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1: Emptying “Grumbling” In the previous chapter, we looked at the life of emptying ourselves of sexual immorality and wrongful desires and turning our love back toward God. Now, in Chapter 11, we will look at another problem that easily settles into our hearts and onto our lips. It is a grumbling heart. As we go through life, there are many moments when we grumble. “Why did this happen to me?” “Why does that person treat me this way?” “Why is my family going through such a difficult time?” “Why is the church like this?” “Why did God allow this?” Even when we do not speak these words aloud, we may repeat them countless times in our hearts. But in the Bible, grumbling is not merely a matter of uttering a few complaints. Grumbling can change the direction of our gaze, cause us to forget God’s grace, and even change the way we look at people and circumstances. Therefore, ...
“ 주의하라 ” (1) [ 골로새서 2 장 8-23 절 ] 여러분 , “ 이단 ” 으로 분류하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 황대우 교수란 분이 “ 개혁주의 학술원 ” 이란 웹사이트에 올린 글을 보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 “’ 이단’ ( 이단 ( 異端 ) 이란 ‘다를 이’에 ‘끝 단’자로 구성된 단어이며 ‘끝이 다른 것’을 의미한다 . 하지만 이단을 의미하는 영어 명사 ‘헤러시’ (heresy) 의 어근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 ‘하이레시스’가 신약성경에서는 ‘사두개파’ ( 행 5:17), ‘바리새파’ ( 행 5:17), ‘파당’ ( 행 26:5; 고전 11:19; 갈 5:20) 등과 같은 ‘분파’를 의미하는 중립적 개념이다 . 1 세기의 사도들은 일종의 ‘특정 집단’을 가리키는 의미로 그 단어를 사용한 것이다 . 하지만 2 세기의 속사도교부들은 그 용어를 부정 ( 否定 ) 과 차별 ( 差別 ) 의 의미를 내포한 평가적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하는데 , 이것이 오늘 우리가 사용하는 이단의 의미다 . 그러므로 이단이란 용어는 이미 2 세기부터 기독교인들에게 아주 익숙한 개념이다 . 영국 신학자 맥그래스 (McGrath) 에 의하면 , “이단은 우발적이든 고의든 주인의 집안에 대안적 신념 체계를 세우는 수단 , 즉 일종의 트로이 목마 같은 것이다 . 이단은 겉으로는 기독교처럼 보이지만 , 실제로는 파괴적 씨앗을 심는 신앙의 원수이다 . ….” “ 오늘날 ‘이단’이란 말은 ‘완전히 다른 복음’ , 즉 기독교에 포함시킬 수 없는 단체나 모임에 적용하는 용어다 . 그렇다면 과연 ‘기독교’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 있는 기준 , 즉 이단의 기준은 무엇인가 ? 기독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기독교가 아닌 집단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