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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s creyentes que se despojan de sí mismos, vienen a la luz del evangelio y disfrutan de la vida eterna como un regalo de Dios

Los creyentes que se despojan de sí mismos, vienen a la luz del evangelio y disfrutan de la vida eterna como un regalo de Dios       «Nadie ha subido al cielo sino el que descendió del cielo, es decir, el Hijo del Hombre.   Y así como Moisés levantó la serpiente en el desierto, así también es necesario que el Hijo del Hombre sea levantado, para que todo aquel que cree en él tenga vida eterna.   Porque de tal manera amó Dios al mundo que dio a su Hijo unigénito, para que todo aquel que cree en él no perezca, sino que tenga vida eterna.   Porque Dios no envió a su Hijo al mundo para condenar al mundo, sino para que el mundo sea salvo por medio de él.   El que cree en él no es condenado; pero el que no cree ya ha sido condenado, porque no ha creído en el nombre del unigénito Hijo de Dios.   Y esta es la condenación: que la luz vino al mundo, pero los hombres amaron más las tinieblas que la luz, porque sus obras eran malas.   Porque todo ...

예수님의 죽으심 (8) (행 1:1-11)

 

예수님의 죽으심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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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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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우리가 예수님의 5대 사역중 두 번째인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해서 묵상해오고 있음.

1.      우리는 지난 주 수요 예배 때 일곱 번째로 “예수님의 죽으심 (7)”이란 제목아래 예수님께서 심문/재판을 받아주신 말씀에 대해서 묵상했었음.

a.      오늘은 여덟 번째로 “예수님의 죽으심(8)”이란 제목 아래 예수님께서 골고다를 향해서 나아가시는 것에 대해서 묵상하고자 함.

(1)   그 골고다 도상에서 3가지 사건이 일어남: (1) 구레네 사람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고 감, (2) 백성들과 많은 여자들이 슬피 울면서 예수님을 따라갔음, (3) 다른 두 행악자와 함께 골고다로 가심.

 

B.    골고다로 가시는 길 위에서 일어난 세 가지 사건 중, 오늘은 첫 번째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진 '구레네 사람 시몬'의 사건을 집중적으로 묵상하고자 합니다.

1.      예수님 당시 유대 사회에는 '시몬(Simon)'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유독 많았습니다.  부모들이 자녀에게 이 이름을 많이 지어준 이유는 그 이름이 가진 영적인 뜻이 너무나 좋았기 때문입니다.  시몬은 "하나님께서 들으셨다(기도에 응답하셨다)"라는 축복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a.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두 명의 시몬 (마 10:2, 4): 예수님께서 친히 택하신 열두 제자의 명단만 보아도 이 이름이 얼마나 흔하고 대중적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1)   시몬 베드로 (마 10:2): 주님의 수제자이자, 가문에서 하나님의 들으심을 입은 첫 번째 시몬입니다.

(2)   가나나인 시몬 (마 10:4): 여기서 '가나나인'은 가나안 지방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라, 아람어로 '열혈한, 열심당원(Zelotes)'을 의미합니다.  즉, 민족의 독립을 위해 뜨거운 열정을 품었던 또 다른 제자 시몬입니다.

 

2.      구레네(오늘날 아프리카 리비아 지역)에 살고 있었던 사람 시몬이 예루살렘에 올라왔는데 그 이유는 3대 절기 중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a.      구레네에서 예루살렘까지의 거리는 무려 2,700~2,800km(약 1,700마일)가 넘는 엄청난 대장정이었습니다(시몬은 평생 한 번 올까 말까 한 유월절 예배를 위해 인생의 큰 대가를 지불하고 예루살렘에 온 역전의 순례자였습니다).

b.     로마 군인들이 구레네 사람 시몬에게 억지로 지게 한 십자가: 원래 사형수는 자신의 십자가 형틀을 직접 지고 형장까지 가야 했으나, 예수님은 밤샘 심문과 가혹한 채찍질로 인해 기진맥진하여 더 이상 십자가를 메고 걸으실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이때 로마 군인들이 곁을 지나던 구레네 사람 시몬을 붙잡아 '억지로' 그 십자가를 대신 지게 했습니다.

(1)   여기서 “억지로” 십자가를 진 것의 성경적 근거:

(a)   (막15:21)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서 와서 지나가는데 저희가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b)   (마27:32)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웠더라”

 

3.      이렇게 시몬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고 갔음.  이렇게 억지로 지고간 것이 예수님께 도움이 되었는가 아니면 도움이 못되었는가?

a.      우리는 흔히 구레네 사람 시몬이 쓰러지시는 예수님을 대신해 십자가를 짐으로써 "예수님께 큰 도움을 드렸고 수고를 덜어드렸다"라고 인간적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박윤선 박사님은 개혁주의 신학의 눈으로 매우 단호하고도 명확한 해석을 제시합니다: "예수님의 수고를 덜어 드렸다고 말할 수 없다."

(1)   박윤선 박사님은 시몬이 예수님께 인성적인 면에서 물리적인 짐을 잠시 나누어졌을지언정, 구속사적인 대속의 사역에 있어서는 결코 주님께 영적인 도움을 주거나 공로를 보탠 것이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a)   첫째,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i)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근본적으로 사람에게 도움을 받으시거나 의지하셔야 하는 부족한 분이 아닙니다.  골고다 길을 걸으신 것은 철저한 자발적 낮아지심이지, 능력이 모자라 사람의 조력을 구하신 것이 아닙니다.

(b)   둘째, 구속(속죄)의 성업은 오직 예수님 홀로 하시는 일입니다.

(i)                  인류의 죄를 대속하는 수고는 죄가 없으신 메시아 오직 한 분만이 온전히 감당하실 수 있는 독단적 사역입니다.  시몬을 비롯한 전 인류는 모두 죄인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이 거룩한 구원의 사역에 자신의 공로나 수고를 조금도 기부(기여)할 수가 없습니다.

 

4.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으심.

a.      (행 17:24-25)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1)   하나님은 무한하시고 자족하시는 분이므로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으시는 일이 결코 없습니다.  도리어 사람들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공급자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골고다로 향하셨을 때, 연약한 인간인 시몬에게 본질적인 도움을 받으신 것이 아닙니다.

 

5.      또한 예수님의 속죄 성업은 홀로 하실 수 있는 것임.

a.      (롬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1)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를 구원할 수도, 타인을 도울 수도 없는 철저한 죄인입니다. 구레네 시몬 역시 죄인에 불과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기에, 영원한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는 죄인 시몬이 어떻게 감히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의 대속 사역에 도움이 될 수 있겠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6.      우리를 향한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로마서 8장)

a.      하나님의 사랑은 그 어떤 피조물이라도 결코 끊을 수 없습니다(롬 8:39).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죄로 인해 영원히 멸망당할 인간을 어떻게 해서든 구원하시고자 독생성자 예수님으로 하여금 십자가를 지게 하신 것입니다.

(1)   (롬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a)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지금도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그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는 결코 정죄당하거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영생)을 얻게 됩니다.

 

7.      억지 십자가의 역사적 반전: 시몬이 진짜 도와준 대상은 누구인가?

a.      예수님은 밤새 모진 채찍질을 당하셔서 한 걸음도 떼기 힘들 만큼 탈진하셨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골고다 길 위에서 쓰러져 움직이지 못하시면, 날이 저물기 전에(유월절 안식일이 시작되기 전에) 서둘러 사형을 집행해야 했던 로마 군인들은 큰 차질을 빚게 됩니다.  예수를 신속히 죽여 민란을 가라앉히려 했던 대제사장들 역시 마음이 몹시 초조하고 급했을 것입니다.

(1)   구레네 사람 시몬이 억지로 십자가를 짐으로써 본질적으로 예수님의 구속 사역을 도운 것은 아닙니다.  시몬은 단지 예수를 빨리 처형하려고 안달이 나 있던 초조한 로마 군인들과 대제사장들의 일 처리를 (물리적으로) 도와준 꼴이 되었을 뿐입니다.

(a)   그러나 하나님은 악인들의 초조함과 시몬의 억울한 자리를 역이용하셔서, 시몬을 가장 가까이서 주님의 보혈을 체험하는 영광스러운 구원의 자리로 초청해 주셨습니다.

 

C.   결론: 억지 십자가를 넘어 자원하는 자기 십자가로

1.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 사역에 그 어떤 도움도 줄 수 없는 무력한 죄인이었습니다.  우리는 오직 주님이 홀로 이루신 그 보혈의 공로로 말미암아, 영원한 사망에서 건짐을 받아 영생을 선물로 얻은 자들입니다.

a.      그렇다면 구원의 공로에 아무것도 보탤 수 없는 우리가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구원받은 우리를 향해 위대한 제자의 길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16:24).

(1)   예수님의 십자가가 아니라 "자기 십자가"입니다.

(a)   인류를 구원하는 '예수님의 구속 십자가'는 주님이 홀로 지셨기에 우리가 지고 갈 수 없고, 지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구원받은 우리 각자에게 사명과 삶의 자리라는 '자기 십자가(내가 지어야 할 십자가)'를 허락하셨습니다.

(2)   억지가 아니라 "기쁨과 자원하는 마음"으로 지어야 합니다.

(a)   구레네 사람 시몬은 처음에 로마 군인들의 강요에 의해 '억지로' 예수님의 뒤를 따랐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그 억지 순종마저도 축복으로 바꾸시는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b)   하지만 이미 십자가의 사랑과 영생의 비밀을 알고 있는 우리는 달라야 합니다.  나를 구원하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내게 주신 십자가를 피하거나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으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즐거이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우리가 자원하여 십자가를 질 때 주님은 가장 기뻐하십니다.

(3)   내가 십자가를 지면, 십자가를 지신 주님이 나를 지고 가십니다.

(a)   이 길에는 놀라운 영적 신비가 숨겨져 있습니다.  내 힘으로 사명의 십자가, 헌신의 십자가를 지고 가려면 무겁고 쓰러질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내가 믿음으로 '자기 십자가'를 내 어깨에 매는 순간, 골고다 길에서 먼저 십자가를 지셨던 예수님께서 도리어 무거운 짐을 진 우리를 품에 안으시고 지고 가십니다.

(b)   내 힘으로 걷는 줄 알았으나, 주님의 날개 아래 업혀 가는 인생임을 깨닫게 하십니다.  이번 한 주간, 억지가 아닌 자원함으로 내게 주신 사명의 십자가를 메고 주님과 동행하며, 나를 업고 걸어가시는 주님의 거룩한 팔을 경험하는 모든 성도님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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