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나타나신 바 되신 예수 그리스도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요한일서 1장 1-2절, 5장 20절).
오늘 2021년 성탄 주일을 맞이하여 제 평생에
처음으로 성탄 주일 설교 본문을 요한일서를 선택했습니다. 제가 약 30년 전인 1992년 1월 신학교 다닐 때 유년부 담당 전도사로 승리장로교회를 섬기면서 어린이 설교를 시작했었는데 여태 것 요한일서를 본문으로 정해서 크리스마스
설교를 해 본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약 3년 전인 2019년 3월 첫째 주일부터인가 요한일서 편지를 설교해 오면서 오늘에서야 평생 처음으로 요한일서를 본문으로 택해서 성탄 주일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먼저 요한일서를 본문으로 선택하게 된 계기는 바로 요한일서
1장 2절 말씀 때문임: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현대인의 성경) “이 생명이 세상이 나타나셨습니다. 우리는
영원한 생명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직접 보았으므로 그분을 여러분에게 증거하며 전합니다. 그분은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의 상반절에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는 말씀을 생각할 때 성탄주일 설교로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 요한일서 1장 2절 상반절 말씀은 우리가 이미 수요기도회 때 원로 목사님을 통해서 배운 요한복음
1장 14절 말씀인 “말씀이 육신이 되어”[(현대인의 성경) “말씀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어”]라는 말씀과 서로 상응(correspond)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두 말씀은 같은 진리의 두 다른 측면을 보여줍니다. 그 두 다른 측면이란 요한복음 1장 14절에서 사도 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고 말했을 때에는 말씀이신 예수님이 육신, 즉 사람이 되셨다(The
Word became flesh)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역사적 사실(the historic
fact of incarnation)을 생각하고 그 말씀을 기록한 반면에, 요한일서
1장 2절에서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삶의 다양한 활동을 어떻게 전개하셨는지를 설명하고자(The life was
manifested, sets forth the unfolding of that fact in the various operations of
life) 기록한 것입니다. 한 마디로, 요한일서
1장 2절의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것은 요한복음 1장 14절의 “말씀이 육신이” 된 (성육신의) 결과(The manifestation of the Life was a consequence of the
incarnation of the Word)입니다(Word Studies in the NT). 그러면 사도 요한이 오늘 본문 요한일서 1장 2절 상반절에서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현대인의 성경) “이 생명이 세상에 나타나셨습니다”]고
말씀했는데 여기서 우리는 2가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첫째로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이 생명”이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이 생명”에 대해서 알기 위해선 그 전절인 요한일서 1장 1절을
봐야 합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현대인의 성경) “세상이 창조되기 전부터 계신 생명의
말씀이신 그리스도에 대하여 우리는 들었고 우리 눈으로 똑똑히 보았으며 손으로 직접 만져 보았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우리는 사도 요한이 말하고 있는 “이 생명”(2절)이란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1절). 현대인의 성경은 “이
생명”이란 “세상이 창조되기 전부터 계신 생명의 말씀이신 그리스도”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이 현대인의 성경 번역을 보면 사도 요한이 요한일서 1장 1절에서 말한 “태초”[(현대인의 성경) “세상이 창조되기 전부터 계신 …”]란 우리가 알고 있는 창세기 1장 1절에서 하나님께서 천지 창조하셨던 그 “태초”하고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즉, 생명이신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천지 창조하시기 전부터 계신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1장 1절에서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한 마디로, 사도 요한이
요한일서 1장 1-2절에서 말한 “태초부터 있는 생명”이신 그리스도는 요한복음 1장
1절에서 말한 “태초”에 계신 “말씀”이요 “곧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사도 요한은 오늘 본문 요한일서 5장 20절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참되신 하나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십니다”(현대인의 성경). 그래서
제가 오늘 본문을 요한일서 1장 1-2절과 5장 20절을 정한 것임. 즉,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1:1)이 이 세상에 나타나셨는데(2절,
현대인의 성경) 그 “생명”은 하나님께서 천지 장조하시기 전부터 계신 분으로서 “참되신 하나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시라는 사실입니다(5:20). 제가 이 말씀을 묵상하고 설교하면서 발견한 흥미로운 점은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편지를 써내려가면서 시작(1:1-2)과 끝(5:20)부분에 “영원한 생명”(1:2;
5:20)을 반복해서 언급하면서 “생명”(1:2), 즉 “영원한 생명”(1:2; 5:20)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참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 참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생명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나타내신 바 되었다’고 오늘 본문
요한일서 1장 2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나타내신
바 된지라”(2절)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둘째로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는 말씀입니다(2절).
여기서 “나타내신 바 된지라”는 말씀은 신약 성경에 여러 군데 반복해서 나옵니다. 저는 그 말씀들을 볼 때 오늘 본문 요한일서
1장 2절에서 참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생명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나타내신 바 되었다는 성경 말씀 외에 또 성경에서는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한 4개의 성경 구절 말씀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1) 첫 번째 성경 구절은 요한일서 3장 5절입니다: “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이 성경 구절에서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타나나신(오신) 목적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 목적이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를 없애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없애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고 사도 요한은 말씀하고 있습니까?
요한일서 2장 2절을 보십시오: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죄를 없애시려고 화목 제물이 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3장 25절 현대인의 성경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피를 죄에서 구원하는 제물로
삼으시고 누구든지 그분을 믿으면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
로마서 5장 10절을 보십시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화목 제물로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시므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이젠 더 이상 하나님과 원수 된 자들이 아니라 화목 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한 마디로,
이 첫 번째 성경 구절인 요한일서 3장 5절에서
사도 요한이 말씀하고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속”(redemption)입니다. “구속”이란 헬라어 단어의 의미는 ‘값을 치루고 구원하는 것’을 뜻합니다. 즉,
참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생명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화목 제물이 되셔서 우리의 죄 값을 자신의 생명(목숨)으로 대신 지불하시므로 말미암아 죄의 종이었던 우리를 해방시켜(자유케하여) 주신 것입니다. 로마서 6장
22절 현대인의 성경 “그러나 이제 여러분은 죄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종이 되었고
거룩한 생활을 하게 되었으니 그 결과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죄의 댓가는 죽음이지만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선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2) 두 번째 성경 구절은 요한일서 4장 9절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이 성경 구절에서
사도 요한은 우리에게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어떻게 나타났는지와 그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목적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먼저 사도 요한은 우리에게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말씀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9절). 그리고 사도 요한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신 목적이 바로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9절). 여러분, 우리는 이미
요한복음 4장 8절과 16절을
통해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진리의 말씀을 배웠습니다. 그 사랑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랑을 나타내셨는데 바로 우리를
살리시려고 자기의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셨다는 말씀입니다(9절). 여기서 우리가 좀 생각해 봐야할 점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보내신 목적이 우리를 살리시려고 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를 살리시려고 라는 말씀은 우리가 죽어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2장 1절에서 이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현대인의 성경) “여러분은 불순종과 죄
때문에 영적으로 죽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5장 1절과
4-5절에서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 …”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즉, 우리를 허물과 죄로 영적으로 죽었던 사람들인데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기의 독생자를
이 세상에 구주로 보내심으로(4:14) 우리에게 사랑을 나타내셨는데 그 목적은 우리를 살리시고자,
즉 우리를 중생케(거듭나게)하셔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고자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3장 1절(현대인의 성경)에서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이 얼마나 큰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 큰 사랑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 한 마디로,
이 두 번째 성경 구절인 요한일서 4장 9절에서
사도 요한이 말씀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love)입니다. 사도 요한은 오늘 본문 요한일서 1장 2절에서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고 말씀하였는데 요한일서 4장 9절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은 참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생명이신 독생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5:20)를 이 세상에 ‘보내신 사랑’으로서(4:9) 요한일서 4장 10절을 보면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10절). 분명히 요한일서 3장
5절 하반절을 보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죄가 전혀 없으신데 우리의 죄를 속하기 위하여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화목 제물로 죽게 하시고자 하나님 아버지는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셨다는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과 원수였던 우리가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아
원수관계였던 하나님과 화목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3) 세 번째 성경 구절은 요한일서 2장 28절입니다: “자녀들아 이제 그의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가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이 성경 구절에서
사도 요한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그는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할 때(27, 28절),
즉 주님 안에서 살아갈 때, 그 결과는 주님께서 강림하실 때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주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28절). 현대인의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떳떳이 그분을 뵙게 될 것”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떳떳이 주님을 뵐 수가 있습니까? 어떻게 우리가 담대함을 얻어 주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 이유는 주님 안에서 거하면서
생활하는 성도는 흠이 없고 거룩한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MacArthur). 골로새서 1장 22절을 보십시오: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요일2:2)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그 목적은 우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들로
주님 앞에 세우기 위해서입니다(골1:22). 그러므로 주님 안에 거하는 자, 주님 안에서 생활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므로(요일2:5)
우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러(벧전1:22)
우리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하게 되었습니다(요일2:5). 그러므로 신랑 되신 예수님이 이 세상에 다시 오실 때 신부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님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어 거룩하고 흠이 없게 될 것입니다(엡5:27).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서 강림하실 때에 담대함을 얻어 주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될 것입니다(요일2:28).
(4) 네 번째 성경 구절은 요한일서 3장 2절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현대인의 성경)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장차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모르지만 예수님이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어 그분의 참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 성경 구절에서
사도 요한은 우리가 주님을 향하여 가진 ‘소망’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소망은 ‘장차 예수님이 나타나시면 우리가 예수님의 형상을
본 받아 예수님의 참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2절). 이미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2장 28절에서 우리가 주님 안에서 생활을 한 결과로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가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현대인의 성경)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떳떳이 그분을 뵙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는데 이렇게 3장 2절에 와서는 예수님이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참모습을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두 성경구절을 연관해서 묵상할 때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재림의 소망을 가지고 요한일서라는 편지를 그 편지의 수신자들에게 써내려가면서 이렇게 교훈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서 의를 행하는 예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목적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실 때 우리 모두가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아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주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장차 예수님이 나타나시면 우리가 예수님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입니다(2절).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고린도전서 13장 12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현대인의 성경)
“우리가 지금은 거울을 보는 것같이 희미하게 보지만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볼 것이며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알지만 그 때에는 하나님이 나를 아신 것처럼 내가 완전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이 이 세상에
다시 오시는 날 우리는 홀연히 변화되어 (고전15:51)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을 것입니다(요일3:2).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의 참 모습을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입니다(2절, 고전13:12). 주님을 향하여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게 된 것(요일3:3)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크신 사랑입니다(1절). 그러므로 우리는
그날 그 순간을 기도하며 기대하며 기다리는 가운데 우리의 간절한 소원 기도 제목은 예수님을 닮는 것이어야 합니다.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성탄을 축하는 성탄계절입니다. 오늘 성탄 주일 예배를 하나님께 드렸고 오는 토요일
25일은 성탄절입니다. 저희 교회는 오는 금요일(24일)에 크리스마스 연회를
열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함에 있어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사랑을 성령님의 인도하심 따라 이웃에게 비추는 시간을 갖기를 원해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이
누구신지와 또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생명”(요일1:2),
즉 “영원한 생명”(2절,
5:20)이시요 “태초부터 있는”(1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시며 “하나님”이십니다(5:20). 이 하나님시요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우리를 사랑하사(4:9) 영적으로 죽었던 우리(엡2:1, 현대인의 성경)를 살리시고(4:9)(거듭남 또는 중생), 우리의 모든
죄를 없애시며(3:5)(구속), 우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들로 주님 앞에 세워(골1:22),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실 때(재림)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의 형상을 본 받아 예수님의 참
모습을 보게 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요일3:2). 바라기는 이 성탄계절에 영원한 생명이시요 태초부터 있는 하나님이시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이 놀라운 구원을 베풀어 주시고자 이 세상에 오셨다는 진리를 더욱더 깨달아 알아가는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예수 더 알기 원하네 크고도 넓은 은혜와 대속해주신 사랑을 간절히 알기 원하네”(1절), “성령이 스승되셔서 진리를 가르치시고 거룩한 뜻을 깨달아 예수를 알게 하소서”(2절), “내 평생의 소원 내평생의 소원 대속해 주신 사랑을 간절히 알기 원하네”(후렴)[새찬송가 453장, “예수 더 알기 원하네”],
제임스 김 목사 나눔
[2021년 12월 19일,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십자가에 죽으시므로 우리를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없애시며,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영광스런
신부된 교회로 세우시사(엡5:27) 다시 오셔서 우리를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계21:1, 2), 인도하여 신랑 되신 어린 양 예수님의 결혼 잔치(19:7, 9)에 참여케 하실 줄 확신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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