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운 상황
[시편 27편1-6절 말씀 묵상]
요즘 혹시 여러분들 중에 두려운 상황에 쳐해 있는 분들이 계신지요? 만일 계시다면 왜 두려워하고 계십니까? 주로 우리가 두려워하는 이유는 걱정, 근심, 불안으로 말미암아 두려움이 우리 마음 속에 생기지 않나 생각합니다. “두려움”하면 생각나는 성경구절 중 이사야 41장10절 말씀을 들 수가 있을 것입니다 –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 .” 저는 개인적으로 요한일서 4장18절 말씀이 생각납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안에서 온전히 이르지 못하였느니라.” 분명히 성경은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왜 우리는 두려워하는 것입니까? 온전한 사랑이 결핍되 있기 때문입니다.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는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두려움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케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크리스천 비즈니스맨의 리더십 개발을 위한 편지”(제 64호)를 보면 우리 안에 잠재된 무의식적인 두려움은 크게 네 가지로 삶을 황폐화시킬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두려움은 당신의 잠재력을 마비시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사를 재대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묶어버리고 주저하게 만들어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마치 달란트 비유에서 한 달란트 받은 사람처럼 말입니다. 둘째로, 두려움은 당신이 맺고 있는 관계를 파괴시킵니다. 두려움은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에게 정직하게 대하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거절당하기를 두려워해서 가면을 쓰고 원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가장하고 실제 감정을 부정합니다. 결코 두려움은 우리로 하여금 온전한 사랑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셋째로, 두려움은 우리가 누리는 행복을 방해합니다. 행복과 두려움은 동시에 공전할 수가 없습니다. 넷째로, 두려움은 우리의 성공을 방해합니다. 우리는 종종 우리가 바라는 일이 일어날 것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두려워하는 일이 발생할 것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실패를 준비합니다. 두려움은 두려워하는 일이 생기게 합니다.”
과연 우리의 삶을 황폐화시키는 두려움을 우리는 어떻게 극복해 나아가야 합니까? 오늘 본문 시편 27편1-6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다윗은 두려운 상황에 쳐해 있었던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과연 그 두려운 상황에서 다윗은 어떻게 했는지 한 세 가지로 교훈을 받으면서 우리도 삶 속에서 적용할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첫째로, 다윗은 두려운 상황에서 오히려 안연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다윗은 두려운 상황에서 그는 오히려 담대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 시편27편 3절을 보십시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안연하리로다”. 두려운 상황에서 다윗은 어떻게 오히려 안연(담대) 할 수가 있었습니까? 그 이유는 다윗은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두려운 상황에서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며 내 생명의 능력’이 되시는 잠잠히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두려운 상황에서도 안연할 수 있는 첫 번째 방법은 빛되시며 구원자가 되시며 우리 생명의 능력이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다윗이 처한 상황은 참으로 어두웠었습니다. 오늘 본문 2-3절을 보면 “나의 대적, 나의 원수된 행악자가 내 살을 먹으려고” 다윗에게로 왔고 또한 3절을 보면 “군대”가 다윗을 대적하여 진을 쳤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환난” 가운데 있었던 것입니다(5절). 이러한 어두운 상황에서 다윗은 오히여 하나님을 바라보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인정하며 나아가므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안연(담대)하였습니다.
다윗처럼 두려운 상황에서 안연(담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직접 두려운 생황을 접하게 되면 그 순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없지 않나 생각합니다. 걱정도 되고 근심하면서 불안해 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연약함인 것입니다. 사도들조차도 예수님이 배 안에서 자고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파도치는 것을 보고 두려워 했다면 우리는 인생의 죄악된 파도와 물결이 몰아칠 때에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두려워하면서도 우리의 두려움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가운데서 태연한 척 할 때가 없지 않아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우리 마음 속에 있는 두려움을 솔직히 인정하는 가운데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잠잠히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우리는 빛되신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여기서 “빛”(light)은 어두움을 자동적으로 좇아버리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어두움”은 다윗에게 있어서는 그의 대적을 가리킵니다. 다윗은 그의 대적들, 특히 전쟁 상황에서의 그의 대적 군대들을 가리켜 “어두움”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어두움을 하나님께서는 빛이시기에 다 좇아내실 것을 다윗은 확신했습니다. 어두우면 어두울 수록 빛은 더 환하게 발하는 것처럼 두려운 상황이면 상황일 수록 빛되신 하나님을 바라볼 때에 어두움을 다 물러갈 수 밖에 없습니다. 다윗은 또한 “구원”이신 하나님, “승리” 혹은 “구출”이신 하나님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다윗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기에게 승리를 주실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생명의 능력”(the defense of my life)이신 하나님, 곧 다윗의 “피난처”(refuge)이시며 다윗의 “산성”(stronghold)이신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즉, 다윗은 어떠한 군대 정황(배경) (military context)에서 하나님께서 보호(safety)해 주실 것을 확신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이 아무리 어두울찌라도 빛되신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상황이 어두우면 어두울수록 하나님의 (구원의) 빛은 더욱더 환하게 발하는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두려운 상황이면 상황일 수록 더욱더 의지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을 바라보는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승리케 하실 수 있는 그의 능력이 우리 마음과 생각과 감정, 전 인격을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안연(담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우리는 (구원의) 확신 가운데 설 수가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두려운 상황에서 오히려 안연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승리(구원)의 체험을 되새겨야 합니다. 다윗은 그가 당면한 어두운 상황에서 과거를 뒤돌아 보면서 하나님께서 자기의 대적들을 실족케하여 넘어뜨리신 일을 기억하므로 두려운 상황에서도 오히려 안연(담대)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2절을 보면 “나의 대적, 나의 원수된 행악자가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다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현재 어두운 상황 속에서 캄캄하게 보이기만 하는 미래를 생각하기에 앞서 과거의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구원의 은총들을 생각하므로 말미암아 우리는 현재의 당면한 어두움 상황 속에서 빛되신 주님에 대한 구원(승리)의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셋째로, 우리가 어두운 상황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안연(담대)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미래를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므로 우리의 미래를 바라봐야 합니다. 다윗은 오늘 본문 3절에서 미래에 어떠한 전쟁이 일어나서 그의 대적 군대가 진치며 자기를 죽이려고 할찌라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신앙고백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빛되시며 구원자가 되시며 그의 생명의 능력이 되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윗처럼 두려운 상황에서 담대해야 합니다. 저는 한 가지 확신이 있습니다. 바로 빌립보서 1장6절 말씀입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우리 주님께서 승리장로교회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인 “내가 … 내 교회를 세우리니”(마16:18)란 말씀, 신실하신 주님께서 분명히 이루실 줄 확신합니다. 어떠한 두려운 상황을 접할지라도 주님의 약속의 말씀에 이끌림을 받아 두려워하지 않으며 오히려 담대하게 견고히 서서 우리 모두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워나아가시는 주님의 사역에 동참하십시다.
둘째로, 다윗은 두려운 상황에서 하나님께 구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시편27편 4절을 보십시오: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시편 기자 다윗은 두려운 상황에서 하나님께 한 가지 구하였습니다. 그 한가지 기도 제목은 하나님의 집에 거하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는 것이였습니다. 두려운 상황에서 하나님의 집을 사모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첫째로, 하나님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 볼 때에 마음의 두려움은 사라지고 마음에 평안함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두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자기 일생 모든 날에 묵상하였던 것입니다. 은혜 충만한 하나님 계시의 아름다움(박윤선)을 묵상하는 자는 두려운 상황에서도 마음의 평안함을 체험합니다. 둘째로, 다윗이 하나님의 집에 거하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앙망하였던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보호하심을 사모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5절을 보시길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바위 위에 높이 두시리로다.” 다윗은 4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나님과 교제하길 원했던 이유는 “그가 성전에서 하나님을 사귐이, 그 모든 위험에서 구원 받는 방도이기 때문”입니다(박윤선). 첫째 아기 주영이 때 자주 듣고 묵상했던 미국 복음 성가가 있습니다. “Under the Shadow of Your Wings” (주 날개 그늘 아래)이라는 찬양이였는데 그 노래 가사 중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주 날개 그늘 아래 주님의 거룩한 처소에서 나의 하나님 주를 기다리네 이곳 주의 처소에서 주의 사랑이 나를 이끄시니 주 알기 위해 나를 드립니다 주 사랑으로 덮으소서 주님의 마음 깊은 곳으로 나를 인도하소서 주님의 날개 그늘 아래 나를 보호하소서 주 알기 원합니다.” 밤마다 주영이와 함께 있다가 차를 타고 병원 주차장을 나서면서 창공을 바라보면 들었던 또한 함께 불렀던 찬양입니다. 아내와 제가 아이와 함께 할 수 없는 그 시간에 하나님께서 그의 날개 그늘 아래, 거룩한 비밀스러운 곳에 아기를 품어주시고 숨겨주시길 간구하는 마음으로 그 찬양을 듣고 불렀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보호하심에 맞기는 기원의 찬양이였던 것입니다. 마지막 셋째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내 원수를 물리치시므로 나로 하여금 승리케 하실 것을 소망하였기 때문에 다윗은 두려운 상황에서 하나님께 한 가지 청하였습니다[(6절a)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두른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 박윤선 박사님은 이 구절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그가 많은 원수 앞에서 몰락되지 않고 도리어 소망 중에 태연자약하게 살 것을 가리킨다.” 소망 없이는 어두운 환경에서 우리는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소망되시는 주님이 계십니다. 우리는 고개를 들고 주님을 소망 중에 바라봐야 합니다.
우리 또한 다윗처럼 두려운 상황에서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다윗처럼 하나님의 집에 거하며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우리는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특히 두려운 상황에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잠잠히 머물러 하나님의 영광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이 기도의 간절함은 죄악된 물결의 파도가 더 치면 칠 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집을 사모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찬송가 543장 2절의 가사가 생각납니다: “괴롬과 죄가 있는 곳 나 비록 여기 살아도 빛나고 높은 저곳을 날마다 바라봅니다. 이 세상의 근심된 일이 많고 죽을 일 쌓였는데 우리가 어찌 하나님의 집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그의 아름다움과 영광을 간구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두려운 상황에서 다윗처럼 하나님께 간구하십시다.
마지막 셋째로, 다윗은 두려운 상황에서 하나님께 찬양을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시편 27편 6절을 보십시오: “…내가 그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여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다윗은 두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면서 그의 보호하심과 승리케 하실 것을 소망하면서(5절) 믿음으로 “장래의 소원 성취에 대한 감사와 찬송을 서원”하였습니다(6절) (박윤선). 이것은 박윤선 박사님 말씀대로 “승리자로서 감사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는 행동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아직도 다윗은 그의 대적, 그의 원수된 행악자들로 말미암아 어두운 환난 가운데 있으면서 어떻게 그는 승리자로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찬양을 드리겠다고 서원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그가 하나님께 간구하는 가운데 과거에 자기로 하여금 승리케(구원)하신 하나님께서도 지금 자기가 당면한 원수들이 대적하는 어두운 상황에서도 또 앞으로 그러한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능히 건시지고 승리케 하실 줄 확신하였기 때문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상황은 변치 않았는데 다윗의 마음은 변했습니다. 두려움되신 확신으로 변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진정한 믿음의 소유자의 마음 자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사도행전 16장 25절 말씀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들은 그들이 당면한 환경 아래 눌리우지 않았고, 그 환경을 발 아래 짓밟고 있었던 것이 확실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행복되이 처신하게 된 원인은 그들에게 진정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박윤선). 다윗은 환경에 지배를 받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윗에게는 그 환경을 지배하는 보배로운 믿음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는 믿음으로 그가 당면한 어두운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께 오히려 믿음으로 찬양을 드렸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자는 하나님께 찬양을 드릴 수 있습니다. 기도자가 찬양 드리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또한 다윗처럼 두려운 상황에서 하나님께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사41:10)라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어떠한 두려원 상황에 저와 여러분들이 쳐해 있을찌라도 또한 앞으로 처하게 될찌라도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다윗처럼 오히여 안연(담대)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결국은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 예배자로 세움을 받을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두려운 상황에서도 오히여 담대하며 기도하며 찬양하는 예배자로 세움 받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제임스 김 목사 나눔
(2006년 6월 8일 두려운 상황의 변화보다 마음의 변화를 추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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