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성탄 계절에 사도 바울은 두기로를 특별히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보냈다(골4:8)하는 말씀을 묵상할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gave)(요3:16)는 말씀과 더불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해 내주"셨다(gave up)(롬8:32)는 말씀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셨다(gave Himself up)(엡5:2)는 말씀을 연관해서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였을 때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마27:46)라는 말씀도 생각났습니다.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는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버리시기까지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우리도 예수님과 복음을 위하여 우리 목숨을 잃을 수 있길 기원합니다(막8:35). https://youtu.be/amBwOJJrKxs?si=B6DoBllFE_Il7U-p
하나님을 미워하는 악한 자와 인연을 맺어서는 아니 됩니다.
선견자 예후는 유다 왕 여호사밧에게 “왕은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책망했습니다(역대하 19:2). 여기서
“악한 자”와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는 이스라엘 왕 아합을 가리킵니다. 왜 여호사밧 왕이 아합왕을 사랑하고 도왔을까요? 저는 그 이유가 역대하 18장 1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호사밧이 부귀와 영화를 누리게 되자 그는 혼인으로 아합의 집안과 인연을 맺었다.” 즉, 여호사밧 왕이
하나님을 미워하는 악한 아합 왕을 사랑하고 도운 이유는 그가 부귀와 영화를 누리게 되었을 때 혼인으로 아합 왕의 집안과 인연을 맺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사밧 왕은 하나님을 미워하는 악한 아합 왕의 집안과 인연을
맺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그리한 이유는 부귀와 영화를 누리게 되었을 때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부귀와 영화를 누리게 될 때 특히 조심하여 영적 분별력을 유지하여 하나님을 미워하는 악한 자와 인연을 맺어서는 아니
됩니다. 만일 조심하지 못하여 그런
자와 인연을 맺었다면 속히 끊어야 합니다. 속히 끊지 못한다면 점진적으로 거리를 두어서라도 끊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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