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신의 생각
[로마서 8장 5-8절]
성경 로마서 8장 5-8절을 보십시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이 말씀을 보면 “육신의 생각”이란 말씀이 세 번 나옵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생각(5절), “육신이 생각은 사망이요”(6절),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7절). 여기서 “육신의 생각”이란 무슨 뜻입니까?
첫째로, “육신”이란 무엇입니까?
육신이란 타락한 인간의 본성을 말합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첫 인류의 사람인 아담과 그의 아내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먹으로 죄를 범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범죄로 인해 타락했습니다. 그들뿐만 아니라 그 후에 태어난 모든 인류의 사람들이 죄의 오염돼서 타락을 했습니다. 성경 로마서 5장 12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이 타락한 사람을 가리켜 “옛 사람”이라고도 합니다(롬6:6; 엡4:22; 골3:9). 육신이란 예수님을 믿기 전에 사람을 가리킵니다. 다시 말하면, 육신이란 거듭나기 전에 사람 또는 중생하기 전에 사람을 말합니다. 이러한 사람을 가리켜 “육신의 속한 자”(고전3:3; 참고: 히7:16) 또는 “육신을 따라” 사는 자(고후5:16; 11:18)라고 말합니다. 육신이란 궁극적으로 사탄을 말합니다. 성경 로마서 8장 5-8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육신”(이 단어가 4번 나옴)과 “영”(이 단어가 3번 나옴)을 대조하고 있는데 여기서 “육신”과 대조를 이루는 “영”이란 우리 사람의 영이 아니라 성령님을 가리킵니다. 사도 바울은 “육신”과 ‘성령님’을 대조하고 있는 것인데 만일 우리가 이 “육신”을 그저 우리 인간의 타락한 본성이나 예수님을 믿기 전에 거듭나지 않는(또는 중생하지 않은) 우리 옛 사람을 가리킨다고만 말하면 ‘성령님’과의 대조를 잘(충분히)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영”이신 성령님과 대조를 이루는 “육신”이란 궁극적으로 ‘사탄’을 말합니다. 즉, 사도 바울은 “육신”과 “영”, 즉 사탄과 성령님을 대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탄은 하나뿐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하나님께서 창조한 천사가 타락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지 않는(중생하지 않은) 불신자들 안에 사탄이 있다고 말할 때에는 사탄이 하나님처럼 어디에나 있는 무소부재한 것이 아니기에 그와 한통속인 악한 천사들이 그들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을 따르는 자”(롬8:5)란 사탄을 따르는 자를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육신을 따르는 자는 사탄의 지배를 받는 자, 악한 천사들의 지배를 받고 그 악한 천사들을 따르는 자란 말임. 즉, 육신을 따르는 자는 궁극적으로 사탄을 따르는 자입니다. 여기서 육신을 따르는 자를 두 가지고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1) 육신을 따르는 자는 마귀에게 순종하여 세상의 악한 길을 따릅니다.
성경 에베소서 2장 2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현대인의 성경) “전에는 여러분이 세상 의 악한 길을 따르고 하늘 아래의 영역을 지배하고 있는 마귀에게 순종하며 살았습니다. 이 마귀는 현재 불순종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활동하는 영입니 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사탄과 악한 천사들을 따라다니는 자입니다.
(2)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합니다.
성경 에베소서 2장 3절을 보십시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현대인의 성경) “우리도 전에는 그들과 같이 우리 육체의 욕심대로 살며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대로 하여 다른 사 람들과 마찬가지로 본래부터 하나님의 노여우심을 살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이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믿지 않고, 거듭나지(중생하지) 못한 육신 을 따르는 자들은 사탄의 지배를 받아 사탄과 악한 천사들을 따르고 있습니 다.
지금 교회 안에서 세례를 받고, 심지어 직분자가 되어 열심히 섬기는 자들 가운데에도 예수님을 믿지 않고, 거듭나지 못하고 육신을 따르는 자들이 있습니다. 지금 교회 안에는 자신이 중생을 했는지 못했는지 모르는 자들도 있습니다. 마치 갓난아기가 자신이 언제 태어났는지 모르는 것처럼 지금 교회 안에는 자신이 언제 중생했는지 모르는 영적으로 갓난아기와 같은 교인들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구분해야 할 것은 ‘자신이 중생한지 모르는 것’하고 ‘자신이 중생하지 않은 것’은 다른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주로 모태 신앙인들이 자신들이 중생을 했는지를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둘째로, “육신의 일”(롬8:5)이란 무엇입니까?
다시 말하면, 사탄의 일은 무엇입니까? 또 다시 말하면, 예수님을 믿지 않고, 중생하지 못한 사람들, 즉 옛 사람이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1) 육신의 일을 죽이는 일입니다.
사탄은 창세기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한 일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언약 의 명령인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말씀에 불순종하게 만들므로 궁극적으로 그 두 사람을 죽게 만들었습니다(영적으로 죽고 영원히 죽게 만들었음). 그 결과 사탄은 그 후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을 죽이는 일을 했습니다. 성경 로마서 5장 12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 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사탄의 일을 ‘죽이 는 일’이라면, 성령님의 일은 ‘살리는 일’입니다. 육신의 일은 화평(평화)을 깨는 일입니다. 사탄은 창세기에서 아담과 하와 부부의 화평을 깨고 불화 를 이루었습니다. 성경 창세기 3장 9-1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이르시되 누 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분명히 남편 아담은 죄를 범하기 전에는 자기의 아내인 하와를 가리켜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 에 살이라”고 말했는데(2:23), 범죄하고 나서는 하나님에게 “하나님이 주셔 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 나이다”(3:12)라고 자기 아내 하와를 원망했습니다. 지금도 사탄의 일은 가정의 화평(평화)을 깨고 불화를 일으키므로 가정을 붕괴시키고 있습니다 (교회도 나라도 마찬 가지임). 그러나 성령님의 일은 화평(화목)케 하는 일 이요 화합하는 일입니다.
(2) 육신의 일은 모든 죄를 범하게 하는 일입니다.
사탄은 아담과 하와뿐만 아니라 그 후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모든 죄를 범하게 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육체의 일”에 대해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 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 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 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갈5:19-21). 그러나 성령님을 따라 행 하는(16절) 예수님을 믿는 중생한 그리스도인들은 성령님의 열매를 맺습니 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22-23절).
셋째로, “육신의 생각”(롬8:6, 7)은 무엇입니까?
(1) 육신의 생각은 “사망”입니다.
성경 로마서 8장 6절을 보십시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 명과 평안이니라.” 성령님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인데, 성령님의 생각과 반대되는 육신의 생각은 “사망”입니다. 성경 빌립보서 3장 19절을 보십시 오: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 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현대인의 생각) “그들의 마지막은 멸망 입니다. 그들은 육체의 욕망을 자기들의 신으로 삼고 수치를 영광으로 알며 세상적인 일만 생각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멸망입니다. 영원한 형벌이요 영원한 죽음이요 영원한 멸망입니다.
(2)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성경 로마서 8장 7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화평(이것은 성령님의 생각임)이 아 니고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죄를 범하므로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성경 로마서 5장 10절을 보십시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 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3)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성경 로마서 8장 7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 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지 않고, 따르지 않고, 굴복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할 수도 없습니다. 육신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을 할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사 탄의 지배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하나님과 원수 된 사람들이) 하나님의 율 법을 지킬 수(순종할 수)가 있겠습니까? 오직 성령님이 주시는 생각을 가 진 중생한 자들만이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수가 있고 순종할 수가 있습니 다.
(4)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습니다.
성경 로마서 8장 8절을 보십시오: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육신에 생각하는 자들로서 하나님과 원수 된 자들이기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성령의 생 각을 하는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있습니다. 오 직 믿음으로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있습니다. 성경 히브리서 11 장 6절을 보십시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 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 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우리는 믿음의 사람 “에녹”과 같은 사람이 돼야 합니다. 성경 히브리서 11장 5절을 보십시오: “믿음으로 에녹 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 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 를 받았느니라.”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였습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였습니다(창5:24). 현대인의 성경은 에녹은 “하나님 과 깊은 교제를 나누며 사는”자였다고 번역을 했습니다. 우리도 에녹처럼 성령님과 동행하면서(깊은 교제를 나누면서) 살아야 합니다.
성경 골로새서 1장 21-23절을 보십시오: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우리도 “전에”, 즉 예수님을 믿기 전에, 중생하기 전에는 하나님과 원수였습니다. 우리는 사탄을 따라 사탄이 좋아하는 일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중생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 이상 원수 관계가 아니라 화목하게 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중생한 새사람으로서 믿음에 굳게 서서 우리가 들은 “복음의 소망”에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복음의 소망에 견고히 서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였던 믿음의 조상 에녹처럼, 성령님과 동행하는 자들이 되어 에녹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들이 돼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님을 따르는 자들로서 성령님의 생각 속에서 성령님의 일을 하므로 생명과 평안을 누려야 합니다. 성령님의 일이란 성령님의 열매인 사랑의 열매를 맺어(갈5:22-23) 예수님의 이중 계명대로 우리의 마음과 목숨과 뜻을 하여 주 우리 하나님을 사랑하며 또한 우리 이웃을 우리 자신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마22:37, 39). 이것이 바로 이 땅에서도 부분적으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천국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새 찬송가 438장 3절)(육신의 일이란 사탄의 열매인 미움을 맺는 것이요 그 결과는 불화와 화평을 깨므로 결국에는 죽음/사망임). 우리는 성령 충만하고 사랑 충만하여 성령님의 인도하심 따라 예수님의 이중 계명에 순종하며 살아가므로 생명(영생)과 평안을 누려야 합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 따라 예수님의 이중계명대로 사랑하면 살아가는 생명력이 있는 성령의 사람과 어떠한 상황에서도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길 기원합니다(새 찬송가41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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