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주님께서는 나 같은 죄인의 무지에 대한 긍휼로 ‘ 아버지 , 제임스를 사하여 주옵소서 … 제임스를 사하여 주옵소서 …’ 하고 끊임없이 반복하며 선제적 용서 기도를 하고 계십니다 . [ 선제적 용서 기도 : 가해자들이 잘못을 뉘우치거나 용서를 구하기도 전에 , 예수님은 십자가 형틀이 세워지는 가장 참혹한 고통의 정점에서 용서를 먼저 선포하셨습니다 .] “ 또 다른 두 행악자도 사형을 받게 되어 예수와 함께 끌려 가니라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백성은 서서 구경하는데 관리들은 비웃어 이르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이 택하신 자 그리스도이면 자신도 구원할지어다 하고 군인들도 희롱하면서 나아와 신 포도주를 주며 이르되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면 네가 너를 구원하라 하더라 그의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이라 쓴 패가 있더라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예수께...
우리가 보기에 "나쁜 곳"과 아주 '좋은 곳'
우리가 보기에 "나쁜 곳"은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고", "없고" 없고" "없도다"입니다(민수기 20:5). 즉, 우리가 보기에 나쁜 곳은 우리가 부족함을 많이 느끼는 곳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 "나쁜 곳"에서 하나님께 엎드려 간구할 수 밖에 없습니다(6절).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나쁜 곳"에서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사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7-8절). 그런데 우리는 그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순종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지 아니합니다(12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 "나쁜 곳"에서 우리의 원망의 소리도 들으시사 우리의 부족함을 채워주십니다(11절).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우리가 보기에 "나쁜 곳"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곳입니다!
우리가 보기에 아주 '좋은 곳'은(사사기 18:9, 현대인의 성경)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이 번영을 누리"는 곳이요(7절, 현대인의 성경) "그 곳에는 세상에 있는 것이 하나도 부족함이 없"는 곳입니다(10절). 우리가 보기에 아주 '좋은 곳'은 우리가 "한가하고 걱정 없이 사는" 곳입니다(27절). 그러기에 우리는 그 아주 '좋은 곳'에서 하나님께 기도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결국에 가서는 우리는 그 아주 '좋은 곳'에서 우상을 섬기는 죄를 범합니다(30절). 우리가 보기에 아주 '좋은 곳'은 하나님께 우상숭배의 죄를 범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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