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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votional Reflection Based on the Incident of Peter Cutting Off Malchus's Ear:

Devotional Reflection Based on the Incident of Peter Cutting Off Malchus's Ear: “Then one of those standing near drew his sword and struck the servant of the high priest, cutting off his ear.” ( Mark 14:47, Today's Korean Version ) 1. Identifying the People Involved: The person who stood beside Jesus and drew the sword was Simon Peter . The servant of the high priest was named Malchus . “Then Simon Peter, who had a sword, drew it and struck the high priest’s servant, cutting off his right ear. The servant’s name was Malchus.” ( John 18:10 ) 2. Jesus' Response to Peter's Action: (a) Jesus said: “Permit even this.” ( Luke 22:51, KJV: “Suffer ye thus far”; RSV: “No more of this” ) The Greek words clarify this: “ἕως τούτου” (“heōs toutou”) = “up to this point” or “even this” “ἐᾶτε” (“eate”) = “allow it,” “let it be,” “leave it alone” Therefore, Jesus is essentially saying: “Let them do what they are doing. Do not resist any further.” “If ...

주 안에서 굳게 서 있어야 합니다(데살로니가전서 3장 8-13절).

주 안에서 굳게 서 있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3 8-13절 말씀 묵상]

 

여러분여러분은 믿음에 굳게 서 있으십니까? (고전16:13)  그러므로 어떠한 어려움과 역경 속에서도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 견고시 서서 흔들리지 않고 계십니까?  성경 이사야 7 9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If you do not stand firm in your faith, you will not stand at all').  여러분우리가 예수님을 굳게 밎지 않으면 우리는 굳게 서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에 굳게 서 있어야 합니다(고전16:13).  그러기 위해선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굳게 서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발걸음을 주님의 말씀에 굳게 세우시길 기원합니다(119:133).  성경은 야고보서 5 8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여러분도 인내하며 참고 마음을 굳세게 하십시오.  주님이 오실 날이 가깝습니다.

 

오늘 본문 데살로니가전서 3 8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써내려가면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현대인의 성경) “여러분이 주님 안에 굳게 서 있으므로 이제는 우리가 살 것 같습니다”].  저는 오늘 이 말씀 중심으로 “주 안에서 굳게 서 있어야 합니다”란 제목 아래 어떻게 하면 우리가 주 안에서 굳게 서 있을 수 있는지 가지로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길 기원합니다.

 

첫째로우리가 주 안에서 굳게 서 있기 위해선 우리는 우리의 부족한 믿음을 보충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데살로니가전서 3 10절을 보십시오: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이 부족한 것을 보충하게 하려 함이라”[(현대인의 성경) “우리는 여러분을 다시 만나 여러분의 믿음에 부족한 것을 채워 줄 수 있게 해 달라고 밤낮 열심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믿음이란 무엇일까요?  우리가 “믿음”하면 주로 믿음의 장인 히브리서 11 1절을 말하곤 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현대인의 성경)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에 대한 실물이며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증거입니다”].  작년에 어느 강사 목사님이 이 말씀 중심으로 주일 예배 때 설교하셨는데 저는 그 설교 말씀을 들으면서 이러한 글을 써보았습니다: “믿음이란 아무리 비관적인 상황이라 할지라도 그 상황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는 나(우리)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반드시 이루어 나아가신다는 것을 소망하는 것이다.  여러분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것이 과연 믿음이라 생각하십니까?  아무리 비관적인 상황이라 할지라도 과연 저와 여러분은 그 상황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반드시 이루어 나아가신다는 것을 소망하시나요?  그 좋은 예가 바로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입니다.  그의 비관적인 상황은 바로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엔 더 이상 아기를 가질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성경 로마서 4 19절을 보십시오: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현대인의 성경) “아브라함은 자기 나이가 백 세가 다 되어 몸은 죽은 것과 다름이 없었고 그의 아내 사라도 나이가 많아 도저히 출산할 수 없는 것을 알고도 …”].  이러한 비관적인 상황에서도 아브라함이 믿고 소망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무엇이었습니까?  성경 로마서 4 18절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현대인의 성경) “아브라함은 도저히 불가능한 것을 바라고 믿었으므로 '네 후손도 저 별들처럼 많을 것이다.' 라고 하신 약속대로 …”].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인간적으로는 더 이상 소망할 수 없는 불가능한 비관적인 상황에서도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인 “네 후손도 저 별들처럼 많을 것이다”(인요15:5)라는 말씀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에 더욱 굳게 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4:20, 현대인의 성경).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약속하신 그것을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습니다(21).  이러한 믿음을 저와 여러분이 사모하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 본문에 사도 바울의 편지를 받고 있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 또한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느 정도로 믿음의 사람들이였는가 하면 바울이 그들을 기억하며 기도할 때에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 정도의 믿음이었습니다(살전1:2-3).  그들의 “믿음의 역사”[“믿음으로 행한 일”(현대인의 성경)](3)는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많은 환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기쁨으로 받았습니다(6).  이 얼마나 놀라운 믿음의 역사입니까?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면 받을 필요 없는 환난들이었을 텐데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겪어야 할 그 많은 환난들 가운데서도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성령님의 기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되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을 통하여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습니다(2:13).  그리고 그 말씀이 예수님을 믿는 그들 가운데서 역사하였습니다(13).  그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습니다(8).  다시 말하면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놀라운 믿음의 역사는 하나님을 향하는 그들의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친 것입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신앙인의 모습입니까?  믿음의 역사가 그들 가운데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라 그들을 통하여 각처에도 나타난바 되었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믿음의 역사입니까?  더 이상 그들은 우상을 섬기지 아니하고 회개하고 돌이켜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 그들의 믿음이 각처에 소문났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로 말미암아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였습니다(3:9).  이것이 바로 사역에 있어서 사도 바울의 최고의 기쁨이었습니다.  그 최고의 기쁨이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믿음이 성장하면서 그들이 진리 안에서 걷는(사는것입니다.  이 기쁨 가운데 바울은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9, MacArthur).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믿음을 알기 원하여(3:5) 더 이상 견딜(참을수 없어서(1, 5그들에게 자신의 영적 아들이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일꾼인 디모데를 보냈습니다(2).  그 이유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환난(박해)를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4).  그래서 바울은 그들을 생각할 때 염려하였습니다(5현대인의 성경).  그 염려란 그들이 환난을 당할 때에 사탄이 그들을 “시험”(유혹)하여(“꾀어”자기와 동역자가 그들을 위하여 수고한 것을 헛되게 할까봐서였습니다(5현대인의 성경).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를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내어 그 교회 성도들의 믿음을 굳건하게 하고 위로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여러 환난 중에서 흔들리지 않게 하려고 했습니다(2-3).  그런데 디모데가 데살로니가에 다녀와 바울에게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전했습니다(6).  다시 말하면디모데는 바울에게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여러 환난 중에서도 믿음에 견고히 서 있었고 그 뿐만 아니라 바울과 그의 동역자를 향한 사랑의 기쁜 소식을 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위로를 받았습니다(7).  그러므로 바울은 그들이 주 안에서 굳게 서 있으므로 “이제는 살리라”고 말했습니다(8).

 

그런데 오늘 본문 데살로니가전서 3 10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이 부족한 것을 보충하게 하려 함이라”[(현대인의 성경) “우리는 여러분을 다시 만나 여러분의 믿음에 부족한 것을 채워 줄 수 있게 해 달라고 밤낮 열심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분명히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기억하며 기도할 때 그들의 믿음의 역사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었지 않았습니까? (1:2-3)  그 뿐만 아니라 바울은 그들이 여러 환난 중에서도 믿음에 견고히 서서 흔들리지 않고 있다는 소식을 갔다온 디모데에게 들었지 않았나요? (2:8)  그런데 왜 바울은 그들의 믿음이 부족하다고 말했을까요? (3:10)  그 이유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믿음이 온전한 믿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참다(견디다못하며(1, 5그들의 믿음을 알기위하여 디모데를 그들에게 보낸 것입니다.  특히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과 함께 있었을 때 장차 받을 환난을 그들에게 미리 말하였는데 실제로 바울이 데살로니가전서 편지를 써내려가고 있었을 때에도 그들은 환난을 당하고 있었기에 그들의 믿음이 과연 그 환난 중에서도 견고히 서 있는지 바울이 염려가 될 정도의 믿음이었습니다(4-5).  그래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믿음이 부족한 것을 하나님께서 채워주시길 밤낮 열심히 간구하였습니다 (10).  그 뿐만 아니라 바울은 하나님 아버지와 주 에수님께서 길을 인도하셔서 자기와 동역자가 데살로니가 교회에 갈 수 있게 되길 간구하였습니다(11).  바울은 그리 간구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얼굴을 보기를 열정으로 더욱 힘써서 한번 두번 그들에게 가고자 했지만 사탄이 바울을 막았습니다(2:17-18).

 

여러분우리가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의 믿음 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식구들 및 교회 식구들의 믿음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되 우리는 어려운 일 당할 때 우리의 믿음이 얼마나 적은지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새찬송가 543, “어려운 일 당할 때” 1).  그래서 우리는 우리 믿음의 진보를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1:25).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이 성장해서 어떠한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해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4;20).

 

둘째로우리가 주 안에서 굳게 서 있기 위해선 우리의 사랑이 더욱 많아 넘쳐야 합니다.

 

여러분우리 교회가 주님 안에서 굳게 서 있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에 견고히 서 있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믿음에 견고이 서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는 믿음의 진보를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듣고 묵상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각자의 믿음이 자라나야 합니다.  우리 온 교회 식구들의 믿음이 성장할 때 우리 교회는 어떠한 환난과 역경 속에서도 주님 안에서 굳게 서 있을 수가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주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여 교회의 하나됨을 잘 지켜 나아갈 때 교회는 주님 안에서 굳게 서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위해서 기도할 때에도 그들의 사랑이 점점 더 풍성하게 되길 위하여 기도했습니다(1:9).

 

오늘 본문 데살로니가전서 3 12절을 보십시오“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현대인의 성경“우리가 여러분을 사랑하듯 여러분도 더욱더 넘치는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며 모든 사람을 사랑하게 되기를 주님께 기도합니다”].  이 말씀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향한 사도 바울의 또 하나의 간절한 기도 제목이었습니다.  저는 이 바울의 기도를 묵상할 때 우리가 이미 묵상한 데살로니가전서 1 3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 말씀을 보면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기억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께 감사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들의 “사랑의 수고”였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이미 사랑의 수고를 하고 있다는 증거는 데살로니가전서 4 9-10절에서 좀 알수가 있습니다“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들 자신이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 너희가 온 마게도냐 모든 형제에 대하여 과연 이것을 행하도다 형제들아 권하노니 더욱 그렇게 행하고.  오늘 본문 데살로니가전서 3 12절에서 바울이 말하고 있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향한 기도를 한 3개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1)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란 말씀 속에서 우리는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어떻게 사랑했었는지를 다시금 생각해 봐야 합니다.  

 

저는 한 8가지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1)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기억하며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1:2, 3).  (2)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예수님을 믿기 전 우상 숭배를 하고 있었을 때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5).  (3) 바울은 사도로서 마땅히 주장할 수 있는 권위를 주장하지 않고 마치 어머니가 자기 자녀를 돌보듯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부드럽게 대했습니다(2:7, 현대인의 성경).  (4)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복음 뿐만 아니라 자기의 목숨까지도 주기를 기뻐하였습니다(8).  (5)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밤낮으로 일하며 고생하였습니다(9현대인의 성경).   (6)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거룩하고 흠없이 행하였습니다(10).  (7) 바울은 그들에게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였습니다(11).  (8)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얼굴 보기를 열정으로 더욱 힘썼습니다(17). 

 

(2)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이 넘치게 하사”란 말씀 속에서 우리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어떻게 서로 사랑을 했었는지(4:9) 또한 모든 사람에 대하여 어떻게 사랑했었는지(10)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먼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어떻게 서로 사랑했을까요?  분명히 데살로니가전서 4 9절에 사도 바울은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들 자신이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고 말했는데 과연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어떻게 서로 사랑을 했는지 한 6가지로 요약을 해 보았습니다: (1)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서로 사랑하되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을 말씀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1:6) 그들의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습니다(8).  저는 이것이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교회란 공동체 안에서 서로가 사랑하는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우리 각자의 믿음의 자라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것이 서로에게 힘이 되고 또한 서로에게 기쁨이 됩니다.  이것이 서로를 배려하는 거요 서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2)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함께 고난을 받았습니다(2:14).  예수님을 믿는 신앙 때문에 많은 환난을 당하면서 교회 식구들이 함께 믿음 안에서 고난을 받는다는 것은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3) 그들은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자기 손으로 일하기를 힘썼습니다(4:11).  (4) 그들은 서로 위로하였습니다(4:18).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성도들에게 “자는 자들”즉 ‘죽은 자들’에 관하여 소망 없는 자들처럼 슬퍼하지 않길 원하였습니다(13).  그 이유는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확실한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그 소망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죽은 자들의 부활(다시 사는 것)입니다(14).  바울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사신 하나님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기다리는(1:10)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이 부활의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서로를 위로하라고 권면하였습니다(4:18).  이 사랑의 수고를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이미 하고 있었지만 바울이 그들이 더욱더 열심히 하길 권면하였던 것입니다.  (5) 그들은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웠습니다데살로니가전서 5 11절을 보십시오“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 하라.  이 말씀을 보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이미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좀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바울은 그들에게 더욱더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덕을 세우되 특히 바울은 그들이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라고 권면하였습니다(14).  (6) 그들은 서로 화목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 13절을 보십시오“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이미 서로 화목하였지만 더욱더 서로 화목하길 권면하였습니다.  그리고 서로 화목하기 위해선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고 권면하였습니다(14).

 

(3)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은 어떻게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모든 사람을 사랑했었는냐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 10절을 보십시오“너희가 온 마게도냐 모든 형제에 대하여 과연 이것을 행하도다 형제들아 권하노니 더욱 그렇게 행하고”[(현대인의 성경“사실 여러분은 마케도니아에 있는 모든 성도들에게 이 사랑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형제 여러분들이 더욱 힘써 그렇게 할 것을 권합니다”].  제 생각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들의 본이 되므로 모든 사람을 사랑했다고 생각합니다(1:7).

 

여러분우리 교회 모든 식구들이 사랑이 식어져 가는 이 시대에 서로 사랑하되 더욱더 서로 사랑하길 기원합니다( 24:12).  그 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 식구들이 가족이나 직장이나 회사나 어디에 가든지 간데 주님의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자들이 되길 기원합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사랑의 통로가 되어 사랑의 빛을 발하면서 살아가길 기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가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시되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사랑하신다는 것을 깨달아 알아갈 때 우리는 주님의 사랑의 통로가 될 수가 있습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우리 교회 식구들을 서로 사랑할 수가 있고더 나아가서 우리 교회 밖에 있는 이웃들도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 셋째로우리가 주 안에서 굳게 서 있기 위해선 우리는 주 예수님의 재림의 소망을 가지고 주님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여러분우리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미래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그리할찌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소망을 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우리에게 소망을 줍니다.  시편 기자가 시편 119 49절에서 이렇게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내게 소망을 가지게 하셨나이다”[(현대인의 성경) “주의 종에게 하신 약속을 기억하소서.  주는 나에게 희망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 쳐해 있다할지라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으로 인하여 소망을 품어야 합니다.  비록 우리가 보기엔 아무 희망이 없어 보이는 상황이라 할찌라도 우리는 우리의 소망이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약속으로 인하여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그 소망 중에 분명하고 확실한 소망은 바로 예수님의 재림입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우리에게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22:20).  그러므로 우리는 이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음으로 붙잡고 예수님의 재림을 소망하면서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데살로니가전서 3 13절을 보십시오: “너희 마음을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현대인의 성경) “또 여러분의 마음을 굳세게 하셔서 우리 주 예수님이 모든 성도들과 함께 다시 오실 때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이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계속해서 편지를 써내려가면서 그들을 위하여 자신이 어떠한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고 있는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 기도 제목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믿음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주님께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부족한 믿음으로 보충해 주시길 간구하였습니다(10).  두 번째 기도 제목은바울은 그들의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해주셔서 서로 사랑할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안 믿는 모든 사람도 사랑하게 되기를 간구하였습니다(12).  그리고 바울의 세 번째 기도 제목은 소망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마음을 굳건하게 하셔서 어떠한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믿음에 견고히 서서 서로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길 간구하였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바울은 그들의 예수님께서 모든 성도들과 함께 다시 오신다는 사실을 믿고 소망하면서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길 기원하였습니다.  그 준비란 데살로니가 교회 온 식구들이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는 것입니다(13).  바울은 바로 이것을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였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를(그들을) 부르심은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요 거룩하게 하심이”기 때문입니다(4:7).  하나님의 뜻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거룩함입니다(3).

 

사도 바울은 이미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1:10).  이렇게 예수님의 재림을 소망하며 기다리고 있었던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사도 바울은 “우리 주 예수님이 모든 성도들과 함께 다시 오실 때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기를 기도”하였습니다(3:13, 현대인의 성경).  바울은 이러한 기도를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만 위해서 한 것이 아닙니다.  골로새서 1 22절에도 바울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현대인의 성경)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육체적인 죽음을 통해 여러분과 화해하셨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을 거룩하고 흠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사람으로 자기 앞에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여기서 거룩하고 흠이 없는 성도들이란 “얼룩이나 주름이나 그 밖의 결점이 없는 거룩하고 흠이 없는 영광스러운 교회”입니다(5:27).

 

여러분주님께서 우리 승리장로교회를 이러한 교회로 세워주시길 기원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교회를 거룩하고 흠이 없는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워주시길 기원합니다.  그래서 신랑되신 예수님이 이 세상에 다시 오실 때 거룩하고 흠이 없는 영광스러운 신부된 교회로 잘 준비되어 신랑되신 예수님을 맞이할 수 있길 기원합니다.

 

         “신랑 되신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밝은 등불 들고 나갈 준비 됐느냐  

그 날 밤에 영화로운 혼인 자리에 기뻐하며 할렐루야 찬송 부르리 

그 날 밤 그 날 밤에 주님 맞을 등불이 준비 됐느냐  예비하고 예비하라

우리 신랑 예수 오실 때 밝은 등불 손에 들고 기쁨으로 주를 맞겠네”

 

                            [새찬송가 175, “신랑 되신 예수께서”, 1, 4후렴 가사]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여러분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굳게 믿어 굳게 서 있길 기원합니다 (7:9).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굳게 믿어 믿음의 반석 위에 굳게 서 있길 기원합니다(고전16:13).  우리가 주 안에서 굳게 서 있기 위해선 우리는 우리의 부족한 믿음을 보충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사랑이 더욱 많아 넘쳐야 하며 우리는 주 예수님의 재림의 소망을 가지고 주님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주님 안에서 온 교회 식구들이 굳게 서 있길 기도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2018 2 25주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보충해 주시고 우리의 사랑을 넘치게 하시며 예수님의 재림을 소망하면서 맞이할 준비를 잘 하게 해주시길 기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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