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आइए मौत के नज़रिए को अपनाएँ। (सभोपदेशक 7:2)

  आइए मौत के नज़रिए को अपनाएँ।         “ दावत वाले घर में जाने से शोक वाले घर में जाना बेहतर है , क्योंकि यह सभी इंसानों का अंत है , और जो जीवित हैं , वे इस बात पर गंभीरता से विचार करेंगे ” ( सभोपदेशक 7:2) ।       नए साल की शुरुआत से ही , मैं दो अंतिम संस्कार में शामिल हो चुका हूँ — और ये दोनों ही एक हफ़्ते के अंदर हुए। इन कार्यक्रमों में शामिल होने से मुझे सभोपदेशक 7:2 पर फिर से सोचने का मौका मिला। जब मैंने इस बात पर विचार किया कि मौत ही सभी लोगों का अंतिम अंजाम है , और एक जीवित व्यक्ति के तौर पर इस सच्चाई को गहराई से महसूस किया , तो मैंने खुद से फिर पूछा : " तो फिर , मुझे कैसे जीना चाहिए ?" आज जब मुझे अपने प्यारे तीसरे चाचा , पादरी किम चांग - ह्युक के बारे में खबर मिली , तो यह सोच और भी गहरी हो गई ; डॉक्टरों ने कहा है कि उनके पास जीने के लिए बस दो या तीन हफ़्ते बचे हैं। उस आयत पर फ...

영생이란?

영생이란?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고 할 때 영생을 그저 내세의 영원한 생명이라고만 생각해서는 아니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생이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지금 현재에도 우리가 부분적으로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생”이란 단어가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곳은 요한복음입니다.  헬라어로 "영생" "조에(life) 아이오니오스(eternal)"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조에"(생명)라는 말과  "아이오니오스" (영원한)라는 말이 합쳐진 말입니다.  , "영생"이라는말은 문자적으로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인터넷): 이것은 첫째로 시간적으로 "끝없이 지속되는 생명"을 의미하고둘째로 질적으로 "인간의 삶과는 다른 신적인 삶"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영생이란 말에는 시간적으로 영원한 삶이란 의미와하나님 안에서 누리게 되는 신적인 삶이란 의미를 둘 다 포함하고 있습니다.  특히 요한복음을 보면 "영생"의 의미는 공관복음처럼 "내세에서 누릴 영원한 축복"도 의미하지만 그보다 "현재"에 누리는 축복을 많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주님을 믿는 자는 이미 영원한 생명을 가졌으며그 축복을 주님 안에서 현실 속에서도 누릴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과연 현재에 우리가 누리는 영생의 축복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영원하신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을 통하여 친밀한 인격적인 교제를(17:3) 나누는 가운데 주시는 내세의 축복들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하나님의 신적 성품에 참예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현재 이 땅에 살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부분적으로 누리는 영생의 축복은 바로 성령님의 성화 가운데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또 하나 우리가 현재 부분적으로 누리는 영생의 축복은 바로 사랑입니다.  우리가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된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갈 때에 우리는 천국의 기쁨을 부분적으로마나 맛보는 것입니다.  또한 영생의 축복은 평안입니다.  비록 평화가 없는 세상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지만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부분적으로마나 영생의 축복인 하나님의 평강을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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