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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함은 기회입니다. (6)

불가능해 보이는 인간(부부) 관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믿음이란 ... (1)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게 합니다. (2)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합니다. (3) 할 수 없는 것을 하게 합니다. https://youtu.be/LwfJR3i5w48?si=DeFjUqZG3WtAIYGA

“죽은 사람들의 부활도 이와 같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2-44절)

“죽은 사람들의 부활도 이와 같습니다.

 

[고린도전서 15 42-44절 말씀 묵상]

 

       지난 주 월요일 (4 6교회 카톡 방에 김권사님이 쓰신 글 내용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  우리교회 성도님께서 서로를 걱정하며 사랑하는 마음들을 못 만나는동안 더욱 돈독해 진것 같네요.     장노님 기도하시다 교인들 생각에 몃분동안 기도를 못하시는 모습에 마음이 먹먹 했네요.  ... 사랑해요.  제 기억으로는 장로님께서 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처음으로 주일 예배를 온라인으로 드렸을 때(3 22)에도 대표로 기도하시면서 얼마동안 기도를 못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지난 주일에도 함께 본당에서 예배를 못드린지 석주나 되었을 때 장로님께서는 몇분동안 기도를 못하셨습니다.  눈물을 참으시려고 하셨지만 마음에서 부터 흐르는 사랑의 눈물을 여러분들도 좀 느끼셨을 것입니다.  저도 제 자신이 왜 그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교회 본당에 앉아서 혼자 기도할 때 자꾸만 눈물이 나옵니다.  특히 저는 요즘 기도할 때에 먼저 우리 곁을 떠나신 우리 교회 성도님들이 전보다 더 많이 생각이 납니다.  그리고 그 분들의 추억이 많이 생각납니다.  제일 근래에 우리 곁을 떠나신 고 안덕일 전도사님과 고 김동윤 집사님이 오후 성경공부 시간에 콤비가 그리도 잘 맞으셔서 여러 어르신들을 웃게 만드셨던 추억도 생각납니다.  고 최정효 권사님고 이진구 성도님두 분다 숨을 거두신 후 잠드신 모습을 보면서 유가족과 함께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던 추억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고 김동환 집사님고 김창혁 목사님두 분다 생신이 4월이신데 그리고 두 분다 나이 60이 되기 전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고 황경패 할머님께서 숨을 거두셨을 때 맏따님이신 이형순 권사님이 통곡하시는 모습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고 최분남 할머님세 번째 자녀가 자신보다 먼저 떠나셨을 때잠자는 줄 알았던 총각 아드님이 숨을 거두셨을 때 거실에서 통곡하시는 모습도 기억나며그 분이 저에게 ‘천국에 가보고 싶다’고 말씀하신 것도 기억이 납니다.  고 임봉희 할머님고 장을수 할머님고 박춘희 권사님등등, 16년 동안 목회하면서 우리 곁을 떠나신 여러 성도님들이 자주 생각나면서 그리움 속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의 슬픔은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전서 4 13절에서 말했듯이 “소망 없는” “다른 이” 즉 예수님을 믿지 않는 세상에 사람들과 같이 슬퍼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저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가 3일만에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심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14절상).  그 뿐만 아니라 저는 예수님 안에서 죽은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오 오실 것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14절하).  다시 말하면 저는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듯이 주님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 부터 강림하실 때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죽은 자들이 먼저 부활한 후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함께 그 부활한 성도들을 데리고 오신다는 사실을 믿고 있기에 저의 슬픔은 소망(희망)이 없는 슬픔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저의 눈물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다시 오시는 날 그리운 성도님들을 만나고 싶은 소망의 눈물이요 사랑의 눈물이요 믿음의 눈물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요한계시록 21 4절 말씀을 믿습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현대인의 성경)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이니 다시는 죽음도 없고 슬픔도 없고 우는 것도아픔도 없을 것이다.  이것은 전에 있던 것들이 다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저는 주님께서 우리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줄 믿습니다.

 

저는 이 소망을 가지고 오늘 부활주일을 맞이하여 현대인의 성경 고린도전서 15 42절 상반절인  “죽은 사람들의 부활도 이와 같습니다. …”[(개역개정)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말씀 중심으로 죽은 사람들의 부활에 대해 4가지로 묵상하면서 주시는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먼저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은 사도 바울이 왜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해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써서 말한 것인가 라는 질문입니다.  그 이유는 고린도전서 15 35절의 말씀처럼 고린도 교회 성도들 중에는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현대인의 성경) “죽은 사람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떤 몸을 갖게 됩니까?]라는 두 가지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입니다.  첫 번째 질문인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납니까?라는 질문에 답은 36절에 “어리석은 자여 너의 뿌리는 씨까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한다 라고 답변하였습니다.  여기서 첫 번째 질문인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납니까?는 마치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는 것처럼 사람들이 죽지 않고는 부활을 체험할 수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생각하면 답변은 간단합니다.  고린도전서 15 3-4절을 보십시오: “…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현대인의 성경) “…  그리스도께서 성경 말씀대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무덤에 묻히셨다가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경대로” 죽으시고 또한 “성경대로” 부활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이 예수님이 성경대로 죽으시고 성경대로 다시 살아나셨다 는 사실을 우리에게 영원한 소망을 줍니다.  그 영원한 소망은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것처럼 저와 여러분도 죽음에서 부활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질문인 “죽은 자들이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사도 바울의 답변은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15 42절부터 44까지 4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로죽은 사람들의 부활은 “몸은 묻히면 썩지만 썩지 않을 것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15 42절을 보십시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현대인의 성경) “죽은 사람들의 부활도 이와 같습니다몸은 묻히면 썩지만 썩지 않을 것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여러분사람이 죽어서 무덤에 묻히면 그 몸이 썩는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이 세상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우리 사람들은 죽으면 우리 몸은 썩을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끔 뉴스를 통해 접하는 소식은 사람이 숨진지 좀 되었는데 나중에  발견 되었을 때에는 그 시신이 심각한 수준으로 부패되었다는 뉴스입니다.  일반적으로 시체가 계속 방치되면 부패하면서 엄청난 악취와 혐오스러운 모습으로 변해가므로 빠르게 처리해야 한다고 합니다(인터넷).  성경 전도서 3 20절을 보면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현대인의 성경) “모두 흙에서 났으므로 흙으로 돌아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도서 12 7절 현대인의 성경을 보면 “육은 본래의 흙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너희 창조자를 기억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흙으로 왔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이란 말을 합니다.  이렇게 우리 사람들이 죽으면 땅에 묻힌 우리의 몸은 썩을 수 밖에 없지만 성경은 죽은 사람들이 부활할 때에는 “썩지 않을 것으로 다시 살아”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 42절을 보십시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현대인의 성경) “죽은 사람들의 부활도 이와 같습니다몸은 묻히면 썩지만 썩지 않을 것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15 52-54절을 보십시오: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현대인의 성경) “마지막 나팔 소리가 울릴 때 눈깜짝할 사이에 죽은 사람들이 썩지 않을 사람으로 다시 살아날 것이며 우리는 모두 변화될 것입니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않을 몸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않을 몸을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에는 '승리가 죽음을 삼켜 버렸다.' 라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여러분, “마지막 나팔 소리가 울릴 때” 이미 죽은 사람들이 눈깜작할 사이에 썩지 않을 몸으로 다시 살아날 것임.  죽지 않을 몸으로 부활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므로(47) “승리가 죽음을 삼켜 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54).  그래서 사도 바울은 55절에서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현대인의 성경) “죽음아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죽음아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라고 말한 것입니다

 

둘째로죽은 사람들의 부활은 “천한 몸으로 묻히지만 영광스러운 몸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15 43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현대인의 성경) “천한 몸으로 묻히지만 영광스러운 몸으로 다시 살아나며 …”].  여러분혹시 여러분은 여러분의 몸육체로 인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이렇게 예배를 드릴 때 성령님께서 들춰내시고 깨닫게 하시사 양심을 찌르실 때 부끄럽고 수치스럽고 면목이 없을 때가 있지 않으십니까?  저는 참 많았습니다.  그 이유는 저는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했기 때문입니다(벧후2:10).  저는 그릇되게 행했습니다.  저는 “음란으로써 육체의 정욕 중에서 유혹”(18)에 빠져 “육체의 욕심”을 이루는 삶을 살았었습니다(5:16).  그 육체의 욕심(욕망)의 삶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5 19-21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현대인의 성경) “육체의 행위는 명백하게 드러나기 마련입니다이것은 음행과 더러움과 방탕과 우상 숭배와 마술과 원수 맺는 것과 다툼과 시기와 화내는 것과 당파심과 분열과 이단과 질투와 술주정과 흥청대며 먹고 마시는 것과 그리고 이와 같은 것들입니다내가 전에도 여러분에게 경고했지만 다시 경고합니다이런 생활을 일삼는 사람들은 결코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것입니다”].  이러한 삶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7 5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현대인의 성경) “우리가 육신의 지배를 받을 때에는 율법에 의해 일어난 죄의 욕망이 우리 안에서 작용하여 죽음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습니다”].  저는 사도 바울의 이 고백이 마음에 다가왔습니다(14-15현대인의 성경): “…  나는 육신에 속한 사람이 되어 죄의 종으로 팔렸습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을 이해 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내가 원하는 것은 하지 않고 도리어 원치 않는 것을 하기 때문 입니다”[(개역개정) “…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그래서 저는 사도 바울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라”[(현대인의 성경) “아아나는 얼마나 비참한 사람인가요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구해 내겠습니까?]고 한 말씀에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24).  그래서 “우리는 이 육체의 집에서 탄식하며 하늘의 몸을 입게 될 날을 고대하고 있”는 것입니다(고후5:2, 현대인의 성경).  고린도후서 5 4현대인의 성경을 보십시오: “우리가 이 육체의 집에 있는 동안 짐을 진 것처럼 탄식하는 것은 이 몸을 벗고 싶어서가 아니라 하늘의 몸을 입어서 죽을 몸이 영원히 살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5).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15 43절 상반절에서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현대인의 성경) “천한 몸으로 묻히지만 영광스러운 몸으로 다시 살아나며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욕된 것”(현대인의 성경은 “천한 몸”이라고 번역)이란 말의 문자적 의미는 ‘우리의 굴욕(치욕)적인 몸입니다(our body of humiliation)입니다(A Commentary, Critical and Explanatory on the O.T.).  여러분우리가 죽을 때에 썩을 우리의 몸은 굴욕적이고 치욕적인 몸임.  비록 우리가 이렇게 무덤에 묻힐 때에는 “천한 몸”으로 묻히지만 마지막 나팔이 울려퍼지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 그 순간에는 “영광스러운 몸으로 다시 살아’날 것임(43현대인의 성경).  빌립보서 3 20-21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현대인의 성경)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구주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곳에서 다시 오실 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분이 오시면 모든 것을 자기에게 복종시킬 수 있는 그 능력으로 우리의 천한 몸을 변화시켜 자기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게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우리도 하늘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지 않습니까?  그 이유는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우리의 낮은 몸이 천한 몸을 변화시키시사 주님의 영광의 몸의 형제와 같이 변하게(영광스러운 몸과 같게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부활할 몸은 더이상 굴욕적이고 치욕적인 죄를 짖는 몸이 아닙니다.  우리의 부활의 몸은 예수님처럼 영광스러운 몸으로 죄를 짓지도 않는 몸일 뿐만 아니라 죄를 알지도 못하는 영광스러운 거룩한 몸일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새찬송가 491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찬양할 때 2절 가사를 간절히 소망할 때가 있습니다: “괴롬과 죄가 있는 곳 나 비록 여기 살아도 빛나고 높은 저 곳을 날마다 바라봅니다.

 

셋째로죽은 사람들의 부활은 “약한 몸으로 묻히지만 강한 몸으로 다시 삽니다.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15 43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현대인의 성경) “…약한 몸으로 묻히지만 강한 몸으로 다시 삽니다”].  여러분우리의 몸이 얼마나 약합니까?  여러분이 잘 아시지 않습니까?  우리의 연약한 몸은 너무나 쉽게 질병에 걸려서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허덕일 때가 많습니다.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15 43절에서 사도 바울이 ‘약한 것”(약한 몸)이라고 말했는데 그 약한 몸은 어떠한 몸입니까?  마태복음 9 35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현대인의 성경) “예수님은 모든 도시와 마을을 다니시며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며 모든 병과 허약한 체질을 고쳐 주셨다.]  마테복음 8 17절을 보십시오: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현대인의 성경) “이것은 예언자 이사야의 다음과 같은 예언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그는 우리의 연약함을 몸소 담당하시고 우리의 질병을 짊어지셨다”].  이 말씀들을 보면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15 43절에서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는 “약한 것”(약한 몸) ()병에 걸리기 쉬운 우리의 허약한 몸(체질)을 가리킵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1 30절에서 한 말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현대인의 성경) “그래서 여러분 가운데는 약한 사람과 병든 사람이 많고 이미 죽은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성경은 우리 사람들이 얼마나 연약한지를 사도 바울은 3개의 단어로 간략하게 잘 설명해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약한 자”(약한 사람), “병든 자”(병든 사람), “잠자는 자”(죽은 사람).  여러분실제로 우리는 약한 사람병든 사람그러다가 죽은 사람을 알고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우리 사람들은 약한 자요 병든 자이던지 앞으로 병들 자요 그러다가 결국에 가서는 “잠자는 자” 죽은 사람이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나팔이 울려퍼질 때에 홀연히 다 변회될 것인데 죽은 사람들이 부활할 그 때에는(고전 15:51, 52) “강한 것”(강한 몸)으로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43).  여기서 “강한 몸”은 무엇입니까?  이사야 33 24절을 보십시오: “그 거주민은 내가 병들었노라 하지 아니할 것이라 거기에 사는 백성이 사죄함을 받으리라”[(현대인의 성경) “시온에 사는 사람들은 아무도 병들었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며 그들은 자기들이 지은 죄에 대하여 다 용서받을 것이다”].  죽은 성도들이 부활할 때에 입는 강한 몸은 진정한 “시온”이 천국에 사는 사람들이요 그 천국 백성들은 “아무도 병들었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는 천국에 사는 천국 백성들은 사죄함을 받은 썩지 않을 영광스러운 몸을 입을 것이기에 더이상 약한 몸처럼 병들 몸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도 병들었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은 요한계시록 21 4절에서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마지막 넷째로죽은 사람들의 부활은 “육체의 몸으로 묻히지만 영의 몸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15 44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현대인의 성경) “육체의 몸으로 묻히지만 영의 몸으로 다시 살아납니다육체의 몸이 있으면 영의 몸도 있는 것입니다”].  저는 설교를 준비하다가 “짐승보다 못한 사람”이란 제목 아래 칼럼이 있어서 읽어보았습니다(인터넷).  그 칼럼을 보면 자기 집에서 개를 키우는 어느 사람이 그 개의 밥을 먹으로 오는 떠돌이 개들 두 마리가 있었는데 한 마리가 차에 치여 죽고 다른 한 마리가 낑낑거리며 울고 있는데 모른 척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참을 운던 떠돌이 강아지의 소리가 들리지 않아 나가보니 자기 집에서 기르던 어미 개가 자기 새끼들 사이에 떠돌이 강아지를 함께 품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 모습을 본 주인은 문득 이러한 생각을 했다고 함: “우리 집 개가 나보다 훨씬 났구나나는 개만도 못한 사람이야!  이 칼럼을 쓴 논설위원장의 주장은 자기 집 개도 피한방울도 안 섞인 떠돌이 강아지를 사랑했는데 우리 사람들이 바쁘다는 이유로일이 많다는 핑계로시간이 없다는 말로 사랑하는 일을 외면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 개만도 못한 것이 아닌가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저자는 “요즘은 개만도 못한 인간들이 득리거리는 시대다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위해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떠돌이 강아지를 품는 개만도 못한 인간들 이다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도 역시 짐승만도 못한 사람이다짐승만도 못한 사람이 어디 한둘인가세상살이가 해를 거듭할수록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지르는 짐승만도 못한 사람이 수두룩하다”(인터넷).  저도 개인적으로 “짐승보다 못한 사람”에 대해서 이렇게 쓴 글이 있습니다짐승보다 못한 사람은 “마음 속에 영원을 사모하지 않고 또한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도 없는 자입니다.  또한 짐승보다 못한 사람은 양심이 마비된 사람선한 양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 시편49 12, 20절을 보면 세상에서 부귀와 영화를 누릴지라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를 가리켜 멸망하는 짐승같은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짐승같은 사람은 세상에서 부귀 영화를 누리면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에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면서 자기의 풍부함을 자랑(자긍)합니다(6).  그래서 이 짐승같은 사람은 이 세상에서 항상 살 것 같이 꿈꾸면서 자기의 이름으로 토지의 소유권을 냅니다(11박윤선).  다시 말하면그 사람은 땅 위에서 이름을 내려고 힘쓰고 있습니다(박윤선).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15 44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죽은 사람들의 부활에 대해서 계속해서 말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현대인의 성경) “육체의 몸으로 묻히지만 영의 몸으로 다시 살아납니다육체의 몸이 있으면 영의 몸도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육의 몸”(육체의 몸)이란 단어의 문자적 의미는 ‘짐승의 몸’(an animal body)입니다.  “혈과 육”이 있는 몸입니다(50)(주석).  이 육체의 몸이 부활할 때에는 “신령한 몸”(영의 몸)으로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말입니다(44).  이 부활의 몸인 신령한 몸은 어떠한 몸입니까?  누가복음 20 35-36절 현대인의 성경을 보십시오: “그러나 죽었다가 다시 부활하여 하늘 나라에서 살 자격이 인정된 사람들은 장가도 시집도 가지 않는다.  그들은 천사들과 같아서 다시 죽을 수도 없다그들은 부활한 자들이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이다”[(개역개정) “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은 장가 가고 시집 가는 일이 없으며 그들은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라”].  신령한 몸(영적인 몸) “하늘 나라에서 살 자격이 인정된 사람들”로서 천사들 같아 다시 죽을 수도 없습니다.  이 신령한 몸에 대해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5 23절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평화의 하나님이 여러분을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여러분의 영과 혼과 몸을 흠 없이 완전하게 지켜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신령한 몸은 온전히 거룩한 영적인 몸이요 영혼과 몸이 흠이 없는 완전한 영적인 몸입니다.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여러분오늘 부활주일을 맞이하여 우리는 예수님께서 성경대로 죽으시고 성경대로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영원한 소망즉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죽음에서 부활할 것이라는 확고한 소망을 가지길 기원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죽은 자의 부활은 첫째로 썩을 몸이 썩지 않을 몸으로둘째로욕된 몸이 영광스러운 몸으로셋째로약한 몸이 강한 몸으로 그리고 넷째로육의 몸이 신령한 몸으로 부활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부활할 몸을 한 마디로 성경은 “장래 형체”(the body that will be)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37).  그리고 성경은 이 “장례 형제”란 인간이 뿌리는 것이 아니라(37“하나님이 그 뜻대로 저에게 형체를”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38).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 뜻대로 우리에게 주실 이 장례 형제는 “하늘에 속한자의 형상”(so shall we bear the likeness of the man from above)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49).  이 하늘에 속한자의 형상이란 바로 다시 오실 재림 주 예수님의 “영광의 몸의 형체”(His glorious body)를 가리킵니다(3:21).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믿음에 흔들리지 않고 주님의 일에 더욱더 힘쓰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52).

 

 

 

부활의 신앙에 견고히 서서 주님의 일을 신실하게 감당하길 원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2020 4 12썩지 않을 몸영광스러운 몸강한 몸신령한 몸부활의 몸을 사모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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