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الفصل السادس: إخلاء «الرياء»

   الفصل السادس : إخلاء « الرياء »         رأينا فيما سبق كيف ينبغي لنا أن نخلي ذواتنا من الكبرياء الذي يدفع الإنسان إلى رفع نفسه فوق الله، ومن الطمع الذي لا يكتفي بالله بل يطلب باستمرار أن يمتلك المزيد . والآن ننتقل إلى خطية عميقة أخرى، هي « الرياء » . الرياء هو الرغبة في أن نظهر أمام الناس بصورة تختلف عن حقيقتنا . فهو أن نحمل في داخلنا أفكارًا ومشاعر معينة، بينما نتصرف في الخارج وكأننا لا نحملها، وأن نهتم بتقييم الناس لنا أكثر من اهتمامنا بنظر الله إلينا، فنزيّن إيماننا بحسب ما نريد أن يراه الآخرون . لذلك فإن إخلاء الذات من الرياء لا يبدأ بمحاولة الظهور أمام الناس كمسيحيين أفضل . بل يبدأ بأن ننظر إلى حقيقتنا أمام الله بكل صدق، من دون أن نخفي شيئًا . قد نستطيع أن نخدع الناس . وقد نستطيع، إلى حدّ ما، أن نتحكم في الصورة التي يراها الآخرون عنا . لكن لا ينفع أي قناع أمام الله، لأن الله لا يرى فقط ما يظهر ...

“주의하라” (4)

주의하라” (4)

 

 

 

둘째로, 바울은 율법주의를 주의하라고 경고했습니다(2: 11-17).  율법주의란 외식했던 바리새인들처럼 율법을 지켜 행함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을 말합니다(행위 중심 구원관).  이 율법주의는 자기 의에 기초한 신앙으로서 정해진 규정들과 규칙들을 잘 지키는 자기의 헌신과 노력이 강조됩니다.  그러나 이 자기 의에 기초한 율법주의적 신앙에는 2 가지 위험한 열매인 영적 우월감과 상습적인 죄책감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바리새인들처럼 영적 우월감을 갖게 만드는 율법주의가 바른 신앙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율법주의를 경계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율법주의를 경계하면서 우리는 동일하게 율법을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율법을 가볍게 여기는 것을 가리켜 “반율법주의”라고 말합니다.  이런 율법주의와 반율법주의는 복음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할 때 등장하는 2 가지 잘못된 대적들입니다(켈러).  율법주의와 반율법주의 모두가 사탄의 거짓말을 믿고 하나님의 성품을 왜곡하였다고 말합니다(퍼거슨).  결국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 구원자가 되는 2 가지 길을 추구합니다: (1) 모든 도덕률을 깨뜨리고 스스로 자유롭게 길을 정하는 것(반율법주의)(2) 모든 도덕률을 다 지키고 지극히 선한 삶을 사는 길(율법주의).  이 율법주의와 반율법주의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확인하는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퍼거슨).  우리는 이미 골로새 교회(와 라오디게아 교회)를 위협하고 있었던 그 당시 이단 사상들 3가지 중 두 번째가 바로 ‘유대교적 율법주의’라고 배웠습니다(1:15-23).  여기서 ‘유대교적 율법주의’란 특히 육체의 할례와 음식의 규례와 특별한 절기의 준수가 구원과 관계있다고 주장한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율법주의를 주의하라고 이미 경고했습니다(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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