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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s love, which is stronger than death, is causing me to continue walking the path of the mission the Lord has given me (John 6:1–15).

God’s love, which is stronger than death, is causing me to continue walking the path of the mission the Lord has given me (John 6:1–15).             “At that very time some Pharisees came and said to Him, ‘Leave this place and go somewhere else. Herod wants to kill You.’   He replied, ‘Go tell that fox, “I will keep driving out demons and healing people today and tomorrow, and on the third day I will reach My goal.”   In any case, I must press on today and tomorrow and the next day—for surely no prophet can die outside Jerusalem!   Jerusalem, Jerusalem, you who kill the prophets and stone those sent to you, how often I have longed to gather your children together, as a hen gathers her chicks under her wings, and you were not willing.   Look, your house is left to you desolate.   I tell you, you will not see Me again until you say, “Blessed is He who comes in the name of the Lord” (Luke 13:31–35).     ...

총체적 칭의론 (16) (로마서 4장 1-8절)

총체적 칭의론 (16)         [ 로마서 4 장 1-8 절 ]     우리가 “총체적 칭의론”이란 대주제 아래 7 가지 소주제를 묵상하고 있습니다 : (1) 첫 번째 소주제는 “칭의의 필요성”입니다 .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기에 ( 롬 3:23) “모든 사람”이 절대적으로 칭의가 필요합니다 .   (2) 두 번째 소주제는 “칭의의 근원”입니다 .   칭의의 근원은 성부 하나님이십니다 .   성부 하나님께서 의롭다 칭하십니다 ( 롬 3:2).   (3) 세 번째 소주제는 “칭의의 근거”입니다 .   칭의의 근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   성부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제물과 화목 제물에 근거로 해서 죄인을 의롭다 하십니다 .   (4) 네 번째 소주제는 , “칭의의 방편”입니다 .   우리는 성부 하나님이 주시는 칭의를 믿음으로만 받습니다 ( 롬 3:22).   (5) 다섯 번째 소주제는 , “칭의의 보편성”입니다 .   성부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시기에 그분이 행하시는 모든 일이 공평하십니다 .   그러므로 성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의” ( 칭의 ) 는 “차별”이 없습니다 (22 절 ).   (6) ​ 여섯 번째 소주제는 , “ 칭의의 목적”입니다 .   칭의의 이중목적은 (1)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시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과 (2) 예수님을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시는 것입니다 (26 절 ).   오늘은 “ 총체적 칭의론 ” 이란 대주제 아래 마지막 일곱 번째 소주제인 “ 칭의의 예증 ” 에 대해서 묵상하면서 주시는 은혜와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   오늘 본문 로마서 4 장 1-8 절 말씀을 보면 ...

과연 우리는 그 축복의 말씀 외에 고통에 대한 말씀도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과연 우리는 그 축복의 말씀 외에 고통에 대한 말씀도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   " 하늘을 쳐다보고 별을 세어 보아라 . 네 후손도 저 별들처럼 많을 것이다 " 라고 약속하신 하나님을 믿은 아브람이 " 네가 반드시 알아야 될 일이 있다 . 네 후손들이 외국 땅에서 나그네가 되어 400 년 동안 종살이하며 학대를 받을 것이다 .   그러나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벌할 것이니 그 후에 네 후손들이 많은 재물을 가지고 그 나라에서 나올 것이다 .   그리고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죽어 묻힐 것이며 네 후손들은 4 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올 것이다 .   이것은 아직 아모리족의 죄가 절정에 달하지 않았으므로 그때까지는 내가 그들을 쫓아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 라는 하나님의 말씀도 믿었을까요 ?( 창세기 15:5-6, 13-16, 현대인의 성경 )   만일 하나님이 우리에게 후손에 대한 축복의 말씀을 하셨다가 우리의 후손이 4 대 동안 고통을 동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면 과연 우리는 그 축복의 말씀 외에 고통에 대한 말씀도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