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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아들을 내주신 이 (롬8:32)

  https://youtu.be/9tJxsCkB1dc?si=yoecT3l2ALBPh1Wa

칭의의 결과 (로마서 5장 1-11절)

 

 

 

 

칭의의 결과

(로마서 5 1-11)

 

 

 

 

 

 

 

 

김창세 선교사

 

칭의의 결과 (1):

하나님과 화평을 누림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로마서 5 1).

 

 

                성경 로마서 5 1절을 보면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말씀하고 있습니다.  칭의의 번째 결과는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것입니다(1).  우리는 오직 우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1)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10)(과거형).  우리가 아직 연약할 (6),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8),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10)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사(8)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므로(9)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10)[칭의의 방법/수단/방도: 믿음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5:1)].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셨습니다(고후5:18).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려야 합니다(5:1)(현재형).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가(10)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8:16)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을 있게 것은(15) 오직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중보자이신(딤전2:5) 우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입니다(5:1).  우리는 오직 우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미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과거) 우리는 지금 하나님과 화평을 누려야 합니다(현재).  여기서 하나님과 화평을 누린다 말은 하나님과 화평을 즐긴다 말도 됩니다[참고: (5: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있는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5:11)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과 화평을 누려야 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주시는 마음의 평안을 누려야 합니다.  예를 들어, 바울과 실라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의 평안을 누리므로 깊은 옥에서도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16:24-25).  우리도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주시는 마음에 평안을 누릴 때에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께 찬양을 드릴 있습니다: 어는 곳에 있든지 맘이 편하다 예수 주신 평안함 충만하도다( 찬송가 408 어느 곳에 있든지, 1), 공중에 구름이 일어나며 나팔이 울릴 때에 오셔서 세상을 심판해도 나의 영혼은 없으리 영혼 평안해 영혼 영혼 평안해 ( 찬송가 413 평생에 가는 , 4절과 후렴).  우리가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주시는 마음의 평안을 누리기 위해선 우리는 예수님의 이중 계명을 순종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22 37-40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이웃을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계명이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우리가 예수님의 이중 계명을 지킬 때에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우리 속에서 온전하게 됩니다(요일2:5).  이렇게 우리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하게 되어 우리가 가운데 거할 우리 속에는 거리낌이 없습니다[거리낄 만한 것이 없음(현대인의 성경)](10).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하늘에서 주시는 마음의 평안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주시는 마음의 평안을 누리기 위해선 우리는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사(16:19; 8:1; 10:12)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그리스도 예수님(8:34)이요 우리 믿음의 근원이시며 우리 믿음을 완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12:2, 현대인의 성경).

 

            칭의의 결과는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오직 우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칭의) 받았으니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며 즐겨야 합니다(5:1).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속에서 하나님과 화평을 맛보며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칭의의 결과 (2):

믿음으로 있는 은혜에 들어감을 얻음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있는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로마서 5 2).     

 

 

                칭의의 근거는 오직 우리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입니다(5:1).  칭의의 방법은 믿음으로입니다(1).  칭의의 결과는, 첫째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칭의) 사람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림입니다(1).  예를 들어, 모태신앙 자매가 있습니다.  그녀는 자라나면서 하나님께 찬양 경배를 드리면서 자라났습니다.  그러다가 한번은 죄에 대해서 깨닫게 되어서 죄책이 드니까 하나님께 나아가는 무서워지고 싫어졌습니다.  그녀는 교회를 없이 나갔습니다.  그녀에게는 기쁨이 없고 마음에 평안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녀는 칭의의 교리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원죄, 과거, 현재, 미래의 죄를 용서받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죄에서 자유, 기쁨, 화평, 사랑, 섬김 등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이제 이웃을 위해 기도합니다.  병든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다가 살다가 죽으면 지옥 생각하니 불쌍한 마음이 듭니다.  그래서 그녀는 그들을 위해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건강한 사람들도 예수님을 믿으면 지옥을 가니까 불쌍한 마음으로 간절히 매일 기도합니다.  자기도 아프니까 활동을 못하니까 기도합니다. 칭의의 결과(열매) 얼마나 귀합니까.

 

            오늘 본문 로마서 5 2 말씀입니다: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있는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여기서 우리는 칭의의 번째 결과를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의롭다 하심을 받은(칭의) 사람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있는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다는 것입니다(2).  여기서 또한 그로 말미암아(2)에서 로마서 5 1절에 나오는 우리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믿음으로(2)에서 우리 믿는 사람들인 사도 바울과 로마 교회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적용한다면,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말할 있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2)에서 믿음이란 단어는 어떤 사본에는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본에는 단어가 있습니다.  한국 성경은 믿음이란 단어가 있는 사본을 번역한 것입니다.

 

            로마서 5 2절을 보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은혜라는 말씀은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예를 들어 죄인인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 무조건 값없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들어감을 얻었으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로 우리는 은혜를 받는다 하는데 로마서 5 2절에서는 들어간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가 아니라 은혜에 들어간다 말은 은혜의 장소, 은혜의 영역을 말합니다.  그러면 은혜의 장소/영역은 어디입니까?  구약의 성전 제도를 보면 수가 있습니다.  솔로몬이 지은 성전을 말합니다.  성전 휘장은 열었다 닫았다 수가 없습니다.  성소와 지성소를 나눠져 있습니다.  지성소에는 법궤(율법 두개 돌판. 아론의 싹난 지팡이, 만나) 있습니다.  속죄소는 속죄의 피를 거기에다가 뿌립니다.  지성소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셔서 지성소는 환합니다.  은혜를 베푸는 장소입니다.  아무나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들어가면 죽습니다.  그러나 1년에 한번 대제사장이 들어가서 속죄제를 드렸습니다.  칭의의 열매는 지성소에 들어갈 수가 있게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다는 말입니다(2).  어떻게 이것이 가능해진 것입니까?  바로 그로 말미암아(2), 우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1)입니다.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신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지성소에 들어가게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도하심 따라 우리가 은혜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지존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 가다 가는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인도하심 따라 들어가면 하나님 앞에까지 나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받은 칭의의 복입니다.

            로마서 5 2절에 있는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은혜의 자리에 있다는 말은 우리가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말미암아(칭의의 근거) 믿음으로(칭의의 방법)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므로(칭의의 결과 #1) 이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은혜의 장소/영역인 지성소에 들어가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계속해서 있을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칭의의 결과 #2).

 

            예수 그리스도께서 화목제물로 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걸머지시고 십자가에 (생명) 흘려 죽으시사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영원한 형벌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행하신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 앞에서 수가 있게 되었고 보호받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은혜에 들어가고, 우리가 믿음으로 특권을 받았습니다.  히브리서 4 15-16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우리는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있는 이러한 특권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갑니까?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입니다(4:16).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는데 우리가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곳은 바로 은혜의 자리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당해도 하나님께 나아가 간구하므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박히셨을 이적이 일어났습니다.   이적 중에 하나가 바로 마태복음 27 50-51절에 기록돼 있습니다: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  성소 휘장으로 인해 지성소에 들어갔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우리가 들어갈 있게 되었습니다.  히브리서 10 19-20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길이요 휘장은 그의 육체니라.” “그의 육체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나그네 세상에서 살면서 우리가 어떠한 일을 만나도 우리를 넉넉히 도우실 있으신 하나님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담대히 나아가서 하나님께 담대히 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아갔기에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시고 우리의 간구를 들어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은혜의 자리인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께 담대히 기도하십시다.

 

 

 

 

 

 

 

칭의의 결과 (3):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함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있는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로마서 5 2).     

 

 

                오늘 본문 로마서 5 2절을 보면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번째 칭의의 결과는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2).  여기서 하나님의 영광이란 무엇입니까?

 

            먼저 이미(Already)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해 보십시다.

 

                로마서 5 1-2절에서 3가지 하나님의 영광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을 (3:23) 우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5:1-2).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였는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어(10)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되었습니다(1).  우리가 우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1, 2)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들어가 굳게 있게 되었습니다(2).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자랑하며) 즐거워합니다(2).  이미 나타난 가지 영광은 100% 온전한 것이 아닙니다.  만일 지금 하나님께서 100% 온전한 영광을 나타내시면 우리는 온전한 영광을 온전히 수가 없습니다.

 

            다음 장차(Not yet) 나타날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해 보십시다.

 

                장차 나타날 하나님의 영광은 마디로 예수님의 재림입니다.  미래에 나타날 하나님의 영광은 100% 온전하고 영원한 영광으로서 우리는 하나님을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것입니다(고전13:12).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의 영광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이 우리 자녀의 영광입니다.  로마서 5 1-2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3가지 하나님의 영광은 장차 나타날 하나님의 영광과 족히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 우리가 우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미 누리고 있는 하나님의 영광은 장차 우리 예수님이 다시 오실 우리가 누릴 하나님의 영광과는 족히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5:1-2, 참고: 8:18).  장차 나타날 하나님의 영광은 예수님이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어 그분의 모습을 보게 것입니다(요일3:2, 현대인의 성경).  우리의 천한 몸을 변화시켜 자기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게 하실 것입니다(3:21, 현대인의 성경).  우리는 예수님을 믿다가 죽은 사람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실 것을 믿습니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는 자들도 이미 죽은 사람들보다 앞서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이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내려오실 그리스도를 믿다가 죽은 사람들이 먼저 부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후에 우리 살아남은 사람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려 올라가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 영원의 주님과 함께 있게 것입니다(살전4:14-17).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는 소망은 100% 확실한 소망입니다(5:2).   이유는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초림을 약속하셨고 성취하신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재림을 약속하셨고 반드시 성취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 예수님의 영광이 우리의 영광임을 믿을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미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 30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예정하신 사람들을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의롭다고 인정하시고 의롭다고 인정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또한 영화롭게 하셨습니다라는 동사는 과거사입니다.  에베소서 2 5-6 말씀입니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현대인의 성경) 때문에 영적으로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려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을 뿐만 아니라 하늘나라에서 그분과 함께 앉게 주셨습니다].  여기서 함께 살리셨고, 함께 일으키사,”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라는 동사는 과거사입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님과 함께 부활했으며, 함께 승천했으며 또한 함께 하늘에 앉힌 되었습니다.  로마서 8 30절에서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동사나 에베소서 2 5-6절에서 함께 살리셨고, 함께 일으키사,”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라는 동사들은 과거사입니다.  과거사가 쓰인 이유는 100% 확실히 이루질 것임을 내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소망하기에 100% 확실성을 가지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합니다(5:2).   즐거움은 구원의 즐거움이요, 즐거움이요, 영원한 즐거움입니다.  이런 소망 속에 즐거움이 있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자랑할 수밖에 없습니다(2).  하나님의 영광은 나의 영광!

 

 

 

 

 

칭의의 결과 (4):

환난 중에 즐거워함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앎이로다(로마서 5 3-4).

 

 

 

                여기서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3) 말씀에서 이뿐이란 로마서 5 2 하반절에서 말씀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가리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것뿐만 아니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영광이란 우리가 소망하는 하나님의 영광이란 영광 중에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요한복음 19 30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루었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씀은 예수님의 십자가상에서 하신 말씀 중에 여섯 번째 말씀입니다.  무엇을 이루셨습니까?  바로 우리의 구속입니다.  여기서 구속이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리시사 자신의 생명(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의 값을 치루시사 우리를 속량하시어 우리를 죄와 사탄과 멸망에서 구원하신 것을 말합니다.   구속은 구원의 시작이라 말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1 6절에도 보면 () 이루었도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상에서 하신 말씀하신 이루었다 단어와 동일한 단어로서 한국 성경에는 이루었도다라고 번역돼 있지만 원래는 이루었다라고 번역되어야 합니다.  무엇을 이루셨습니까?  바로 우리의 구원입니다.  구원이란 구속으로 시작하여 구원의 완성까지를 총체적으로 일컫습니다.  로마서 5 2절에서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 예수 그리스도(1)께서 이루신 것을 가리킵니다(21:6).   이루신 것이란 구속(19:30) 뿐만 아니라 구원의 완성을 말합니다(21:6).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소망할 뿐만 아니라 소망을 확신해야 합니다(5:2).  그리할 우리는 환난 중에도 즐거워할 있습니다(3).

 

            우리가 앞으로 바라보는 영광은 주님의 재림 하나님의 영광이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의 영광입니다.   때에 이미 죽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영광은 비록 우리가 죽으면 육신은 땅에 썩어지지만 영혼은 하늘나라로 갔다고 주님의 재림 같이 옵니다(살전4:14).   때에 우리의 썩어진 몸은 순식간에 홀연히 변화되어 썩지 않을 , 죽지 않을 몸을 입을 것이요(고전15:50-53) 예수님처럼 영광스러운 몸과 같게 것입니다(3:21, 현대인의 성경).   때에 살아남아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영광은 순식간에 홀연히 변화되어(고전15:50) 예수님처럼 영광스러운 몸과 같게 되어(3:21) 먼저 부활하여(살전4:16, 현대인의 성경) 순식간에 홀연히 변화된(고전15:50) 죽은 하나님의 자녀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할 것입니다(살전4:17).   때에 이미 죽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나 때까지 살아남아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변화되어 예수님처럼 영광스러운 몸을 입고(3:21) 천국에 들어가 영원히 주님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살전4:17).  이것을 바라는 소망이 결코 헛되지 않음은 100% 확실한 소망이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소망하고) 즐거워합니다(5:2).

 

            로마서 5 3절을 보면 성경은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환난[고난]이란 불신자들이 당하는 환난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신자(성도)들이 당하는 환난이요 우리가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당하는 환난입니다.  사도행전 14 22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것이라 하고. 환난을 당해야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주님을 위해 고난을 당한다는 말입니다.  우리에게는 고난당함에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이유는 상급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5 11-12 말씀입니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주님을 위해 고난을 당하면 더욱더 소망이 든든하게 되는 것입니다.  더욱더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한다는 믿음이 견고케 해지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받는 고난은 앞으로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전혀 비교가 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고난을 당하면서도 즐거워할 수가 있습니다(8:18).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 받는 것은 은혜로 여기면서(1:29) 소망 중에 즐거워하는 것입니다(12:12).

 

            사도 바울은 전도/선교로 인한 환난/고난이 많았습니다.  고린도후서 11 23-27 말씀입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맞았으며 태장으로 맞고 돌로 맞고 파선하고 일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사도행전 20 22-23 말씀입니다: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그러나 사도 바울은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당할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했습니다(21:13).   이유는 그에게는 주님께 받은 사명인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는 것이 자기의 생명보다 귀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20 24 말씀입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예수께 받은 사명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함에 있어서 환난/고난을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하늘에 상급이 이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22 12 말씀입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상이 내게 있어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상급은 궁창의 빛과 같이, 별과 같이, 해와 같이 영원토록 빛날 것입니다.  다니엘 12 3 말씀입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마태복음 13 43 말씀입니다: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

 

            질문을 자신에게 던집니다: 내가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환난/고난을 당하고 있는가? 북한과 C 나라 성도들은 믿음을 지키기 위해 환난/고난을 당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우리는 환난이 없어서 환난 중에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편안하고 편해지려고 하니까 환난/고난 중에 기쁨을 맛보지 못하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교회적으로도 편안하기에 ).   땅에 미칠 재난, 환난이 오고 있는데 우리는 믿음으로 이겨 나아갈 있을까요?  우리는 전도/선교를 위해 환난/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와중에서도 기쁨을 맛보고 누려야 합니다.  환난/고난을 통과해서 주님 앞에 때에 칭찬 받을 있길 기원합니다.

 

 

 

 

 

 

 

 

 

 

칭의의 결과 (5):

소망의 확신을 가짐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앎이로다(로마서 5 3-4).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으로 인해 환난을 당할 때에도(물론 환난이 없을 때에도) 하나님의 영광을 소망하며 즐거워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빌라델비아 교회(3:7-13)처럼 환난의 도가니인데도 불구하고(9-10)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주님의 말씀을 지키며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말아야 합니다(8).  우리는 환난 때에 믿음(신앙) 지켜야 합니다. 이것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성령님이 도와주시고 또한 주님께서 우리를 붙잡아주셔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는 환난 중에서도 즐거워할 있습니까?  사탄은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알고 어떻게 해서라도 열심히 택한 자라도 미혹하고 넘어트리고자 하는데 어떻게 우리는 기뻐할 있습니까?  우리는 이상 마귀의 자녀가 아니라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사탄은 우리를 미혹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1 28 말씀입니다: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것이라.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사탄의 미혹을 받는 것은 우리의 대적자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이지만 우리에게는 구원의 증거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대적자들로 인해 핍박과 환난을 받을지라도 그것이 우리에게는 구원의 증거이기에 즐거워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5:3).  사도 바울은 환난 중에 즐거워했습니다.  사도행전 14 22 말씀입니다: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것이라 하고. 천국 가는 길은 좁은 길이요 가시밭길이요 십자가의 길이기에 환난과 핍박과 괴로움과 고통 등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환난을 당할 때에 앞서가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길을 걸으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면서 우리는 감사하며 즐거워해야 합니다.  우리가 감사해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1:29).  우리가 즐거워해야 하는 이유는 하늘에 상급이 있기 때문입니다(5:11-12).  이것을 우리가 믿고 확실할 우리는 환난 중에 기뻐할 수가 있고 마침내 승리할 수가 있습니다.  바울이 환난을 당한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선교하기 위해서였습니다(참고: 고후 11:23-27).  성령님께서는 바울에게 성에서 결박과 환난이 바울을 기다린다고 말씀하셨습니다(20:23, 21:11).  그것을 알고서도 바울은 주저하지 않고 결박과 환난을 당할 줄을 알면서도 주님의 부르심에 따라 사명감을 가지고 순교도 각오하고 복음 전파에 힘을 썼습니다(20:24).  그리고 그는 환난 중에서 즐거워하고 즐거워했습니다.  그는 감옥에서도 그리스도가 전파되므로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말했습니다(1:18).  바울뿐만 아니라 다른 사도들도 환난 중에서 즐거워했습니다.  사도행전 5 41 말씀입니다: 사도들은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어떻게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면서 즐거워할 있었을까요?   이유는 그들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 무한한 하나님의 영광인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자들이(5:10), 바울의 경우는 죄인 중에 괴수가(딤전1:15),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어 화목하게 하는 직분이 주어진바 되었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부탁받았기에(고후5:18-19) 예수님을 대신해서 복음을 전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 일입니까.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무한한 영광인 알고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다고 하지만 우리 목사님들의 경우는 설교를 후에도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일 때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교를 들은 성도님들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믿음으로 받아들이며 순종하므로 변화하는 모습을 엿볼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기에 하나님의 은혜라 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마치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일어났던 그들이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님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바울과 동역자와 주님을 본받은 자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것과 같은 것입니다(살전1:6, 7).  그뿐만 아니라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기다렸습니다(10).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처럼 우리도 성령님의 기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주님을 본받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처럼 예수님의 재림을 소망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므로 하나님의 은혜로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을 때에 하나님의 기쁨과 천국의 기쁨이 우리의 기쁨이 돼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전도의 기쁨과 전도의 상급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상급을 바라보면서 기쁨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비록 고난과 환난이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확실하고 분명한 소망의 확신을 가지고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는 깨어 근신하여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헌신해야 합니다.  오늘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환난 중에 승리는 우리가 되길 기원합니다.

 

 

 

칭의의 결과 (6):

환난과 인내와 연단을 통과한

완성된 소망을 이룸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앎이로다(로마서 5 3-4).

 

 

 

                로마서 5 3절은 이는 환난은 인내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환난 중에 즐거워하는 이유는 이는 환난은 인내를이루기 때문입니다(3).  성경에는 인내 많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8 1-9절에서 기도의 인내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기도의 인내의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를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번이나 기도하셨습니다.  기도 응답이 있을 때까지 인내하시면서 끝까지 기도하셨습니다(26:36-42).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하신 일곱 마디 여섯 번째 말씀인 이루었다 말씀(19:30)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끝까지 고난을 인내하시사 이루셨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로마서 5 4절은 인내는 연단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환난은 인내를 이루고(3), 인내는 연단을 이룹니다(4).  여기서 연단이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고난의 (the furnace of affliction) 연단하심을 말합니다(48:10).  다시 말하면, 주님께서는 고난의 용광로로 우리를 단련하시사 우리 안에 모든 불순물을 제거하시므로 순금 같이 되어 나오게 하십니다(23:10).  하나님께서는 환난이란 고난의 용광로를 사용하시사 우리로 하여금 인내케 하시고 인내로 하여금 연단을 이루십니다.  또한 로마서 5 4절은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앎이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소망하는 (2) 초신자들도 소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을 통과한 완성된 소망이 있습니다(3-4).  성령님께서는 우리에게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돼 확신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3).

 

            분명히 대환난이 옵니다!   때에 성령님께서 로마서 5 1-4 말씀을 우리 심비에 깊이 적어주셔서 우리 모두가 견고한 믿음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믿는 가운데 역사하므로(살전2:13) 우리의 심령이 강화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대환난 속에서도 우리의 믿음을 지키고 묵묵히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다가 대환난에서 승리하여 주님 앞에 서야 합니다.

 

 

 

 

 

 

 

 

 

 

 

칭의의 결과 (7):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는 소망을 주심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로마서 5 5).

 

 

 

                성경은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5:5).  여기서 소망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소망하고)에서 시작해서(2)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3) 이루는 소망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소망하는 것은 초신자들도 소망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하는 소망은 소망 중의 소망이요 소망의 완성으로서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소망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는 이유는 소망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소망이 희미해지므로 우리를 낙심시키는 소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합니다.   세상의 모든 소망은 이루어져도 이러한 세상적인 소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합니다.  그러나 로마서 5 2-4절의 소망은 영광스러운 소망이기에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소망은 자랑스러운 소망입니다.   소망이 반드시 이루어지는 이유는 소망을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보증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보증이란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습니다(고후1:22).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떻게 보증하셨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으로입니다(5:5).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1).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소망하게 합니다(2).

 

            로마서 5 5절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님을 주셨습니다.  사도행전 2 17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주리니 . 누가 우리에게 성령님을 주셨습니까?  성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님을 주셨습니다.  어디에 성령님을 주셨습니까?  우리 마음에 성령님을 주셨습니다.  성령님이 하나님의 사랑과 연결(관계) 시켜주셨습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요일4;8, 16).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사랑을 행하실 뿐만 아니라 사랑을 우리 마음에 넘치도록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십자가에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나타나셨습니다(5:8).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셨습니다(8:32).  하나님께서는 측량할 없는 사랑을 택한 백성들인 우리에게 부어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엄청난 사랑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소망은 100% 반드시 성취됩니다.  그러므로 소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확실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특히 장차 마지막 대환난 소망을 가지고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붙잡고, 믿고 환난을 견뎌내며 극복하고 승리해야 합니다.

 

 

 

칭의의 결과 (8):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그러므로)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로마서 5 5-6).

 

 

                로마서 5 6절을 보면 한국 성경은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라고 시작하지만 원어 헬라어에는 그러므로라는 접속사가 있어서 그러므로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입니다.  여기서 그러므로 구절 5절에서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라고 말씀과 연결해서(이어서) 말입니다.  , 사도 바울은 5절에서 말한 우리 마음에 부은바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6절부터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로마서 5 6절은 우리가 아직 연약할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주 연약할 , 아주 작은 것을 없는 매우 연약할 때를 말합니다.   과거 때에는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기 전이요(1),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릴 없었던 때이며(1), 우리가 믿음으로 은혜에 들어감을 얻지 못했을 때이며(2),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지(소망하지) 못하고 즐거워하지 못했을 때이며(2), 우리가 환난 중에 즐거워하지 못했을 때이며(3) 또한 우리에게 성령님이 없고 하나님의 사랑이 부은바 되기 전입니다(5).  로마서 5 6절에서 기약대로라는 말씀은 적절한 때를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만세전부터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정하셨고 정한 때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정한 때에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는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6).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5).  갈라디아서 4 4 말씀입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때가 차매 여인의 후손으로 오십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여인에게서 나게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 16 말씀입니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로마서 5 6절을 보면 경건하지 않은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1:18).  불경건한 자들은 진리를 거역하고 배반하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위하여라고 로마서 5 6절에서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위하여 대신하여(고후 5:14, 15, 21) 차이가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 14, 15, 21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위하여 우리는 우리 자녀를 위해서 죽을 있음을 말합니다.  우리가 여러 사람을 위해서 죽을 수는 있지만 대신해서는 죽을 수는 없습니다.  대신하여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죽을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오직 죄가 없으신 예수님만 대신하여 죽으실 있는 분이십니다.  완전하신 하나님이시요 완전하신 사람이시기에 오직 예수님만이 대신하여 죽으실 있고 우리는 결코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이유는 예수님은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선택하시고, 의롭다 하시고 등등 하신 것입니다.  위하여죽는 것은 사람이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지만 대신하여죽으신 것은 사람이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우리 성도의 죽음을 잔다 표현했습니다.  성경은 스데반 집사의 죽음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자니라 표현을 했습니다(7:60).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죽은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열매가 되셨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고전15:20).  데살로니가전서 4 13-15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번이나 자는 자들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우리가 아직 연약할 기약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신(5:6)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생각할 우리는 감사하며 감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은 죽음 같이, 아니 죽음 보다 강한 사랑입니다(8:6-7).   사랑을 성령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어주셨으니 우리는 사랑으로 예수님의 이중 계명을 순종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22 37-39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이웃을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며 우리 이웃을 우리 자신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제 이상 연약한 사람이 아니라 강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5:1).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고 있습니다(1).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있는 은혜에 들어갔습니다(2).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소망하고 즐거워하고 있습니다(2).  우리는 환난 중에도 즐거워합니다(3).  우리에게 주신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되었습니다(5).

 

 

 

 

 

 

 

 

 

 

 

 

 

 

 

 

 

 

 

 

 

칭의의 결과 (9):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심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로마서 5 8).

 

 

 

                로마서 5 8절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과거로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전인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기 전입니다(1).  지금 현재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자들로서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9).  그리고 성경은 죄인(6)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무엇입니까?  성경은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죄는 불법입니다.  다시 말하면, 죄는 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 4 말씀입니다: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예를 들어, 인류의 인간인 아담은 죄를 범했습니다.  그는 법을 어겼습니다.  하나님의 법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였습니다(2:17).  그런데 아담과 그의 아내 하와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류 최초의 (원죄)입니다.

 

            둘째로, 죄는 선을 행할 알고도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 17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마태복음 25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가지 비유에서 선을 행할 알고도 행하지 아니한 죄를 범한 사람들을 봅시다:

 

            (1) 처녀 비유 ( 25:1-13):

 

                  비유에서 선을 행할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므로 죄를 범한 사람들은 바로 미련한 다섯 처녀들입니다.   미련한 다섯 처녀들이 범한 죄는 그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은 가지지(준비하지) 않았습니다(3).   결과 미련한 다섯 처녀들이 기름을 사러 사이에 신랑이 왔고 등과 더불어 기름도 준비한 슬기 있는 다섯 처녀들(8-9)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이 닫혔습니다(10).   후에 미련한 다섯 처녀들이 와서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부르짖었지만 신랑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내가 너희를 사랑하지 않노라) 말했습니다(11-12).   비유에서 주님의 명령은 그런즉 깨어 있으라입니다(13).  만일 지금 우리가 명령을 어기고 있다면 우리는 죄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달란트 비유 (25:14-30):

비유에서 선을 행할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므로 죄를 범한 사람들은 달란트 받은 자입니다(18).   달란트 받은 자가 범한 죄는 가서 땅을 파고 주인의 ( 달란트) 감추어 것입니다(18).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그가 범한 죄를 다섯 달란트 받은 (16, 20-21) 달란트 받은 (17, 22-23)처럼 착하고 충성되지 못하되 그는 적은 일에 충성하지 않았습니다(21, 23).   마디로, 그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었습니다(26).  그는 게을러서 해야 일을 하지 않는 죄를 범했습니다.  그는 주인에게 받은 달란트로 일을 해서 다른 달란트 열매를 맺지 않았습니다.   비유에서 주님의 명령은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어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달란트로 적은 일에 충성하여 열매를 맺으라입니다(21, 23).

 

            (3) 양과 염소의 비유 ( 25:31-46):

 

비유에서 선을 행할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므로 죄를 범한 사람들은 염소입니다(32, 33).  여기서 염소 저주를 받은 자들입니다(41).   저주를 받은 자들(염소) 범한 죄는 그들은 마땅히 해야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인자(31)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 하였습니다(42-43).   비유에서 주님의 명령은 마땅히 해야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마땅히 해야 일이란 인자가 주릴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를 마시게 하며 나그네 되었을 영접하고 헐벗었을 옷을 입히고 병들었을 돌보며 옥에 갇혔을 가서 보는 거입니다(35-36).   의인들(37) 하나님 아버지께 복받은 자들이요(34) 주님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예비 나라를 상속받으라 말씀하셨습니다(34).

가지 비유의 공통점은 했다와 안했다입니다.  , 선을 행할 알고 행한 자들과 선을 행할 알고도 행하지 아니한 자들로 구분됩니다.  우리는 선을 행한 알고 행하는 자들이 돼야 합니다.  우리는 부지런히 그리고 충성되이 주님의 일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

 

            셋째로, 죄는 믿음으로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로마서 14 23 말씀입니다: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죄니라. 선한 일도 믿음으로 해야지 믿음으로 하지 않으면 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한 , 주님의 일도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7 21-23 말씀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믿음 없이 말로만 주여 주여 (또는 아멘, 할렐루야) 하는 것은 죄입니다.  믿음 없이 주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있고, 믿음 없이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있으며 또한 믿음 없이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할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 없이 행하는 모든 일은 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말씀하십니다(23).  전능하신 주님께서 알지 못하시는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주님의 말씀은 내가 너희를 사랑하지 아니한다입니다.

 

            넷째로, 죄는 믿음으로 하지만 분량에 이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죄는 순종이 부족한 것입니다.  미주한인 예수교 장로회 소요리 문답 14 이렇습니다: 죄가 무엇인가? 답은 이렇습니다: 죄는 하나님의 법을 순종함에 부족한 것이나 어기는 것이다(요일3:4; 4:17; 3:23; 2:10). 야고보서 2 10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율법을 지키다가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현대인의 성경) 누구든지 율법을 지키다가도 중에 하나를 어기면 율법 전부를 범한 것이 됩니다].

 

            가지 [(1) 법을 어기는 , (2) 선을 행할 알고도 행하지 않는 , (3) 믿음으로 행하지 않는 , (4) 순종이 부족한 ] 해당되지 않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로마서 3 23 말씀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사람인류의 대표인 아담이 죄를 범하므로 죄가 세상에 들어왔습니다(5:12).  비록 천사의 세계에는 타락한 천사가 있었지만 인간 세계에는 죄가 없었는데 아담의 죄로 인해 죄가 세상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아담의 원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습니다(12).  모든 사람이 법을 어기고, 모든 사람이 선을 행할 알고도 선을 행하지 않았고, 모든 사람이 믿음으로 행하지 않았으며, 모든 사람이 순종이 부족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습니다.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습니다 (12).  아담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김으로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는 영혼의 죽음(영적 죽음) 맞이했습니다(3:9-24).  그러다가 그는 930세에 육체적 죽음을 맞이했습니다(5:5).  아담이 죽었을 그의 몸과 영혼이 분리되어 몸은 흙으로 돌아갔지만 그의 영혼은 영원한 세계(영원한 지옥)으로 갔습니다.  예수님의 재림 그의 썩어진 몸과 지옥에 있는 영혼이 연합하여 지옥에서 영원토록 형벌을 받을 것입니다.  아담의 원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5:12) 우리도 죄인이 되었고(8) 또한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10).  그러므로 우리도 원래는 예수님의 재림 번째 아담처럼 영혼의 죽음(영적 죽음) 맞이해서 영원한 지옥에서 영원토록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람 예수 그리스도(15) 또는 마지막 아담(고전15:45)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5: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모든 (원죄, 과거의 , 현재의 , 미래의 ) 담당하시고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영원한 형벌을 담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8).  거룩하시고 의로우시사 죄를 미워하시고 멸하시는 하나님께서 영원히 형벌을 받아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었던 죄인인 우리에 대한 사랑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분명하게 나타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의 죽으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마음으로 바라볼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감사 찬양 경배를 하나님께 올려 드려야 합니다.   찬송가 150 갈보리산 위에입니다: (1) 갈보리산 위에 십자가 섰으니 주가 고난을 당한 표라 험한 십자가를 내가 사랑함은 주가 보혈을 흘림이라, (2) 멸시 천대 받은 주의 십자가에 나의 마음이 끌리도다 귀한 어린양이 세상 죄를 지고 험한 십자가 지셨도다, (3) 험한 십자가에 주가 흘린 피를 믿는 맘으로 바라보니 나를 용서하고 사하시려 주가 흘리신 보혈이라, (4) 주님 예비하신 나의 본향 집에 나를 부르실 날에는 영광 중에 계신 우리 주와 함께 내가 죽도록 충성하리 (후렴) 최후 승리를 얻기까지 주의 십자가 사랑하리 빛난 면류관 받기까지 험한 십자가 붙들겠네.  찬송가 293 주의 사랑 비칠 때에입니다: (1) 주의 사랑 비칠 때에 기쁨오네 근심걱정 물러가고 기쁨오네 기도하게 하시며 희미한 물리쳐 주의 사랑 비칠 기쁨오네, (2) 주의 사랑 비칠 때에 세상은 아름답고 활기차게 변하네 화평 중에 영혼 영광스런 생명 다시 찾게 되었네 사랑, (3) 주의 사랑 비칠 때에 세상은 어둠 슬픔 짐이 사라져 우리들의 가는 밝히 비춰 주시며 복을 받게 하시네 사랑, (4) 주의 사랑 비칠 때에 광채가 찬란하게 우리 둘러 비치겠네 세상 모두 이기고 천국 생활 때도 주의 사랑 비치네 사랑, (후렴) 사랑 맘속에 충만하게 비칠 때에 찬송하네 사랑 속에 화평함과 기쁨 주네 사랑.  지금 위기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비취므로 근심 걱정 어둠 슬픔 두려움 물러가고 세상이 없는 화평과 기쁨이 충만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비치는 우리가 되길 기원합니다.

 

 

 

 

 

 

 

 

 

 

 

 

 

 

 

 

 

 

 

 

 

 

 

칭의의 결과 (10):

진노하심에게 구원을 받음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로마서 5 9).

 

 

 

                로마서 5 9 말씀인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로마서 5 1 말씀인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비슷한 점과 다른 점입니다:

 

(1)  비슷한 : 같은 우리가입니다(1, 9).

 

여기서 우리 우리가 아직 연약할 (6),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8), 우리가 원수 되었을 (10)였던 예수님을 믿기 전에 과거의 우리입니다.  과거의 우리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었으므로 우리의 영혼이 죽은 상태의 우리로서 영원히 형벌을 받아 지옥 불구덩이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우리 가리킵니다.  같은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입니다(1, 9).

(2)  다른 : 로마서 5 1절에서는 우리가 믿음으로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말씀하고 있는 반면에 9절에서는 우리가 (예수님) 피로 말미암아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의 예수님의 피를 가리킵니다.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가리킵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의 피입니다(1:29).   하나님의 어린 양의 피는 유월절 어린양(대하35:1, 6) 피로서 출애굽 당시에 10번째 재앙 모세가 이스라엘 모든 장로들에게 너희는 나가서 너희 가족대로 어린 양을 택하여 유월절 양으로 잡으라(12:21) 말씀이 가리키고 있는 참되신 유월절 어린양이시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님의 피를 가리킵니다.   유월절 어린양이신 예수님의 피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의 피입니다(요일2:2).  , 유월절 어린양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5:8) 말미암아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케 하신 것입니다(10).

 

                예수님의 피는 능력이 있는 피입니다. 예수님의 보배로운 (보혈)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은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이 씻길 있습니다.  하나님과 원수 죄인을 의롭게 하시는 피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진노를 만족케 하는 예수님의 피로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는 피요 우리를 의롭게 하시는 피입니다.   후에도 예수님의 피는 계속해서 우리의 속에 역사하시는 우리의 삶과 생활을 통치하는 능력의 피입니다.  여기서 생명을 가리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의 , 예수님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5:9)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17, 현대인의 성경)[ 생명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선물로서 우리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입니다(6:23, 현대인의 성경)].  우리는 이상 하나님과 교제가 단절된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이 아니라 이제(5:9)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1, 현대인의 성경, 참고: 10-11).  이제(9)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우리 마음에 그분의 사랑을 부어 주셨습니다(5, 현대인의 성경).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우리의 마음에 보내주신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있게 되었습니다(4:6, 번역, 참고: 8:15).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유월절 어린양의 피요, 능력이 있는 피요, 하나님과 원수 죄인을 의롭게 하시는 피입니다.  히브리서 9 14 말씀입니다: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현대인의 성경)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님을 통해 없는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에서 어찌 여러분의 양심을 깨끗하게 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습니까?].  성령님께서는 예수님을 동정녀 마리아로 하여금 잉태케 하셨으며(1:18, 20), 예수님과 함께 땅에서 33 동안 함께 하셨으며 또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흘려 죽으셨을 때도 함께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권세//능력/역사를 우리가 어떻게 수가 있겠습니까?   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속량해주시사 우리를 죄에서 자유/해방케 하셨습니다.   피로 말미암아 영원히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이 의롭다 하심을 받게 되었습니다(5:1, 9).   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되었습니다(1).   피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있는 은혜를 들어감을 얻었습니다(2).   피의 능력은 지금도 우리 속에 역사하므로 말미암아 우리로 하여금 거룩하신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게 하고 있습니다.   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합니다(2).   피로 말미암아 우리가 환난 중에서도 즐거워합니다(3).  예를 들어, 욥기에 나오는 욥은 재난/환난 중에서 오히려 땅에 엎으려 예배하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1:20-21).   피로 말미암아 인내는 연단을, 연단을 소망을 이루고 있습니다(5:4).

                로마서 5 9절을 보면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진노하심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가리킵니다.  구약 성경에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관한 내용이약 20 이상이 있는데 모든 것을 합치면 580번이 나온다고 합니다.  신양 성경에 나오는 진노 단어는 로마서에 개가 나옵니다: (1) 하나는, 잔잔한 진노로서 이미 하나님께서 과거에도 내리셨고, 지금 현재에도 내리고 계시며, 장차 앞으로도 내리실 진노입니다.  로마서 1 18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2) 하나는, 최후의 진노로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최후의 심판 때에 내리실 진노를 말합니다.  로마서 2 5 말씀입니다: 다만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로마서 5 9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진노하심 로마서 1 18절의 진노가 아니라 로마서 2 5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최후의 진노를 가리킵니다.  로마서 2 5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이란 최후의 심판의 날로서 최후의 심판이란 백보좌 심판을 가리킵니다.  요한계시록 20 12 말씀입니다: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자나 작은 자나 보좌 앞에 있는데 책들이 있고 다른 책이 펴졌으니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누가 심판하십니까?  최후의 심판의 심판장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누가 심판을 받습니까?  죽은 자들(12), 인류의 인간인 아담부터 시작해서 인류의 모든 사람들이 심판을 받습니다.  어떻게 심판하십니까?  주님께서 기록한 책들을 보시고 심판을 받습니다.   책들 중에는 우리 모든 사람들의 각자의 책이 있습니다.  마치 자서전처럼 책에는 우리가 과거, 현재, 미래,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모든 죄들이 기록돼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찬송가 274 행한 죄뿐이니 죽을 때까지 찬양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유는 우리가 행한 , 지금도 행하고 있는 , 앞으로 죽을 때까지 행할 있는 것은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최후의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이었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보배로운 피를 흘려 죽으시므로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고 또한 우리를 최후의 진노에서 구원을 받게 하실 것입니다(5:9).  전에는 우리가 책들(20:12) 기록되었으므로,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이었으므로 영원히 못에 던져진바 수밖에 없었습니다(15).  그러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말미암아 다른 책인 생명책(12) ,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었으므로(21:27)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예루살렘(10), 하나님의 영광이 있는 (11) 들어갈 것입니다(26, 27).

 

                로마서 5 9절을 보면 구원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구원이란 단어가 로마서에 명사로 5 그리고 동사로 8 나옵니다.  명사로 쓰인 예는 로마서 1 16절입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동사로 8 나온 것을 보면 과거형으로 1, 미래형으로 7 사용되었습니다.  과거 구원이란 이미 구원을 얻었다는 의미로 쓰인 과거형 구원 로마서에 1 나옵니다.  로마서 8 24 말씀입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이미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미래 구원이란 장차 앞으로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의미로 쓰인 미래형 구원 로마서에 7 나옵니다.  로마서 5 10 말씀입니다: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여기서 구원 앞으로 우리가 받을 미래의 구원으로서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에서 최후의 진노를 받지 않고 그리스도의 피의 능력으로(9) 말미암아 구원의 완성을 받을 것을 가리킵니다.

 

            성경에서는 말씀하고 있는 구원이란 과거, 현재, 미래형입니다.

 

            (1) 과거의 구원: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5 12-13 말씀입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말씀을 보면 성경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믿는 자는 이미 영생(구원) 얻었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과거 구원은 이미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칭의)(5:9).

 

            (2) 현재의 구원:

 

성경은 너희는 구원을 이루라 말씀하고 있습니다(2:12).  구원은 사람들이 이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것입니다.  요나 2 9 말씀입니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현대인의 성경) 구원은 여호와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7 10 말씀입니다: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말씀들을 보면 우리는 구원은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주시는) 것이지 죄인 우리 인간이 노력(선행) 하므로 우리 자신을 스스로 구원할 있는 것이 결코 아닌 것을 명백히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너희는 구원을 이루라 말한 것일까요?(2:12) 말씀의 뜻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원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구약성경에서 구원이란 말은 히브리어 예수아 말로서 이는 죄와 위험한 환경으로부터 구출해 낸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신약성경에서는 구원이란 헬라어의 소테리아 말인데, 이는 죄로 말미암아 오는 형벌(죄의 형벌) 죄의 권세와 생활에서부터 구출하여 영원한 천국백성으로 살게 한다는 의미로 쓰여졌습니다(인터넷). 로마서 5 6, 8, 10 말씀에 근거해서 구원이란 무엇입니까? 로마서 5 6 말씀입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helpless)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는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말씀에 비춰볼 구원이란 전적으로 무기력(helpless) 하고 경건하지 않는(ungodly) 우리를 하나님께서 도우사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 속에서 건져내시사 우리를 경건한 (godly) 삼으신 것입니다.  로마서 5 8 말씀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말씀에 비춰볼 구원이란 죄인 우리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게 하시므로 우리를 의롭다하신 것입니다(9).   말은 구원이란 헬라어 구원이란 단어의 의미처럼 우리를 죄의 형벌과 죄의 권세와 생활에서부터 구출하셨다는 의미일 뿐만 아니라 나가서 우리를 의롭다하셨다는 사실까지 포함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5 10 말씀입니다: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말씀에 비춰볼 구원이란 하나님과 원수 우리를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케 하시사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현재형 구원, 너희는 구원을 이루라(2:12) 말씀은 너희는 영원한 생명을 이루라 뜻으로 해석할 수가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성경에서 구원을 미래형으로 말씀하고 있는 성경구절들을 구원이란 장차 예수님이 땅에 다시 오시면(재림) 우리를 영원한 하늘나라로 인도하시사 천국에서 영원토록 사는 것으로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이미 구원을 받았다는 말씀도 요한일서 5 12-13 말씀에 근거해서 생각하면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이미 영생(영원한 생명) 있습니다.  그러므로 과거형 구원이나 미래형 구원이나 우리가 구원 영원한 생명으로 이해할 빌립보서 2 12절에서 바울이 말하고 있는 너희 구원을 이루라라는 말씀을 일관성 있게 이해할 있다고 생각합니다.  , 너희 구원을 이루라 말씀은 너희는 영원한 생명을 이루라 뜻으로 해석할 있습니다.   말을 우리에게 적용한다면 너희는 구원을 이루라 말씀은 너희는 영원한 생명이 있는 답게 사십시오 말할 있습니다.   마디로, 여러분, 천국 백성 답게 사십시오입니다.

 

            (3) 미래의 구원:

 

                  성경은 우리가 앞으로 장차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기도 합니다.  사도행전 16 31 말씀입니다: 이르되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로마서 10 9 말씀입니다: 네가 만일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성경구절을 보면 예수님을 믿으면 이미 구원을 받았다고 말씀하고 있지 않고 앞으로 장차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미래형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미래형 구원은 우리는 장차 예수님이 땅에 다시 오시면(재림) 우리를 영화롭게 하시고(8:30) 영원한 하늘나라로 인도하시사 천국에서 영원토록 사는 것입니다.  미래 구원은 앞으로 장차 우리가 구원을 받을 것을 말합니다(5:9).  , 미래 구원은 구원의 완성을 가리킵니다.

 

                  로마서 5 9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미래의 구원은(과거 구원에 근거해서라도) 더욱 확실한 구원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8 30절에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여기서 미리 정하신 그들이란 하나님께서 사랑하사 창세전에 선택하신 자들을 가리킵니다(1:4).  또한 부르시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사 선택한 백성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사랑해서 선택한 백성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앞으로 장차 최후의 심판과 최후의 진노에서 구원하실 미래를 가리키는 말씀인데 이미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과거형으로 말씀한 이유는 그만큼 확실하게 우리가 구원( 완성) 받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에베소서 2 5-6 말씀입니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이미 받았습니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우리의 중생, 부활을 가리킵니다.   함께 일으키사 승천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힌바 되었습니다.  그만큼 우리가 하나님의 최후의 진노에서 구원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구원의 완성을 받아 천국 가는 것은 그만큼 확실하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5:9).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함을 받고 의롭다 하심을 받아 우리는 우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어(10) 화평을 누리게 되었습니다(1).   뿐만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지성소에 들어감을 얻어 하나님의 임재 앞에, 분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감을 얻었습니다(2).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며(2) 환난 중에도 즐거워합니다(3).   이유는 우리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을 소망을 이루는 알기 때문입니다(3-4).  우리는 영원하신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습니다(9:14).  그러므로 우리는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주님을 섬기게 것입니다( 찬송가 323, 부름 받아 나선 , 3).  섬기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며 이웃 사랑하는데 힘을 써야 합니다.  비록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같은(23:4) 역경과 어려움과 환난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과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힘입어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최후의 심판의 진노에서도 구원을 받을 것이기에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구원을 이미 받았고 장차 구원을 받을 자들로서 현재 구원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 우리는 이미 영원한 생명을 받은 자들이요 또한 장차 구원의 완성 천국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면서 천국 백성들로서 땅에 사는 동안 천국 백성 답게 살아야 합니다.  천국 백성 답게 사는 삶이란 예수님의 이중 계명에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2 37-39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이웃을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1)  과거 사랑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님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이미 부어주셨습니다( 5:5).  

 

(2)  미래 사랑입니다:

 

우리가 장차 예수님의 재림 구원을 받을 때에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면 성령님께서 천국의 법인 예수님의 이중 계명을 온전히 순종케 하시사 우리로 하여금 완전한 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게 만드실 것입니다.  

 

(3)  현재 사랑입니다:

종말론적인 성령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사 지금 성령의 열매인 사랑을 맺고 계시고(5:22)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의 이중 계명을 순종케 하시기에 우리는 성령님을 따라 사량해야 합니다(16).  , 우리는 성령님의 인도하시는 바가 돼야 하며(18) 성령님으로 살고 성령님으로 행해야 합니다(25).  그리할 우리 마음이 천국화되고, 우리 가정이 천국화 되며, 우리 교회가 천국화 되는 공동체가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자랑하며 예수님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세계가 위기 가운데 있을 열방을 품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위기에 처해있는 모든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24 14 말씀입니다: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사도행전 1 8 말씀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칭의의 결과 (11):

미래 구원을 받음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로마서 5 10)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가 있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5:10).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까?  구약 성경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최초의 사람인 아담도 만드신 아담에게 에덴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먹을 있도록 허락하셨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열매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2:16-17).  그러나 아담은 간교한 (사탄)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습니다.   결과 아담과 그의 모든 후손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담과 그의 모든 후손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영원한 불구덩이에서 마땅히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과거에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 자들이었고 우리는 사랑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랑이신 하나님께서[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4:8, 16)]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되었으므로(5:5) 지금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가능케 하셨습니까?  요한일서 4 9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살리시려고(구원하시려고)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독생자 예수님은 탄생 또는 강생하셨음).  세상에 보내심을 받은 독생자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2:6-7).   없으신 하나님이시요 사람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살리시려고 (구원하시려고)(요일4:9) 세상에 탄생/강생하신 것입니다.

 

                로마서 5 10절을 보면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의 아들이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만큼 하나님 아버지께 아끼시는 분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셨습니다(8:32).  다시 말하면,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하나님과 원수인 우리를 위하여 아끼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신 것입니다.  요한일서 4 10 말씀입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사 우리의 죄를 사하시려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제물로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내어주신바 되셨습니다(8:32).  죽으실 없으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시기 위해 근본 하나님과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제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2:6-7).  그리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8).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이기에 우리가 십자가에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영원히 형벌을 받아야 하는데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원수인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수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사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2:16).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셨습니다(1:20).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5:10).  하나님은 하나님의 원수인 우리를 화목케 하시되 단번에 하셨습니다.  어떻게 하셨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가능케 하셨습니다(10:10).  다시 말하면,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단번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6:10)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것입니다(5:10).  요한일서 2 2 말씀입니다: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아니요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참고: 3:25).  여기서 화목 제물(propitiation)이란 단어는 만족(satisfaction)이란 의미로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유월절 어린양의 희생 제물로 받쳐져 죽으시므로 죄를 형벌하셔야 했던 하나님의 거룩하신 요구를 만족케 하신 것을 가리킵니다(맥아더).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2 2절뿐만 아니라 4 10절에서도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그는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아들 예수님을 화목 제물로 세상에 보냈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5 19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골로새서 1 22 말씀입니다: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화목은 결코 깨질 수가 없는 영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상 원수로 여기지 않으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케 하시사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가 있게 되었고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있으며 하나님과 사귐 또는 교제를 가질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상 하나님과 원수 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자가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습니다(고후5:18).  그리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부탁하셨습니다(19).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간청해야 합니다(20).

 

                로마서 5 10절을 보면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사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케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5:10)에서 그의 살아나심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가리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고전15:3-4).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40 동안 부활하신 것을 증거하신 하늘로 승천하시사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사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만난 예수님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아니라 부활하시고 승천하시사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9).   주님은 반드시 세상에 다시 오실 것입니다(재림).   우리는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5:10).  여기서 구원이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이미 죽은 성도들은 썩지 않는 , 영광스러운 , 강한 , 신령한 몸으로 부활할 것이며(고전15:42-44) 때까지 살아있는 성도들은 썩지 않는 , 영광스러운 , 강한 ,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51), 부활하신 예수님과 같이 영광스러운 몸을 입을 것을 가리킵니다(3:20-21).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을 것입니다(살전4:17).  그리고 우리는 천국에서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할 것입니다(19:9).  이러한 구원을 우리가 받을 것입니다.  우리는 더욱 예수님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5:10).  여기서 더욱이란 반드시 강조합니다.  ,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반드시 장차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가 연약할 , 죄인 되었을 ,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시사 십자가에 화목제물로 죽으시므로 우리를 구원하셨다면 하물며 예수님께서 세상에 다시 오실 우리가 구원을 받을 것은 100% 확실한 것입니다.   구원의 믿음과 확신을 우리는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반드시 그리고 분명히 다시 오십니다!  죽은 우리 성도님들은 반드시 부활할 것이며 때까지 살아있는 성도님들은 반드시 변화하여 영광스러운 주님을 맞이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 52-58 말씀입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안에서 헛되지 않은 앎이라. 우리는 부활의 믿음과 소망 가운데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돼야 합니다(58).   이유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상급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22 12 말씀입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상이 내게 있어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은화 므나 비유(19:11-27) 보면 므나로 므나를 남긴 사람과 므나로 다섯 므나를 남긴 사람은 주인에게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각각 고을 권세 다섯 고을 차지하라는 상급을 받습니다.  므나 당시 이스라엘 화폐로서 므나는 노동자의 3개월 품값이었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내린 상급은 비교도 되는 상급인 각각 고을과 다섯 고을이었습니다.  장차 주님 앞에서 서서 결산할 때에(25:19) 주님께서 칭찬과 상급을 받는 우리가 되길 기원합니다.

 

 

 

 

 

 

 

 

 

 

 

 

 

 

 

 

 

 

 

 

 

칭의의 결과 (12):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함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로마서 5 11)

 

 

 

                사도 바울은 이미 로마서 5 2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말씀했습니다.  또한 그는 3절에서도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느니라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11절에서 바울은 다시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을 (3:23) 우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5:1-2).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였는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어(10)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되었습니다(1).  우리가 우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1, 2)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들어가 굳게 있게 되었습니다(2).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자랑하며) 즐거워합니다(2).  이미 나타난 가지 영광은 100% 온전한 것이 아닙니다.  만일 지금 하나님께서 100% 온전한 영광을 나타내시면 우리는 온전한 영광을 온전히 수가 없습니다.  장차 나타날 하나님의 영광은 마디로 예수님의 재림입니다.  미래에 나타날 하나님의 영광은 100% 온전하고 영원한 영광으로서 우리는 하나님을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것입니다(고전13:12).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의 영광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이 우리 자녀의 영광입니다.  로마서 5 1-2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3가지 하나님의 영광은 장차 나타날 하나님의 영광과 족히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 우리가 우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미 누리고 있는 하나님의 영광은 장차 우리 예수님이 다시 오실 우리가 누릴 하나님의 영광과는 족히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5:1-2, 참고: 8:18).  장차 나타날 하나님의 영광은 예수님이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어 그분의 모습을 보게 것이며(요일3:2, 현대인의 성경) 우리의 천한 몸을 변화시켜 자기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게 하실 것입니다(3:21, 현대인의 성경).  우리는 예수님을 믿다가 죽은 사람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실 것을 믿습니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는 자들도 이미 죽은 사람들보다 앞서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이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내려오실 그리스도를 믿다가 죽은 사람들이 먼저 부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후에 우리 살아남은 사람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려 올라가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 영원의 주님과 함께 있게 것입니다(살전4:14-17).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는 것입니다(5:11).

 

                우리 하나님은 극락의 하나님이십니다(43:4).  극락의 하나님은 우리의 기쁨이십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 1문입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무엇인가? 그에 대한 답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입니다.  우리가 제일 힘써야 하는 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면서 하나님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영원토록 즐거워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과 화목하게 자들만 하나님을 즐거워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화목하게 하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해야 합니다.  ,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5:10)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함을 받고 우리는 죄에서 건짐을 받은 자들로서 하나님 안에서 기뻐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참된 기쁨입니다.   기쁨이야 말로 변하지 않는 기쁨이요 누구도 우리에게서 빼앗아 없는 기쁨입니다.   기쁨은 모든 상황을 초월한 기쁨으로서 사도 바울은 옥중에서도 기뻐하고 또한 기뻐했습니다(1:18).   찬송가 438 영혼이 은총 입어 3 가사입니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예수 모신 곳이 어디나 하늘나라.

 

                근심된 일이 많고 곤고한 일이 많으며 죄악 일과 고통, 괴로움, 질병, 굶주림 죽을 일이 쌓인 세상에서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해야 합니다.  우리가 극락의 하나님을 우리의 기쁨으로 모시고 하나님 안에서 기쁨을 소유하면서 누릴 때에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기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한 주님이 주시는 기쁨 속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인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 사람들로서 하나님 안에서 기쁨을 누리면서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찬송가 497 예수 넓은 사랑입니다:

 

                (1)   예수 넓은 사랑 크신 은혜를 힘써 전파함은 기쁜 일일세

                        예수 복된 말씀 생명과 진리요 맘의 갈급함을 채워주시네

            (2)   말씀 전할 때에 맘이 기쁘고 말씀 전할수록 기쁨 넘치네

                        구원의 복된 말씀 못들은 사람이 세상에 많으므로 힘써서 전하세

            (3)   말씀 들은 사람 듣기 원하고 목말라 사모하니 말씀 진리라

                        나라 영광중에 부를 노래 예부터 좋아하던 말씀뿐일세

            (후렴) 예부터 전한 말씀 예수 크신 사랑 항상 전파하기 기뻐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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