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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votional Reflection Based on the Incident of Peter Cutting Off Malchus's Ear:

Devotional Reflection Based on the Incident of Peter Cutting Off Malchus's Ear: “Then one of those standing near drew his sword and struck the servant of the high priest, cutting off his ear.” ( Mark 14:47, Today's Korean Version ) 1. Identifying the People Involved: The person who stood beside Jesus and drew the sword was Simon Peter . The servant of the high priest was named Malchus . “Then Simon Peter, who had a sword, drew it and struck the high priest’s servant, cutting off his right ear. The servant’s name was Malchus.” ( John 18:10 ) 2. Jesus' Response to Peter's Action: (a) Jesus said: “Permit even this.” ( Luke 22:51, KJV: “Suffer ye thus far”; RSV: “No more of this” ) The Greek words clarify this: “ἕως τούτου” (“heōs toutou”) = “up to this point” or “even this” “ἐᾶτε” (“eate”) = “allow it,” “let it be,” “leave it alone” Therefore, Jesus is essentially saying: “Let them do what they are doing. Do not resist any further.” “If ...

바울의 생사관

바울의 생사관

 


[빌립보서 1 19-26절 말씀 묵상]

 

사도 바울은 삶과 죽음을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바울은 예수님을 믿기 전에“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였습니다(3:5-6).  그러나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중생(conversion)을 받고 나서는 자기가 그 모든 것을 다 배설물로 여겼습니다(8).  그 만큼 이제 바울에게는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였습니다(8).  그래서 바울의 간절한 소망과 기대는 오직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1:20).  그는 살든지 죽든지 자기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길 원하였습니다.  그는 살든지 죽든지 오직 그리스도가 찬양 받으시고 영광 받으시길 간절히 원하였습니다.  그는 “지금도 전과 같이”(now as always)(20), 과거나 현재나 장차 죽을 때까지 오직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길 간절히 원하였습니다.  그는 “온전히 담대하여”(sufficient courage살든지 죽든지 자기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길 원하였습니다(20).  하나님께서 그에게 족한 은혜(sufficient grace)를 베풀어 주시므로 말미암아(고후12:9) 바울은 그의 삶과 죽음을 통하여 오직 그리스도만 존귀케 하였습니다.  그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었습니다(5:9).  우리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 오직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의 사는 목적은 오직 그리스도였습니다(1:21).  그는 살아도 유익죽어도 유익하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살아도 좋고죽어도 좋지만 죽는 것이 훨씬 더 좋다(유익하다)고 말하였습니다(23).  그가 죽는 것이 훨씬 더 좋다고 말한 이유는 죽으면 근심된 일과 곤고한 일과 죄악된 일과 슬픔과 눈물과 죽을 일이 없는 천국으로 가서 좋다기 보다(그는 이 모든 것을 초월한 듯 함천국가서 그리운 예수님을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볼 것이였기 때문입니다(고전13:12).  비록 살아있을 때는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12천국 가서는 주님을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기 때문에(12그는 죽어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고 또한 그리하고 싶어했습니다(1:23).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존전에서 하나님을 섬기길 간절히 원하였습니다.  더 이상 연약한 가운데서가 아니라 온전한 상태에서 성령충만하여 주님을 섬기게 될 것이기에 그는 죽어서 천국가는 것을 더 간절히 원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목적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땅에 존재하는 목적이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서였습니다(25).  그는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었지만(23그는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하였습니다(25).  그가 이 땅에 사는[“내가 살 것”, “함께 거할”(25)] 목적은 교회 성도들의 믿음과 기쁨의 진보를 위한 것이었습니다(25).  이것이 바로 “내 일의 열매”였습니다(22).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살게 하시사(25) “내 일의 열매”(22)를 맺게 하시고자 이 땅에 존재케 하시는 줄 믿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살아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살리사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시어 열매를 맺게 하시고자 하심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주님이 주신 사명이 있기에 이 땅에서 살았고 주님께서 자기를 살려두신 목적이 주님의 일을 하게 하시고자 함을 알았기에 이 땅에서 살았습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존재하는 목적은 주님이 주신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입니다.

          

[김창세 원로 목사님의 주일(2015. 8. 30.) 설교 요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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