계를 돌아보아 창조 질서에 대한 그리움 속에서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질서의 회복을 소망하며, 천국을 침노하는 자들이다. 그것이 성도의 정체성이다.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속에 그리어볼 때/
하늘의 별 울려 펴지는 뇌성 주님의 권능 우주에 찾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다가올 한 해에도 신실하게 행하실 하나님의 크고 놀라우신 일들이 우주 곳곳에 가득찼다. 만물을 통해 왕되신 하나님을 느끼며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찬양하는 바로 그 자리에 천국이 이미 임하였음을 믿으며, 또한 재림하시는 그리스도와 함께 더 큰 영광 중에 임하게 될 것을 믿는다. 내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중에 점점 선명해질 이곳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 그것이 2025년을 살아갈 우리들의 제일 되는 목적이다."
(영상 형제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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