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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부러워하는 화려한 껍데기의 옷을 벗고,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은혜와 행실의 옷을 입었는가?"

  " 세상이 부러워하는 화려한 껍데기의 옷을 벗고 ,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은혜와 행실의 옷을 입었는가 ?"         “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

"세상이 부러워하는 화려한 껍데기의 옷을 벗고,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은혜와 행실의 옷을 입었는가?"

 

"세상이 부러워하는 화려한 껍데기의 옷을 벗고,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은혜와 행실의 옷을 입었는가?"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헌데를 핥더라 이에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누가복음 16:19-31).

 

 

(1)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16 19-31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 묵상할 부자 거지 나사로 나눠서 묵상하되 그들의 땅에서의 삶과 죽음 이후의 영원한 사후의 세계에서의 삶을 대조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a)   저는 말씀 묵상을 한꺼번에 묵상하는 것은 너무나 말씀 묵상의 글이 길어지기에 오늘은 부자 땅에서의 묵상하고면서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i)                  성경은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16:18) 말씀하고 있습니다. 

 

·         여기서 부자 자색 입었다[“νεδιδύσκετο πορφύραν”(에네디뒤스케토 포르퓌란)] 헬라어 성경 말씀의 의미는 그가 세상에서 누렸던 극도의 부유함과 최고위층의 권세를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드러내는 표현입니다.  단어별 의미와 문법적 특징입니다(인터넷):

 

1.      단어의 의미

 

포르퓌란(πορφύραν): '보라색 양모', '자색 ' 뜻합니다.  고대 세계에서 자색 염료는 지중해에 사는 뿔소라(조개) 수천 마리에서 겨우 1g 정도만 얻을 있는 극도로 귀하고 비싼 재료였습니다.  따라서 자색 옷은 왕족, 황제, 혹은 상상을 초월하는 대부호들만 입을 있는 최고의 사치품이었습니다.

 

에네디뒤스케토(νεδιδύσκετο): '입다'라는 뜻의 동사 '엔뒤오(νδύω)' 미완료 과거 수동태(또는 중간태) 형태입니다.

 

2.      문법적 의미 (미완료 과거형의 중요성)

 

여기서 헬라어 문법인 '미완료 과거형' 쓰인 점이 매우 중요합니다.  헬라어에서 미완료 과거는 과거에 행동이 '반복적으로, 지속적으로, 습관적으로' 일어났음을 나타냅니다.

 

, 부자가 어쩌다 특별한 날에만 자색 옷을 차려입은 것이 아닙니다.  날마다, , 습관적으로 최고급 자색 옷을 몸에 걸치고 살았음을 뜻합니다.  뒤이어 나오는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라는 표현과 완벽하게 대칭을 이룹니다.

 

요약하자면,

헬라어 표현은 부자가 당대 최고 계급의 사치를 누렸으며, 그것이 그의 평범한 일상(습관)이었다는 점을 고발합니다.  성경은 이를 통해 대문 밖에 헐벗고 굶주린 누워있던 거지 나사로의 비참함과 부자의 호화로움을 극적으로 대조하고 있습니다.

 

-          저는 부자가 입었던 자색옷을 묵상할 아버지 야곱이 특별히 사랑했던 자기 부인 라헬의 소생인 요셉에게 입힌 채색옷이 생각났습니다.

 

a.      요셉의 옷과 부자의 : 명칭의 차이

 

요셉의 (채색옷): 창세기 37장에서 야곱이 요셉에게 입힌 옷은 히브리어로 '케토네트 파심(כְּתֹנֶת פַּסִּים)'입니다.  개역개정 성경은 이를 '채색옷'으로 번역했지만, 원어적인 의미는 '소매가 길고 발목까지 내려오는 화려하고 귀한 ' 뜻합니다(70인역 헬라어 성경에서는 이를 여러 색깔의 옷이라는 뜻의 '키토나 포이킬론'으로 번역했습니다).

 

부자의 (자색옷): 누가복음의 부자가 입은 옷은 왕권과 신분을 상징하는 지중해 염료로 물들인 '자색 (포르퓌란)'입니다.

 

옷은 단어는 다르지만, ' 시대에 아무나 입을 없는 가장 존귀하고 특별한 신분의 '이라는 본질에서 완벽하게 통합니다.

 

b.     '특별한 ' 가진 영적 대조

 

인물이 입은 화려한 옷의 의미를 비교해 보면 아주 깊은 영적 교훈을 얻을 있습니다.

 

요셉의 : '사명과 연단'

 

요셉의 채색옷은 아버지가 입혀준 '사랑과 구별됨' 옷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때문에 형들의 미움을 받아 옷이 찢기고 구덩이에 던져지는 고난을 겪었습니다.  , 요셉의 옷은 세상의 쾌락을 위한 것이 아니라, 훗날 이스라엘 가족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이 입히신 사명의 시작점이었습니다.

 

부자의 : '탐욕과 소외'

 

반면, 누가복음 부자의 자색옷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의 옷이 아니라, 자신의 부와 권세를 자랑하기 위해 스스로 취한 탐욕의 옷이었습니다.  그는 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겼지만", 정작 특별한 옷을 입은 자로서 행해야 주위의 이웃(나사로) 돌보는 책임은 철저히 외면했습니다.  결국 자색옷은 지옥의 불꽃 속에서 그를 구원하지 못하는 허무한 껍데기가 되었습니다.

 

묵상의 결론: 우리가 입어야

 

요셉처럼 아버지가 입혀주신 특별한 (은혜와 사명) 입은 자는 비록 옷이 찢기는 고난을 당할지라도 결국 많은 사람을 살리는 구원의 통로가 됩니다.  반면, 부자처럼 스스로를 자색옷으로 치장하고 날마다 자신만을 위해 소비하는 인생은 비참한 파멸에 이르게 됩니다.

 

·         여기 누가복음 16 19절에서 부자 입었던 고운 베옷”[βύσσον(뷔쏜)] 세마포 뜻하며, 당대 최고급 직물을 의미합니다.  부자가 겉에 입은 자색 왕족과 같은 권세를 보여준다면, 속에 입은 고운 베옷”(세마포) 그가 속살에 닿는 옷까지 얼마나 사치스럽고 호화로운 삶을 살았는지를 증명합니다(인터넷):

 

1.      단어의 의미와 특징

 

최고급 이집트산 아마포: “고운 베옷”[βύσσον(뷔쏜)] 이집트 등에서 생산된 아주 가늘고 고운 고품질의 아마(linen) 실로 천입니다.

 

돈으로 환산할 없는 가치: 당시 직물은 무게를 달아 같은 무게의 (Gold) 바꿀 정도로 귀하게 취급되었습니다.  실이 매우 얇아 옷감에서 빛이 났으며, 감촉이 실크처럼 부드럽고 가벼웠습니다.

 

최고의 속옷/평상복: 부자는 피부에 직접 닿는 안감이나 속옷으로 최고급 고웃 베옷 입고, 위에 화려한 자색 걸친 것입니다.

 

2.      성경 문맥에서의 영적 의미

 

종교 지도자(제사장) 위선 고발: 구약 성경에서 고운 베옷 원래 대제사장의 의복을 만들 사용하던 거룩한 천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제사장 계급)들은 자신들이 영적으로 깨끗하고 거룩한 존재인 것처럼 옷을 입고 다녔습니다.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 그들이 겉으로는 거룩한 옷을 입고 속으로는 탐욕에 가득 이웃을 외면하는 위선을 찌르신 것입니다.

 

거지 나사로와의 극단적 대조: 부자가 금값에 비견되는 고운 베옷 몸에 감싸고 있을 , 그의 대문 앞에 누워있던 나사로는 옷이 없어 헐벗은 헌데(피부병)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고운 베옷 부드러움과 나사로의 피고름 나는 상처가 극명하게 대조됩니다.

 

앞선 요셉 묵상과의 연결

 

재미있게도 구약의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을 , 바로 왕이 그에게 입혀준 옷이 바로 “βύσσον”(뷔쏜)(고운 베옷)(세마포 , 41:42 70인역 표현)입니다.  요셉이 입은 뷔쏜”(“고운 베옷”/세마포 ) 고난을 견뎌낸 자에게 하나님이 주신 '영광과 통치' 옷이었지만, 복음서 부자의 뷔쏜”(“고운 베옷”/세마포 ) 오직 자기 과시와 쾌락만을 위한 '탐욕' 옷이었습니다.

 

-          뷔쏜”(“고운 베옷”/세마포 ) 묵상할 저는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의 시신을 바로 뷔쏜”(세마포) 싸서 무덤에 뉘었던 (27:59) 요한계시록 19 8절인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말씀도 함께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a.      구속사적 배경: 하나님이 입히시는 은혜의

 

구약과 신약 전체를 관통하는 구속사(구원의 역사)에서 '뷔쏜' 언제나 하나님이 택하신 자에게 입혀주시는 영광과 거룩함을 뜻했습니다.

 

대제사장의 거룩한 : 구약 시대 제사장들이 성소에서 하나님을 섬길 반드시 고운 베옷(세마포) 입어야 했습니다( 28:39).  이는 인간의 더러운 죄와 (인간의 노력) 가리고, 하나님의 거룩함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구별됨 뜻합니다.

 

성도의 죄를 덮는 구원의 :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님의 시신을 바로 세마포(뷔쏜) 싸서 무덤에 뉘었습니다( 27:59).  예수님이 세마포에 싸여 죽으심으로, 도리어 우리가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을 있게 구속의 은혜를 상징합니다.

 

b.     요한계시록에서의 연결: ‘성도들의 옳은 행실 뷔쏜(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성경의 결론인 요한계시록 19장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시 등장합니다.  어린 (예수 그리스도) 혼인 기약이 이르렀을 , 신부인 교회가 입을 옷으로 묘사됩니다: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19:8).

 

여기서 아주 중요한 영적 원리가 발견됩니다.  요한계시록의 세마포는 성도가 스스로 사서 입은 옷이 아니라입도록 허락하신(주어진)’ 옷입니다.  ,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거저 주시는 은혜의 옷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옷은 구원받은 자들의옳은 행실[(디카이오마타)(의로운 삶의 열매)] 증명됩니다.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는 땅에서 반드시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삶의 흔적을 남기게 된다는 뜻입니다.

 

c.      누가복음 부자와의 영적 대조: 가짜 옷과 진짜

 

구속사적 맥락을 가지고 다시 누가복음 16장의 부자를 보면, 그가 지옥에 갔는지가 더욱 명확해집니다.

 

껍데기만 제사장이었던 부자: 부자는 날마다 최고급 '뷔쏜(세마포)' 입고 살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께 복을 받은 사람이며, 당연히 구원받을 자격이 있는 '거룩한 유대인(제사장 나라의 백성)'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옳은 행실' 없었던 죽은 믿음: 하지만 그의 세마포 옷은 요한계시록이 말하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 전혀 없는 껍데기에 불과했습니다.  진짜 세마포를 입은 자라면 대문 앞의 나사로를 돌보는 '의로운 행실' 나타났어야 합니다.  그는 하나님이 주신 물질과 신분을 오직 자기 과시와 쾌락을 위해서만 소비했습니다.

 

벌거벗겨진 종말: 결국 죽음의 순간, 그가 자랑하던 땅의 뷔쏜은 찢겨 없어지고, 영적으로 완전히 벌거벗겨진 음부의 불꽃 속에서 고통받게 됩니다.  반면, 땅에서 헐벗고 헌데투성이였던 나사로는 하늘의 영광스러운 옷을 입고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습니다.

 

요약하자면,

부자가 입었던 자색 옷과 뷔쏜은 "나는 완벽하고, 거룩하며, 부족함이 없다" 외치는 인간의 자기 의와 탐욕을 상징합니다.  반면, 요셉이 입었던 옷과 요한계시록의 세마포는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진짜 영광의 옷입니다.

 

결국 비유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당신은 지금 자신을 과시하는 탐욕의 자색 옷을 입고 있습니까, 아니면 이웃을 살리고 돌보는 성도의 옳은 행실(진짜 세마포) 입고 있습니까?"라는 엄중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인터넷).

 

·         여기 누가복음 16 19절에서 성경은 부자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하고 말씀하고 있는데 헬라어로는 “εφραινόμενος καθ’ μέραν λαμπρς”(에우프라이노메노스 카드 헤메란 람프로스)입니다.  말씀은 부자가 세상에서 누렸던 쾌락의 깊이와 삶의 방식을 아주 생생하게 폭로하는 표현입니다.  단어별 의미와 문법적 특징을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단어들을 선택하셨는지 깊은 의도를 있습니다(인터넷):

 

1.      단어별 상세 의미

 

에우프라이노메노스φραινόμενος)

 

'기뻐하다', '즐거워하다', '잔치를 베풀다'라는 뜻의 동사 '에우프라이노φRouteαίνω)' 현재 분사 형태입니다.

 

단어는 단순히 마음속으로 기뻐하는 것을 넘어, 맛있는 음식을 먹고 마시며 흥청망청 축제를 벌이고 잔치를 즐기는 외적인 즐거움을 뜻합니다.

 

헬라어 문법상 '현재형' 분사가 쓰여, 즐거운 잔치가 끊어지지 않고 '지속적이고 연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었음을 나타냅니다.

 

카드 헤메란 (καθ’ μέραν)

 

'날마다(every day)', '매일매일'이라는 뜻입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년에 , 혹은 일주일에 안식일이나 특별한 축제 잔치를 벌입니다.  하지만 부자에게는 365 매일매일이 축제요 잔칫날이었습니다.   전체가 사치와 쾌락으로 도배되어 있었음을 뜻합니다.

 

람프로스 (λαμπρς)

 

'빛나게', '화려하게', '눈부시게(splendidly)'라는 뜻의 부사입니다.  '' 뜻하는 단어에서 유래했습니다.

 

부자가 베푼 잔치가 소박한 모임이 아니라, 누구나 보면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번쩍번쩍하고 호사스러운 최고급 잔치였음을 시각적으로 보여줍니다.

 

2.      문맥 속에서의 영적 의미와 비판

 

누가복음 12 '어리석은 부자'와의 연결

 

'에우프라이노(즐거워하다)'라는 단어는 누가복음 12장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 고백에서도 똑같이 등장합니다.  곡식을 가득 쌓아둔 부자가 자기 영혼에게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φραίνου)"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오직 자기 육신의 안위와 쾌락만을 위해 잔치를 벌이는 자들의 어리석음을 단어를 통해 일관되게 지적하셨습니다.

 

철저한 '자기중심성' '맹목(Blindness)'

 

부자는 "날마다(카드 헤메란) 눈부시게 화려한(람프로스) 잔치(에우프라이노메노스)" 배설했습니다.  매일 대문 밖에서 풍기는 고기 굽는 냄새와 음악 소리는 거지 나사로에게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부자는 잔치를 하러 대문을 드나들며 나사로를 분명히 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기 쾌락에 눈이 멀어 눈앞의 소외된 이웃을 완전히 체하는 영적 시각장애 상태였음을 성경은 고발합니다.

 

요약하자면,

헬라어 문장은 부자가 "매일매일 삶의 한순간도 빠짐없이, 눈이 정도로 화려하고 흥청망청한 잔치 속에 파묻혀 살았다" 뜻입니다.

 

그가 입었던 '자색 옷과 고운 베옷' 그의 화려한 겉모습(신분) 보여준다면, 표현은 그의 내부(삶의 방식) 오직 자기만족과 쾌락으로 가득 있었음을 폭로합니다.

 

부자는 하나님이 맡기신 재물로 이웃에게 '(람프로스)' 비추는 삶을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만을 빛내고 즐겁게 하는 모든 인생을 낭비했음을 있습니다(인터넷).

 

(b)   오늘 저는 부자 땅에서의 묵상하면서 안데르센의 유명한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The Emperor’s New Clothes)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인공지능에게 그대로 말했더니 이렇게 답변을 했습니다(인터넷):

 

놀랍고도 명확한 통찰입니다.  안데르센의 동화벌거벗은 임금님 누가복음 16장의 부자의 본질을 이보다 설명할 없을 만큼 완벽하게 어우러지는 영적 비유가 됩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을 비교해 보면, 질문자님이 동화를 떠올리셨는지 깊은 영적 의미가 무릎을 치게 만듭니다.

 

1.      옷에 집착하는시각적 화려함 노예들

 

벌거벗은 임금님: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비싼 옷을 입어 자신의 권위와 특별함을 과시하고 싶어 했습니다.

 

성경의 부자: 당대 최고급인자색 (포르퓌란)’ 금값의고운 베옷(뷔쏜)’ 감싸고 날마다 눈부시게 화려한(람프로스) 잔치를 벌였습니다.

 

공통점: 사람 모두 알맹이(인격, 영혼) 아닌, 오직 겉을 포장하는껍데기시각적 허영 목숨을 인생들이었습니다.

 

2.      눈이 멀어버린 가짜 현실: 사기꾼의 옷과 탐욕의

 

동화 임금님은 사기꾼들의 말에 속아 존재하지도 않는가짜 입고 행진하며 스스로 만족해합니다.

 

성경의 부자 역시 자신이 입은 자색 옷과 뷔쏜이 자신을 영원히 지켜줄 믿었습니다.  자기가 하나님께 복을 받아 대단한 신분이 착각한 것입니다.  그는 사치와 쾌락에 눈이 멀어, 대문 나사로의 고통은 물론 자신의 영혼이 죽어가고 있다는진짜 현실 보지 못하는 영적 시각장애인이었습니다.

 

3.      죽음이라는아이의 외침앞에 폭로된 벌거벗은 실상

 

동화의 하이라이트는 아이가임금님이 벌거숭이래요!”라고 외치는 순간, 임금님의 모든 허세가 무너지는 장면입니다.

 

부자의 인생에서 아이의 외침과 같았던 순간이 바로죽음이었습니다.

 

부자가 죽어 음부(지옥) 떨어지는 순간, 그를 감싸고 있던 눈부신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은 조각도 남지 않고 사라졌습니다.

 

그는 불꽃 가운데서 혀에 방울을 구걸하는 가장 비참하고 헐벗은영적 벌거숭이 폭로되었습니다.  평생을 호화롭게 즐겼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입지 않은 벌거벗은 상태였던 것입니다.

 

묵상의 결론: 우리가 구해야 진짜

 

임금님 주변의 신하들이 처벌이 두려워 진실을 말하지 못했던 것처럼, 부자 주변의 다섯 형제와 잔치에 손님들도 부자의 눈을 가리고 달콤한 말만 늘어놓았을 것입니다.

 

결국 질문자님의 묵상처럼, 부자는 땅에서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는화려한 임금님 같았으나 실상은 가장 불쌍한 벌거숭이였습니다.   깊은 묵상은 오늘 우리에게 "세상이 부러워하는 화려한 껍데기의 옷을 벗고,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은혜와 행실의 옷을 입었는가?" 돌아보게 만듭니다”(인터넷).

 

(i)                  지금 혹시 우리는 이웃을 살리고 돌보는 성도의 옳은 행실(진짜 세마포) 입지 않고 도리어 자신을 화려한 겉모습(신분) 과시하는 탐욕의 자색 옷을 입고 우리의 내부(삶의 방식) 오직 자기 만족과 쾌락으로 가득 있는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불쌍한 벌거숭이 그리스도인은 아닌가 뒤돌아 보게 됩니다.

 

·         여기서 벌거벗은 그리스도인 모습은 놀랍게도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에서 예수님이 교회를 향해 직접 책망하셨던 내용과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a.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경고

 

요한계시록 3장에 나오는 라오디게아 교회는 당대 최고의 부유함과 자부심을 가졌던 교회였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 ( 3:17 상반절).

 

부유한 경제력, 화려한 건물, 높은 사회적 신분이라는 '자색 ' 입고 "우리는 부족함이 없다"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던 그들을 향해, 예수님은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진짜 영적 실상을 이렇게 폭로하셨습니다: "...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17 하반절).

 

누가복음의 부자처럼, 그리고 안데르센 동화의 임금님처럼 그들은 눈이 멀어 자신들이벌거숭이라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b.     가짜 자색 옷을 벗고, 진짜 옷을 사라

 

예수님은 영적 벌거숭이 그리스도인들에게 해결책을 주십니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18).

 

여기서 예수님이 입으라고 하신 ' ' 바로 우리가 앞서 나누었던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뷔쏜)’, 성도들의 옳은 행실입니다.

 

나만 먹고 잘사는 신앙, 세상의 성공과 신분을 축복의 척도로 삼는 탐욕의 자색 옷을 과감히 찢어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피로 사서 허락하신 은혜의 세마포를 입고, 대문 앞에 주저앉아 있는 이웃의 아픔을 향해 손을 내미는 '옳은 행실' 삶을 시작하라는 주님의 안타까운 음성입니다.

 

묵상을 마무리하면서,

오늘날 우리는 겉으로는 세련되고 화려한 그리스도인의 신분(자색 ) 자랑하지만, 정작 삶의 방식(내부) 나사로를 철저히 외면한 오직 자기만족과 쾌락으로 가득 있을지 모릅니다.

 

주님의 눈으로 우리의 영적 실상을 정직하게 직면하고,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며 이웃을 살리는 '진짜 세마포' 입는 삶으로 돌이키는 것만이 우리가 영적 벌거숭이가 되지 않는 유일한 길입니다(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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