आइए मौत के नज़रिए को अपनाएँ। “ दावत वाले घर में जाने से शोक वाले घर में जाना बेहतर है , क्योंकि यह सभी इंसानों का अंत है , और जो जीवित हैं , वे इस बात पर गंभीरता से विचार करेंगे ” ( सभोपदेशक 7:2) । नए साल की शुरुआत से ही , मैं दो अंतिम संस्कार में शामिल हो चुका हूँ — और ये दोनों ही एक हफ़्ते के अंदर हुए। इन कार्यक्रमों में शामिल होने से मुझे सभोपदेशक 7:2 पर फिर से सोचने का मौका मिला। जब मैंने इस बात पर विचार किया कि मौत ही सभी लोगों का अंतिम अंजाम है , और एक जीवित व्यक्ति के तौर पर इस सच्चाई को गहराई से महसूस किया , तो मैंने खुद से फिर पूछा : " तो फिर , मुझे कैसे जीना चाहिए ?" आज जब मुझे अपने प्यारे तीसरे चाचा , पादरी किम चांग - ह्युक के बारे में खबर मिली , तो यह सोच और भी गहरी हो गई ; डॉक्टरों ने कहा है कि उनके पास जीने के लिए बस दो या तीन हफ़्ते बचे हैं। उस आयत पर फ...
정조를 잃은 교회
지금 우리는 하나님께 정조를 지키고 있지 않고 사생아를 낳고 있습니다(호세아 5:7). 지금 신부된 교회는 신랑되신 주님께 정조를 지키고 있지 않으면서 "사생아" 같은 교인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속에는 '예수님의 마음'(빌립보서 1:8)이 아니라 "음란한 마음"(a spirit of prostitution)이 있습니다(호세아 5:4). 그 결과 우리의 행위가 우리로 우리 주님에게 돌아가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4절). 더 나아가서, 우리 속에 음란한 마음으로 인하여 우리의 마음은 교만해져 있습니다(5절).
그런 가운데서도 지금 우리는 "양떼와 소떼를 끌고 여호와를 찾으러"(6절) 매 주일 예배당에 나아와 하나님께 그것들을 받치면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그 "무수한 제물"은 아무 유익도 없고 기뻐하시지도 아니하시는데 말입니다(이사야 1:11). 그것은 그저 하나님 "앞에 보이러 오"는 것인데 말입니다(12절). 그저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는 예배당만 밟을 뿐인데 말입니다(12절).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헌금인데 말입니다(13절).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고 말씀하시고 있는데 말입니다(13절). 그 모든 받침은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내가 지기에 곤비"한 "무거운 짐"인데 말입니다(14절). 이렇게 받치면서 하나님을 찾지만 지금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있습니다(호세아 5:6). 지금 우리는 예배 가운데 임하시는 하나님의 임재와 사랑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징벌하실 것입니다(1, 2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은 하나님께서는 그의 징벌을 통하여 우리가 고난을 받을 때에 하나님을 간절히 구하게 만드신다는 것입니다(15절). 그리고 주님께서는 우리 교회를 "말씀으로 꺠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고 계십니다(에베소서 5:26-27). 그러므로 결국 신랑되신 주님께서는 신부된 우리 교회를 준비시키시사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케 하실 것입니다(요한계시록 19:9).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호세아 6:1).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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