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s love, which is stronger than death, is causing me to continue walking the path of the mission the Lord has given me (John 6:1–15). “At that very time some Pharisees came and said to Him, ‘Leave this place and go somewhere else. Herod wants to kill You.’ He replied, ‘Go tell that fox, “I will keep driving out demons and healing people today and tomorrow, and on the third day I will reach My goal.” In any case, I must press on today and tomorrow and the next day—for surely no prophet can die outside Jerusalem! Jerusalem, Jerusalem, you who kill the prophets and stone those sent to you, how often I have longed to gather your children together, as a hen gathers her chicks under her wings, and you were not willing. Look, your house is left to you desolate. I tell you, you will not see Me again until you say, “Blessed is He who comes in the name of the Lord” (Luke 13:31–35). ...
체휼하는 위로자 “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 히브리서 4 장 15 절 ). 우리 가운데에는 아프면서 아프다고 말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 우리 주위에도 힘들면서도 힘들다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두려움과 아픔과 고통을 앉고 오늘도 살아가고 있습니다 . 그런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괴로운 마음을 그 누구에게도 나누지 못하고 전정 긍긍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 아마도 그 이유는 그들에게는 마음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 왜 마음을 나누지 못합니까 ? 어쩌면 그 이유는 우리는 우리가 마음을 열고 우리의 고통을 나눠도 상대방이 이해하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 그래서 우리는 주로 그 고통을 우리 마음 깊은 곳에 덮어 놓는 것 같습니다 . 그리고 우리는 오늘도 이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 저는 고난 주간 , “ 질고를 아는 자 ”( 사 53:3) 이신 예수님에 대해서 묵상하면서 예수님은 저의 연약함을 체휼하시는 대제사장이란 사실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생각하면서 저는 예수님처럼 사랑하는 이웃들의 연약함을 체휼하는 위로자로 세워주시길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 기도 후 저는 과연 어떻게 기도를 실천으로 옮기므로 말미암아 주님이 세우시는 체휼하는 위로자가 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 첫째로 , 체휼하는 위로자로 세움을 받기 위해선 나의 연약함을 체휼하시는 주님 앞에서 나의 연약함을 철저히 깨닫고 인정해야 합니...