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되어 갈 때에
[느헤미야 4장 7-14절 말씀 묵상]
인터넷
사이버 독서교실을 보면 강문주씨란 사람이 쓴 “두려움은 없다”란 글이 나옵니다. 그 글 내용 중 부분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입니다.’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은 1933년 3월 4일 취임식에서 대공황의 불안과 좌절에 빠진 국민들에게 이렇게 호소했다. 당시 미국은
전대미문의 경제위기로 1천500만명이 실업상태에 빠지고, 은행 등 금융기관이 연쇄도산하면서 극도의 공포가 국민들을 엄습했다. …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루스벨트는 어떤 경제 정책보다 ‘자신감’ 회복이 불황을 이기는 급선무라고 간파했다. 두려움이 가져오는 끝없는 불안과 패배주의가 바로 위기의 본 질이라고 본 것이다. 위기의식이
위기를 부르고 위기가 다시 위기의식을 증폭시키는 과정을 루스벨트는 단절시키고자 했다"(인터넷). 과연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어떠한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습니까? 두려움입니까? 걱정과 염려입니까? 낙심입니까? 의심입니까? 우리 승리장로교회를 바라볼 때 여러분들은 어떠한 위기가 다가올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전 개인적으로 “확신의
위기”(Crisis of Conviction)이 올 수 있지 않나 예상해 봅니다. 다시 말하면, 루스벨트 대통령이 1930년 대에 온 경제 위기에서 중요한 것이 ‘자신감’ 회복이라고 생각했었다는 말은 “확신의 위기”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즉, 미국은 경제위기에서 벗어나 경제 회복이 올 것을 확신하는 마음 자세를 심어주려고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말은 그 때 경제 위기는 곧 경제 회복의 대한 확신의 위기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승리장로교회도 확신의 위기가 올 수 있다는 말입니다. 즉, ‘주님이 주님의 몸된 승리장로교회를 세우신다’는 마태복음 16장18절 말씀을 믿지 못하여 불확신 속에 거하게 될 때에 그것은 곧 승리장로교회의 위기란 말입니다. 이러한 확신의 위기가 언제 올 수 있습니까? 주님의 몸된 교회가 재건되어
갈 때에 올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루살렘 성이 재건되어 가고 있을 때 느헤미야와 유다
백성들은 큰 위기를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
중심으로 “재건되어 갈 때에”란 제목 아래 2 가지를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1) 재건되어 갈 때에 오는 위기는 무엇입니까? (2) 위기 관리(Crisis Management). 묵상하는 가운데 우리 모두 오는 위기를 잘 관리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길 기원합니다.
첫째로, 오는 위기(Coming Crisis)는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느헤미야 4장 7-8절을 보십시오: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이 중수되어 그 퇴락한 곳이 수보되어 간다
함을 듣고 심히 분하여 다 함께 꾀하기를 예루살렘으로 가서 쳐서 요란하게 하자 하기로”. 예루살렘 성이 중수되어 그 퇴락한 곳이 수보되어 가고 있을 때(7절), 다시 말하면, 예루살렘 성벽이 절반이 중수되었을 때(6절) 느헤미야와 유다 백성들에게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저번
주일 에 묵상한 말씀 중 4장3절을 보면 유다 백성들의 대적자인
도비야가 유다 백성들을 향하여 “저들의 건축하는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고 조롱하였는데
과연 이 조롱을 유다 백성들은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입니다. 이 도비야의 조롱에서 “무너지리라”는 단어의 히브리어 의미는 ‘(벽)의 터진 곳, 갈라진 틈이 있을 것이다’(will
have a breach) 란 말로서 도비야는 유다 백성들의 예루살렘 성벽을 다 건축해도 여 우가
올라가도 성벽에 갈라진 틈이 생길 것이라고 조롱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느헤미야 4장 7절을 보면 예루살렘 성의 “퇴락한
곳이 수보되어” 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예루살렘 성벽의 있었던 갈라진 틈 들이 닫혀져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유다 백성들은 도비야의 조롱에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도비야의 조롱을
통하여 교훈을 받은 것처럼 예루살렘 성벽의 갈라진 틈들을 다 막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욱더 튼튼히 예루살렘 성을 중수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자세는 위기를 기회로 삼을 줄
아는 지혜로운 자입니다. 그러면 어떠한 위기가 유다 백성들에게 왔습니까? 한 4가지로 생각해 볼 수있습니다:
첫째로, 대적들이 늘어났습니다.
오늘
본문 느헤미야 4장 7절을 보십시오: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이 … 함께 꾀하기를 …”. 예루살렘
성 재건이 진척이 있으면 있을수록 대적자들도 많아졌습니다. 처음 느헤미야 2장10절에서는 대적자들이 호론 사람 산발랏과 암몬 사람 도비야 2명의 지도자들 밖에 명시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2장19절에 가서는 아라비아 사람 게셈이 등장해서 3명의 대적자들이 생겼습니다. 그러다가 오늘 본문 7절을 보면 이젠 한 사람이 아닌 “아스돗 사람들”이란 무리가 다른 대적자들과 연합하여
느헤미야와 유다 백성들의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는 일을 대적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연합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잘못된 같은 목적인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는 일을 막고자 하는 일에
이들이 연합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쩔 때는 함께 일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 사람들은 주님의 일을 함께 대적함에 있어서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둘째
위기는 대적자들의 연합 무력 공격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느헤미야 4장 7-8절을 보면 대적자들은
예루살렘 성이 중수되어 그 퇴락한 곳이 수보되어 간다 함을 듣고 심히 분하여 다 함께 꾀하였습니다. 이들의 꾀함은 무엇이었습니까? 7절을 보십시오: “예루살렘으로 가서 쳐서 요란하게 하자 하기로”. 즉, 대적자들이 연합하여 예루살렘을 쳐 들어가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다
백성들을 요란하게 만들고자 했던 것입니다(to create confusion). 이젠 예루살렘 도시는 대적자들에게 포위가 된 것임. 북쪽으로는 산 발랏과
사마리아인들, 동쪽으로는 도비야와 암몬 사람들, 남쪽으로는
게셈과 아라비 아 사람들, 그리고 서쪽으로는 아스돗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고 있 는 느헤미야와
유다 백성들을 포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스돗은 그 당시에 팔레스틴 지역의 가장 중요한
도시였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팔레스탄인(불레셋) 사람들이 예루살렘의 또 다른 중요하고 강한 커뮤니티가 생겨나길 원치 않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대적자들의 연합은 누가복음 23장12절
말씀을 생각나게 합니다: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이었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니라”. 예수님을 핍박 함에 있어서 연합 전선을 피는 대적자들을 봅니다. 이러한
현상은 이미 시편기자가 시편 2편2절에서 예언했습니다: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 받은 자를 대적하며”.
세번째
위기는 낙심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느헤미야 4장 10절을 보십시오:
“유다 사람들은 이르기를 흙 무더기가 아직도 많거늘 담부하는 자의 힘이 쇠하였으니 우리가 성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하고”. 유다 백성들은 일이 많음으로 인하여 낙심하고 있었습니다. 흙 무더기가 아직
많이 남아 있어서 낙심하고 있었는데 이젠 대적자들의 연합 전선 및 무력 공경의 소식을 듣고 더 힘이 빠졌고 또한 낙심했습니다. 전에 예루살렘 성이 훼파되어 거기서 여기 저기 널려져 있는 흙무더기나 돌들, 이것을
다 치우면서 성벽을 재건해야 하니 일이 두배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유다 백성들은 일이
너무 많아 낙심했던 것입니다. 또한 예루살렘 성벽이 반이나 재건된 이 마당에 대적자들의
숫자도 늘어가고 공격은 더욱더 심해짐을 느낄 때에 이 얼마나 낙심되는 일입니까? 그리스도
교사들이 만들어 낸 교훈적인 우화가 있습니다: 어느 날 마귀가 악령들을 데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파괴하고 무너뜨리고 타락사키는 일에 사용되었던 무기들을 전시하는 “무기 전시회”에 참석을
했습니다. 그 곳에는 여러 가지 무기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 중에 한 무기에 제일
비싼 값이 매겨져 있었습니다. 이것을 궁금하게 여긴 악령들이 마귀에게 물었습니다. “두목님, 이 무기에 왜 이렇게 비싼 가격이 책정되어 있나요?” 그러자 두목이 다음과 같은 대답을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내가 이 무기를 사용하는 줄을 모르지. 그래서 나는 이 무리고
간단히 사람들을 사로잡을 수가 있어. 이 무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얼마나 많이 타락했다구.” 그 무기의 이름은 바로 “낙망”이었습니다(이동원). 우리의 영혼이 주님의 몸된 교회를 재건함에 있어서 일이 많음으로 말미암아 낙심할 수 있습니다. 낙심으로 말미암아 더 이상 노력하지 않으려는 자세와 냉담과 절망적인 타성을 초래하게되므로 말미암아 전체 재건하는 분위기를 빨리 오염시킬
수 있습니다(Packer).
네번째 위기는 바로 두려움이었습니다.
대적자들이 연합하여 무력 공격을 감행할 것이라는 음모의 소식을 유대인 정보 제공자들이 느헤미야와
유다 백성들에게 가지고 온 것입니다. 특히 무서운 것은 각 기 다른 방향으로부터 동시에
예루살렘으로 쳐 들어가는 기습 공격이 있으리라 는 보고였습니다(화이트). 오늘 본문 느헤미야 4장 11-12절을 보십시오: “우리의 대적은
이르기를 저희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사이 에 우리가 저희 중에 달려 들어가서 살륙하여 역사를 그치게 하리라 하고 대 적의 근처에 거하는 유다
사람들도 그 각처에서 와서 열 번이나 우리에게 고 하기를 너희가 우리에게로 와야 하리라 하기로”. 미국의 사상가 및 박물학자였던 헨리 소로는 그의 읽기 1851년 9월7일에 이렇게 썼다고 합니다: “Nothing
is so much to be feared as fear”(두려움만큼 두려워할 께 없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는 두려움이란 저와 여러분을 마비시키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은 전염성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마비시킬 수 있습니다. 결코 두려움과 믿음은 우리 마음에 공전할 수 없습니다.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낙심시키며 또한 패배케 하는 것입니다. 신명기 20장 8절을 보십시오: “… 두려워서 마음에 겁내는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그 형제들의 마음도 그의 마음과 같이 떨어질까 하노라 …”.
주님의
몸되 승리장로교회이 재건되어 갈 때에 위기는 올 것입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Increased opposition is increased
opportunity! (증가하는 대적은 기회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을 낙심케하며 두렵게하는 위기를 주님께서 돌이켜 마음을 강하게하실 것이며 소망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몸된 승리장로교회를 세우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뜻에 복종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복종하는 자를 통하여 우리 승리교회를 세우실 것입니다.
마지막
둘째로, 위기 관리(Crisis
Management)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기네스북 10년 연속 자동차판매왕 기록보유자인
김연중씨가 쓴 ‘성공하는 사람의 위기관리’를 보면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그들의 위기관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유난히 위기상황에서 괴력을 발휘합니다. 한 마디로 위기를 기회의
순간으로 역전시키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 예로 바둑 9단 조훈현이란 사람을 들고 있습니다. “적의 공격으로 대마가 위기에 몰리거나
도저히 승리하기 힘들다고 판단 했을 때 그의 머리에서는 남들이 흉내낼 수 없는 묘수가 나오고는 한다. 그 뿐 아니라 “제비”라는 별명답게 그는 소소한 전투의 실리에 연연하지 않 고 발빠른 작전으로 적의 약점을 물고 늘어져 단번에 거꾸러뜨리는
과단성 이 있다"(인터넷). 느헤미야는 위기를 맞이했을 때에 어떻게 하였는가? 그의 위기 관리를 배우길
원합니다.
첫째로, 그는 유다 백성들과 함께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느헤미야 4장 9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며 …”. 느헤미야는 언제 기도했습니까? 그의 대적들이 동서남북에 있어서 사방으 로 포위되어 있는 상황에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출애굽기14장3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하여 “광야에서 갇힌바 되었다”(hemmed in by the desert)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위 환경을 보고
낙심하여 모세에게 원망할 때에 모세는 위를 바라보고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출14:15). 그 위기에 초반부터 느헤미야는 명확하게 하나님의 보호를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또한 유다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감동시키시사 그와 함께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구하였습니다(Packer). “무릎으로 인생의 싸우는 것을 배우지 못한 사람은 아직도 기독교
신앙의 ABC를 모르는 사람이다”(죠지 물러).
둘째로, 느헤미야는 파숫군을 세웠습니다.
오늘
본문 느헤미야 4장 9절을 보십시오:
“…저희를 인하여 파수꾼을 두어 주야로 방비하는데”.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자기 책임을 망각하지 않았습니다. 즉, 그는 기 도하는 사람으로서 할 일을 부지런히 하였던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그 때 침략자 들을 막기 위하여 파숫군을 세웠습니다. 그는 파숫군을 어디에다가 어떻게
세웠는가? 13절을 보십시오: “내가 성 뒤 낮고
넓은 곳에 백성으로 그 종족을 따라 칼과 창과 활을 가 지고 서게 하고”. 느헤미야는
파숫군을 성벽에서 눈에 잘 뛰는 곳과 취약한 곳에 세워 두었습니다. 그러면 침략자들이
유대인들이 싸울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모든 종족을 따라
파숫군을 함께 세운 이유는 그들이 가족으로서 함께 견고히 서서 서로를 위로할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유다 백성들은 자기 집 근처에 있는 성벽을 중수했을 뿐만 아니라(느3:28-30) 자기 가족들과 함께 서서 자기들의 가정과 도시를 지키려고 파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셋째로, 느헤미야는 유다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자신감을 갖도록 끊임없이 도전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느헤미야 4장 14절을 보십시오:
“내가 돌아본 후에 일어나서 귀인들과 민장과 남은 백성에게 고하기 너희는 저희를 두려워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 하였었느니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도자인 느헤미야의 믿음과 확신 그리고 자신감입니다. 낙심하고 있는 유다 백성들, 대적들로 인하여 두려워 떨고 있는 유다 백성들 앞에서 지도자가 연약한 믿음과 불확신, 자신감이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느헤미야의 마음은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하나님에게 사로잡혀 있었습니다(1:15;
4:14). 그리고 그는 하나님께서 강하시기에 충분히 위기 가운데서 유다 백성들을 구해주실 줄 믿었습니다.
이러한
말이 있습니다: “불신앙은 문제를 극대화시키지만 신앙은 주님을 더 크게 보이게 한다"(이동원). 우리에게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만일 그 문제가 우리 주님보다 더 크게 보인다면 이것은 불신앙입니다. 느헤미야는
지극히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았기에 큰 위기 가운데서도 확신과 자신감 가운데서 유대 백성들을 도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또한 그 하나님을 두려워 하였기에 그의 대적자들을 두려워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두려워 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자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모세가 출애굽기14장13-14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한 말을 들어 보십시오: “…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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